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 본(Bonn)을 본받자 [독일에서 온 기고] 서준원 정치학 박사...자존심=신수도 신행정수도 무산소식 후 독일에서 본 우리
대선 공약으로 신행정수도가 거론 될 때, 필자는 독일의 본(Bonn)을 먼저 떠올렸다. 본이 통일 이전까지 실질적인 행정수도와 ‘일하는 의회’의 모습을 보여준 전형적인 생활정치형 도시였기 때문이다. 전후 서독은 본에서 정말 부지런하게 그리고 합리적·실용적으로 정치활동을 펼쳐, 전후복구와 통일은 물론 국민의 삶을 파고드는 생활정치를 접목시켰다. 다시 말하면 본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켜 강국으로 부상했고 급기야 통일까지 실현시킨 것이다.
충청지역에서 포효하는 신행정수도 건설 촉구 소식을 접하면서, 필자는 본을 다시 찾았다. 왜 우리는 책임정치, 삶의 정치, 생활정치를 위한 법과 제도 또는 정치문화가 부실한지를 다시 느껴보기 위해서다. 특정집단만의 생존을 위한 정치(politics for survival), 권력쟁취와 유지를 위한 투쟁의 정치(politics for struggle)가 아니라, 삶 속에 녹아드는 생활정치(politics for life)가 우리에겐 언제나 도래할 수 있는가.
지금처럼 신행정수도로 가는 험로를 충청만이 이렇게 외롭게 걸어야 할까. 필자는 신행정수도건은 충청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넘어서 미래의 통일한국은 물론 우리 정치의 미래와 그리고 우리 민족의 새로운 출발을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생각한다. 그 실현을 위한 작은 전제로 본(Bonn)을 본받아 보자는 것이다.
신 수도는 민족의 자존심이다
먼저 본의 과거를 살펴보자. 2차 세계대전 직후에 서독은 분단과 함께 행정수도를 물색한다. 미영불이 서독을 분할통치 하던 시기라 당연히 전승국들의 목소리만 나왔다. 미국은 두 번씩이나 유럽을 초토화 시킨 독일을 농업국가로 만들어서라도 철저하게 쪼개서 분할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의 통치하에 있던 프랑크푸르트를 새 수도로 제안했다. 프랑스의 사사건건 반대도 만만치 않았지만, 서독 초대수상 아데나워<ㅠ>(Konrad Adenauer)는 영국을 설득하여 라인강변의 조그만 촌락도시 본(Bonn)으로 수도를 정한다. 그 설득과정이 참으로 지난했다. 마치 신행정수도건이 충청을 가운데 두고 수도권과 정치권의 갈등으로 변색되어 버린 우리 처지와 유사하다. 그래서 노무현대통령의 의지가 아데나워 만큼 강해야 하고, 설득력 구사에 팔을 걷고 나서주길 바라는 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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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독 초대 수상 콘라드 아데나워. 수상청(Kanzleramt) 바깥 울타리 옆으로 대로변 한 구석에 있어 시민들이 오가며 볼 수 있다. | | 수도결정 이전의 본은 베토벤의 고향 정도로 알려진 작은 도시였다. 훗날 아데나워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독일민족의 자존심을 걸고 본으로 수도를 옮겼다고 토로했다. 민족의 자존심이 배어있는 수도라면 당연히 국력성장의 힘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의 신행정수도는 누구의 자존심을 대변하고 있는가? 현 정권, 충청권 아니면 수도권인가. 신행정수도는 당연히 우리 민족과 국민의 자존심에 근거를 둬야 한다. 그런 연유에서 여야는 서둘러 특위구성과 활동을 재개하여, 대안모색과 함께 필요하다면 국민투표 등을 통해 국론을 추슬러야 한다.
충청은 떠들어라 난 모르겠다거나, 선거도 아직 멀었는 데...어설픈 표계산에 잔머리를 굴릴 때가 아니다. 그 사이에 국론분열은 물론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 함께 무너져 내린다는 점을 재인식해야 한다.
일하기 좋은 환경과 공간구조
베를린으로 수도가 이전된 탓에 지금의 본은 이전보다 조용하지만, 한편으론 유엔캠프가 들어오는 중이라 어수선하다. 연방하원 옆에 3천-5천명 규모의 국제적인 대회의장도 들어 설 예정이다. 이전 정치권(연방상하원 및 수상청과 대통령 관저 등)의 효율적, 실용적 활동이 펼쳐졌던 공간에 대한 관심이 큰 탓에 유엔 등 국제기구들이 탐내는 도시로 변한 것이다.
규모보다는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그런 공간구성과 독일인 특유의 합리성·실용성이 결합된 결과라고 본다. 독일 지인 건축가를 대동하여 공간구조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연방 상하원과 의원사무실 등을 꼼꼼하게 살펴보니 한마디로 일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환경이라는 점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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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왼쪽이 연방상원, 그 옆이 연방하원으로 유리로 둘러 쌓여 있어 바깥에서도 안이 훤히 보인다.
| | 연방상하원이 같이 붙어있고, 그 옆에 20-30여미터 떨어져 의원사무실이 들어 있는 고층건물이 들어서 있다. 어떻게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있을까 싶더니, 연방수상청과 대통령 사저 등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다시 말하면 나라의 살림과 민족의 미래를 논의하는 의회와 행정부의 주요인사들이 한 곳에 모여 지내면서, 서로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논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및 환경 구조였다. 우리에게도 신행정수도에 이런 식으로 의회와 대통령 사저 및 행정부 등이 한데 어울려 효율적·실질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인간사가 그렇듯이 가깝게 있으면 서로의 맘과 행동이 한 곳으로 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회처럼 보기만 해도 위압감을 느끼고 권위주의 냄새가 물씬나는 그런 모습에 국민은 주눅이 들기 마련이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출입도 철저하게 견제당하고, 게다가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의원들이 검정색 대형차를 타고 내리는 그런 모습이 우리의 현실이다. 독일의 경우 애시당초 걸어서 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도록 조그만 대학캠퍼스 처럼 그것도 라인강변에 바짝 붙여서 만든 것이다.
80시간 짜리 중노동
연방하원이 추구하는 방향은 확실하다. “공개와 투명성”이다. 민의의 전당인 의회부터 그렇게 변하지 않고서는 정치는 물론 나라의 발전이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의원들은(현재 603명) 정말 부지런하지 않을 수 없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꽉 짜인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의원직은 '주 80시간 직업'(Der 80-Stunden-Job)으로 불린다.
이에 비하면 일반노동자들은 주 40시간이 채 안 된다. 매일 아침 8시 30분에 출근하여 사안에 따라 밤 늦게 까지 일한다. 그러다 보니, 토요일은 지역구 활동에 주력해야 하고 잘하면 일요일 반나절을 가족에게 줄 수 있다고 한다. 후진정치에서 누릴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의 맛도 못 보면서 이런 중노동을 왜 자청할까. 그래서 정치인은 다수를 위해서 자신의 희생을 각오해야 하고 소신과 철학이 없으면 버텨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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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고층건물이 의원사무실, 그 아래에 연방상하원, 수상청과 관저, 대통령 관저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라인강변을 끼고 있어 여야의원들이 함께 산책하며 의견을 나누기에도 적격이다. | |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얼마를 버는가 보자. 경찰(29세) 2.343유로(1유로=약 1500원), 회사자문역할(36세) 8,600 디스크쟈키(33세) 6,400만 증권분석가(33세) 8,950 조산원(26세) 2,085 은행지점장(45세) 6,625 트럭기사(45세) 2,200 그리고 연방하원의원은 기본급이 6,878유로를 받는다. 기본급 이외에 이전에는 시간수당을 받았는데(매월 1,100마르크), 1970년 중반에 의원직은 풀타임(full-time)직이라 부적합하다는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다. 그 이후 시간당 수당문제는 아직도 격론중이다.
한시적 회원인 의원
의원직을 소개 할 때 공식적인 직함은 “연방의회 회원(Mitglied des Bundestages)이다. 4년 임기가 있기에 연방의회 소속 한시적인 회원일 뿐이다. 시간이 없어 다른 직업을 병행 할 정도로 여유도 없고, 그렇다고 임기가 연장되면 연장될수록 노후를 챙길 수 있는 여력도 함께 취약해진다.
이에 따라 시간당 수당 또는 보상(Diaet) 형식으로 이것저것 합치면 매월 3,503유로 정도를 더 받고 있다. 물론 보좌관과 비서 등 전문가들과의 회합 등에 소요되는 경비는 매월 8.979유로를 받지만, 여기에서 지역구까지 챙겨야 하니 그 돈으론 부족해 자신이 직접 차를 몰고 다니는 의원들이 태반이다.
필자가 고향으로 출마한다는 기사를 보고 어느 어르신이 전화를 해왔다. “당신 독일에서 공부했다면서 내가 찍어주면 국회에 들어갈 때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겠냐고 물었다”. TV에서 보니까 독일이 그렇다면서 그런 정신으로 정치 할 결심이 섰는지 물어온 것이다. 그 분이 사시는 곳은 “집으로” 영화촬영지로 소문난 산간벽지다. 그런 곳에서도 생동하는 정치관심이 상존할 줄은 미처 몰랐다. 선거 홍보물에 그 어르신을 직접 소개한 바가 있지만, 사실 독일 의원들의 씀씀이를 보면 궁색할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의 세금으로 쓰는 돈이라 일일이 영수증을 철저하게 챙겨야 한다. 정치자금 관리가 그만큼 투명한 것이다. 한번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들통이 나면 정치권에서 발 붙이지 못하고 엄정한 법적 처리로 넘어간다. 철저하게 도덕성이 중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뇌물건으로 자살까지 한 의원들도 있다. 우리처럼 받은 액수의 규모를 놓고 도덕성의 경중을 저울질 하진 않는다.
철저한 무노동 무임금 원칙
의회는 회의체다. 회의를 통해 일을 하는 곳이기에, 회의 참석 여부는 정치활동의 중심에 있다. 시간관리 스케쥴은 의원 개개인의 효율적 활동과 훗날 업적으로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독일의원은 “누구(Chef)의 통제도 안 받고, 오직 양심(Gewissen)에 따라 행동한다”라고 기본법에서 보장한다. 따라서 권리와 의무가 확실하다. 당내에서도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론으로 결정되는 과정에서 할 말을 다한다.
그래서 다양한 의견제시와 심지어 충돌도 나오지만, 결국은 합일점을 찾아서 조정과 화합의 과정을 거친다. 우리처럼 당론이 무조건 중시되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의원 개개인의 견해와 주관 및 철학이 우선시 된다.
정치란 어차피 다른 견해와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지난한 작업이지, 소수가 이미 결정해 놓고 다수에게 무조건적인 추종을 요구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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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 출석 체크함. 의원 자신이 직접 출결 여부를 챙겨야 한다. | |
흥미로운 것은 의원들이 회의에 불참하면 세비에서 삭감한다는 점이다. 주 80시간짜리 중노동임에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철저하게 적용되고 있다.
회의(본회의와 상임위 등)가 있는 날 출석체크를 안 할 경우엔 50유로(약 7만 5천원), 휴가-병가신청도 안 하고 빠질 경우엔 100유로, 몸이 아파서 빠질 경우엔 의사의 소견서 첨부하되 20유로, 기명투표 시에 빠지면 추가로 50유로가 삭감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런저런 이유로 회의에 불참하면 빠듯한 세비마저 제대로 못 챙길 처지다. 우리처럼 일 안하고도 꼬박꼬박 세비를 타가는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비전도 책임감도 상실한 정치권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팡파르는 정치권이 먼저 울렸다. 지금에 와서야 충청이 열을 내고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지만, 필자가 이곳에서 보기엔 정치권과 중앙언론은 의도적으로 백안시 하는 것 같다. 80시간씩 중노동도 안 하면서, 한푼 에누리 없이 세비도 꼬박꼬박 타 가면서, 한시적 권력과 임기가 얼마나 지속될지도 잊은 채 그렇게 시간만 허망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만에 하나 망연자실한 충청민의 응어리가 제 풀에 꺽이길 고대한다면, 우리 정치는 현실에 대한 책임감도 미래를 위한 비전도 함께 상실한 것이다.
더 좋은 환경에서 효율적·실용적인 정치를 펼칠 기회를 스스로 사장시키려 들지 말고, 차제에 본을 방문해서 한 수 배워가길 기대한다. 아직도 본(Bonn)은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 Epilogue >
특정 정당이나 정파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기에, 필자의 주변부터 터 놓겠다. 필자는 한때 자민련에 몸 담았고, 총선에 나가 실패했다. 큰 정치인 김종필(JP)씨를 흠모했던 터라, 나의 선택과 활동에 후회는 없다. 총선 전후부터 당의 개혁을 외쳤지만, 주워 담기엔 자민련은 너무 쇠진했다. 지금은 자민련에서 몸과 맘이 떠난 상태로, 독일정부 초청으로 뮌헨대 국제정치연구소에 와 있다. 달리 표현하면 이국에 머무르고 있는 ‘정치낭인’ 꼴이다.
학문적 연구와 정치활동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지만, 정치경력 업보 탓에 자제하면서 고심중이다. 그러나 지방분권과 지방의 독자적 정치세력 형성이 같이 맞물려 가야만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위스와 남부독일의 바이에른주를 가장 적합한 모델로 여기고 있다.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의 만개를 통해 통일한국 과정에서 투쟁과 대립이 희석되길 바라는 맘이다.
올해 독일은 통일 15주년을 맞고 있다. 필자가 참석한 통일관련 세미나에서도 각종 문제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만큼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보다 국력도 강하고 선진정치를 행하는 독일의 사정도 이런데, 한반도의 현실을 고려하면 갈 길이 멀다.
 서준원(徐俊源) 51세, 대전고, 연세대, 독일 뮌헨대(정치학박사), 국회정책연구위원, 대전매일신문 논설위원(비상임), 자민련 정책의정팀장, 다물민족연구소 상임이사(현),한성대 겸임교수(현), 충남대, 대전대,배재대, 한남대 출강,(연락처)016-321-3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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