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욕하기
6·25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여섯 살이던 44년생인 내가 미국이 대통령이 누구였었나 하고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아마도 1963년 암살된 케네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때가 열아홉 살적이고 그 전에는 트루먼이나 아이젠하워 같은 이름을 듣기는 했지만 이들에 직접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고 '맥아더'라는 2차 세계 대전과 한국전쟁의 영웅에 껴묻혀서, 말하자면 곁다리로 알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별로 기억에 안 남는 몇 대통령을 거쳐 닉슨에 이르러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중도 사임했을 때 '아, 미국도 대통령이 이렇듯 거짓말을 해대면 옷벗고 나가기도 하는구나' 하고 다시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 국민이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그리 큰 관심을 안 가져도 되었을 시기가 아니었나 합니다. 워낙에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이 눈을 부릅뜨고 거세게 노려보고 있을 때였으니까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도 여기서 눈을 돌려 조금이라도 빈구멍을 보이는 허튼 짓을 하지는 못했을 터이니까요. 그러던 중 카-터가 당선되면서 한국 내의 인권 상황이 거론되고부터 미국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 다소 바뀌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바뀌었다기보다는 숨어있던 다양한 시각이 겉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죠.
이런 현상은 물론 미국에서 대통령이 바뀌었다해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국내 상황이 변하면서 같이 맞물려 나타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유신 선포와 인권유린, 10·26과 12·12 그리고 5·18광주민주화항쟁 등 국내 정치 상황의 변동과 독일 통일과 구 소련의 몰락, 그리고 동구 사회주의권의 해체 등이 몰고 온 엄청난 파고를 우리나라의 정치하는 사람들이 깊은 견식과 안목을 갖고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우리 국민의 의식을 지금 단계에 머물러 있게 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을 소박하게 미국 국민의 생활을 책임진 국가의 수반으로 알아주는 태도가 지금의 우리에겐 더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합니다. 남의 나라 살림을 책임진 사람을 그 나라가 외국에 세운 대사관에 대놓고 욕을 해댄다면 기분 좋아 할 국민이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미국이, 아니 미국 대통령이 막강한 힘을 남의 나라 정권을 뒤집어엎는 데 쓴다고 우리가 거기에 분노하고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정치란 기본적으로 나라 간의 관계(국제관계 = International Relation)입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도 좋다가 틀어졌다가, 이해했다가도 오해도 하고, 사랑스럽다가도 밉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국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종국에는 함께 살아남자는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큰 숟가락을 가지고 더 빨리 더 많이 더 먹자고 하는 관계지요. 쓸모없이 감정만 갖고 덤빌 일은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무역 규모가 크고, 군대가 와서 주둔해 있고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려있다고 해서 이런 냉철한 계산을 무시하고 과민반응을 하면 뜻밖에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정치권이 더 공부를 하고 국민을 설득하고 계몽해야 합니다. 선거와 표(票)만 의식해서는 시대의 책임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사고(思考)를 하도록 지식인들이, 정치하는 사람들이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김영민·토마스아퀴나스 / 서울교구 상도동성당>
(사)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후원회 소식지 12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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