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
|
부활 성야 미사 2006년 4월 15일 마르 16, 1-7 어두운 밤에 우리는 촛불을 밝혀 들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우리의 빛이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1,4). 요한복음서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입김에도 쉽게 꺼질 수 있는 연약한 촛불을 손에 들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마음에 새겼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돌아가셨지만, 하느님이 그분을 위해 무엇을 하셨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미움이라는 어둠의 힘을 발동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분을 당신 안에 거두어 살리셨습니다. 그 사실을 기념하는 오늘 부활 대축일입니다. 하느님은 생명이십니다. 살리시는 생명이십니다. 이 세상에 자리 잡은 억압, 지배, 미움 등은 생명을 위축시키고 죽입니다. 하느님은 자비하고, 살리고,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그 자비와 살리심과 사랑이 우리를 밝히는 빛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오늘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셔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기적이 일어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순리이기도 합니다. 부모가 되는 사람은 자녀가 없던 자유롭고 분방하던 생활에 죽어서 부모라는 새로운 형태의 생명 안에 태어납니다. 나비는 애벌레의 삶에 죽어서 나비로 태어납니다. 성서에도 “밀알이 땅에 떨어져...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의 삶에 죽어서 자비하신 하느님, 살리시는 하느님 안에 새롭게 태어나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느님 안에 자기의 삶을 성취하는 태어남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무릎을 꿇고 입을 모아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시라 고백하기에”(필립 2,10-11)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예수라는 한 생명이 죽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많은 삶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새로운 태어남을 향하여 사는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오늘 우리가 세례 서약을 갱신하는 것도 그 새로운 태어남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다시 확인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촛불 하나를 밝혀들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따라 살겠다고 약속합니다.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촛불 하나를 받았었습니다. 장차 우리가 죽으면, 사람들이 촛불 하나를 우리 앞에 또 밝혀 줄 것입니다. 우리는 지상적 인간 조건을 하나도 외면하지 못하고 땅에서 삽니다. 먹고 마시는 일에 얽매이고, 재물과 명예를 탐하면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울고 웃으며, 사람을 좋아도 하고 미워도 하면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촛불 하나를 밝혀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우리의 빛이심을 고백합니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어둠을 밝혀 주는 빛이심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함께 먹는다.”(루가 15,2)고 비난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경건한 유대인이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여인 한 사람을 단죄하고 율법의 이름으로 돌로 치려는 사람들의 손에서, 예수님은 그 여인을 구해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대를 단죄하지 않습니다.”(요한 8,11). 하느님은 사람을 용서하고 살리는 분이십니다. “고을에서 죄인으로 소문난 여인”(루가 7,48)에게도, 유대인 지도자들이 죄인이라 말하는 중풍병자(마르 2,9)에게도 예수님은 용서를 선언하셨습니다. 그 생명이 우리들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겪는 불행의 원인을 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시대 유대교 지도자들은 모든 불행이 하느님으로부터 온다고 믿었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벌이라고 그들은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선하지 못하기에, 하느님도 선하지 않은 분으로 그들은 상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느님의 일”(요한 9,3)이라고 말씀하실 때는 사람들을 불행에서 해방시키는 행동을 의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으면서, 그것이 하느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인간 불행의 원인이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일이 하느님의 일이라 믿고 실천하셨습니다. 그 생명이 우리들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측은히 여기셨다고 복음서들은 말합니다. 그분이 행동하신 동기는 항상 불쌍히 여김과 측은히 여김이었습니다. 그분은 대단한 지혜를 가르치지도 않으셨고, 대단한 권위를 과시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기적을 행하는 기교를 가르치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기회만 있으면 우리 스스로를 과대 포장하고 과시합니다. 성령으로 포장하여 이상한 소리를 냅니다. 하느님이 주신 권위라고 포장하여 인간의 저속한 지배욕을 행사합니다.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 당신 자신에 대해 하신 유일한 말씀으로 보입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측은히 여기면서 섬기는 분이셨습니다. 그 생명이 우리들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우리의 빛으로 계십니다. 이제 죽음은 암흑도 절망도 아닙니다. 하느님 안에 새롭게 태어나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미워해도, 사람들이 외면하여도, 혼자 버려져서 고독하여도, 또 하던 일이 실패하여도, 우리는 어둠 속을 헤매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빛이 있습니다. 죽음의 어둠을 넘어서 하느님 안에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빛은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분이 믿고 행하신 바를 배우기 위해 그분의 빛을 밝혔습니다. 그 생명이 우리들의 빛입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은 물러납니다. 빛이 있어 어둠 안에서도 우리는 주변을 봅니다. 우리 주변에는 함께 길을 가야 하는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우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섬김을 필요로 하는 버려진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 욕심의 어둠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이웃입니다. 우리가 손에 든 빛은 휘황찬란하지도 않고, 연약하지만, 그 빛을 소중히 생각하는 이에게는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부활은 빛의 잔치이고 생명의 잔치입니다. 하나의 빛이 우리 생명의 의미와 이웃을 새롭게 보게 하는 기쁨의 축일입니다. 어두운 인류 역사 안에 우리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빛이심을 고백하고, 그 빛이 우리를 비춰 줄 것을 기도합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촛불을 밝혀 들고 세례 서약을 갱신합니다. 하느님이 아니면서 우리를 지배하는 모든 어둠을 끊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빛으로 계셔서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 또 성령이 살아계신 새로운 생명으로 살 것을 고백합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98125 | 주님은 지구상에 인류가|1| | 2006-04-15 | 정정애 |
| 98124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3| | 2006-04-15 | 강점수 |
| 98123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2| | 2006-04-15 | 강점수 |
| 98122 | 영성체 후 묵상 (4월15일)|5| | 2006-04-15 | 정정애 |
| 98120 | 하느님의 자비주일 9일 기도문 (둘째날)|7| | 2006-04-15 | 최인숙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