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더보기
2026년 10월 31일 (토)
(녹)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자유게시판

작별인사 드리며, 양정웅 형제님이하 여러 형제님들께 드립니다.

스크랩 인쇄

서한규 [daltair] 쪽지 캡슐

2004-12-02 ㅣ No.75681

+ 찬미예수님

 

양정웅님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 글 이후로는 한 동안,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이 될지 모르겠는데요, 하여간 한동안 이곳에 글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미 이곳은 교회의 영역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한 시간도 이런 공간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님에게 주님의 사랑을 권면하는 마음으로 소중한 저의 시간을 내어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양정웅 형제님, 이 공간에 무슨 목적으로 들어오시나요? 그것이 못내 궁금합니다.

그 궁금증은 형제님에게만이 아니고 특히 양대동형제님과 송동헌형제님과 기타 (죄송합니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형제님들에게도 해당하는 질문입니다.

이 곳에서 여러 형제님들은 과연 하느님 사업을 하기 위해서 들어오십니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여러분이 해왔던 것이 하느님의 뜻에 부합한다고 보십니까? 얼마나 많은 반대자들에게 하느님을 알리셨나요? 과연 님들의 반대자들이 님들을 보고 하느님을 다시 찾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신다면 바로 이 시간 회개하십시오. 주님 앞에 무릎꿇고 피눈물을 흘리며 통회하십시오.

과연 형제님들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이 공간에 들어오십니까? 아니 한발짝 물러서서 소위 “친정부 세력”의 주장이 인터넷을 휩쓰는 것을, 아니 적어도 이곳 인터넷 굿뉴스의 정론처럼 자리 잡게 되는 것을 걱정하여, 교회가 무신론자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수호기사로 나서신 것인가요? 과연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십자군인가요? 이교도의 손에서 거룩한 성지를 탈환해야만 했던 십자군인가요? 그것이 여러분의 행동에 정당성을 주나요? 형제님들의 글에서 적어도 오만과 편협함 등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렇지만 사랑도 역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저의 오독인가요? 저의 마음이 작은 탓입니까? 제발 그렇다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이곳에서 신앙의 작은 배움이라도 얻으려고 들어오셨나요? 얼마나 어떤 신앙의 배움을 얻으셨나요? 나름대로 얻기는 했지만 얻은 것 이상으로 많은 아픔과 슬픔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인내와 용서와 사랑을 배웠지만 이곳에서 벌어지는 소위 그리스도인들의 패거리 싸움을 보노라면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님들은 될 수 있는 한 거친 언어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핍박과 모멸과 멸시조차도 똑같이 되갚지 않는 점은 훌륭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그것은 언어에서 끝나고 마는 것만 같습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는 듯이 보입니다. 한쪽은 입에서 독을 뿜고 있으며 여러분은 품 속에 비수를 감추고 있는 듯이 느껴지니 제가 잘못 느낀 것이라고 말씀해주십시오.

형제님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고 있는지 질문을 드려봅니다.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고 계신지 질문을 드려봅니다. 여러분들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왼뺨을 때리거든 오른뺨을 내밀어라!”를 잘 실천하고 계시는지 질문을 드려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으로 합당하게 행동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이곳에서의 글들과 마음을 자랑스럽게 그리스도께 바칠 수 있습니까? 과연 형제님들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교회의 가르침입니까? 그렇게나 지는 것이 싫으십니까?

저는 이제 이런 지리한 싸움이 그치기만을 기다리겠습니다. 이 글이 여러분에게 드리는 마지막 호소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호도하고 교회를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세상은 그랬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2000년간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리만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항상 진리가 승리했습니다. 세속의 것은 덧없고 흘러가는 것일 뿐입니다. 세속적인 것에만 눈이 홀려 눈앞의 것만이 진리인양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권능이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세속적인 것을 반대한다며 똑같이 세속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는 사람에게도 하느님의 권능은 보이지 않습니다. 두 사람들 모두 인간으로 오신 “예수”에게서 신성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더더구나 인성까지 감추고 성체 안에 계신 하느님은 도저히 이해도 할 수 없으며 그분의 권능을 발견할 수도 없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한번 이마에 박힌 그리스도의 인호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겠지만 그들은 그리스도라는 옷만 입었을 뿐, 몸과 마음은 그리스도화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나 영혼을 다시 하느님께 돌려드리게 될 날, 그 인호가 얼마나 커다란 굴레가 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인호는 영원한 구원에 대한 영광의 표식이면서 동시에 가중한 형벌의 십자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지옥의 형벌을 내려달라고 외치겠습니까? 아니면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의 회개를 위해 간절히 호소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이 귀양살이를 벗어날 날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눈 한번 깜빡이면 어느새 주님을 뵈올 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 소중한 시간을, 여러분이 온 마음과 온 힘과 온 생명을 다 바쳐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기에도 모자른 그 소중한 시간들을 이곳에서 형제들을 비난하는데 써버리는 것입니까? 그것이 여러분에게 무슨 득이 있답니까? 여기에서 열심히 활동한다면 여러분의 불쌍한 영혼이 구원받습니까?

서로서로 칭찬들을 하며 찬사를 해 주면서도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악담에 조롱에 모욕에 저주까지 하는 사람들에게 억울하시나요? 용서하십시오. 주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만드신 바로 그 하느님께서 그들도 만드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현세의 보상을 바라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보상을 하늘나라에 쌓으십시오. 그래야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험한 말이 오고 아무리 비논리적인 억지가 오고 아무리 참기 어려운 비난이 오더라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라고 생각하고 정중히 대하십시오. 그래야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정중히 대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가장 정중한 말로 묵묵히 여러분의 말만 하십시오. 그래야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의 의견을 존중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저주하고 모욕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것은 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느 누가 여러분을 저주하고 모욕을 주고 조롱한다고 해서 개념치 마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을 해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받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악에서 비롯된 것은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만을 해할 뿐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에 상처를 받는다면 기쁘게 주님을 생각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의 평화를 되찾아 주실 것입니다.

결코 여러분이 믿고 몸담고 있는 이 그리스도교가 여러분의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교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이 그리스도교를 굳건히 지켜왔던 성인들은 결코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습니다.

이 공간에 왜 들어오십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시려면 과감히 떠나십시오. 이곳에서 허비하는 그 소중한 시간을 님의 영혼이 상처받지 않을 곳에서 뜻깊게 사용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에게 유익하지 않겠습니까?

저의 신앙이 깊지 않은 관계로 저는 무신론자들과는 부딪히지도 않으며 그다지 권면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기도를 할 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적어도 신앙인이 아닙니까!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이라면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 행동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곳이 정치게시판이 된지가 오래입니다. 이따금씩 올라오는 찾아보기도 힘든 신앙적인 글은 이내 몇 페이지 밑으로 내려갑니다. 이미 두 패로 갈리어 창검을 겨누고 있는 이 공간이 서로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 공간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피어오르는 게시판은 아닐 것입니다. 이곳에서 그렇게나 정치적 주장을 하고 싶으십니까? 이곳에서 그렇게나 '나 잘났다'고 외치고 싶으신가요?


 

일전 김정란씨가 국보법과 예수님을 연관지어 한마디 한 모양입니다.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무식의 소치요 무지한 자의 도발일 뿐입니다. 과연 이 공간에서도 숫하게 2000년 전의 상황을 자기 입맛에 맞게 마음대로 재단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의 죽음을 사회 정치적으로 보는 시각은 인간 예수에게 맞춰진 시각일 뿐입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 시각에는 부활도 없고 하느님도 없고 구원도 없습니다. 그것은 유물론적 시각일 뿐입니다. 그것도 아주 편협한 유물론적 시각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대사제와 로마 권력만이 보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군중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대사제들이 선동한 군중들! 군중 심리에 휩싸여 열정적으로 나사렛의 예수에 대한 사형을 요구하던 군중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시대에 군중심리에 휩싸여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한 사람의 대사제의 선동에 열정적으로 외쳐대는 사람들, 그 군중들은 누구일까요? 과연 누가 예수를 못박았을까요?

실상 그 군중들에게도 죄는 없습니다. 그들은 가리옷 유다와 같이 잘못된 길을 걸어갔지만 인류 구원 경륜에 도구가 된 사람들일 뿐이지요. 누가 하느님의 심려한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점은요, 정말로 중요한 점은 말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설 때, 그 때에는 정말로 군중으로 서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군중들 속에 있었더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는 것입니다.

오늘 하상 신학대학을 시청했습니다. 다음 주 예고편에 정의채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 잠깐 보였습니다. “언론을 그렇게 통제하는 것은 사회주의 정권입니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나라가 사회주의 국가가 된다면? 아직까지는 물론 저도 온몸으로 막아서겠지요. (세월이 지나면서 바뀔 수도 있겠지요.) 앞일을 사람이 어찌 알겠습니까? 혹은 좌향좌하여 교회며 사업이며 자유며 기타등등 많은 부분에서 박해를 받는다면? 그것도 하느님의 뜻이라면 어쩌겠습니까? 혹시 아나요? 그 안에서 가라지들을 가려내실지... 말이 자꾸 새는 것 같습니다. 늦은 시간이 글이 길어져서 그런가봅니다.


각설하고! 여러분은 세상에서 칭찬을 들을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세상에서 듣는 칭찬에 부끄러워하십시오. 오히려 하느님께 칭찬을 들을 생각을 하십시오. 하느님의 관점과 세상의 관점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일을 할 때에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십시오. 열심히 훈련을 하십시오. 살아생전 온갖 칭찬을 들은 사람들은 하느님 앞에서 그만큼 들을 칭찬이 줄어듭니다.



애써 이강길님께도 질문을 드려봅니다. 왜냐하면 이강길님께서 일전 저의 글에 꼬리글을 다시며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지요. “하느님 사업에 동참하려하는 마음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 말 속에는 이강길님 역시도 하느님 사업에 동참하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나요? 하느님의 사업을 하시는데 하느님께서 만드신 인간을 모욕하는 것이 들어갑니까? 주님께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비아냥과 조롱으로 대하라고 가르치셨습니까? 회개하십시오. 님이 조롱하신 그 형제님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님의 의견과 다르다고 하여, 행여 그 형제님이 (님이 좋아하는) 어떤 사람에게 참지 못할 행동을 하였다고 하여도 결코 님의 행동은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이곳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의 시야가 좁은 탓이기도 하겠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 대충대충 훑어보는 바로 그리스도인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혹, 몇몇 동호회 수준의 분들은 저에게 망발을 하였다고 화를 내시겠지만 여러분의 행동은 이방인들도 하는 것입니다. 독사도 제 자식은 이뻐합니다. 몇일 전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저주의 굿판!” “개판!” 과연 그렇습니다. 대치하고 있는 두 진영! 그 사이에는 저주와 증오만이 가득하군요.


양정웅님, 이제야 님께 글을 드리는군요.

님의 글에서 큰 무리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조금은 선입견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님의 의견에 조금일지라도 반대하는 흔적이 보인다면 님의 대응이 지나치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또한 일전 김승현 형제에게 쓰신 언어는 결코 님의 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설사 님의 주장이 옳았다고 하여도 험한 말을 쓰신다면 님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입니다.

또한 지속적으로 님이 대응적으로 올리는 글들은 얼핏 보기에는 그리 틀리지 않은 듯이 보이지만 님의 행동은 옳지 못합니다. 한 가지만 예로 들겠습니다.

“님들의 조롱과 모함과 매도로도 님들의 잘못이 정당화 되진 않는 답니다. 이젠 하지도 않은 말과 의미까지 아무런 가책도 없이 만들어 내는군요. 그렇게 저를 조롱하고 모함하고 매도하는 사람들은 다 정해져 있군요. 같은 정치적 이념을 내세우는 분들이죠. 한번 돌아 보세요. 그렇죠?”

‘님들’에게 조롱과 모함과 매도를 당하셨다면 그것으로 기쁘게 여기시지 이렇게 대응을 하신 것은 옳지 못합니다. 이 글에서 님의 마음이 표현됩니다. 이어지는 ‘님들의 잘못이 정당화 되진 않는답니다.’에서 님은 ‘님들’이 잘못했다고 하십니다. 이 문장을 보니 분명히 님은 ‘님들’에게 당하신 조롱과 모함과 매도를 기쁘게 여기지 않으시고 되갚아 주시길 원하는 것입니다. 물론 똑같은 방법은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또한 님이 말하신 ‘님들’이란 사람들은 (앞뒤 전후 사정을 살펴보건데) 결코 님이 애정을 가지고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지요? 적어도 말입니다, 님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들까지 사랑하기란 정말로 힘들지요.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정말로 자랑스럽게 그리스도를 뵈올 수 있겠지요.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사랑이니까요.) 그들의 잘못을 말할 필요도 없으며 견책을 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님의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를 살짝 비틀어 말한 것이며 완곡한 어투로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만두십시오.

정말로 님은 이곳에서 무엇을 얻으려하십니까?

정말로 죄송합니다만 님께서 십자가의 성 요한을 언급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저도 그분을 언급해보겠습니다. 성인께서 톨레도의 감옥에 갇히셨을 때 단 한번도 남을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원장 신부가 회유하러 올 때마다 분명한 어조로 성인의 뜻만 밝히셨지요. 성인은 하느님의 뜻을 확신하셨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시고 기도할 뿐이었지 않나요? 그분의 말이 행동보다 앞서신 적이 있던가요?

성인의 영성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나다’와 ‘토도’가 아닙니까? 성인을 따르시는 형제님은 얼마나 ‘나다’를 이루셨습니까? 왜 이 공간에 그토록 집착하십니까? 이 공간에서 무엇을 원하십니까? 차라리 ‘나다’에 정진하십시오. 그리고 ‘토도’를 맛보십시오. 그런 연후에 하느님을 증거하십시오. “사랑으로 하느님과 일치된” 님의 모범으로 하느님을 증거하십시오. 적어도 저의 작은 눈으로 볼 때 님의 방법은 동의할 수 없게 합니다.


사랑의 산 불꽃의 한 구절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2.23 모든 빚 다 갚아주시네.

영혼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기서 영혼이 맛보는 영원한 생명의 맛에서, 이 상태에 다다르기 위해 겪은 모든 고통의 노고가 보상됨을 느끼기 때문이다. 꼭 맞게 지불되고 갚아지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보상되어 복음에서 하나를 백으로 갚아 주신다고 신랑께서 약속하신 진리를 잘 이해하게 된다.......

2.24 모든 빚 다 갚아 주시네.

그런데 영혼이 여기서 갚아졌다고 선언하는 이 빚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듣기 위해서는, 보통으로 수 없는 고뇌와 노고를 미리 거치지 않고서는 이 숭고한 상태인 영적 결혼의 왕국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사실 이러한 모든 시련들이 이 상태에서는 지나갔으며 영혼은 이미 정화되었기에 더 이상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

2.25

이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종류의 노고를 견뎌야하는데, 그것은 세상에서 오는 고통과 비탄, 두려움의 유혹이며 감성에서 오는 숱한 유형의 유혹과 메마름과 고뇌들이며, 영성적 부분에서 오는 번민과 어둠, 극도의 불안, 버림받은 괴로움, 유혹, 그리고 다른 고통들이다..............첫째 시련들은 감성을 정화시키고 견고히 하며, 둘째 시련들은 영을 섬세하게 하고 정화시키고 준비시킨다. 충분히 정화되지 못한 영혼들이 영광 속에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해, 죽은 다음 연옥불을 거쳐야 하듯이, 이 지상에서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이러한 시련의 불을 거쳐야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 사랑의 산 불꽃)


누르시아의 베네딕도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은총 속에서 이탈의 행복을 맛보시기를 기원합니다. 님께서 한 번 이탈하시면 주님께서 백번 기뻐하실 것이며 그것은 천상상급으로 보상될 것입니다.


양대동 형제님께도 같은 글을 드립니다. 조금만 더 참아보십시오. 조금만 더 사랑해보십시오.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십시오. 조금만 더 전능하신 하느님의 뜻에 맡겨보십시오.

송동헌형제님, 조금만, 조금만 더 뒤로 한발을 빼시면 참 보기 좋을텐데요...

하루에 5분만이라도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해서 묵상해보십시오. 정화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필요한 말이 있다면 이제는 블러그나 쪽지를 이용하겠습니다. 대표적으로 언급한 세분께 다정한 격려를 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애정어린 충언을 드리는 것이니 혹시라도 기분이 나쁘셨다면 용서해주시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공간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길 때까지 글을 쓰지는 않겠지만 항상 형제님들을 위해 기도드리겠습니다. 형제님들께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이 깃들기를 기도하겠습니다.



258 4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번호 제목 등록일 작성자
75685 천주교, 개신교 신학자 교류모임/ pbc 2004-12-02 신성자
75682 왜 눈물이 나오고 G랄이야|3| 2004-12-02 임덕래
75681 작별인사 드리며, 양정웅 형제님이하 여러 형제님들께 드립니다.|4| 2004-12-02 서한규
75709     서 한규 형제님, 안타까워서..... 2004-12-02 정재훈
75707     Re:다시 돌아오시길...... 2004-12-02 김희정
75690     Re:서한규 형제님 2004-12-02 양정웅
75673 하느님의 법인 자연출산조절법을 따르는 자녀 되기를 도와 주소서....|2| 2004-12-02 전태자
75670 서울, 사제 인사위 구성키로 /pbc 2004-12-01 신성자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