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째로 태어났으면서도 맏이가 된 규왕이의 중학교 입학을 기념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 가족이 사진을 찍었다. 비록 두 사람의 '빈자리'가 좀더 확연해지는 슬픔을 안게 되는 일이지만...
ⓒ 지요하
그런데 화제를 바꾸어 다른 이야기를 하던 중 내 뇌리에 불현듯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왠지 생질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얘기였다. 나는 좀 전의 화제로 되돌아가서 생질에게 우선 이런 말을 했다.
"너도 외갓집의 과거 슬픈 사연을 잘 알고 있지? 외할머니 칠순 때 일어난 일 말이야. 외할머니 칠순 잔치를 하던 야외 음식점의 작은 연못에 한솔이가 빠져 죽은 사건…."
"알고 있어요. 어렸을 때 일이지만 제 기억에도 있고, 또 언젠가 우리 할머니한테서 얘기를 들은 기억도 있어요."
"그날 그 음식점에 가서 잔치를 하기 전에 성당에서 미사를 지냈어. 그날 감사 축복미사를 지냈는데도 그런 일이 벌어졌어. 그래서 그 다음 날인가, 외삼촌은 어떤 사람에게서 '그러니께 하느님은 계시지 않는 거지유?'라는 말도 들었어. 그래갖고 해미성지로 달려가서 성지 한 곳에 오래 홀로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 그날 내가 왜 해미성지로 달려갔는지 아니?"
"짐작이 가요. 제가 명확하게 표현을 하기는 어렵지만…."
"하느님 때문에 참혹한 고난을 당하고 목숨까지 잃은 무수한 순교자들 가운데서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이었지. 그 후로 외할머니와 우리 가족들은 조금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더욱 열심히 하느님을 믿게 됐어."
"제가 우리 외갓집을 잘 알아요. 우리 외갓집은 그 무엇보다도 하느님 신앙이 첫째라는 것을…."
"그런데 우리 집보다, 다시 말해 네 외할머니보다 더 슬프고 기가 막힌 사연을 안고 사시는 할머니가 있어. 실은 그 할머니 얘기를 들려주려고 우리 집의 과거 일을 끄집어 낸 거야."
그리고 나는 내 어머니보다 더 슬프고 기가 막힌 사연을 안고 사시는 한 분 할머니의 얘기를 생질에게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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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세 고령에도 50리 밖 산골 마을에서 성당 주일 미사 참례를 거르지 않으시는 이주열 할머니. 언제나 성당의 맨 앞자리에 앉으신다.
ⓒ 지요하
충남 태안군 이원면 사창리에서 사시는 이주열 할머니는 올해 연세가 92세다. 그 고령에도 특별히 불편하신 데 없이 건강하시다고 했다. 눈도 밝고 귀도 밝고 말씀도 잘하신다. 그리고 주일마다 성당에 오신다. 할머니가 사시는 동네는 태안 읍내에서 50리 정도 떨어진 산골이다.
지금은 차량 봉사자가 운전하는 성당 승합차 덕분에 성당에 오고 가시는 일이 편하다. 7, 8년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는 성당에 오시려면 5리 길을 걸어야 했고, 버스 시간에 맞추려고 땀을 흘리셔야 했다.
할머니는 태안 성당이 공소(公所)이던 1960년대 초부터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으니 태안천주교회 초창기 신자인 셈이다. 서산 동문 성당 주임이셨던 프랑스인 오일복 요한 신부님(작고)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소화) 데레사.
이주열 할머니는 우리 어머니 할머니 세대가 다 그랬듯이 다산(多産)을 하셨다. 아들 다섯에 딸 셋을 두셨다. 맏이도 이제는 70줄에 들어선 노인이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인 1974년 가을, 이주열 할머니는 넷째 아들의 결혼식을 보게 되었다. 할머니는 당신 환갑을 목전에 둔 때에 스물일곱 살 먹은 넷째 아들을 장가보내게 된 것이 더없이 기뻤다.
넷째 아들은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처음부터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를 원했고, 원래 비신자였던 신부를 설득하여 영세를 시키고 성당에서 정식 혼인미사를 거행하게 되었다.
태안 성당이 새 성전을 건립하고 주교님을 모시고 축성식을 가진 다음 처음으로 거행하는 혼배미사였다. 이주열 할머니는 새 성전에서 넷째 아들의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도 더없이 기뻤고, 하느님의 크신 은총과 축복으로 생각했다.
가을의 화창한 날씨 속에서 정용택 사도 요한 신부님(작고)의 주례로 혼인미사를 잘 거행했고, 일부 잔치도 성당에서 했다. 태안 읍내 신자들은 성당에서 대접을 하고, 큰 잔치는 사창리 집에서 하기로 했다.
결혼식을 마친 신랑 신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곧 신혼 여행길에 올랐다. 친구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그들 신혼부부는 설악산을 향해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기쁘게 출발을 했다. 그때의 그 모습이 이주열 할머니가 넷째 아들 부부를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다.
그들이 탄 승용차는 서산 땅을 벗어나 당진 땅으로 접어들자마자 구룡검문소 근처 곧은 길에서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트럭과 정면충돌하고 말았다. 뒷좌석의 신혼부부를 포함하여 차에 타고 있던 네 명 모두 그 자리에서 숨진 끔찍한 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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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미사 참례를 마친 이주열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승합차에 오르기 전에 잠시 포즈를 취했다.
ⓒ 지요하
"성당에서 결혼식을 하고 미사를 지낸 다음 떠난 신혼 여행길에서 그런 사고가 나서 신랑 신부가 목숨을 잃었으니, 게다가 두 명의 신랑 친구들까지 불귀의 객이 되었으니, 그보다 더 기가 막힌 일이 어디에 또 있겠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원망하고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했지. 심지어는 그 할머니가 성당에 다녔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다는 말도 돌았지."
"그 할머니의 마음고생이 참으로 크셨겠네요."
"이웃들과 집안이며, 심지어는 가족들 사이에서도 할머니가 성당 다닌 탓이라는 말이 돌았으니…. 그래도 그 할머니는 신앙심을 잃지 않았어. 오히려 그 일을 계기로 할머니의 신앙심이 더욱 강해졌지."
결혼식 날 아들과 며느리를 잃는 엄청난 슬픔을 겪은 후로 이주열 할머니는 더욱 열심히 주일 미사에 참례했다. 여름철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라든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버스가 다니지 못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주일 미사 참례를 거르지 않았다. 미사가 끝난 후에도 할머니는 이내 성당을 나오지 않고 홀로 앉아 오래 기도를 하곤 했다.
언젠가 내가 한번 할머니께 물은 적이 있다. 그런 큰 슬픔을 겪고도 어떻게 그렇게 초연한 모습으로 사실 수가 있느냐고…. 그때 할머니가 들려주신 말씀이 지금도 내 기억에 명료하다.
"우리헌테는 저 하늘이 있으니께…. 사람은 저 하늘을 보며 살아야 허니께…. 하늘을 보면 보이는 게 있어. 내 아들과 며느리도 보이고…. 하늘을 보면 뭔가가 보이고, 내 아들과 며느리도 보이니, 내가 기도를 많이 허지 않을 수 없어."
'하늘을 보면 뭔가가 보인다'는 말을 떠올리며 나는 그게 과연 뭘까? 야릇한 의문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것은 일종의 그리움일 수도 있고, 어떤 소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아들 부부에 대한 그리움과 아들 부부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을 쳐다보곤 하니, 그 마음의 형체가 하늘에서 '뭔가로' 보이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할머니는 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최근에 들은 말이었다.
"내가 이렇게 오래 사는 것은, 결혼식 날 세상을 떠난 우리 아들과 며느리를 위해서, 또 이 세상에서 이런저런 사고로 목숨을 잃는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서 날 보구 기도 많이 허라구 허시는 하느님 뜻인개비여."
올해 92세의 고령에도 차 타는 일을 어려워하지 않으실 정도로 건강하시고, 말씀도 또렷하게 잘하시는 이주열 할머니에게서 나는 할머니의 그 말씀의 어떤 실체를 담뿍 느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말로 그 뭔가를 명확하게 느끼는 기분….
그것을 나는 내 생질에게 잘 말해 주었다. 내 생질이 그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새 차를 축성 받은 날 접촉 사고가 나서 신앙생활을 접었다는 그 친구에게 어떻게 전해 줄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이 얘기가 그 친구에게 어떤 느낌이나 생각을 갖게 할지는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