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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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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부활 대축일 2006년 4월 16일 요한 20, 1-9. 사도 10, 34. 37-43. 예수 부활 대축일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이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시다고 제자들이 믿기 시작한 사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절망하여 각자 흩어져 고향으로 돌아간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으면, 제자들이 다시 모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선포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 안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이, 예수님도 죽음으로 영원히 사라지셨을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은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갔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서가 어둡다고 말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요한복음서는 어둠과 빛을 대조하여 말합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물지 않게 하려고 나는 빛으로서 세상에 왔습니다.”(12,46).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라는 초기 신앙인들의 믿음을 반영한 주제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의 빛이라고 믿는 신앙이 생기기 전, 아직 ‘어두울 때’ 무덤으로 갔습니다. 이 여인은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진 것을 보고, 예수님이 무덤 안에 계시지 않는다고 직감합니다. 그는 자기가 발견한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렸고, 사도들을 대표하는 베드로와 ‘예수님이 사랑하신 다른 제자’가 함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무덤을 향한 달음질에는 예수님이 사랑하신 다른 제자가 더 빠릅니다. 그는 베드로보다 먼저 도착하였지만, 베드로를 기다려 주는 아량을 보입니다. 베드로가 무덤에 들어가고 뒤따라 들어간 그 제자는 보고 즉시 믿었습니다.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여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예수님이 아끼셨던 마리아 막달레나가 빈 무덤을 발견한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사랑하신 다른 제자’가 베드로와 함께 무덤에 가서, 그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두 제자가 함께 가서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지만, 부활 사실을 믿은 사람은 ‘예수님이 사랑하신 제자’였다고 복음서는 말합니다. 요한복음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수님에 대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의 죽음 전까지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분 죽음의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은 그분의 죽음에서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살아 계실 때, 그분과 접촉하고 그분을 사랑했던 사람들에게서 신앙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복음서들은 빈 무덤 이야기로 말하고자 합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지상 삶으로 환생하신 기적이 아닙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분을 죽였습니다. 그들은 시편이 말하는 대로 그분을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23,4)로 보내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분을 당신 안에 살려 놓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제1독서로 들은 사도행전은 베드로 사도가 이방인들에게 설교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다시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 시대 유대인들이 사흘이라고 말할 때는 72시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흘은 결정적인 날입니다. 사람들이 죽인 예수님의 생명을 하느님이 결정적으로 살려놓으신 순간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이 그분을 부활시켜 당신 안에 살리셨다면, 그분이 하느님의 생명이 하는 일을 하며 사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베드로의 설교는 그 사실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셔서...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린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좋은 일을 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숨결인 성령과 힘을 부어 주셨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숨결로 모험을 감행하신 분이었습니다. 권위주의로 경직된 유대교 사회에서 예수님은 그 조직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으셨습니다. 율법과 성전을 절대시하는 유대교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절대적인 것은 하느님이었습니다. 하느님은 고치고 살리는 선하신 분이십니다. 아버지의 생명을 자녀가 산다고 생각하는 시대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선하신 생명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들은 베드로의 말씀 같이 그분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 고치고 살리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부활 신앙은 예수님이 살아서 실천하신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데에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당신의 일을 실천하며 살 것을 원하십니다. 하느님이 주신 자유로운 생명입니다. 율법에 쫓기고, 성전의 권위에 짓눌려서 살아야 하는 생명이 아닙니다. 우리는 돈에 짓눌리고, 권력에 짓눌리고, 욕심과 허례허식에 짓눌려 삽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으로부터 성령과 힘을 받아 악마에게 짓눌린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는, 오늘 베드로의 말씀은 사람을 짓누르는 것에서 사람들을 해방하셨다는 뜻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빈 무덤을 발견하고, 베드로가 그 사실을 확인하고,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는 빈 무덤을 보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아끼고 사랑하여 그분의 실천에서 우리의 삶을 위한 빛을 찾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확인된 사실이지만, 그 죽음에서 믿음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 그리스도 신앙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삶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이 발생하였다는 말입니다. 또 앞으로도 많이 발생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성전을 중심으로 한 그 시대의 관행과 권위에 얽매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유로이 선하신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고, 악마에게 짓눌린 사람들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부활 축일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고 배워서 선하신 하느님이 주시는 해방을 자유롭게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에게서 선하신 하느님의 일을 배웁니다. 율법과 성전에 얽매인 그 시대의 관행을 벗어나신 그분의 삶을 배웁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자기 한 사람을 높여서 허세를 부리지도, 남을 짓눌러 죽음을 발생시키지도 않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선하신 실천, 고치고 살리신 실천, 인간을 자유롭게 하시는 실천에서 자기 생명이 행할 바를 배웁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빛이라고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이 부활하셨다고 고백하는 것은 그분으로부터 빛을 받아 살겠다는 약속입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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