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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날짜: 2004/12/31 세옥기자
"스님, 축하드립니다. 시민운동가들이 뽑은 '올해의 시민운동가' 1위로 선정되셨어요." 기자의 호들갑스런 인사에 비구니는 잠시 손을 멈추고 엷은 미소를 짓는다. "천성산 생명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소식이군요." 이내 다시 손을 움직인다. 방 안 가득한 CD더미에서 하나를 꺼내 앞면에 '초록의 공명, 지율, 2004'라고 적어 기자에게 내민다.
시민운동가로 부터 올해의 시민운동가로 선정된 지율스님이 청와대 인근 종로구 통의동의
한 평 남짓되는 거처에서 영상메시지인 '초록의 공명'이라는 시디를 제작하며 60일 넘는 끝 없는 단식으로 한해를 보내고 있다. 양계탁 기자 gaetak@ngotimes.net "우리 주변에 맑은 물과 파란 하늘, 초록의 숲, 생명으로 꿈틀대는 도롱뇽이 힘겹게 남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세요. 그렇게 많던 도롱뇽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던 사람들의 생명 감수성이 깨어났기에 지금의 결과가 있는 거겠죠. 천성의 자연과 이곳에 목숨을 건 우리 도롱뇽의 친구들 마음을 담은 CD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세요. 더 많은 이들의 생명 감수성을 깨워야죠."
천성의 뭇 생명을 위한 단식수행 60여일, 주변의 모든 이들이 스님을 염려하고 있지만 정작 지율 스님의 관심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초록 생명의 울림'이라는 씨를 뿌리는 일에만 모아져 있었다.
본능으로 시작한 생명운동
'시민의신문' 취재팀이 청와대 인근 모처에 위치한 지율 스님의 거처를 방문한 지난해 12월28일은 천성산 생명을 위한 스님의 단식수행이 63일째에 접어든 날이었다. 20∼30m만 걸어도 몸이 휘청할 만큼 기력은 쇠했지만 초록의 공명 CD 배포를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지율 스님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편하면서도 즐거워 보였다.
"밖에서 보면 60일 넘는 단식이 극단적일지 모르지만 내가 늘 해왔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기에 나에겐 지금이 비장하지 않아요. 나 역시 함께 살고 싶기에 하는 일인걸요."
3년 동안 네 번이나 목숨을 건 단식 수행을 진행하면서도 언제나 '즐겁다', '살고 싶어 하는 일이다'라고 말하며 주변인들을 다독이는 지율 스님. 고난의 수행을 이처럼 편히 받아들이는 지율 스님 생명운동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지금은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얘기를 많이 하지만 사실은 거창한 철학이 아닌 본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2001년 3월말이었을 거예요. 철쭉제 한 달 전이었죠. 공부를 위해 천성산 내원사 선방에서 지냈는데 산책을 나갔다가 산을 깎아 도로와 주차장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1시간 30분만 걸어 올라오면 되는 길을 기어이 차로 움직이겠다면서 말이죠. 마음은 너무 아팠지만 그냥 내려올 수밖에 없었어요. 내원사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도 아닌 그저 한철 공부하러 온 객(客)이라는 신분 때문에요. 그 집(절)의 식구들(승려)을 청산(靑山), 손님을 백운(白雲)이라고 부르며 서로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선방의 철칙이거든요.
그런데 그날 저녁 선방에 앉아있자니 계속해서 나무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렇게 편치 않은 마음으로 밤을 지새우고 다른 스님 한 분과 카메라를 들고 다시 산으로 올랐어요. 파괴되는 산의 모습을 찍어 청산들에게 보여주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함이었죠. 그때만 해도 공사장 사진 찍는 일이 불법인줄 알고 몰래 숨어서 사진을 찍었는데(웃음) 사진을 몇 장 찍고 나니까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내가 공사장에 뛰어들어 공사장 인부들에게 "당신들, 여기서 뭐하는 거야"라고 큰 소리를 치고 있더라고요. 1년 넘게 해 온 공사를 갖고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비구니 하나가 튀어나와 호통을 치니 공사장은 어처구니없어 하고. 그렇게 시작했어요. 나무가 내지르는 비명소리에 내 마음이 아프니까 아픔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움직이는 본능으로 말이죠."
이처럼 본능에 이끌려 시작한 지율 스님의 생명운동은 서툴지만 열정적으로 전개됐다. 법적으로 보호받는 늪이 있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듣고선 낙동강 유역 환경청을 찾아가 '우리 집의 늪을 람사협약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도록 등록해 달라'고 큰 소리를 치고, 자연환경보존법상 해당 지역이 공사가 불가능한 지역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줄자를 들고 직접 측량에 나서는 등 천성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일에만 몇 달을 매진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해당 지역의 개발이 불법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양산시는 차량 진입을 위해 닦은 길을 메우고 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지율 스님의 운동은 이제 시작이었다. 한 번 들린 자연의 비명소리는 끊이지 않고 귓전을 때렸다. 고속철도가 천성산 중앙을 관통한다는 소식이었다.
분노 않는 무감(無感)이 무서워
지하수 유출 및 고갈, 22개 고층습지 훼손, 생태계 파괴…천성산 중앙에 16km 터널을 뚫을 경우 발생할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한 우려를 얘기하며 지율 스님과 부산지역 시민·종교단체들은 대안노선 마련을 요구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의 수장들은 처음엔 이들의 소리를 듣는 듯 하더니 이내 등을 돌렸다. 수 조원의 자금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국책사업이기 때문이다. 함께 하던 이들도 이미 끝난 싸움이라며 하나 둘 떠날 채비에 나섰다.
그러나 지율 스님은 도저히 천성산 문제에서 발을 뗄 수 없었다. 숲에서 나와 곡기를 끊고 대로(大路) 한복판에서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하고 국토순례에 나섰다. 하지만 스님에게 돌아오는 것은 극단적이며 고집스런 비구니의 무모한 행동이라는 언론과 정부의 비난이었다.
"자연의 아픔을 느끼는 것에서 시작해서인지 내 운동은 이론보다는 감성에 가까워요. 그래서 더 극단적으로 보이고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어요. 그러나 결국은 모두와 함께 호흡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궁금할 때가 있어요. 저들은 왜 아파하지 않을까, 왜 자연을 파괴하고 같은 인간을 살육하는 전쟁에 분노하지 않을까, 인간의 본성은 선(善)하며 나누고 화합할 줄 아는데 왜 선한 본성이 무감각해진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결국 생명운동을 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의 무감(無感)이라는 벽을 깨고 선한 본성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봐요. 또 그 선한 본성으로 세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방향도 제시해야 하고요." 지난 3년 동안 네 차례의 단식 수행을 통해 지율 스님이 깨달은 생명운동의 갈 길이다.
지난해 11월 법원은 일명 도롱뇽 소송으로 불리는 경부고속철 천성산 관통 구간 공사착공금지 가처분 신청 항고심에 대해 각하·기각 결정을 내렸고, 고속철도공단은 그간 중단됐던 공사를 다시 시작했다. 공사에 문제를 제기하던 언론들도 '국책사업에 대해선 원래 이런 결정이 날 수밖에 없다', '이제는 끝난 싸움'이라며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보수언론들은 '고집스런 한 비구니로 인해 중단됐던 고속철도 공사가 재개됐다'며 법원 결정을 환영했다.
도롱뇽 소송 시민행동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함께 운동하던 시민단체들도 사후 모델링 등의 작업에 신경쓸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율 스님은 "공사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던 법원이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으며 울분을 토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많은 사람들이 '원래 그렇다', '그럴 줄 알았다'며 당위적으로 결론을 받아들이는 것에 놀랐다"고 말한다.
특히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 언론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지율 스님은 "국내 최대 보존지역을 훼손하는 정부에는 문제를 삼지 않으면서 '그깟 도롱뇽 때문에…'라고 쉽게 내뱉는 이들 언론에서 살기를 느꼈다"고 한다.
"조중동을 둘러싼 여러 논란이 있지만 그래도 한 때는 이들이 우리의 문화를 선도해 나갔잖아요. 동아일보 폐간 등의 사건이 있을 때 우리 집에서 10부씩 신문을 받아봤어요. 그 때만 해도 시대의 정신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 이들은 시대의 정신과 사회의 문화를 수호하는 본연의 정신을 잃고 살인검을 휘두르고 있어요." 지율 스님은 조만간 이 같은 마음을 담아 '조선일보에 보내는 편지'를 쓸 예정이다.
지율 스님은 또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정부를 비판해도 정부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처럼 분노하지 않는 사회의 기본 관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주변에선 지금까지의 운동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며 천성산에서 모아진 힘을 기반으로 또 다른 생명 운동에 나서라고, 천성산을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난 천성산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다면 다른 운동도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문화재·환경 등 온갖 법, 다시 말해 보호받는 것이 원칙이라고 인정된 천성산을 훼손하는데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다른 것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겠어요?" 잘못에 대한 세상의 분노가 잠들어 있는 한 지율 스님에게 '천성산'은 내려놓을 수 없는 화두이다.
막둥이 같은 천성산을 어찌할꼬
지율 스님은 지난해 12월부터 거리에서의 농성 대신 천성산의 사계와 산 주변의 생명문화를 정리하는 일에 매진했다. 단식으로 몸이 쇠한 상태임에도 하루 10시간 이상 20일을 꼬박 이 작업에 매달렸다. 도롱뇽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던 아이들이 30분만 천성산 도롱뇽의 얘기를 듣고 나면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도롱뇽을 살려달라 말하는 모습을 보며 교육을 통해 생태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생명교육을 위한 밑그림 역할을 하게 될 이 플래시가 바로 '2004, 초록의 공명'이다.
"타자도 못 치던 내가 도롱뇽 운동을 하면서 포토샵도 배우고 플래시 만드는 법도 배우고…내가 봐도 너무 장해.(웃음) 선생님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혼자 이리저리 만져보면서 이만큼 늘었어. 주변에서도 너무 잘한다고 하고." 컴퓨터를 켜 플래시의 내용을 보여주는 지율 스님의 얼굴은 100점 시험지를 자랑하는 어린아이처럼 천진했다.
"천성산은 나에게 있어 집안의 막둥이 같은 존재예요. 너무 사랑스러운데 그만큼 다치기도 쉽고 그만큼 회복도 어려운 막둥이. 이 막둥이 지키자고 화살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데 정부는 상처 위에 계속 화살을 쏘아대고 있어요. 조금의 배려도 없죠. 시민운동을 회유하려 하고 종단을 압박하며 가끔씩 '아직도 살아있나' 들춰보고 있어요. '정말 많은 노력을 했는데 어렵다. 미안하다'고 배려하면 될 일을 '그깟 도롱뇽이, 비구니가…'라고 하니 어떻게 물러날 수 있겠어요? 주변의 단식중단 권유를 뿌리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물러날 자리가 없기에 물러설 수 없다는 지율 스님의 의지는 단호했다.
"나의 앞 길이 어찌될지 모른다고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전 제 마음의 울림을 따라 행동하고 있고 그래서 행복합니다.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바뀔 것이라고 믿으면서 내면의 선한 울림에 귀 기울이세요. 그리고 사람들과 손잡아 그 울림을 전하세요. 그것이 바로 순환하는 초록의 공명입니다." 생명을 위해 생명을 내던진 우리 시대의 시민운동가, 지율스님의 전언이다.
세옥 기자 kso@ngotimes.net 사진= 양계탁 기자 gaetak@ngotimes.net
Try To Remember / Nana Mousko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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