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 /이제민
어느 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마태 8,27) 하고 물으셨다. 마태오는 마르코와는 달리 예수께서 그냥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묻지 않고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마태 16,13) 하고 묻도록 한다. 예수께서 이 칭호로써 드러내고자 하신 당신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예수께서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면 나는 뭐라고 답변했을까?
베드로는 스승의 질문에 "선생님은 그리스도입니다." 하고 자신 있게 답한다. (마태오는 여 기에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첨가한다.) 핵심을 간파하진 못한 것 같다. 단순히 스승의 입에서 나온 "나"만을 생각하고 -마태오 복음에서처럼 당신이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칭한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답변도 ''사람의 아들''과는 상관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이에 예수께서 ''사람의 아들''에 대해서 설명하신다. 그 설명은 곧 ''당신''에 관한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게 될 것이다.(마르 8,31) "거기(예루살렘)에서 사람의 아들은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손에 넘어가 사형 선고를 받고 다시 이방인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34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을 조롱하고 침뱉고 채찍질하고 마침내 죽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마르 10,33-34)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자기 생각과는 너무도 다른 스승의 생각에 깜짝 놀라 펄쩍 뛴다: 어떻게 그리스도가 그런 무력한 사람의 아들일 수 있는가?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호되게 꾸짖으신다: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32-33)
예수는 ''사람의 아들''이다. 그분의 형제자매도 우리 가운데 인간이었며, 그분의 어머니도 인간 가운데 한 분이다. 그분은 사람의 아들로 사람들 가운데 태어나셨고 그렇게 사셨다. 또 렇게 죽을 것이다. 인간과 운명을 같이 하신 그리스도. 예수는 사람의 모습으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보여주고자 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그분은 사람들 가운데서만 만날 수 있다. 사람을 멀리하면 만날 수 없다.
인간 가운데 태어나신 예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인간 예수에게서 우리는 ''주님''을 보아야 한다. 우리가 진정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임을 믿어 고백한다면, 그분이 사람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지금 당신의 인간 길이 곧 하느님의 길임을 설명하신다. 당신은 인간들 중의 하나인 인간의 아들로서 인간을 위하여 있고 인간도 그를 위하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와는 다른 차원의 그리스도관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차원에서 예수를 따랐다. 나더러 주님, 주님, 부른다고 다 구원되는 것이 아니다고 하신 그분의 말씀을 베드로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분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데는 대체로 두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예수에게서 그분의 높음만을 보면서 사람의 아들을 보지 못하는 것과 그분의 ''사람의 아들'' 존재에서 주님의 존재를 보는 것이다. 베드로는 첫 번째의 관점에서 예수를 보았고 예수는 두 번째 관점에서 자신을 제시하고 있다.
예수는 사람의 아들로 인간의 길을 가야 한다. 그분을 사람의 아들로 받아들이고 그분이 함께 사신 사람들에게서 그분을 발견하는 자만이 그분과 함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최후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이를 분명히 말해준다.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주님께 해드린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인간이 다른 이에게 어떻게 접근했는 가에 따라 그에게 접근할 것이다.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이에게 마실 물을 준 사람들에게 당신도 그렇게 접근할 것이고, 나그네를 따뜻하게 맞이한 사람을 당신도 따듯하게 맞아들일 것이다. 그렇게 감옥에 갇힌 이를 찾아 준 사람을 당신도 찾아줄 것이다.
사람의 아들로서 그분은 당신의 하느님의 아들임을 보여 주신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사람의 아들인 그분께 고백하는 사람에게 그분도 하느님 앞에서 고백할 것이다. 절대화된 예수가 아니라 그래서 배타적인 그리스도가 아니라 인류와 함께 있음이 그분의 절대성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기준이다. 자신을 사람의 아들로 부르신 그분은 당신을 결코 절대화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을 절대화시켜놓고 우리 동료가 아니면 배타적으로 굴면서 신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사람의 아들임을, 사람들 가운데 있음을,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것을 ''그분의 이름으로''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슬프게도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우리 신앙의 현실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