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더보기
2026년 11월 7일 (토)
(녹)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자유게시판

세월에 대하여 *^J^*

스크랩 인쇄

노병규 [rbk2236] 쪽지 캡슐

2005-01-05 ㅣ No.77310

세월에 대하여

 

                                           

 











피로의 물줄기를 타넘다 보면 때로 이마에
뱀딸기 꽃이 피어 오르고 그건 대부분
환영이었고 때로는 정말 형님이 아들을 낳기도 했다.
아버지가 흐허허 웃었다 발가벗은 나무에서 또 몇개의 열매가 떨어졌다

얼음 깔린 하늘위로 붉은 말이 연탄을 끌고 갔다
그건 대부분 환영이었고 정말 허리꺽인 아이들이 철 지난 고추나무처럼
언덕에 박혀 있기도 했다 정말 거세된 친구들이
유행가를 부르며 사라져 갔지만 세월은 흩날리지 않았다

세월은 신다버린 구두속에서 곤한 잠을 자다 들키기도 하고
때로는 총알맞은 새처럼 거꾸로 떨어졌다
피로의 물줄기를 타넘다 보면 나는 높은 새집 위에서
잠시 쉬기도 하였고 그건 대부분 환영이었다
세월은 갔고 아무도 그 어둡고 깊은 노린내 나는
구멍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몇번인가 되돌아온

편지 해답은 언젠나 질문의 잔해였고 친구들은 태엽풀린
비행기처럼 고꾸라지곤 했다
너무 피곤해 수음을 할 수없을때 어른거리던
하얀 풀뿌리 얼어붙은 웅덩이 세월은 갔고 매일매일
작부들은 노래를 불렀다 스물세살
스물네살 나이가 담뱃진에 노랗게 물들때까지
또 나는 열 한시만 되면 버스를 집어 탔고

세월은 그렇게 갔다
어떤 사람은 불쌍했고 어떤사람은 불쌍한
사람을 보고 울었다
아무것도 그 비리고 어지러운 숨 막히는 구멍으로부터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세월이란 말만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나는 곱게곱게 자라왔고

돌부리같은 사건들을 제외하면 중학교 고등학교 그 어려운 수업시대
욕정과 영웅심과 부끄러움도
쉽게 풍화했다 잊어버릴것도 없는데
세월은 안개처럼, 취기처럼 올라온다
웬들판이 이렇게도 넓어지고
얼마나 빨간 작은 꽃들이 지평선 끝까지 아물거리는가
그해 자주 눈이 내리고 빨리 흙탕물로 변해갔다
나는 밤이었다 나는 너와 함께 기차를 타고 민둥산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따금 기차가 멎으면 하얀 물체가 어른거렸고 또 기차는 떠나갔다
세월은 갔다

어쩌면 이런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돌아서 출렁거리는 어둠속으로

빠져들때 너는 발을 동동 구르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너를 사랑했다
나는 네가 잠자는 두 평 방이었다
인형 몇개가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고
액자속 교회에서는 종소리가 들리는...

나는 너의 방이었다
네가 바라보는 풀밭이었다 풀밭 옆으로 흐르는
냇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문득 고개를 떨군 네 마음 같은,한 줌 공기였다

세월이라는 말이 어디선가 나를 발견 할때마다
하늘이 눈더미처럼 내려앉고 전깃줄 같은것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을 본다
남들처럼 나도 두어번 연애에 실패했고
그저 실패했을 뿐,

그때마다 유행가가 얼마만큼 절실한지 알았고
노는 사람이나 놀리는 사람이나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세월은 언제나
나보다 앞서 갔고 나는 또
몇 번씩 그 비좁고 습기찬
문간을 지나가야 했다


125 1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번호 제목 등록일 작성자
77313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고정희|3| 2005-01-05 신성자
77311 서교동본당 '열린 교회'로|7| 2005-01-05 신성자
77310 세월에 대하여 *^J^*|1| 2005-01-05 노병규
77309 1%의 행복/ 이해인 *^J^*|2| 2005-01-05 노병규
77306 우리가 모르게 짓는죄 있잖아요 ?|1| 2005-01-05 정세근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