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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일언하고 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왜 그리 못 마땅한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이 싫어하는 구시대 사람들의 습성을 어김없
이 답습해가고 있음을 자인할 수 밖에 없다.
“요즘 젊은 것들은 휴대폰을 아예 입에 달고 살아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내내 그 비싼 통화
를 하며 가는 걸 보면 한심하고……” 그러나 젊은이들은 바로 옆에 앉은 사람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근소근 통화한다. 저쪽에서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통화하는 어른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지하철 속 체험담이 자꾸 이어지고 있지만, 출입구를 막고 있으니 비켜달라는 젊은
이의 정당하고 거침없는 요구에 건방지고 무엄하다는 표정으로 아래 위를 훑는 어른의 반응은 세대
간 깊은 골의 한 단면이다.
남이 양보한 자리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덥석 앉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한다. 요즘 애들은 “여
기 앉으세요.”하고 촌스러운 생색(?)을 내는 일이 없다. 앉은 채로 있기에 부담되는 사람이 나타나
면 슬그머니 일어나 저 쪽으로 가버리니까. 아니면 아예 모른 척 그대로 앉아 있던가. 그래서 나는
젊은이가 일어날 때 정말 내리려고 일어난 것인지 유심히 살펴보고 앉는다. 나는 아직은 자리를 양
보 받을 마음이 추호도 없으니 말이다.
대학동창 중에 교수가 많은데 전공분야가 감각적으로 앞서가야 하는 디자인분야이기 때문인지
수업이 갈수록 부담스럽다는 표현을 듣는다. 한 친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내가 착각하
고 전에 한 얘기 또 할 때 ‘지난번에 똑 같은 말씀하셨습니다’ 라고 말하는 학생은 예쁘게 봐줄 테
다.”
훌륭한 말씀이다. 그런 그가 한번은 수업을 끝내면서 많은 시간을 자신의 군대 얘기에 할애했음을
알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랐단다. 학생 때의 그는 선배들의 군대 얘기가 얼마나 지겨웠던가.
어른들의 말씀에서 지혜를 느끼는 대목도 있었겠지만 참고 들어줘야만 할 때가 더 많았던 것이 우
리의 젊은 시절이었다고 본다. 시대에 맞지 않는 아집, 안 들어도 아는 충고, 반복되는 고생한 얘기,
지나친 걱정과 간섭…… 나이 들어도 밟고 싶지 않은 전철이었으리라. 그런데 지금 우리 자신의 모
습이 그와 대동소이 하다면 너무 자조적인 표현일까? 전에 한 말 또 하고, 방금 한 말 미덥지 않아
다시 하고, 한번 한 말 직성이 풀리지 않아 되풀이하고, 그래도 모자라 길게 풀어 얘기하는 새 어른
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젊은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면서도 같은 자리의
젊은이보다 적게 말하는 어른을 보지 못한다. 그것도 늙는다는 생리현상 중 하나일까?
젊은 사람들이 우리가 말할 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척해도 속지 말자. 우리가 그 당시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예의상, 그리고 이견을 보이면 더 오래 말할까봐 그렇게 연기하고 있는 것이니까. 의
심이 가면 당신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젊은 사람에게 똑 같은 얘기를 해 보시라. 반응이 전혀 다
를 터이니.
내가 보기에 요즘 젊은이들은 나이 든 세대와 대화하거나 공감하기를 포기한 듯하다.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지만 부모이고 위 어른이니 비위를 크게 거슬리지 않고 지나기만 바라는 것 같
다.
그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편안하게 통하는 대화상대가 인터넷상에만 해도 무진장 있다. 한 때는 대
단한 능력과 통찰력으로 치부되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집이고 왕년 무용담에 지나지 않을 어른들
의 간섭과 핀잔은 그저 피할 뿐이다. 그들은 어른들의 행동에 상관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그들 나
름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우리는 2년 전에도 혹독하게 겪지 않았는가.
우리 몸이 퇴행성 기능저하의 진단을 받기 시작한 것도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기억력도 집
중력도 현저히 감퇴되었지만 끝까지 정신만은 퇴행하지 않을 수 없을까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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