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더보기
2026년 10월 31일 (토)
(녹)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자유게시판

아내의 고교 동창 모임에 참석하고 참견을 하다

스크랩 인쇄

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6-04-26 ㅣ No.98659

 

            아내의 고교 동창 모임에 참석하고 참견을 하다





<1>

1967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벌써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거기에서 인생무상을 느끼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무안한 심정 또한 크다. 왜 모교를 생각하면 무안한 마음이 드는지, 이런저런 이유들을 되새겨보는 것은 더욱 무안하다. 허나 오늘 그 얘기를 쓰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시골 신설고등학교 제2회 출신으로 졸업할 당시의 동기생은 모두 43명이었다. 그 43명 중에는 중학교 졸업으로 일단 학업을 마무리했던 사람들, 1·2년씩 혹은 3년이나 묵었다가 고교에 입학한 사람도 여럿이었다. 제 나이에,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고교 진학을 한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또 대부분은 우리 고장에 고등학교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고등학교 교복을 입어보지도 못했을 사람들이었다(나 역시 그런 조건이었다).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고교 재학 시절에는 모두들 어느 정도 응집력을 보였지만 고교 졸업 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성인이 되어 초등학교나 중학교 동창회 쪽에 각자 관계를 하게 되면서,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는 선배였다가 고등학교에 가서 후배들과 동창이 된 그 동기들은 고등학교 동창회 쪽으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는 한때 고등학교 동창회를 만들고 총무 노릇을 한 적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적잖이 고생을 했다. 그러다가 끝내는 손을 들고 말았다. 어떤 결속력이나 응집력을 나타내고 지속시키기에는 기본적으로 어려운 조건이라는 사실을 절감해야 했다. 모임의 부실 상태를 극복할 수 없어 내가 총무 노릇을 포기하고 보니 동창회 모임은 흐지부지됐고, 자연 해체 형국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은 모교의 총동창회 행사에도 우리 기수에서는 고장에서 사는 두세 명 정도가 겨우 얼굴을 비치는 정도로 제2회의 존재 증명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다. 후배들로부터 "2회 선배님들은 대다수가 작고하셨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그게 사실입니까?"라는 뼈 있는 농담 질의를 받아도 쓴웃음만을 짓거나 "그려, 거전 다 뒈졌디야"라는 악담(?)으로 대꾸를 하기도 한다.

고향에서 살면서도 고향 모교의 동창회 같은 것을 꾸리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충분히 일종의 자괴감을 갖게 하고, 쓸쓸함을 자아내는 일이다. 고교 동기들이 저 어려웠던 시절, 신설 학교였던 모교 덕분에 고등학생 시절을 가질 수 있었던 사실을 상기하며, 청소년 시절의 추억을 나누며 '초로'의 계절을 정답게 살아가는 것도 좋을 법한데….

초등학교, 중학교와 달리 고등학교 동창들 사이에는 어떤 '진숙(眞肅)함'이 더 있을 법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청소년 시절로 되돌아가 그 순박함 속의 진숙함을 서로 나누며 사는 것도 좋을 법한데, 내겐 그런 것이 없으니 나이 먹는 일이 더욱 무안하고 쓸쓸하다. 고장에서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지만, 고교 동기들과의 어떤 형태를 갖춘 지속적인 어울림이 없는 데서 오는 허전함은 정말 분명한 것 같다.

<2>


▲ 성황을 이룬 공주사대부고 제15회의 '2006년 봄 계룡산 갑사 모임' 풍경
ⓒ 지요하

지난주 토요일과 일요일, 또 한 번 아내의 고교 동기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있었다. 공주사대부고 제15회 동기들의 모임이 계룡산 갑사에서 있은 덕이었다. '부부동반'도 환영한다는 그 모임에 아내는 처음부터 내가 동행을 해줄 것으로 믿었다. 나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여러 차례 아내의 고교 동창회 모임에 '운전 봉사'로 동행을 했기 때문에 아내의 고교 동기들 중에는 구면인 분들도 많았고, 넉살 좋은 내 너울가지를 인정받은 처지여서 사실은 별 부담이 없는 일이었다.

모임 장소가 계룡산 갑사라고 하니 더욱 구미가 당겼다. 모처럼 만에 갑사 구경도 하고 계룡산도 오를 수 있게 된 기회였다. 나는 아내가 아직도 '장롱 면허'를 면치 못하고 있는 사실에 마음속으로 감사했다(덕 좀 볼 요량으로 2002년 적금 탄 돈으로 마누라와 제수씨를 자동차운전학원에 보내 면허를 따게 했다. 그런데 덕 볼 사이도 없이 제수씨는 지난해 세상을 떴고, 마누라는 여전히 면허증을 장롱 속에 처박아두고 있다).

어머니는 운동 신경 둔한 며느리가 운전대를 잡지 않고 사는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시는데다가, 지난 2월 아들 녀석이 서울 강남성심병원에 입원하여 오른쪽 콩팥 요관 수술을 받을 때 아내의 고교 동기들이 여러 명 문병 온 것을 고마워하시는 터라서 우리 부부의 나들이를 쉽게 허락해주셨다.

대학 새내기인 딸아이도 대학 시절의 첫 시험을 마치고 금요일 밤 집에 내려오게 되어서 계룡산 갑사에 동행을 하기로 했다. 녀석은 꽃피는 4월에 계룡산을 갖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 했다.


▲ 고교 재학 시절부터 노래 실력을 인정 받았다는, 서울에서 온 윤재현(초교 교사)씨의 열창도 듣고...
ⓒ 지요하

우리 부부는 토요일 오후 2시쯤 출발하여 먼저 잠시 천안을 들렀다. 내가 '충남예총'의 <충남예술> 편집회의에 참석하는 일 때문이었다. 그 일을 마치고 곧 천안을 출발, 오후 7시쯤 계룡산 갑사에 도착했다. 공주사대부고 15회 동기들의 모임 장소인 음식점으로 들어가니 넓은 방에 이미 수십 명의 동기들이 와 있었다. '꽃이여! 바람이여! 친구여!'라는 글자가 새겨진 멋진 현수막이 반가움과 흥겨운 분위기를 한결 고조시켜 주는 것 같았다.

자리를 함께 하고 있는 거의 모든 이들이 우리 부부에게 환영의 손짓을 보냈고, 또 많은 이들이 내게로 와서 반가운 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청하곤 했다. 이때부터 나는 내가 마누라와 '일심동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연히 실감하면서, 더 나아가 나 자신이 공주사대부고 제15회 출신인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공주사대부고 제15회는 남자 2개 반, 여자 1개 반, 모두 3개 학급이었다고 했다. 180명이 졸업을 했다고 했다. 그 180명 중에서(이미 유명을 달리한 이도 여러 명이고…) 40명 정도가 이번 계룡산 모임에 참석했으니 '대성황'이라고 했다.

충남에서 명문으로 거론되는 학교 출신들답게 제15회도 풍성한 면모들을 자랑하고 있었다. 고시에 합격하여 입신을 한 이도 있고, 군 장성에다가 군의 특수 요직에 앉은 고급 장교도 있고, 대학 교수들도 있고, 화가에다가 의사와 소설가를 겸하는 이도 있고, 여성 수필가도 있었다. 또 경제계 쪽에서 알차게 경영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도 있고…. 여자 동기들은 내 아내처럼 교직에 진출한 이들이 가장 많고, 스님이 되신 분도 두 분이나 있다고 했다.

대전에서 크게 음식점을 경영하는 이는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대신 생선회를 많이 보내와서 식탁이 한결 풍성한 모습이었다. 여러 가지 바쁜 사정 속에서도 기꺼이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한 자리에서 많은 친구들을 볼 수 있게 된 사실에 한껏 고무된 표정이었다. 이리저리 자리를 바꾸며 술잔과 담소를 나누는 풍경은 그대로 정과 활기가 넘치는 잔치판이었다.

<3>


▲ 저녁식사 후 일부가 함께 한 기념촬영 자리에 염치 좋게 나도 끼어 앉았다.
ⓒ 지요하

저녁식사 후 음식점의 큰 방안에 노래방 기기를 들여놓고 잠시 여흥을 즐겼지만 앰프 상태가 좋지 않자 모두 근처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십 명이 함께 놀 수 있는 넓은 노래방에서 그들은 모두 '세계에서 가장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임을 과시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근처 숙소에는 우리 가족이 따로 잘 방이 마련되어 있어서 아내가 자꾸 내게 '조기 퇴장'을 권유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아니, 당신과 내가 '일심동체'라서 여길 같이 왔는디, 어떻게 나 혼자 먼저 숙소엘 가서 자빠져 잔디야? 그러면 일심동체가 아닌 겨." 이 말을 아내에게 안겨주고는 끝까지 노래방에서 함께 어울렸다.

처음 마이크를 잡았을 때는 내 '장기'인 시낭송을 선보였다. 노래방 안에도 시가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간단히 멘트를 한 다음 세 편의 시를 낭송했다. 그 다음부터는 유감없이 취흥을 발휘하며 노래를 여러 곡이나 불렀고, 한번은 100점을 받아 노래값을 물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노래방에서 끝까지 어울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12시가 넘은 시각에 모두 숙소로 옮겨가서 큰 방안에 둘러앉아 '회의'를 할 때도 끝까지 끼어 앉아 있었다. 게다가 회의 중간에는 '보조 발언'이라는 명목으로 참견을 하기까지 했다.


▲ 숙소 넓은 방에서 가진 심야 회의
ⓒ 지요하

완전히 술이 시키는 일이었지만, 나는 왠지 그 자리에 앉아 회의 내용을 지켜보고 싶었다. 또 내가 가지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에 그들의 이런저런 모습을 많이 담아두고 싶었다. 그들은 이미 내게도 정답고 그리운 사람들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참으로 명료했다.

그들은 회장과 남자 부회장과 전체 총무를 다시 뽑았다. 여자 부회장과 총무는 유임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느덧 50대 초중반의 세월로 접어들었음을 상기했고, 곧 다가올 초로의 계절을 앞두고 동창들의 교류와 모임이 더 활성화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인생을 살면서 '고교 동창'의 인연을 알차게 꽃피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삶의 미덕임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심야 회의는 고교 동창의 인연과 삶의 미덕을 되새기고 확인하기 위한 일이었다. 그들은 회의를 마치고도 몇 사람은 계속 대화 자리를 이어갔다. 그들 사이에는 매우 지적인 진지한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그들과 새벽 4시까지 자리를 함께 하며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 사회 현상에 대해, 독도 문제에 대해, 과거 일제 침탈기의 역사 풍경들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4>


▲ 23일(일요일) 오전 계룡산 수정봉을 오르기 전 갑사에서 모임 참석의 증거 하나 만들고...
ⓒ 지요하

겨우 2시간을 자고 일어난 다음날, 우리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계룡산을 올랐다. 수정봉이 목표였지만, 한국가톨릭문인협회 행사 참석차 12시까지 합덕 솔뫼성지에 가야했기에 우리 가족은 일찍 하산해야 했다. 참으로 아쉽고도 미안한 일이었다.

술을 꽤 마신 데다가 고작 2시간을 잔 상태로 먼 길 운전을 하는데도 전혀 졸음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간밤의 정다운 풍경들과 진지한 대화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즐거움 덕분일 터였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밤에 잠자리에 들었을 때 아내는 내게 타박을 했다. 노래방에서 나왔을 때 얼른 잠잘 방으로 들어가야지 왜 회의를 하는 자리에까지 끼어 앉아서 참견을 했느냐는 비난이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착해서 싫은 얼굴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래도 미안하고 민망해서 죽을 뻔했다고, 세상에 당신 말고 그런 주책이 또 어디 있겠느냐고 마누라는 길래 타박을 해대었다.

"어허, 나는 그래도 당신과 일심동체여서, 그 일심동체의 실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 건디, 왜 그렇게 난리라나?"

그 말에 마누라는 누운 채로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러면서도 "일심동체라는 말이 좋긴 하지만, 그걸 너무 좋아하다가는 마누라 기절시키는 일도 생기겠네요"라며 계속 나를 타박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아니, 내가 누구보다도 마누라를 극진히 위허는 마음으로다가 거기까지 함께 가서 한시도 위치 이탈을 허지 않구 끝까지 완벽허게 보호를 헤주었는디, 고맙다는 말은 허지 않구 웬 타박이라나?"

그 말에 마누라는 또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러고는 "에그, 내가 말을 말어야지"하고는 돌아누워 버렸다.


▲ 일곱 명의 여자 동창들은 밤에 먼저 돌아가고, 밤을 함께 지낸 다섯 명의 동기들은 23일 오전에 계룡산도 함께 밟았다.
ⓒ 지요하

"다음부터 당신 동창 모임에 내가 동행을 허지 않으면 당신 동창들이 모두 하나같이 되게 섭섭헤 헐 걸?"
"그건 그렇지먼, 다음부터는 동행을 허더라도 때와 장소를 좀 가려주세요."
"안되어. 그렇게는 뭇혀."
"왜요?"
"나도 이미 당신 동창들과 정을 나누는 사이가 됐으니께! 당신과 일심동체인 디다가…."

그러자 아내는 입을 다물었다. 결국은 내가 판정승을 한 셈이었다. 마누라 말대로 내가 좀 주책을 부린 것이 마누라의 동창들에게 미안하긴 하고, 또 내 참견에도 싫은 내색을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던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더럭 커져오르는 가운데, 또 한가지 그리운 풍경이 내 초로의 세월 속에 쌓이게 되었다는 생각이 내 뇌리에서 피어올랐다.


덧붙이는 글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공주사대부고 15회 전용 '카페'가 있습니다. 그 카페의 자유게시판에 오른 여성 수필가 최일순씨의 시를 소개합니다.


행복한 만남이었습니다
충만한 시간이었습니다
다들 고맙고도 고맙습니다

재기 발랄하던 소년이, 소녀가
초로의 언덕에서
서로가 거울 되어
자신의 모습 되비출 수 있게 해주시어

그 얼굴에서
흰 칼라의 소녀를 만나고
빛나던 모표 아래
반짝이던 소년의 눈빛을 찾아내고

친구들 모두가 대견했습니다
모두가 기특했습니다
나이를 먹어감도 아름다운 일임을
실감하고 또 실감합니다

한동안 꿈 같던 시간 추억하느라
그 추억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 것 같습니다
사랑합니다, 우리 친구 모두를!


2006-04-26 20:11
ⓒ 2006 OhmyNews



1,582 1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번호 제목 등록일 작성자
98661 콜베마을 건립을 위한 바자회 2006-04-26 김안나
98660 역대기하8:1~18(성전 건축 공사가 끝나다) 2006-04-26 최명희
98659 아내의 고교 동창 모임에 참석하고 참견을 하다|1| 2006-04-26 지요하
98652 네가 어디를 가건 무엇을 하건. 2006-04-26 박병선
98651 폭풍전의 고요 - 표징|2| 2006-04-26 박병선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