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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아침 -요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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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수 [sooyaka] 쪽지 캡슐

2004-12-31 ㅣ No.77144

새해 아침     2005년 1월 1일


루가 2,16-21.


새해 아침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은혜로운 새해가 될 것을 빕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여러분의 가족들과 친지들에게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충만하실 것을 빕니다. 금년 한 해 동안 하느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고 그분의 은혜로우심이 여러분 안에 많은 일을 하실 것을 기원합니다.


오늘은 교회 전례(典禮)상으로 세 가지가 겹쳐 있습니다. 2005년을 시작하는 정월초하루이면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 축일’이고 또한 ‘세계 평화의 날’이기도 합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라는 표현은 431년 에페소 공의회가 믿을 교리로 채택한 것입니다. 그 시대 콘스탄티노풀 주교 네스토리우스는 마리아가 낳은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순수 인간으로 장차 하느님의 아들이 될 분이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 의미로 그는 마리아를 ‘사람의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에페소 공의회에 모인 주교들은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공의회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네스토리우스의 주장대로 만일 예수가 사람으로 태어났다가 후에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다면, 그 시대 생각으로는 예수 안에 하느님의 일을 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 시대 사고방식에서는 예수가 출생 때부터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면, 우리와 다를 것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공의회 주교들은 예수가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하기 위해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5세기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필요했던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마리아의 품위를 격상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삶은 하느님 생명의 발로였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한 그 시대의 표현입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말이 아니라, 예수는 출생 때부터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이 축일은 1970년에 제정되었습니다. 불과 30년 전입니다. 1500여 년 전에 채택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새삼 축일로 제정한 것입니다. 오늘은 마리아를 사람의 어머니라고 불러야 한다고 고집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느님 생명의 삶을 보자는 마음다짐을 하는 날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축일 이름은 고색(古色)이 창연(蒼然)한 것입니다.


오늘은 세계 평화의 날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1967년에 제정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평화가 필요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과거에 평화는 통치자가 주는 것이었습니다. 통치자가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해 주면 모두가 평화를 누렸습니다. 교회가 세계 평화의 날을 제정한 것은 이제 평화는 모든 사람이 함께 찾아야 하는 가치라는 말입니다. 평화는 통치자 한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평화는 ‘하느님의 사랑 받는 사람들이 누리는 평화’(루가 2,14)를 의미합니다. 성탄날 밤 천사들의 환호 소리라고 루가복음서가 전한 말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설교에도 “복되어라,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니”(마태 5,9)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체험한 사람이 평화를 위해 일하고,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이웃을 짓누르고 이웃의 자유를 빼앗으면서 평화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의 생명을 사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이 베푸셨기에 우리의 생존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 생존을 은혜로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 앞에는 또 한 해의 세월이 펼쳐져 있습니다. 한 해의 첫날을 우리가 새로운 의욕으로 기뻐하면서 맞이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베풀어진 또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롭게 받아들여 은혜롭게 살아야 하는 세월입니다. 우리도 주변 사람들에게 은혜로운 실천을 하여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을 체험하게 하라는 세월입니다.


어느 고을에서 죄인으로 소문난 여인이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머리칼로 닦은 이야기가 복음서에 있습니다(루가 7,36-50).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죄는 용서받았습니다...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습니다. 평화 안에 가시오.” 하느님이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믿었으니 평화 안에 가라는 말씀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서 하느님이 어떤 베푸심이고 어떤 은혜로우심인지를 깨달았고 이제 그 깨달음을 안고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으로 세상에 나갑니다.


새해 아침에 우리는 복 많이 받으라고 서로 인사합니다. 하느님이 베푸신 새해의 세월이고, 하느님이 베푸시는 행복입니다. 하느님은 베푸는 은혜로우신 분입니다. 베푸시는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 우리 안에서 사라지면 우리는 영원히 이 세상에 살 사람으로 착각하면서 욕심에 사로잡히고, 이웃에게 무자비한 사람이 됩니다. 작가 솔체니친이 오랜 유배생활 후에 러시아에 돌아와 기차여행을 하면서 차창 밖의 폐허가 된 성당 건물들을 보면서 한 말이 있습니다. “저 건물들이 있어서 사람들이 두 발 가진 동물이 되지 않게 해주었다.” 은혜롭게 베풀어진 우리의 삶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게 해 준 성당 건물이라는 것과 또한 그 사실을 잊어버리면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 지를 지적한 말입니다.


내 주변을 행복하게 하려면 먼저 내 자신이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은 물질과 명예에 대한 우리의 욕구가 충족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은혜로운 것으로 보여야 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은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과 그분이 베푸셔서 있는 우리의 세월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 은혜로우심을 자각하면서 시작하는 행복입니다. 하느님이 주신 한 해가 그분의 은혜로우심과 더불어 우리 앞에 또 한 번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의 욕심과 우리의 허영이 있기 전에 은혜로운 베푸심이 먼저 있었습니다. 강물 같이 흐르는 베푸심입니다. 우리를 거쳐서 흐르고 또 흘러서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을 함께 기도합시다. 그 흐름 안에서 내 주변 사람들도 기뻐하고, 나도 기뻐하는 한 해가 되도록 기원합시다. 하느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좋은 한 해를 시작합시다. ◆

 

                          천주의성모 마리아 대축일.(2005년1월1일) 서공석 신부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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