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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성인전 31, 聖 조화서 (베드로 1814~18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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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구 [xhak59] 쪽지 캡슐

2004-12-06 ㅣ No.76027

聖 조화서 (베드로)는 1814년 수원에서 부친 조 안드레아의 아들로 태어 났습니다.

 

기해박해(1839년)로 부친을 잃은 후 어머니와 함께 충청도 신창으로 이사하여 몇 년간을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복사 겸 마부로 활동 하다가, 최 신부님이 선종하자 1864년에 다시

 

전주 소양면 성지동에 정착할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조용히 살아 갑니다.

 

그는 한 막달레나를 아내로 맞아 아들 조윤호(요셉)를 보는등 단란한 가정을 이루지만, 얼마 후

 

아내를 잃는 슬픔으로 상처를 격지만,  얼마 후 주변의 권유로 신심좋은 김 수산나와 재혼을 합니다.

 

그는 본시 성격이 쾌활 하면서 참된 몸가짐으로 신자의 본분을 충실하게 지키는 등, 또한 교우들 간의

 

돈독한 우애로 존경과 부러움을 받는 분 이었습니다. 한편 조화서가 살고 있는 마을은 첩첩 산중으로

 

병인박해 (丙寅迫害)가 일어 났지만, 신자들이 체포되고 있다는 소식마저 접할수가 없는곳 이었습니다.

 

박해가 치열하던 1866년 12월 조화서는 아들 윤호를 데리고 이웃 교우 박씨 집을 찾았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포졸들의 의해 즉석에서 붙잡혀 그를 앞세워 가족들이 있는 그의 집으로 향 합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며느리는 급히 밖으로 달려나가 남편 윤호(요셉)에게 알려줍니다. 이때 조화서는

 

자기 집에서 심문하는 포졸들에게..."본시 저는 선친으로부터 직접 천주교 교리를 배웠으며

 

또한 가족 중 나와 아들 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천주를 신봉하는 자가 없습니다" 라고 진술 하는데...

 

이때 그의 아들 조윤호(요셉)가 집으로 들어오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너는 여기에 들어와선 안 된다. 어서 다른 곳으로 가라” 하시며 속히 피할 것을 종용 하지만 

 

아들은 이를 완강히 거부하고 이내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 체포됩니다.

 

이렇게 부자가 함께 묶여 전주 감영으로 압송되는 고난의 길을 가면서도 아버지 조화서는

 

아들에게 용덕을 불러 일으켜 주기 위해..."요셉아! 결코 뜻을 굽히지 말아라, 원님앞에 가서도

 

기어이 진리를 대답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 마음이 허약하여 넘어 가서는 안된다."  그러자

 

이번에는 도리어 아들이 아버지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한 마음으로 순교 하기를 당부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종교적 신념을 버리지 마십시오.”

 

부자간의 주고받는 이 말은...듣고 있던 포졸들 마저 그들의 굳은 신앙심에 놀라 경탄을 금치 못 합니다.

 

그들은 온갖 수모와 천대속에 목적지인 전주에 도착하여, 곧바로 다른 교우들과 함께 감옥에 갇힙니다.

 

......완결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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