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더보기
2026년 10월 31일 (토)
(녹)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자유게시판

“외길 가는 사람은 외로워도 그 길 가야 돼. 그래야 행복해.”/조세희님

스크랩 인쇄

신성자 [socho] 쪽지 캡슐

2004-11-29 ㅣ No.75506

“노동자들 신음소리에 숨이 막힌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우리시대 난장이들을 위하여

 

힘겨운 말이었다. 말하는 이가 힘겹게 뱉어내는 말이었고, 듣

는 이의 마음을 깎아 힘겹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의 언어는

‘절규’였다. 그의 강의도 절규였고, 그와의 인터뷰도 절규였

다. 쏟아낸 말을 세상에 뿌려대며 그는 절규했고, 말이 뽑아낸

더운 땀방울을 닦으며 또 절규했다. 30여년 전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으로 절규했던 그는 ‘여전히’ 세상을 향해 절

규하고 있었다. 손으로 쓰진 않았지만 몸으로 쓰고 있었고, 침

묵하고 있었지만 침묵 속에서 치열했다.
 
그, 조세희.
 
그는 극도로 말을 아끼는 사람이다. 인터뷰는 물론 기고도 하

지 않는다. 모두가 키득거리는 시대, 침묵보다 못한 너스레는

말장난일 뿐이었다. ‘한 말발’ 하는 사람들이 시대를 논하고

정의를 외칠 때, 그는 쉽게 혀를 놀릴 수 없었다. 침묵은 희망

이 사라진 시대를 책임지는 그 나름의 의식이었다.   
 
그런 그를 만나고 싶었다.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나서고 있는

이때, 총파업 첫날부터 비바람과 눈帽汰?살을 때리는 이때,

노동자들을 격려해 줄 그의 한 마디 말을 듣고 싶었다. 역시

그는 숨고 숨었다. 쓰지 않는 작가가 함부로 말하는 건 옳지

않다는 뜻에서였다. 


월간 <삶이 보이는 창>이 마련한 르포문학 강좌에서 그가 강의

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극구 사양하던 그를 노동문학운동

하는 후배들이 강권해 만든 자리라 했다. ‘험한 길’ 가는 후

배들 돕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을 그렇게라도 부추겼다고, 그

후배들이 말했다.
 
생떼를 써 보기로 했다. 무작정 찾아가서 강연을 들었고, 며칠

후 또 찾아가서 만났다. 여러 번 전화를 주고받았고, 그는 또

여러 번 사양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입을 연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노동자와 약자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이었다. 맞다.

‘사랑’, 그 외엔 달리 찾을 단어가 없다.
    
이 글은 <삶이 보이는 창> 강의와 개인 인터뷰, 그리고 수 차

례의 전화통화 내용을 종합해 재구성한, 그에 대한 궁핍하고

작은 ‘조각글’이다.
 
63세인 그는 담배를 참 많이 피웠다. 
 
“노동자들 신음소릴 듣는다”
 
“숨이 막힌다”고 했다. 전방위적 공세에 고통스러워하는 노

동자들의 신음소리를 매일 같이 듣는다고 했다.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위해 총파업에 나서야만 하는

오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오늘이 그를 제대로 숨 쉴 수

없게 만든다고 했다.
 

 ⓒ 매일노동뉴스 박여선 기자

“파견근로 전면 시행과

임시직의 자유로운 사용

이 가능토록 하는 정부

의 비정규 노동법 개악

안을 막으려고 총파업에

나섰다는 ‘11·26 파업

결의문’을 나도 읽었

어. 800만 비정규 노동

자로도 모자라 모든 노

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

들어 버릴 노동법 개악

안이 국회에 상정됐고,

바로 이것은 1천500만

노동자를 눈물나는 비정

규직으로 만들어 자본에

게 더 큰 이윤을 보장하

겠다는 의도라는 지적도

거기 들어 있었어. 지난

몇 년 동안 난 정부와

관료, 국내외 자본이 힘

합쳐서 우리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 노동자들에

게 단 한 점의 인정도

안 두고 퍼부어 대는 끔찍한 폭격을 봐왔지. 내가 작가라 그런

지 밤낮을 안 가리고 퍼붓는 그 끔찍한 폭격소리와 상처 입은

국민이 극도의 아픔을 못 이기고 내는 신음소리를 나는 들었

어.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가정이 파괴되었는지 생각해 봐.”  
 
그는 아팠다. 하루에 네 가지 약을 먹고 있었다. 조금 과하게

집중하고 신경을 쓰면 이가  흔들린다고도 했다. 
 
“몸만 늙는 게 아냐. 다 늙어. 사랑도 늙고, 분노도 늙어. 내

희망도 늙는 거 같고. 그때마다 내가 소멸해 간다는 느낌을 받

아. 태어나서 자라고 반목과 갈등을 계속하다, 이대로 끝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요즘 해. 내 성격이야. 60년대 이후로 한

국사회의 흐름과 반목을 해 왔어. 너무 긴 세월이야. 40년이

넘었으니까.”
 
동시대인들이 시대에 몸을 맡겨 떠밀리고 쓸려가며 명예를 얻

었을 때, 그는 시대와 반목했다. 흐르는 시간이 몸의 저항력을

빼앗아 가는 동안에도, 현실에 대한 그의 꼿꼿한 비판의식만큼

은 건드리지 못했다.    
 
“이건 내가 후배 문학도들을 만날 때 하는 말인데, 내가 ‘난

쏘공’을 쓸 때는 노동자들이나 핍박받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적들만 무너뜨리면 된다고 생각했어. 그때는 독재권

력과 악덕 대기업, 그게 투쟁의 전부였으니까. 지금 상황은 그

때보다 몇 배나 더 복잡해졌지. 착취의 방법은 더 교묘해졌고,

더 악랄해졌어. 국민이 3대에 걸쳐 세계 최장시간 착취 중노동

을 해 주었는데도, 머지않아 선진 제1세계에 도착해 온 국민이

행복하게 잘 살 거라던 우리 조국은 지난 시절 범죄 독재자들

이 수도 없이 약속한 그 꿈같은 낙원에는 근처에도 못 가보고,

당장 내일이 안 보이는 절망의 늪으로 끌려와 깊이 빠져 버렸

어.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나는 숨이 막혀. 그래서인지 지금

우린 나침반 하나 없이 밀림 속을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역사의 진보를 믿고, 시간이

지나면 밀림에서 나와 앞이 확 트인 개활지를 언젠간 보게 될

거라 믿어. 유럽 68혁명 때 그쪽 현장의 한 젊은이가 말했던

대로, 우리가 어떤 구조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 구조

에서 빠져 나오지 않으면 안 돼. 그러나 빠져 나온 뒤에 갈 곳

이 없다면, 우리는 그것에서 빠져 나올 수도 없을 거야.” 
 
시간이 흐르고 상황은 복잡해졌다. 적도 색깔을 바꿨다. 볼 때

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다. 타깃을 정해 화살을

쏘려 하면 금새 색깔을 바꿔 적이 아닌 것처럼 꾸민다. 자신들

이 동지라 불렀던 사람에게 비수도 꽂는다. 최근 노무현 대통

령이 노동운동 진영을 겨냥해, ‘그들만의 노동운동’이라 비

판한 일, ‘귀족노조’란 논리가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광범위

하게 퍼져나가는 현실을 그는 “정치꾼들이 만들어낸 분열”이

라 표현했다.     
 
“매일 여기저기서 수도 없이 뿌려대는 정치·경제적 언사들에

대해 나는 말할 게 없어. 저희 편리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지는

말들은 늘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야. 일

반 국민이 그렇듯이 정치인들도 자기가 아는 것만큼만 말해.

물론 이 ‘앎’에는 그들이 왜곡시키는 것만큼이나 잘못도 많

지. 이런 왜곡에 많은 국민들도 동의하는 건 정말 두고두고 분

노할 일이지만, 문제 많은 나라의 국민들이 그런 것처럼 우리

국민도 죄 많이 지어 온 캄캄한 부패 정치꾼들이 바란 대로

‘분열’된 상태인 거야.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에 사는 우리

에게 이 분열은 또 다른 비극이지.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선

거철이 되면 정치꾼들이 되뇌는 말, 즉 ‘조국과 민족을 위

해’ ‘굳은 신념 갖고’ ‘일관된 생애를 사는’ 사람을 아무

리 눈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었어. 우리가 정말 신뢰할 수 있

는 그런 아름다운 정치인은 실수라도 이 땅에 단 한 사람도 태

어나지 않았으니까.”
 
조세희 선생은 여러 번 ‘중복성원’을 비판했다. 여기에도 속

하고 저기에도 속하는 사람들, 그들의 언어와 행위는 우리에게

상처만 줄뿐이라고 했다.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말로 독재

에의 항거를 외쳤던 사람들이 그 독재자의 후예들에게 부역하

며 떵떵거리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그의 목소리는 높아졌고 말

은 빨라졌다. 쉽게 내뱉고, 쉽게 주워담는 그들을 그는 ‘괴

물’이라 했다.
 
“‘누구누구를 위하여’는 사실상 있을 수가 없어. ‘민중을

위하여’가 어딨어. 한국사회에서 이 시간에 행복하게 사는 사

람은 부자든가, 도둑이든가, 바보 중에 하나야.” 
 
언어는 배반당했다. 그래서 그는 더 말수를 줄이며 살았

다.    


 “공무원노조, 아무도 죽일 수 없다”
 
전국공무원노조에 대한 정부와 여론의 맹폭에도, 그는 몸서리

쳤다. 
 
“나는 정말 무서운 것은 ‘무지’라는 생각을 종종 해. 나 자

신은 어느 노조의 조합원도 아니고, 정말 아무 것도 아니지만

우리 공동체 안의 일들을 생각하다 보면 공포심에 사로잡힐 때

가 많아. 이런 공포심을 제대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아.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전원 중징계·파면·해임 또는 ‘전교조식으

로 복직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들을 쉽게 하는데, 아직

정리하지 못한 가까운 과거의 일들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런지

우리 시대의 이런 무지와 잔인함에 난 몸서리가 쳐져. 이때 들

리는 파면·해임·복직불가라는 말이 내게는 ‘너희는 직장에

서 쫓겨나고, 너희 가정은 이 어려운 시절에 경제적 압박을 못

이겨 파괴되고, 너와 가족은 피눈물을 흘릴 것''이란 말로 들

려. 막말로 ‘우리말 안 들으면 너희는 죽는다!''는 뜻이야.

그러나 이걸 알아야 해. 긴 독재시절 함께 죄 짓고 그 죄의 단

물 빨며 잘 살아 온 썩어문드러진 인간들이 자기들한테 좋도록

우리나라가 더 오래 재난에 빠져 허덕이게 하고 싶겠지만, 우

리 역사는 오늘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 무엇보다 공직사회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을 앞세운 공무원노조를 이젠 아무도 죽

일 수 없어.”
 

 ⓒ 매일노동뉴스 박여선 기자


공무원노조 파업은 3일 만에 끝났고, 정부는 파업참가자 처벌

에 분주하다. 처벌에 소극적인 자치단체엔 각종 불이익을 주겠

다고 위협하고 있고, 거부하는 자치단체장은 검찰에 고발했다.

“전교조 때처럼 복직되는 일도 없을 것”이란 말도 수 차례

강조하고 있다. 과거 전교조에 엄청난 시혜를 베푼 것처럼.    


 “전교조 때를 운운하지만, 그때 권력이 얼마나 무지했어? 공

포심도 엄청나게 조장했고. 그런다고 전교조가 죽었나?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를 보면 부정부패로 잘 산 조선의 공무원 이

야기가 수도 없이 나와. 백성을 못 살게 괴롭힌, 말로 다 못할

악한 도둑 공무원 이야기도 있어. 거기엔 가난한 백성을 울리

며 세금 열을 거두어 다섯을 국가에 바치고 다섯을 저희 집에

몰래 숨기는 이야기, 더 심할 땐 두셋을 국가에 바치고 일고여

덟을 도둑질해 축재하는 이야기까지 나와. 조선은 깊은 속병이

들어 모로 쓰러져 누웠고, 내부의 적들인 이 부정부패한 자들

은 쓰러진 조선을 뜯어먹으며 통통하게 살이 쪘어. 비쩍 마른

불행한 백성과 달리 저희만 행복하게 잘 산 거야. 공무원노조

이야기를 하다가 조선의 부패 공무원, 무지와 탐욕·잔인·부

도덕성 때문에 역사에 ‘나라 망하게 한 내부의 적’으로 기록

된 옛날 도둑들 이야기까지 했는데, 생각해 보면 이야기는 아

주 간단해. 이번에 파업에 참가해 이미 끔찍한 고통을 받기 시

작한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조선이 아닌 현대 한국의 더러운

부정부패에 연루되고 말 그대로 부도덕한 집단이라면, 공무원

노조는 스스로 와해돼서 한국에 존재할 수 없게 될 거야. 그러

나 내가 보기엔 정반대야. 모든 운동에 앞장선 사람들은 우리

공동체의 전체 구성원들과 비교할 때 무엇보다 도덕적으로 우

위에 있지. 그들은 먼저 갖가지 악조건과 싸워 이긴 다른 노동

조합이 그랬던 것처럼 조국의 캄캄한 현실 때문에 눈물을 흘려

본 사람들이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무거운 고통의 짐을 지

고도 좀더 나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

들이니까.” 
 
세상과 불화하는 사람 
 
근래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자주 접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

가 글을 발표하지 않는 까닭이다. 하지만 실은 그의 이름을 우

린 도처에서 듣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는 공안연구소가 아

직 그의 ‘난쏘공’을 ‘용공문건’에 올려두고 있단 사실이

드러났고, 도처에서 발표하는 한국대표작가에 그의 이름이 오

르고 있으며, ‘난쏘공’이 중고등학생 논술자료로 빠지지 않

는다. 그는 그렇게 우리 곁에 있었다.      
 
이름만이 아니다. 그는 실제 몸으로 우리와 함께 있었다. 반전

평화운동 조직에 참여했고, 때마다 진보정당 지지선언을 했으

며, 무엇보다 각종 집회에 모습을 나타냈다. 특히 노동자 집회

엔 거의 빠지지 않는다. 몸이 아파도 사진기를 둘러매고 집을

나선다. 그 사진기로 노동자들의 숨결을 느끼고, 호흡한다.   
 
“가끔 집회장엘 가서 사진을 찍어. 사진을 찍으려면 현장에

있어야 돼. 현장에 못 가고선 찍을 수 없지. 내가 카메라를 들

고 어딜 간다는 것은 현장 깊숙이 들어가는 거야. 글을 쓰는

사람은 집에서 써도 돼. 하지만 사진은 아니지. 현장에서 현장

을 호흡해야 돼. 사진기를 대고 있으면 노동자들 숨소리가 다

들려. 내가 글도 못 내놓고 있는데, 노동자 친구들 외로움 탈

수 있으니까 내가 가서 외로움의 분량이 줄어들 수 있다면 하

고 바라면서 가는 거야. 근데 얼마 전 시청 앞 집회에서 민주

노총 금속연맹 조합원들을 만났어.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을

‘귀족노조’라고 욕할 때야. 내가 알기로 금속연맹의 조합원

들을 이끄는 선두차의 멘트는 언제나 빛나. 그건 투쟁을 이끄

는 모든 말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인간적이야. 그래서 금

속연맹의 선두차는 내가 뛰어 올라서 탄다고. 헌데 그날 굉장

히 불행한 일이 있었어. 노동자들이 경찰에 맞는 거야. 젊은

노동자들이 나 보고 피하래. 그 빛나던 투쟁 대열이 몇 십분

후에 시청 뒤쪽 골목에서 이른바 막강한 공권력에 짓밟힌 거

야. 그 동안 나도 몇 차례 다친 적 있어. 내가 늙어서 잘 피하

질 못해 그런 거야.”
 
조세희 선생에게 노동자들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작품활

동’일 수 있다. 
 

 ⓒ 매일노동뉴스 박여선 기자

“우리가 꼭 구호나 투

쟁 몸짓으로 만나는 건

아니어도 어떤 연대의

시간을 가질 때, 그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생활 자체가

나에게로 와서 나를 흔

들지. 그래서 나는 작품

은 많이 못 써도, 내 안

에는 여러 편의 작품이

들어 있다고 말하지.”
 
때문에 활자화된 작품에

서 그는 ‘과작작가’지

만, 삶이 만들어낸 작품

에서 그는 분명 ‘다작

작가’다.    


그는 그러나 안타까워했

다. 돈도 먹을 것도 없

어 아이들 옷에 주머니

를 달아주지 않았던 엄

마, 고기 사 먹을 돈이 없어 엄마 몰래 옆집 고기 굽는 냄새

맡으러 가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아빠, 117센티미터의 키에

32킬로그램의 몸무게를 지닌 난쟁이 아빠 때문이다. 자기 말에

책임지지 않는 시대에, 언어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잡고 쉽게

쓰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그지만, 오늘의 난쟁이들의 고통을 마

음껏 써 주지 못하는 처지를 그는 마음 아파했다.     
 
‘산업화시대’ 한국사회가 너무 아파 절규했던 그는 ‘정보화

시대’를 구가하는 지금까지 절규하고 있다. ‘난쏘공’의 언

어가 지금도 아픈 까닭은 그 때문이다. 시간이 흘렀지만, ‘난

쏘공’의 선명한 피 같은 아픔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 노동현

실이 변했다지만, ‘난쏘공’의 단어 하나하나는 아직 가시 같

고 면도날 같다. 짧게 끊어 치는 ‘난쏘공’의 단문들이 절규

하는 듯한 그의 말투를 닮았다는 사실도 그를 만나고서야 알았

다. 목이 쉬고 핏줄이 터지게 외치고 싶은 말들을 그 짧은 문

장들 사이에 꾹꾹 눌러 앉혔다는 사실도 이제서야 알았

다.      
 
“사람은 생이 주어지는 순간부터 죽기까지 누구나 한 번은 절

규한다고 해. 난 그 말을 믿어. 어느 역사에든 빛나는 순간이

있어. 그 순간을 찾아 봐. 거기엔 절규하는 사람이 있어. 그

순간의 역사가 빛나는 건, 그 사람의 절규가 너무 진실하고 정

의롭고 아름다워서 후대 사람들이 버리지 않고 잘 모아 놓았기

때문이야.”
 
63세, 그는 요즘도 혁명을 꿈꾼다. 피 흘리는 혁명이 아니다.

꿈꾸는 것 그 자체가 그에겐 혁명이다. 아름다운 사람이 죽으

면 하늘의 별이 된다고 믿는 것, 고통받는 사람이 있는 한 신

화는 계속된다고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믿는 것, 그게 그

가 꿈꾸는 혁명이다. 더운 날, 강가에 앉아 기다리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다. 
 
조세희, 그는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너무 쉽게

화해하고, 너무 쉽게 과거의 적에 동화되는 시대, 그 시대와

반목하며 가난하게 살아 온 사람. 그는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고, 세상에 의해 따돌림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입으론

‘시대와의 불화’를 외치고, 몸으론 독재자와 그 후예들을 비

호하며 잘사는 사람들에 의해 ‘불화’란 아픈 단어까지 오염

되고 있을 때, 조세희의 불화는 우릴 행복하게 한다. 그의 한

마디 말처럼. 

“외길 가는 사람은 외로워도 그 길 가야 돼. 그래야 행복

해.”
 

ⓒ 매일노동뉴스 박여선 기자

 

이문영 기자  2door0@labortoday.co.kr
2004-11-26 오후 9:52:40  입력 ⓒ매일노동뉴스



95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번호 제목 등록일 작성자
75508 [모집]통신으로 배우는 신학과정 2004-11-29 가톨릭교리신학원
75507 [모집]교양 · 영성교육과정 수강생 모집 2004-11-29 가톨릭교리신학원
75506 “외길 가는 사람은 외로워도 그 길 가야 돼. 그래야 행복해.”/조세희님 2004-11-29 신성자
75505 밥心으로! 2004-11-29 양대동
75504 유혹은 비누 같아서.... (비오 신부님)|2| 2004-11-29 김승현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