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에는 황사를 누런먼지 또는 누런 안개라고 했으며 재해로 여겼습니다. 현재 우리는 예보 실패로 주말 나드리를 망쳤다고 탔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달랐지요. 이를 황기라고도 해서 세상이 어지러울 징조로 보아 경계를 했었답니다. 겨울철의 황기는 강물이 얼지않는 따뜻한 날씨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듬해 농사를 망치기 때문에 큰 재해였지요. [겨울이 봄처럼 따뜻한 경우는 기강이 해이되었기 때문이고, 누런 안개가 사방에 자욱함은 소인이 권세를 독차지 하기때문(중종실록 16년 12월 17일)이라고 본 것이랍니다. 중종 16년(1521년) 12월 따뜻한 겨울에 누런 안개가 끼자 영상 김전, 좌상 남곤, 우상 이유청이 [형편없는 몸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때문] 이라며 일제히 사직한 것은 이런 생각 때문 이었답니다. |
이에 대해 중종은 [자신의 부덕]때문이라며 [상하가 서로 지성스럽게 공구수성(두려워하면서 몸을 닦음)하자]고 공동 책임론을 펼쳤답니다. 물론 그당시에도 황사를 기상 이변에 불과하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답니다. 그러나 명종 10년(1555년) 홍문관 부제학 정유길이 [재변을 하늘에 따지는 것은 사람에 따지는 것만 못하다]면서 지금은 바로 전하께서 잠자고 밥 먹을 겨를도 없이 공구수성해야 할 때라고 말한 것처럼 수성(修省)의 계기로 삼았습니다. 현재 황사의 원인은 네이멍구, 황토 고원, 고비사막 등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인간의 그릇된 행위에 대한 하늘의 경계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세상 모든일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옛 선비들의 정치관은 현대에도 계승할만 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