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더보기
2026년 10월 29일 (목)
(녹)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자유게시판

한국의 성지를 찾아서15(배론: 최초의 신학당터)!!!

스크랩 인쇄

노병규 [rbk2236] 쪽지 캡슐

2004-11-25 ㅣ No.75261

    

                                                    - 아름다운 배론성지 -

 

심산 유곡(深山幽谷), 계곡이 깊어 배 밑 바닥 같다고 하여 '배론'이라 불린다. 충북 제천군 봉양면 구학2리, 백운산(해발 1,087미터)과 구학산(해발 985미터)연봉 사이로 십여리를 들어간 곳에는 계곡만큼이나 깊은 신앙의 터가 펼쳐진다.

한국의 카타콤바라 할 만큼 풍성한 신앙의 유산을 지닌 배론은 우선 그 경관이 수려하다. 배론 입구에 위치한, 경치 좋기로 유명한 원주-제천 간의 탁사정(濯사亭)은 배론이 자랑하는 절경 가운데 하나이다.

- 배론의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잇는 안내비석 -

 

하지만 수려한 자연도 배론이 안고 있는 신앙의 유산에 견준다면 그 빛을 잃는다. 배론의 옹기 토굴에서는 명주 자락에 1만3천3백11자로 울분과 신심을 기록한 '황사영 백서'가 쓰여졌고, 바로 옆의 쓰러져 가는 초가에서는 이 땅 최초의 서구식 대학인 신학당이 섰으며, 김대건 신부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신부였던 최양업 신부가 이곳 배론에 묻혀 있는 것이다.

한 가지만으로도 가히 현양의 가치가 충분한 신앙 유산들이 몰려 있는 배론이야말로 최적의 순례지로 추천할 만하다. 더욱이 사통팔달(四通八達)로 편리한 교통과 피정센터를 비롯한 쾌적한 편의 시설들은 순례를 위해 '엄숙한 마음가짐' 외에는 다른 준비물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 최초의 신학당 모습, 이집주인 장주기 요셉은 병인박해시 갈매못에서 치명 하였다 -

 

그 옛날 교우들은 박해를 피해 산으로 계곡으로 깊이 숨어들어야 했다. 그들 중 일부가 모여들어 교우촌을 이룬 곳이 바로 배론이다. 졸지에 재산과 집을 잃고 가족과 생이별을 한 교우들이 깊은 산 속에서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옹기 굽는 일이었다.

옹기구이는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감시의 눈을 피해 토굴 속에서 신앙을 지키는 데 안성맞춤이기도 했다. 또 구워 낸 옹기를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나서면 아무 집이나 허물없이 드나들 수 있어 잃은 가족을 수소문하거나 교회 소식을 전하는 데에도 편리했다.

- 배론의 사실상 주인이랄 수 있는 최양업신부의 묘소 -

 

사람의 눈을 피해 신앙을 지켜 가던 옹기 마을에 최초로 역사적 사건이 터진 것이 바로 황사영 백서 사건이다. 창원(昌原)황씨 성을 가진 사영은 나이 16세에 장원급제, 정조가 친히 등용을 약조할 만큼 앞길이 창창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정약종으로부터 천주학을 전해 듣고는 주문모 신부에게 영세한다. 벼슬길을 마다하고 고난의 길을 택한 그는 1801년 신유박해가 터짐과 동시에 서울을 빠져 나와 배론으로 숨어든다.

그 해 8월 주 신부의 처형 소식을 들은 그는 낙심과 의분으로 북경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적는다. 하지만 백서를 품고 가던 황심이 붙잡히고 황사영도 대역무도 죄인으로 능지 처참의 극형에 처해진다. 이 때가 그의 나이 27세.

 

- 사목자로서의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전국을 발로 누볐던 최양업신부의 상 -

 

사건으로 그의 홀어머니는 거제도로, 부인은 제주도로, 외아들 경헌은 추자도로 각각 유배되고 십수 명이 공범으로 처단된다.

- 황사영선생이 백서를 썼던 토굴입구 -

 

백서의 원본은 근 1백여 년 동안 의금부 창고 속에 숨겨져 있다가 1894년에야 비로소 빛을 본다. 뮈텔 주교는 1925년 한국 순교자 79위 시복식 때 이를 교황 비오 11세에게 봉정했고, 현재 백서는 바티칸에 소장돼 있다.

배론의 두 번째 신앙 유산은 백서 사건 후 55년 뒤, 1856년 설립된 최초의 신학교이다. 깊은 산골 장주기의 집에 세워진 신학당에는 학생 열 명에 두 신부가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1866년 병인박해로 인해 배론에서도 집주인이었던 장주기와 두 선교사 신부가 잡혀가 형장의 이슬이 됐다. 그리고 목자 잃은 양 떼처럼 신학당 역시 페쇄되고 만다.

- (좌측)옹기를 굽던 가마터, 신학당 옆에 자리하고 있다 -

 

- (우측)서소문에서 순교한 황사영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순교 현양탑 -

 

배론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귀중한 유산은 최양업 신부의 묘소이다. 한국 최초의 방인 신부인 김대건 신부보다 4년 늦게 사제품을 받고 12년간 조국에서 사목 활동을 하던 최 신부는 피로와 무리한 활동에 지쳐 쓰러져 이곳 배론의 신학당 뒷산에 묻힌 것이다. 혹자는 김대건 신부를 '피의 순교자'라 부르고 최양업 신부를 '땀의 순교자'라고 일컬을 만큼 최 신부의 업적에 대한 높은 평가가 새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수려한 자연, 풍부한 신앙 유산 그리고 편리한 교통과 시설로 배론은 최적의 성지 순례 여견을 갖추고 있어 한번쯤 온 가족이 함께 찾아볼 만한 곳이다.

또 한 가지 기억할 만한 것으로, 원주에서 제천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용소막 성당은 배론 순례길에 반드시 들러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용소막 성당에는 성서학자인 고(故) 선종완 신부 기념 박물관이 있고 여기에는 선 신부의 유품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성서와 자료들이 풍성해 한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유익할 것이다.

찾아가는 길
중앙 고속 국도 서제천 인터체인지에서 나와 봉양 읍내를 지나 5번 국도를 따라 원주 방면으로 가다 보면 구학역을 지나자마자 길 좌측으로 배론 성지 안내 푯말이 보인다. 여기서 배론교를 지나 3Km 남짓 계곡을 거슬러 들어가면 배론 사적지이다.



58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번호 제목 등록일 작성자
75263 反知性의 지배 !!!|4| 2004-11-25 노병규
75262 +민성기 요셉신부님 추모홈피주소 2004-11-25 이현철
75261 한국의 성지를 찾아서15(배론: 최초의 신학당터)!!! 2004-11-25 노병규
75259 방약무인(傍若無人) !!!|1| 2004-11-25 노병규
75252 여기 다모이섰군요 특공대일거라고 생각은 했었는데....|4| 2004-11-25 이윤정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