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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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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4-12-24 ㅣ No.76916

 

*이 극은 2004년 12월 23일(목) 밤, 태안성당 신축 사제관동 지하성당에서 열린 '성탄제'에서 동문1구역과 대림구역 신자들에 의해 공연된 연극입니다.



단막 희곡


                  그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극복/연출 : 지요하(막시모)



# 1. 연옥 풍경

(최대한 연옥 풍경을 연출한다. '연옥'이라고 쓴 큰 글자판을 준비하는 것도 좋다. 연옥 영혼들은 남루한 옷차림에 지저분하고 참혹한 모습이다. 여러 가닥의 빨간 줄로 만든 옷이나 아예 통으로 된 빨간 옷을 입는 것도 좋다. 그리고 연옥 영혼들을 감시하는 마귀들은 검은 옷차림의 흉측한 형상이다.)

징이 울리면 여러 연령들이 마귀들에게 이끌려서 등장한다. 각자 적당한 자리를 잡고, 잠시 동안 연령들은 괴로운 몸짓을, 마귀들은 감시하고 윽박지르는 몸짓을 한다.

또 징이 울리면 연령 1이 마귀들에 의해 연옥으로 끌려들어온다.


마귀 1 : (연령 1의 등을 떠밀어 쓰러뜨리며) 자, 여기가 네가 있을 곳 이다. 저 이승에서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네가 1만년 동안 머물 곳이니라.
연령 1 : 뭐요? 1만년이라고요? (쓰러졌던 연령 1은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연옥 영혼들을 둘러본다.)
연령 1 : (한 연령을 보며) 당신은 누구시죠?
연령 2 : 나는 네 아비다.
연령 1 : 네?
연령 3 : 나는 네 어미다.
연령 1 : 네?
연령 4 : 나는 네 할아비다.
연령 5 : 나는 네 할미다.
연령 6 : 나는 네 10대조 할아비다.
연령 7 : 나는 네 50대조 할미다. 네 모든 조상들이 다 여기에 있다.
연령 1 : 아니,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모든 조상님들의 영 혼이 왜 다 여기에 있는 거죠? 이 연옥에는 도대체 얼마나 오래 계신 거죠? 왜 여태까지 천국으로 못 간 거죠?
연령 2 : 다 너 때문이다.
연령 1 : 예? 다 나 때문이라구요?
연령 3 : 그래. 네가 세상에 있을 때 네 부모의 영혼을 위하여 미사 한 번이라도 지내 준 적이 있느냐?
연령 4 : 조상님들의 영혼을 위해 미사 한 번도 지내주지 않은 것이 우리보고 왜 여태 연옥에 있느냐는 말을 할 수가 있느냐?
연령 5 : 네 자식들이 너에게서 배우지를 못했으니, 저 세상에는 너를 위해 미사를 지내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연령 6 : 그러므로 너도 우리처럼 1만년 동안 이 연옥의 불구덩이 속 에서 살아야 할 것이니라!
연령 1 : 네? 1만년이라고요?


크게 징이 울린다. 잠시 후 또 한번 징이 울리고―


# 2. 천사 등장. 여러 명 어린이 천사들도 함께 등장 천사는 희고 깨끗한 옷을 입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한 어린이 천사의 손에는 긴 호파 하나가 들려져 있다.


천사 : (연령 1에게) 새로 들어온 연령은 듣거라. 너는 앞으로 1만년 동안 이 연옥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도 넌 저 세상에서 천주 교 신자가 되어 하느님을 믿는 척이라도 했기에 지옥에 떨어 지지 않고 이 연옥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것을 다행으로 알 아라.
연령 1 : 아이고, 천사님. 그래도 1만년은 너무 억울해요.
천사 : 억울하다니! 너는 인색해서 성당에 다닌다고 하면서도 불우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에는 외면을 했다. 또 이 연옥에 와 있는 네 부모와 조상들의 영혼을 위해서 미사 지내 드린 일 이 한 번도 없지 않느냐? 그런 주제에 연옥 1만년이 뭐 억울 하다고? 에끼, 고얀지고!
연령 1 : 그래도 1만년은 너무 억울해요.
천사 : 네게 연옥 1만년을 백년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연령 1 : 네 그게 뭐죠?
천사 :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내게 이것을 하나 주셨다. (어린이 천 사의 손에서 파뿌리를 받아들고 들어 보이며) 이게 뭔지 아 느냐?
연령 1 : (살펴보고 나서) 파뿌리 같은데요.
천사 : 그렇다. 파뿌리다. 네가 세상에 살 때 어느 가난한 사람에게 이 파뿌리를 하나 준 적이 있다. 이게 바로 그것이다.
연령 1 : 그것 보세요. 나도 저 세상에서 할 만큼은 하고 살았다구요.
천사 : 네가 할 만큼은 했다는 것이 겨우 이 파뿌리 하나니라.
연령 1 : 그거면 어디예요. 그 파뿌리 하나도 없는 영혼도 많을 텐데 요.
천사 : 암튼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이 파뿌리를 갖다 주라고 하셨다.
연령 1 : 그 파뿌리를 이 연옥에서 뭐에 쓴대요?
천사 : 이 파뿌리를 잘 잡고 나를 따라 오너라. 그러면 너는 이 1만 년의 불구덩이를 벗어나서 백년 구덩이로 갈 수 있다. 그러 면 연옥불 9천 9백년이 감해지는 것이다.
연령 1 : 아, 그렇구나! 그럼 천사님, 어서 날 끌고 가주세요. 얼른요, 얼른!
천사 : 서둘지 말거라. 그리고 파뿌리를 잘 잡고 천천히 조심조심 잘 따라오너라!


천사는 파뿌리를 내민다. 연령 1이 얼른 파뿌리를 잡는다. 천사가 걸음을 옮기니 연령 1이 따라간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모든 연령들이 일어선다. 한 연령이 연령 1의 옷자락을 잡는다. 그리고 모든 영혼들이 띠를 이루듯이 하며 차례로 옷자락을 붙잡는다.


연령 1 : (자기 뒤로 띠를 이룬 연령들을 돌아보며) 아니, 왜들 이래요. 이 파뿌리는 하나에요. 나 하나만 잡을 수가 있다고요!
연령들 : (모두 함께) 같이 가자, 같이!
연령 1 : 아니, 염치들이 있어야지. 이 파뿌리는 약해요. 이렇게 다 매 달리면 파뿌리가 끊어진다구요.
연령 2 : 그래도 같이 가야지. 다 같이 가만가만 움직이면 파뿌리는 끊 어지지 않아!
연령 1 : 안돼요. 이 파뿌리는 내가 저 세상에서 살 때 착한 일을 한 거란 말예요. 그걸 아셔야지.
연령 3 : 그래도 같이 가야지. 저 세상에 살 때 우리를 위해 미사 한번 지내주지 않은 것이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연령 1 : 무슨 소리예요? 내가 당신들을 이곳에 오게 한 건 아니지 않 아요?
연령 4 : 너는 이 연옥에서도 참회할 줄을 모르는구나!
연령 1 : 참회는 저 세상에서나 필요하지 여기선 아무 쓸모가 없다구 요. 하여간 어서 내 몸에서 손을 좀 놓아요. 빨리 놓아요. 빨 리! 파뿌리 끊어지기 전에!


연령 1은 자기 옷자락을 잡은 연령의 손을 떼기 위해 엉덩이를 심하게 흔든다. 무대를 한바퀴 돌며 코믹한 동작으로 엉덩이를 흔들고, 띠를 이룬 모든 연령들이 각기 다른 동작으로 엇박자를 놓듯이 엉덩이를 흔든다. 꽹과리로 장단을 맞춘다. 한바퀴 돌았을 때 징이 울린다. 그 순간 파뿌리가 끊어지면서 동시에 모든 연령들이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연령 1 : 어머나! 이를 어쩐대! 파뿌리가 끊어져버렸네!
천사 : (연령 1를 보며) 어이그, 이 미련한 것아. 파뿌리를 잡고 가 만가만 조심조심 날 따라 오라 했지, 그렇게 엉덩이를(코믹하 게 이리저리 흔들며) 마구 뒤틀어대라고 했냐? 그렇게 몸을 흔들면 가뜩이나 약한 이 뿌리가 견딜 수 있냐? (천사가 엉 덩이 짓을 할 때 마귀들도 함께 코믹한 동작으로 엉덩이를 흔든다.)
연령 1 :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구요!
천사 : 이것아. 세상에 있을 때도 이 연옥 영혼들에게 도움 한번 주 지 않더니, 이 연옥에서도 모두 함께 일찍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차버리는구나. 별 수 없다. 너는 이제부터 이 연옥불 속에서 1만년을 살아야 한다.
연령 1 : 아이고, 천사님. 파뿌리가 끊어진 건 내 잘못이 아니에요. 내 잘못이 아니라구요!
천사 : 그려. 네 잘못이 아니라고 치고, 나는 이만 간다.
연령 1 : 아이고, 천사님! 아이고, 내 파뿌리! 아이고, 내 파뿌리 아이 고오!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한다. 모든 연령들이 혀를 차 며 연령 1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그리고 함께 땅을 치며 더 욱 괴로운 몸짓을 한다.)
마귀들 : (함께 연령들 주변을 어지럽게 돌며) 으하하하! 으히히히! 내 그럴 줄 알았지! 으하하하! 으히히히!


―징이 울리며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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