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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이 살아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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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동 [ynin] 쪽지 캡슐

2004-11-24 ㅣ No.75222

전태일이 살아 온다면
평화시장 청년노동자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며 근로기준법을 끌어안고 분신한 그때가 1970년 11월이었다. 그의 외마디는 부조리한 노동현실에 눈감고 있던 우리 사회에 비수처럼 파고들었고,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단초가 되었다.

2004년 11월. 전공노 파업이 실패로 끝났다. 싸늘한 여론과 정부의 강경대응 결과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26일 총파업을 예고해두고 있다. 춘투, 하투에 이어 동투라는 표현도 이제 낯설지 않다.

34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노동현장은 여전히 시끄럽다. 전태일의 문제제기가 아직 결실을 보지 못한 것인지, ‘투쟁’이 노동자로서 삶의 숙명 같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붉은 머리띠를 한 노동자의 집회와 파업은 오늘도 계속된다.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1988년 이후 매년 열리는 대회지만 전공노 파업 전날이자,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선언한 날이라 열기가 높았다. 이수호 위원장은 “우리는 모두가 전태일이 되어 총파업투쟁을 결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고 했다.

그렇게 전태일은 투쟁현장에서 거의 예외없이 거명된다. 전태일은 노동운동의 정통성과 순수성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정성기(경남대)교수 같은 이는 ‘전태일’을 현 사회의 진보·보수세력을 아우르는 사회통합의 구심점으로 삼아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래서 궁금하다. 전태일이 돌아와 최근의 노동운동 양상을 지켜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노동운동 세력의 양적 성장에는 크게 놀라겠지만, 운동노선에 대해서라면?

“34년 전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심각한 자기반성과 함께 통절한 인간선언이 있어야 한다.” “대안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비타협적인 총파업은 사회적 비용과 혼란을 야기하는 주범으로 인식돼 국민일반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일 전태일기념사업회가 연 ‘한국 노동운동,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노동운동 핵심인사들이 쏟아낸 발언들이다.

지금 노동자는 하나가 아니다. 대기업노조에 가입된 노동자, 중소기업 노동자, 하청·일용직 등 비정규직, 실업자로 내부에도 계급이 존재한다. 대기업노조 중심의 투쟁은 제몫 챙기기에 집중됐고, 챙겨가는 몫은 여타 노동자들의 상대적 박탈을 유발해왔다. 수십만의 청년실업자가 일자리 찾아 전전하는 동안 전공노는 밥그릇을 더욱 튼튼히 하려는 파업을 벌였다. ‘그들만의 노동운동’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민주노총은 이번 총파업이 비정규직법안 철회를 위한 것이라고 반박할지 모른다. 하지만 현장의 비정규직들 반응은 덤덤하다. 14일 집회에 정규직 노조원이 참여하는 동안 비정규직들은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주장하지만 그렇게 되면 하청노동자들이 급여를 훨씬 더 받아야 할지 모른다. 비정규직들은 대기업노조가 진짜 자신들을 위해 끝까지 싸워줄 거라고 믿지 않는다.

‘전태일 정신’이 뭔가. 더 어려운 노동자를 향한 동지의식,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저항하는 용기, 자기를 던지는 희생과 사랑 아니겠는가. 전태일을 지금 만난다면 아마 기득권이나 조직논리를 버리고, 처지가 어려운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들을 위해 온몸을 던지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하지만 현재 노동현장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를 죽인 건 자본가지만 다시 죽인 건 노동귀족’(전태일기념사업회 게시판)이라는 극언까지 나오는 게 현실이다.

요 몇년사이 대기업노조 중심의 노동운동은 전통적인 지지자를 잃었다. 내부에서 치열한 자기반성이 나올만큼 위기국면인데도 상투적인 운동방식은 여전하다. 위기를 벗어날 생각이라면 방법은 있다. 전태일 정신을 되찾는 것이다. 기득권보다는 연대를, 이기주의보다는 사회정의를, 조직보다는 휴머니즘을 지향할 때 1970, 80년대 노동운동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김회평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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