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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두번 받으며^^*(굿자-1) 글짓기 대회 응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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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한 [johnpark] 쪽지 캡슐

2006-04-30 ㅣ No.98872

+찬미 예수님

 

우리 굿자기사를 통하여 제가 제안하였으니 제가 1번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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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학생때 까지 기독교 교인 이었습니다.

 

저는 개악교라 부르기를 즐겨하지만  裂敎는 한자어이고 차라리 이 글을 위해선 편의상 기독교 혹은 교회라고 지칭하고 가톨릭은 가톨릭 혹은 성당이라 부르겠습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마침 기독교 방송 (CBS)의 피디, 기자, 아나운서등의 1차 공채 시험에 응모 하였습니다. 중앙 고등학교 교정을 시험장으로 하였는데 인산 인해로 십수명을 뽑는데 1000여명이 응모를 하였으니까요.

 

시험과목은 영어 사회 작문등이었습니다. 저는 피디 를 응모하였는데...

며칠후 인터뷰를 하러 오라고 해서 갔더니 아마추어 음악인으로 화려한 경력을 가졌다며 음악부에서 일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이건 인터뷰가 아니라 아예 부서를 정하는 말씀처럼 들렸습니다.

그러시면서 음악 부장이셨단 이시우 부장 님이 자네가 압도적인 성적으로 1000명중 수석 합격이라면서 여러 부서에서 데려가겠다고 하여 문제가 생겼다며 음악부로 오라고 종용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랜 신자 생활에 꿈같이 그렸던 기독교 방송 공채 1기 피디로 음악부 클라씩 담당 일을 하였습니다.

말하지면 열교 신자로는 엘리트 신자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미국 유학을 가게 되어 눈물을 머금고 당시 오재경 이사장님의 만류를 무릅쓰고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바로 학교 교내에 부근 교회를 빌려서 예배를 보던 한인 연합 교회가 활발히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친구의 권유에 따라 목사관에 있던 성경공부에 참가 하며 교회와 인연이 시작 되었습니다.

 

그당시 목사님이 강도영 목사님이었는데 성경공부를 권유하던 청년 회장이 함께 세례를 받자고 하여

열교의 정서로는 그저 "믿쉽니다"만 외치면 교회를 다닐 수 있었으니까  꼭 세례라는 형식이 필요하다고 생각 하지  않았지만 친구따라  강남 간다고 이 친구와 함께 둘이서 덤덤히 강도영 목사님의 세례를 받았지요.

(이 친구가 지금은 상장된 한세 통상 사장이며 Amazon.com을 흉내낸 가장 큰 싸이버 서점을 인수한 김 DN사장입니다. 매사에 진지하고 좋은 친구 였습니다.)  

 

저도 그 친구의 뒤를 따라 청년회장을 거쳐 졸업하고

뉴욕에 가서 첫 회사 생활을 만하탄 월가에서 유수의 기업에서 management trainee로 훈련을 받은 후 한국 지사에 나갈 것을 약속한 후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두고 온 저는 다른 교회는 서먹하여 나가기 싫었는데 마침 뉴욕에 사시던 형님이 천주교인이었기에 이끌려서 퀸즈 한인 성당에 가끔 나가 보았습니다.

 

참 냉냉하더군요.

예전 그 연합 교회에서는 참 화기애애하고 예배가 끝나면 무슨 파티를 연 것 처럼 좋았는데

성당의 분위기는 착 가라앉은 것 같아 그 당시의 눈으로는 참 이상하게 보이더군요.

 

그래도 배우자는 교인으로 하겠다는 꿈을 안고...

4년후 뉴욕을 뒤로 하고 한국 지사로 나와

한편으로는 회사의 업무 부장으로 활약하며 저녁에는 연세대 대학원의 강의를 맡아 바쁘고 즐거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역시 기독교 교회의 테두리안이었지요.

 

어느 날 어머니가 저를 부르시더니 "이번은 정말이다" 하시며 한 아가씨 사진을 주셨는데 그것이 우리 세시리아를 만나게 된 인연이 될 줄이야...

 

명동성당에서 10시 반인가 반주를 하는 세시리아 아가씨...

홀딱 반하여 영세교인이 아니면 안된다는 바람에 할 수없이 명동성당 교리반에 신청을 하고 관면 혼배 하였고

열심히 교리를 들었습니다. 직장이 명동 KAL빌딩에 있었기에 그쪽이 편하였지요.

 

교리를 듣고 데이트도 하고...

그런데 다시 뉴욕으로 전임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기전에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세시리아의 졸림을 받고

당시 명동성당 반주자 해설자 모임의 담당 신부님이셨던 박기주 신부님을 만나 뵙고 영세문제를 상의 드렸습니다. 확실히 기억이 안나지만 교리 한 3개월 다녔나 봅니다.

 

박 신부님께서 개신교의 세례를 이미 받았다면 혹 그쪽이 유효할 수도 있어 영세가 필요 없겠지만 그래도 한번 더 받겠느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래서 관면을 풀고 싶은 마음에 네 안할 수 있나요. 안 그러면 집에서 쫓겨 날 판인데... (이미 결혼을 관면으로 하였습니다.)

 

얼른 네하고 대답하고 특별히 주일 미사가 밖에선 진행되고 있는  제의실에서 박기주 신부님께 엄숙히 두번째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다음 박신부님 집전 미사에서  첫 성체를 영하였습니다.

정말 성체를 영하며 기독교 교회와 왜 차이가 나는 지 비로서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세시리아와 같이 뉴욕에 가서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다시 그 서먹하던 퀸즈 성당으로 돌아가게 된것이었지요.

 

마침 반주자를 찾고 있던 성당에서는 즉시 세시리아를 반주자로 하여 신부님께서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저더러 반주자를 데리고 왔으니 일좀하라며 재정부 차장을 맡기시더 군요. 우리 신부님의 사목이 얼마나 능하셨는지는 한달 전 쯤 제 글에 이 신부님의 일화 올린 적이 있지요.

 

그즈음 그 제가 다녔던 연합교회에서는 교회 초창기의 화목한 시기는 가고 장로와 목사 또 장로끼리 싸움이 나서 뉴욕의 신문에도 날 만큼 법석을 벌려 그 교회의 화목한 인간적인 분위기가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더욱 더 성당 생활이 좋아졌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한 전례와 같은 성경으로 미사를 드리는 교회.... 인간적인 화목이 아니라 정말 교인다운

인간 관계가 쌓여지는 성당... 그리고 아기를 낳고 영세명 짓고 성당 생활 너무 행복했지요.

마침 있은 꾸르실료 교육을 받으면서 점차 점차 저도 옛 기독교 교회 신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가톨릭 교우가 되었지요.

 

저를 여유있는 사랑으로 이끌어 주신 영세 신부님...

박기주 신부님, 그후 응암동 성당으로 찾아 뵌 적도 있지만 참 제게 영세를 주신 신부님으로 두고 두고 잊지 못하는 신부님입니다.

 

우리 세실리아가 저를 두고 두고 칭찬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결혼전 애인들이나 선 본 남자들은 영세를 하여야 결혼을 할 수있다거나 최소한 관면 혼배를 받아도 교리받고 영세를 약속해야 혼인을 할 수 있다고 말하면 대개 그럼 관면 결혼하고 영세를 받겠다고 하고 안받으면 어떻게 되는냐고 대개 오리발 내밀 궁리를 하던데 저는 기다렸다는 듯이 약속하고

관면하고 난후 영세약속을 충실히 이행 하였다는 것...

두고 두고 칭찬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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