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덕에 가지게 된 인연들
<1>
1995년부터 기계 자판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떤 출판사에서 선물 받은 단순 기종인 워드프로세서로 글을 쓰다가 1999년부터 컴퓨터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 여름쯤부터 웹상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2000년 중학생이 된 딸아이가 아빠의 이메일 주소와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더니 인터넷에 관한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컴퓨터 사용법과 인터넷에 관한 한 어린 딸아이는 내 선생이었다. 정말 딸아이 덕을 많이 보았다. 결혼을 늦게 하여 자식을 늦게 얻은 것도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처음에는 문학 지망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문학 관련 사이트에 글을 올리다가 언론개혁 운동을 선도하는 단체의 사이트에 진출했다. 거기에 올려지는 내 글들이 여기저기 옮겨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글이 옮겨진 곳을 찾아갔다가, 내 글을 옮기는 누군지 모를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자는 생각으로 내가 그 곳에 직접 글을 올리기도 해서, 점점 출입하는 사이트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독자들이 이용하는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몇 개의 글이 올라가자 '시민기자'들의 눈에 띄게 되었고, 시민기자들의 권유와 주선으로 뉴스 게릴라 대열에 정식 참여하게 되었다.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 대열에 참여하면서 처음부터 '연재기사' 코너를 얻게 되었다. 2001년 7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라는 이름의 고정 코너가 만들어지면서 나는 더욱 집중적으로 웹상에 글을 쓰게 되었다.
2001년 7월 처음 생성된 <오마이뉴스>의 내 연재기사 코너는 처음에는 '언론' 난에 있었다. 그러다가 그 해 가을쯤 '사는 이야기' 난으로 옮겨졌다. 내 고정 코너의 이름이 지난해부터 <오마이뉴스> 메인 면의 '간판 상자'에서는 사라졌지만, '사는 이야기'와 '대전/충남' 서브 면에서는 지금도 간판 상자 안에 잘 보존이 되고 있다.
그리고 벌써 5년 세월이니, 내 연재기사 고정 코너는 <오마이뉴스> 안에서 '장수'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수많은 연재기사 코너들 중에서 최장수 코너일지도 모르겠다.
내 연재기사 고정 코너가 <오마이뉴스>의 '언론' 난에서 '사는 이야기' 난으로 옮겨지던 때 나는 <가톨릭 굿 뉴스>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나는 내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늘 인식하고 있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분히 하느님 신앙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사이트에서 내가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 하느님 신앙을 바탕으로 공감과 교감의 장을 마련해 보자는 생각이 나를 '굿 뉴스'의 '자유게시판'에 발을 들여놓게 했다.
지금은 인터넷 언론 매체로는 <오마이뉴스>, 천주교 관련 사이트로는 서울대교구에서 운영하는 가톨릭 굿 뉴스와 내가 속한 대전교구의 홈 사이트, 문학 관련 사이트를 벗어나 처음 글을 올린 '우리모두', 회원으로 참여하는 문학단체와 평화통일운동단체 사이트, 내 고장인 태안군 홈, 그리고 얼마 전에 나를 초대해 준 클럽 성격의 사이트 등에 제한적으로 글을 올리고 있다.
일단 맨 먼저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린 다음(오마이뉴스 편집부가 정식 기사로 채택해 준 다음) 그 글을 다른 사이트들에도 올리는데, 웬만한 종교 관련 글들도 일단은 모두 <오마이뉴스>에 올리고 있다. 하지만 성격적으로 <오마이뉴스>나 다른 사이트에는 올리기가 적합지 않아 굿 뉴스에만 올리는 종교 관련 글들도 종종 있다. 그리고 굿 뉴스 안에서도 다른 게시판들은 들락거리지 않고 오로지 자유게시판에만 글을 올리고 있다.
<2>
웹사이트에 글을 올리며 인터넷 세상에 나 자신을 드러내놓고 살다보니, 인터넷을 매개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는 일도 생기게 된다. 또 그 만남이 확대 발전을 하기도 한다.
웹사이트에서 알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남을 이룩한 최초의 경험은 지난 2002년 가을에 있었다. 문예지 <창작과 비평>의 웹사이트에서 서로의 글을 읽으며 교감을 나누던 세 분과 만나게 되었다. 대전에서 사시는 두 분과 서울에서 사시는 한 분이 가을철 맑은 날을 택해 태안을 찾으면서 내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웹사이트에서 글로만 대하던 분들을 직접 대면을 하게 되니 반가움이 더욱 컸다. 구면지기 같은 반가움에다가 어떤 신선함이 더해지니 '정감의 밀도'를 실감할 수 있었다. 태안의 한적한 바닷가에서 하룻밤을 지낸 그 분들과 이틀 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참으로 좋은 정감을 나누었다.
지금은 내가 창비 사이트에 들어가지 않아 두 분의 근황은 잘 모르고 있지만, 대전에서 사시는 한 분은 지금도 <오마이뉴스>에서 종종 좋은 글을 접하며, 가끔 서로의 글 밑에 '의견'을 달아 안부를 전하기도 한다.
웹사이트에서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오프라인에서 대면을 하게 된 두 번째 경험은 지난 2003년 6월에 있었다. 가톨릭 굿 뉴스 자유게시판에서 알게 된 다섯 분이 나를 보기 위해 주일과 현충일이 만난 6일 태안을 찾은 것이었다.
남자 세 분과 여성 두 분이었는데, 그 중에는 커플도 있었다. 남자 한 분은 나보다 연상이신 분이었고, 여성 한 분은 처녀였다. 이미 굿 뉴스 게시판에서 많은 글을 읽어 그 분들을 잘 알고 있는 아내는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을 쌌고, 몇 가지 음식을 준비했다.
우리는 태안 성당에서 함께 미사를 지낸 다음 우리 집에서 마련한 음식 보따리를 들고 백화산을 올랐다. 풍광 좋은 백화산 정상의 한갓진 바위 위에 앉아 아내의 솜씨가 최대한 발휘된 김밥과 나로 하여금 전국 각 지역의 막걸리들 중에서 가장 맛이 좋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태안 막걸리를 무려 여섯 병이나 마시며 참으로 재미있고 풍성한 말의 성찬을 즐겼다.
그런데 그 해 가을부터 굿 뉴스 자유게시판에 '번개'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번개란 급작스럽게 이루어지는 '모임'을 이르는 인터넷상의 신조어이다. 정해진 날짜에 정기적으로 갖는 모임이 아닌 비정기적 모임이로되, 어떤 사안이 있을 때 그것을 게시판에 공지하여 찬동하는 사람끼리 거의 즉발적으로 모이는 것을 이르는 말이었다.
굿 뉴스 자게에 진보 성향의 글을 정열적으로 올리는 분들 중에 서울대교구 사회복지국에서 운영하는 '까리따스합창단'에 참여하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그 해 11월 까리따스합창단의 정기 연주회가 명동성당에서 열린다는 공지를 게시판에 띄우자, 그것을 본 다른 분이 번개 모임을 제의했다. 그러자 번개 모임에 찬동을 표하는 댓글들이 잇달았다.
나도 찬동을 표한 다음 그 날 서울에 가서 까리따스합창단의 정기 연주회도 관람하고 번개 모임에도 참석을 했는데, 그게 나로서는 인터넷이 만들어낸 번개라는 형식의 모임에 참석해 본 최초의 경험이었다.
그런데 최초의 그 번개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20명이 훨씬 넘었다. 이미 모두 서로의 글을 통해 서로를 잘 알고 있고 공감과 교감의 폭을 넓혀 온 사이들이라, 처음부터 '친숙'이라는 단어와 '정'이라는 것의 실체가 함께 하는 자리였다. 나는 그 첫 번째 모임 자리에서부터 서로에 대한 존경과 애정의 질감을 체득하며 실로 가슴 뿌듯한 기쁨을 얻을 수 있었다.
그 후로 굿 뉴스 자유게시판을 매개로 하는 번개 모임은 간헐적으로 계속되었고, 나도 사는 곳이 서울이 아닌 불리(不利)를 무릅쓰고 거의 매번 참석을 하면서, 굿 뉴스 자유게시판 가족들을 태안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내 초청에 의해 태안에서는 두 번 모임을 가졌다. 한 번은 2004년 11월 21일, 태안 성당이 태안군민체육관에서 추수감사제 행사를 한 날이었다. 또 한 번은 지난해 6월 5일에 있었다. 2004년 11월 21일 주일에는 여섯 명 적은 수가 내려와서 태안 성당의 추수감사 미사를 함께 지내고 하루를 잘 즐긴 다음 승용차로 돌아갔지만, 지난해 6월 5일 주일에는 무려 32명이 버스를 대절하여 내려왔다.
그 날 우리 집은 새벽부터 몹시 분주했다. 어머니와 아내는 물론이고 뒷동에서 사는 제수씨까지 내려와서 32명의 서울 손님들을 잘 대접하기 위한 김밥 공사를 벌이고, 콩나물국을 끓이고 했다(그때를 생각하면 어머니와 아내와 제수씨에게 고마운 마음 한량없다. 지난해 12월 세상을 하직한 제수씨가 다시금 그리워지고…).
우리는 백화산의 태을암 근처 호젓한 숲 속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맛좋은 태안 막걸리를 즐기며 시낭송과 노래와 웃음이 풍성한 시간을 한껏 즐겼다. 그리고 천수만 바닷가로 가서 우럭회와 우럭매운탕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집에서 음식 준비를 한 비용 외로도 내 주머니에서 3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났지만, 내 평생 가장 기분 좋은 지출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 날은 정말 우리 가족 모두에게 행복한 하루였다. 우리 가족은 그 날의 일을 즐겁게 기억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때마다 특히 어머니께서 "또 한번 태안에서 모임을 갖게 되면 이번에는 이러 저렇게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곤 한다.
<3>
지난해 봄부터 굿 뉴스 자유게시판에는 '굿자만사'라는 말이 등장했다. 굿자만사란 '굿 뉴스 자유게시판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는 말의 약칭이다. 굿 뉴스 자유게시판에서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을 함으로써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김지선 도미니꼬/최미정 나탈리아 부부의 합작품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말은 금세 폭넓게 통용되었고, 이제는 거의 공식 명칭으로 완전히 굳어졌다.
굿자만사라는 명칭이 자리를 잡으면서 굿자만사 모임도 거의 매월 갖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굿자만사는 참으로 특이한 공동체다. 온라인에서 기틀이 마련되어 오프라인에서 실체를 구가하는 모임체인데, 물론 조직적인 단체는 아니다. 아무런 규약도 없고, 골격 같은 것도 없다. 그저 총무 역할을 자임한 사람이 모임 날짜를 잡아 공지를 하면, 각자 형편에 따라 자유롭게 참석을 하는 형식으로 모임이 운영된다.
그렇게 아무런 규약도 조직도 없는 모임체인데도 굿자만사는 규모도 있는 편이고 늘 생동감이 넘친다. 지난 4월 30일에는 경기도 안성시의 '미리내 성지' 바로 옆에 있는 '유무상통(有無相通)마을'에서 모임을 가졌다. 미리내 성지 순례와 무료 양로원 '성 베드로 집' 방문을 겸한 모임이었다. 버스 대절비 등 비용을 많이 들이고 하루종일을 소비하는 모임인데도 20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했다.
또 지난 4일 저녁에는 서울의 모처에서 굿자만사에 참여하시는 한 분 어른님의 회갑연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무려 37명이 참석하여 큰 성황을 이루었다. 굿 뉴스 자유게시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면서 특유의 인품과 '균형 감각'을 보여 주시는 분에 대한 존경과 애정의 밀도를 능히 가늠케 하는 풍경이었다.
나는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굿자만사라는 이름의 신앙 공동체에 참여하는 형제자매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 신앙을 갖고 그 신앙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하느님 신앙을 바탕에 깔고 하느님의 눈과 마음으로 사물을 보고 생각하고 판단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그것을 느끼고 또 확신한다.
가톨릭 굿 뉴스 자유게시판은 일단 하느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공간이지만, 가치관의 충돌이 가장 첨예하고 치열한 곳이기도 하다. 하느님 신앙은 똑같되, 세상을 보는 가치관은 매우 다르고도 정반대적인 사람들이 모여서 극렬한 논쟁과 갈등을 빚는 곳이기도 하다.
논쟁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는 노골적으로 "민주화가 밥먹여 주느냐"는 어른도 있고, '반공'을 그야말로 신주단지 모시듯 하며 사는 이도 있다. 그래서 친일파 문제, 과거사 정리 문제, 박정희에 대한 평가 문제, 평화 통일과 대북지원 문제, 미국과 북핵 문제, 환경 및 국책사업 문제 등등 우리 사회의 심연에 내재되어 있는 민감한 사안들이 다시금 돌출될 때마다, 또 어쩌면 항시적으로 논쟁이 재연, 가열되곤 한다.
나도 그 논쟁의 와중에서 어쩔 수 없이 자맥질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능한 한 평상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떤 시각과 태도가 좀더 하느님 신앙과 일치할 수 있는가를 놓고 고뇌를 하기도 한다. 적어도 나 자신이 '고뇌'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늘 확인하고자 한다.
내 삶의 목표는 사후의 '하느님 나라'이다. 사후의 하느님 나라를 목표로 하기에 오늘의 내 전체적인 삶이, 그리고 그 전체 속의 소소한 하나하나가 모두 최소한의 '점수'로라도 연결되는 것이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그런 소망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굿자만사 모임에는 우리 사회의 바른 변화와 상식의 통용을 소망하는 사람들, 어떤 것이 과연 진실과 정의에 부합하며 진정으로 옳은 가치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사람들, 좌파와 우파 또는 진보와 보수라는 획일적인 이분법의 눈으로 분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보수이면서도 진보이고 진보이면서도 보수인 융통성과 합리적인 사고 능력을 지닌 이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확신한다.
굿자만사는 모임 때마다 모아진 회비로 미리 일정 금액을 떼어 불우한 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시는 분께 전달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다. 지난 4월 30일 유무상통 마을 모임 때는 유무상통 마을에서 점심을 제공 받은 덕에 무료 양로원인 '성 베드로의 집'에 40만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 하느님의 눈과 마음으로 이웃과 사물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적어도 '고뇌'의 실체를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질감적으로 느끼고 확신하기에 나는 굿자만사 형제자매들과의 동화와 일치를 추구하며, 진심으로 그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임을 확인하며….
2006-05-08 13:58
ⓒ 2006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