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엔 주인의 정성이 잘 엿보인 화분들이 자태를 표현하며 갖가지의 식물들이 싱그럽게 코끝을 간지르며 마음속에 푸른 평화를 안겨주고 있었다.
맘 좋은 온실 주인은 내게 선물을 할 양으로 이 화분 저 화분등을 하나씩 내려 놓는데, 나는 제법 화사한 모양으로 뻗어 있는 소철 앞에 멈추어 섰다.
집이 넓어야 놓을 수 있을텐데... 하는 주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난 그 소철을 기꺼이 받아 왔다.
식물을 가꾸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 있을까 싶을 만큼 그 주인장은 정말 좋은 분이란 걸 직감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화려했던 옛날이 가고 우여곡절 동안이신 그 모습속에서 세월이 가져다 준 고통의 흔적은 마치 승화된 교향곡만큼 아름답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시 난 작은 바위틈에 있는 동양난의 아름다움에 그것 또한 욕심을 내었고, 기꺼이 그것마저 주신 주인장에게 감사함은 물론 마음속에 뭉클한 무엇인가 꿈틀대는 감동을 받고 말았었다.
나는 작은 성의 표시를 하였지만, 웬지 그분의 정성이 가져다 준 생명력 있는 화분의 모습은 내가 건넨 성의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게 했던 것 같다.
그런 소철이 그렇게 아름답게 우리 집 베란다에 놓인 어느날 서서히 소철의 싹이 누렇게 바래고 잘라주면 새로운 것이 나고 하는 것이었다.
누렇게 바랜 줄기가 4개 새로 나온 푸른 줄기가 2개, 난 그것을 바라보며 우리네 인생속에 나고 죽는 사람들의 흔적을 연상하며 바라보았다.
마치 4명의 우리 아이들과 2분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는 듯한 느낌속에 잘려 나간 조상들의 삶의 흔적이 소철의 동그란 뿌리 속 어디쯤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고 싶어졌었다.
그러다 결국 새로운 것은 나오지 않는데 있는 잎들은 모두 바래고 말았다.
난 바래서 더 이상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힘든 그 줄기를 잘라내며 마치 승하하시는 부모님을 대하듯 그리 애석한 마음을 갖고는 하였었다.
모두 잘라주고 단지 두 줄기를 잘라내지 않고 지낸지 일이년이 지난듯 싶다.
소철에게선 다시는 새로운 생명을 볼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겨나곤 하였다.
결국 남편의 입에서도 소철을 밖으로 내놓는 것이 어때?라는 말이 나왔다.
그래도 난 꼬박 꼬박 물을 주고 있었다.
소철을 주셨던 그 온실의 주인장에게는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많이 아프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쉽게 병문안을 가지 못하고 있는 하루 이틀 사흘 몇달...
하늘을 뒤덮은 황사와 함께 봄이 찾아 왔다.
우린 흙을 실어 와서 집안의 화분들의 분갈이를 하여 주었다.
그러나 소철을 분갈이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분갈이 한 화분들에 물을 주면서 소철에게도 각별한 마음가짐으로 물을 주었다.
그리고 이삼일 소철의 한 가운데서 움이 돋아 나오고 있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남편도 놀랐다.
"다 죽은 줄 알았는데 나오네. 햐~" 남편도 좋아했다.
처음 내가 소철을 받아 왔을 때 다섯줄기였는데, 매일 자고 나면 다섯줄기가 훌쩍 자란 소철을 볼 수 있었다.
남편은 소철이 자라는 걸 보며 "예쁘다"고 칭찬을 한다.
소철이 부활한 것이다.
여린 연두색 아름다운 다섯 줄기가 마치 오남매처럼 아름답다.
이 소철처럼 온실의 주인장께서도 이렇게 병이 말끔히 나아 건강을 회복 하셨음 하는 바램 가득하다. 어쩌면 우리네 굳어버린 마음속에도 이런 사랑이란 물을 끊임없이 주면 소철처럼 부활한 새로운 마음을 다시 만날 수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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