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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孤山)과 다산(茶山) 1, 2, 3, 4, 5, 6 합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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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봉균 [baeyoakim] 쪽지 캡슐

2006-05-29 ㅣ No.99987

 

 

 

 고산(孤山)과 다산(茶山)

 

 

 

귀양은 옛날에 죄(罪) 지은 벼슬아치들을 먼 변방(邊方)이나 외딴 섬에 보내어 살게 하던 형벌(刑罰)을

 

말합니다. 원래의 말은 귀향(歸鄕)으로, 죄를 지어 관직(官職)에 나갈 수 없는 자들을 귀향하게 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조선(朝鮮) 초기(初期)만 해도 중죄(重罪)를 짓지 않은 이상 웬간하면 자신(自身)의

 

고향(故鄕)으로 내려 보내 비록 죄인(罪人)이지만 고향에는 친척(親戚)들과 재산(財産)이 있기에 그렇게

 

힘든 삶을 살지 않아도 됐습니다. 이를 고향으로 내쫒는다는 뜻의 방축향리(放逐鄕里)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파(黨派)싸움이 심해지고 여러 번의 사화(士禍)에 의한 중죄인(重罪人)이 많아지자 고향으로

 

내려 보내기보다는 멀고먼 변방이나 제주도(濟州島), 흑산도(黑山島) 등의 외딴 섬으로 귀양 보냈습니다.

 

명칭도 귀양보다는 유배(流配)라는 말을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큰 일없이 유배(流配)로만 끝나면

 

다행(多幸)이었습니다. 유배지(流配地)로 향(向)하는 도중(途中)이나 유배지에 도착(到着)하여 기약(期約)

 

없는 유배생활(流配生活)을 하고 있는 동안이라도 사약(賜藥)이 내려지는 날이면 이 세상(世上)을 하직(下直)

 

해야만 했습니다. 유배생활을 하면서 처음에는 안절부절 못하고 화를 삭이던 선비들도 얼마 후에는 안정

 

(安靜)을 되찾아 동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자기(自己)의 억울한 심경(心境)을 토로(吐露)하거나

 

님(임금)을 향(向)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을 노래하는 시가(詩歌)를 지으며 조용히 살게 됩니다.

 

당쟁(黨爭)의 산물(産物)인 사대부(士大夫)들의 쓰라린 유배생활 감정(感情)을 표출(表出)한 가사(歌辭)를

 

유배가사(流配歌辭)라 하고 그 외의 모든 글들을 합(合)하여 유배문학(流配文學)이라고 합니다.

 

유배가사의 효시(嚆矢)는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連累)된 조위(曺偉)가 유배지(流配地)인 순천(順天)에서

 

지은 만분가(萬憤歌)입니다. 작품(作品)의 내용(內容)을 보면 작자(作者)가 사화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귀양살이를 하게된 비분강개(悲憤慷慨)한 심정(心情)을 임금인 성종(成宗)에게 토로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후대(後代)에 지어지는 유배가사의 일종(一種)인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등 송강가사(松江歌辭)에도 크게 영향(影響)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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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海南)이 고향(故鄕)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는 1612년(광해군 4년)에

 

진사(進士)가 되고, 1616년 성균관(成均館) 유생(儒生)으로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 등의 횡포(橫暴)를

 

상소(上訴)했다가 함경도 경원(慶源) 등지에 유배(流配) 되었습니다. 1623년에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풀려나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었으나 곧 사직(辭職)하고 낙향(落鄕)했습니다. 1628년 별시문과

 

(別試文科) 초시(初試)에 장원(壯元) 봉림대군(鳳林大君:孝宗)의 왕자사부(王子師傅)가 되어 승승장구

 

(乘勝長驅)하다가 1633년 모함(謀陷)을 받고 파직(罷職)되어 다시 낙향 고향에 은거(隱居)했습니다.

 

1636년(인조 14년) 고산 윤선도는 해남 고향집에서 병자호란(丙子胡亂) 발발(勃發)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남인(南人)집안 해남 윤씨의 종손(宗孫)인 그는 왕(王)이 강화도(江華島)로 피난(避難)을 갔다는 소식에

 

가만있을 수가 없어 집안사람과 하인(下人)들까지 수백 명을 배에 태우고 왕을 돕고자 강화도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강화도마저 함락(陷落)당하고 왕이 삼전도(송파)에서 굴욕적(屈辱的)인 항복(降服)을 했다는

 

기막힌 소식을 듣습니다. 그는 비통(悲痛)한 심정(心情)을 참지 못하고 세상(世上)을 피해 살기위해 제주도

 

(濟州島)를 향해 뱃머리를 돌려 가던 중 풍랑(風浪)을 만나 보길도(甫吉島)에 잠시(暫時) 배를 대고

 

피하였는데, 맑디맑은 물 위로 그림 같은 섬들이 이어지는 다도해(多島海)의 끝자락이며 유난히도 수풀이

 

우거진 보길도의 자연(自然)에 취해 눌러 살기로 결심합니다. 주역(周易)과 풍수지리(風水地理)에도 밝았던

 

윤선도는 섬 전체(全體)를 구석구석 살폈습니다. 그는 섬 전체 하늘과 바다, 산(山)과 평지(平地)에 걸쳐

 

거대(巨大)한 정원(庭 園)을 조경(造景)하고 섬의 산세(山勢)가 피어나는 연꽃을 닮았다 하여 부용동(芙蓉洞)

 

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산 아래에는 거처(居處)인 낙서재(樂書齋)를지었습니다. 고산(孤山)은 낙서재에서

 

아침이면 닭 울음소리에 일어나 몸을 단정히 한 다음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런 후 자연과 벗하며 낙싯대를

 

드리우기도 하고, 시를 짓기도 하고, 배를 띄우고 풍류(風流)를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고산 윤선도는 이 후에도

 

남인세력(南人勢力)이 득세(得勢)하면서 조정(朝廷)에 나간 적도 있고 귀양을 산적도 있었지만 여든다섯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 그 마음을 항상 이곳 부용동에 의탁(依託)하였습니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하는 노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등 한글의 서정적(抒情的) 아름다움을 개척(開拓)한 주옥(珠玉)같은 '오우가(五友歌)'

 

등 그의 수많은 우리말 시가(詩歌)들이 모두 이곳에서 탄생(誕生)했습니다. 윤선도는 부용동 전체를 조망(眺望)

 

할 수 있는 낙서재에 음식물과 생필품(生必品)을 나르기 위해서 산 아래와 도르래 장치(裝置)를 이용하여 일종

 

(一種)의 케이블카를 설치(設置)했습니다. 370년 전에 이런 과학적(科學的)인 생각을 하고, 생활(生活) 속에

 

실용화(實用化) 시킨 고산(孤山)의 지혜(智慧)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고산 윤선도는 차 마시기를 즐겼습니다.

 

이곳에는 ‘차바위’라 이름 지어진 너른 바위가 있는데, 여기에서 그는 차를 달이거나, 홈을 파 찻상을 고정

 

(固定)했다거나, 고요히 앉아 한 잔 따뜻한 차를 마시며 풍류(風流)와 삶을 명상(冥想) 했다는 이야기가

 

어렴풋이 전해져 옵니다.

 

 

 

         (네이버 백과와 심세중 님의 ‘윤선도, 보길도를 만나다’를 참조 발췌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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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경기도 초부면 마현리(지금의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에서 나주(羅州)

 

정씨(丁氏) 정재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남인(南人)의 양반으로 진주목사(晋州牧使) 등 지방

 

수령(地方首領)을 역임(歷任)했습니다. 해남(海南) 윤씨(尹氏)인 어머니는 고산(孤山) 윤선도의 후손(後孫)

 

이며 유명한 화가(畵家) 윤두서가 친 할아버지입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그의 학문(學文)은

 

일취월장(日就月將)하여 열세 살 때 이미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비롯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서적(書籍)을

 

섭렵(涉獵)하였습니다. 얼마 후 아버지가 호조좌랑(戶曹佐郞)으로 다시 기용(起用)되자 아버지를 따라 한양

 

(漢陽)으로 올라갔는데 이때부터 남인의 명사(名士)들과 가까이 지내게 됩니다. 이가환(李家煥), 이승훈

 

(李昇熏) 등을 통하여 이익(李瀷)의 유고(遺稿)를 얻어 읽고 실학(實學)에 심취(心醉)하게 됩니다.

 

한편 다산은 이벽과 친하게 지나게 그로부터 서양문물(西洋文物)을 접하여 새로운 과학지식(科學知識)을

 

받아들이고 천주교(天主敎)를 믿게 되었습니다. 스물 한살에 회시(會試)에 합격(合格)하여 진사로 성균관

 

(成均館)의 학생(學生)이 된 그는 그 이듬해 <중용(中庸)>에 대한 그의 논문(論文)이 정조(正祖)에 눈에

 

들어 칭찬을 들었고 임금에게 <중용>을 강의(講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스물여덟이 되는 해 9월에는

 

정 5품인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에 임명(任命)되어 임금의 제반정책(諸般政策)을 상주(上奏)하는 소임

 

(所任)을 맡았습니다. 정조는 젊고 재기발랄(才氣潑剌)한 다산(茶山)을 측근(側近)에 두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자문(諮問)을 구했습니다. 그 무렵 정조는 원통하게 죽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를 찾아

 

일 년에 몇 번씩 수원(水原)의 능행길에 올랐었습니다. 한강을 건너는 ‘배다리’의 설치(設置)를 다산에게

 

맡기자 그는 이 일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이어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수원성(水原城)을 쌓을 적에도

 

이 일 또한 다산에게 맡겼습니다. 다산은 일꾼들이 무거운 돌을 힘겹게 지고 올리는 것을 보고 기구(機具)의

 

발명(發明)에 골몰했습니다. 또 기하학적(幾何學的) 방법(方法)으로 성(城)의 거리, 높이 따위를 측량(測量)

 

하여 가장 튼튼하고 단단한 성을 쌓기에 노력(努力)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마침내 도르래(滑車)를 이용하여

 

거중기(擧重機)와 고륜(바퀴달린 달구지) 등을 발명하여 성(城)의 축조(築造)에 이용했습니다.

 

정조는 완성(完成)되 성(城)을 둘러보고 감탄(感歎)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중기를 써서 돈 사만 냥을

 

절약(節約)했구나 !“ 이때부터 다산에 대한 정조의 신임(信任)은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조는 영의정(領議政)인 채재공(蔡濟恭)의 뒤를 이을 인물(人物)로 장년층(長年層)에서는 이가환,

 

청년층(靑年層)에서는 정약용을 의중(意中)에 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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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茶山)이 서른두 살 되던 해인 1794년에 연천 현감(縣監)인 서용보가 농민(農民)들을 수탈(收奪)하는 등

 

횡포(橫暴)가 심하다는 소문(所聞)이 조정(朝廷)에 까지 들려 왔습니다. 정조는 다산을 경기도(京畿道)

 

암행어사(暗行御史)에 임명(任命)하여 비리(非理)를 조사(調査), 척결(剔抉)하도록 하였습니다.

 

순찰(巡察)을 마치고 돌아온 다산은 서용보의 협잡 사실(挾雜 事實)을 있는 그대로 보고(報告)하였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봉고파직(封庫罷職)되고 벌을 받은 서용보는 두고두고 다산을 미워하고, 사사건건(事事件件)

 

트집을 잡게 됩니다. 1797년 벼슬이 승지(承旨)에 까지 오른 다산은 모함(謀陷)을 받자 자명소(自明疏)를

 

올려 사의(辭意)를 표하고 물러났습니다. 곧 지방관(地方官)인 황해도(黃海道) 곡산부사(谷山府使)로 임명되어

 

흉흉(兇兇)한 민심(民心)을 가라앉히고 선정(善政을 베풀었습니다. 다산은 곡산에서 지방행정(地方行政)을

 

쇄신(刷新)하고 창궐(猖獗)하던 불치(不治)의 전염병(傳染病) 두창(痘瘡, 마마)를 예방치료(豫防治療)

 

하였습니다. 다산은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백성을 위한 농업기술(農業技術)은 물론 그 당시로서는 첨단과학

 

의술(尖端科學 醫術)인 종두법(種痘法)을 연구(硏究)하고 시술 접종(施術 接種)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곡산부사 시절(時節)이 선정(善政)이 훗날 다산을 사형(死刑)에서 유배(流配)로 감형(減刑)을 받게

 

하는 요인(要因)이 되기도 합니다. 1799년 정조는 다산에게 병조참의(兵曹參議)의 벼슬을 주어 측근(側近)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고(自古)로 배가 고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배가 아픈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라 했듯이, 다산에 대한 반대파(反對派)들의 모략(謀略)은 끈히지 않았습니다. 이때 조화진이라는

 

자가 “이가환, 정약용 등이 서학(西學)을 받들면서 역적(逆賊)을 모의(謀議)한다.“는 상소(上訴)를 올렸습니다.

 

다산은 더 이상 반대파의 모략을 견디기 어려워 처자(妻子)를 거느리고 마재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당호(堂號)를 여유당(餘裕堂)이라고 지었는데 이것은 조심조심 세상을 살아가자는 뜻입니다.

 

1801년(순조 1년) 그를 아끼던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공서파는 신유박해(辛酉迫害)를 일으켜 서학을

 

받아들였다는 구실로 남인들을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다산도 이가환과 함께 투옥되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의 조정대신(朝廷大臣)들은 다산만이라도 석방(釋放)해야 한다고 주자하였으나 서용보가 끝내 반대

 

(反對)하여 결국 다산은 경상도 장기로 귀양을 갑니다. 셋째 형 약종과 이가환은 옥중에서 맞아 죽었고,

 

둘째 형 약전은 전라도 신지도로 유형(流刑)되었습니다. 그 후 황사영 백서(帛書)가 발각(發覺)되자

 

(황사영은 다산의 조카사위 임) 반대파는 이 기회(機會)에 다산을 잡아 죽이고자 합니다.

 

그 때 마침 황해도에서 지방관의 임기(任期)를 마치고 돌아온 정일환이 다산이 과거(過去) 지방관으로

 

있을 때 쌓은 공적(功績)을 들어 변호(辯護)함으로써 죽음만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다산은 강진으로,

 

둘째 형 약전은 흑산도로 유배지(流配地)를 옮기게 되는데 결국 형 정약전은 유배 중에 사망(死亡)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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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小山蔽大山(소산폐대산) :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려 보이지 않는데,

 


   遠近地不同(원근지부동) : 멀고 가까운 땅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일곱 살 때 지었다는 시(詩)입니다. 가까이 있는 작은 산(山) 때문에 멀리 있는

 

큰 산(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그가 작은 산(山) 뒤에 있는 큰 산(山)을 보고 있다는 뜻이며,

 

그것은 내면화(內面化)된 정신의 눈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可能)한 일입니다. 이 두 줄의 짧은 시(詩)에서

 

어린 다산(茶山)의 번득이는 직관력(直觀力)과 천재성(天才性)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산(茶山)이

 

유배(流配)된 전라남도 강진에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후손(後孫)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다산이 유배 중 거처(居處)인 다산초당(茶山草堂)은 원래(原來)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귤동마을에 살던

 

해남(海南) 윤(尹)씨 집안의 귤림처사(橘林處士) 윤단이 지은 산정(山亭)이었습니다. 다산의 어머니는

 

조선시대 (朝鮮時代) 3재(三齎, 공재, 겸재, 현재)의 한사람인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의 손녀(孫女)이고,

 

윤두서는 다시 고산(孤山)의 증손(曾孫)이니, 귤동마을의 해남 윤씨는 다산(茶山)에게는 외가(外家)쪽으로

 

친적(親戚)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인연(因緣)으로 윤단은 다산을 만덕산(萬德山) 기슭의 초당(草堂)에 모셔다

 

자신(自身)의 장남(長男) 윤문거(尹文擧)를 비롯한 삼형제(三兄弟)에게 학문을 가르치도록 하였습니다.

 

그 소문(所聞)이 널리 퍼져 나중에는 18명이나 되는 제자(弟子)들이 다산초당으로 모여들어 배움을 청하였습니

 

다. 다산은 제자들을 가르치며 또한 자신의 학문을 닦고 저술활동(著述活動)을 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차를 즐겨 마시며 다산초당 옆에는 연못을 만들고, 나무 홈을 파서 계곡(溪谷) 물을 끌어들여 그 연못으로

 

폭포수(瀑布水)가 떨어지게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만덕산 앞으로 흐르는 탐진강에서 돌을 주워서 연못 가운데

 

탑(塔)처럼 쌓았으며, 못 주변(周邊)에는 백일홍(百日紅)과 대나무를 심어 운치(韻致)를 더하게 하였습니다.

 

그 탑(塔)을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다산은 18년 동안 다산초당에서 유배생활

 

(流配生活)을 하다가 1818년 유배가 풀려 고향(故鄕)에 돌아와 저술활동(著述活動)을 하다가 1836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강진 유배생활 18년과 고향에서의 18년간 저술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산은 수많은

 

저서(著書)를 남겼습니다. 대표저서(代表著書)로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

 

경세유표(經世遺表) 등 500 여권이 있습니다. 

 

 

 

      (경향신문 2004년 9월 30일자 소설가 엄광용씨의 ‘유배지 기행’을 참조, 발췌하여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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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 째,  유배생활(流配生活)을 하면서 처음에는 안절부절 못하고 화를 삭이던 선비들도 얼마 후에는

 

          안정(安靜)을 되찾아 동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자기(自己)의 억울한 심경(心境)을

 

          토로(吐露)하거나 님(임금)을 향(向)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을 노래하는 시가(詩歌)를 지으며

 

          조용히 살게 됩니다. 당쟁(黨爭)의 산물(産物)인 사대부(士大夫)들의 쓰라린 유배생활 감정(感情)을

 

          표출(表出)한 가사(歌辭)를 유배가사(流配歌辭)라 하고 그 외의 모든 글들을 합(合)하여 유배문학

 

          (流配文學)이라고 합니다. 유배가사의 효시(嚆矢)는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連累)된 조위(曺偉)가

 

          유배지(流配地)인 순천(順天)에서 지은 만분가(萬憤歌)입니다. 작품(作品)의 내용(內容)을 보면 작자

 

          (作者)가 사화(士禍)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귀양살이를 하게 된 비분강개(悲憤慷慨)한 심정(心情)을

 

          임금인 성종(成宗)에게 토로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후대(後代)에 지어지는 유배가사의

 

          일종(一種)인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등 송강가사

 

          (松江歌辭)에도 크게 영향(影響)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유배문학(流配文學)의 효시(嚆矢)인

 

          조위(曺偉)의 만분가(萬憤歌)와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등

 

          송강가사(松江歌辭) 등이 자기(自己)의 억울한 심경(心境)을 토로(吐露)하거나 어찌보면 간지러울

 

          정도로 님(임금)을 향(向)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을 노래하는 시가(詩歌)가 주류(主流)를 이루었던

 

          반면(反面), 고산(孤山)의 대표작(代表作) ‘오우가(五友歌)‘와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등은 자연

 

          (自然)을 벗 삼아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한글의 서정적(抒情的) 아름다움을 개척(開拓)한 순수문학

 

          (純粹文學)으로서 국문학사(國文學史)에 빛나는 주옥(珠玉)같은 걸작품(傑作品)이며, 다산(茶山)의

 

          길고긴 18년간의 유배생활(流配生活) 동안 남긴 대표작(代表作) 일표이서(一表二書)인 목민심서

 

          (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 경세유표(經世遺表) 등 500 여권은 하나같이 경전(經典)의 새로운

 

          해석(解釋)과 국가이익(國家利益)과 발전(發展)을 위하고, 실사구시(實事求是)로써 백성들의 삶의

 

          질(質)을 높이려는 불후(不朽)의 명저(名著)들입니다.

 

 

 

둘 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혈연적(血緣的)으로 남이 아니라는

 

          사실(事實)입니다. 다산의 어머니는 해남(海南) 윤(尹)였습니다. 해남 윤씨는 조선(朝鮮)에서 알아주는

 

          명문(名門)의 집안이었습니다. 윤씨의 인물(人物) 중 가장 유명(有名)한 분이 고산(孤山) 윤선도

 

          (尹善道)였고, 그 다음으로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재는 조선의 삼재

 

          (三齎, 공재 윤두서,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화가(畵家)로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고산의 증손(曾孫)이

 

          공재요, 공재의 손녀(孫女)가 다산의 어머니 윤씨였습니다. 그렇다면 고산은 다산의 6대조 외할아버지

 

          가 되는 것입니다. 공재는 다산의 외증조부(外曾祖父)입니다. 그리 보면 다산의 문재(文才)와 그림솜씨

 

          가 외가 쪽 할아버지들인 고산과 공재의 유전적(遺傳的) 재질(才質)도 절반정도 계승(繼承)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산의 친가(親家)는 어떤 가문일까요. 8대 옥당(玉堂, 홍문관) 집안이자 9대

 

          옥당 집안이라고 자랑하던 집안입니다. 다산의 12대 할아버지인 정자급(丁子伋)이라는 분이 조선왕조

 

          (朝鮮王朝) 초기(初期)에 벼슬하여 옥당에 들어가, 이후(以後) 5대조 정시윤(丁時潤)에 이르기까지

 

          내리 8대에 이르도록 옥당의 벼슬을 지낸 명문(名門)이라는 뜻입니다. 다산의 고조부(高祖父)의

 

          아우가 옥당벼슬을 지내서 9대 옥당집안이라고도 합니다.  다산 자신(自身)도 홍문관 교리를 지내

 

          옥당벼슬을 하였으니 대단한 가문(家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선조(先祖)

 

          중에 한 사람만 옥당에 들어가도  ‘옥당집’이라는 아름다운 호칭(呼稱)을 얻기 마련인데 연달아

 

           8~9대가 옥당의 벼슬을 지냈다면 대단한 집안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셋 째,  유배문학(流配文學)의 효시(嚆矢)인 조위(曺偉)의 만분가(萬憤歌)와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사미인곡

 

          (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등 송강가사(松江歌辭) 등이 자기(自己)의 억울한 심경(心境)을 토로

 

          (吐露)하거나 어찌보면 간지러울 정도로 님(임금)을 향(向)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을 노래하는 시가

 

          (詩歌)가 주류(主流)를 이루었던 반면(反面), 고산(孤山)의 대표작(代表作) ‘오우가(五友歌)‘와 ’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등은 자연(自然)을 벗 삼아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한글의 서정적(抒情的)

 

          아름다움을 개척(開拓)한 순수문학(純粹文學)으로서 국문학사(國文學史)에 빛나는 주옥(珠玉)같은

 

          걸작품(傑作品)이며, 다산(茶山)의 길고긴 18년간의 유배생활(流配生活) 동안 남긴 대표작(代表作)

 

          일표이서(一表二書)인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 경세유표(經世遺表) 등 500 여권은

 

          하나같이 경전(經典)의 새로운 해석(解釋)과 국가이익(國家利益)과 발전(發展)을 위하고, 실사구시

 

          (實事求是)로써 백성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불후(不朽)의 명저(名著)들로서 조위(曺偉)와 정철(鄭澈)

 

          의 작품(作品)들과는 차원(次元)을 달리하고 있고, 고산 과 다산의 집안이 조선(朝鮮)의 내노라하는

 

          명문가(名文家)로서 혈연적(血緣的)으로도 연결(連結)되어 있지만, 정말로 하늘에 보화(寶貨)를 쌓고

 

          천상영복(天上榮福)을 누리는 두 가문(家門)의 후손(後孫)들은 따로 계셨으니, 다산 정약용의 친가

 

          (親家)와 외가(外家)의 가계(家系)를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정재원은  첫째 부인 의령 남씨와의 사이에 첫째 아들 정약현을 낳았고, 정약현의 처남(妻男)이

 

          초기(初期) 천주교(天主敎) 전파(傳播)에 큰 영향(影響)을 끼친 이벽이고, 정학현의 딸이 황사영 백서

 

          를 쓰고 순교한 황사영에게 시집을 갔으니 황사영은 정약현의 사위가 되었고, 정재원은 둘째 부인

 

          해남 윤씨 사이에 세 아들과 딸을 두었으니 딸은 조선 최초의 영세자(領洗者)인 이승훈에게 시집을

 

          갔으니 정재원은 이승훈의 장인이고, 둘째 아들 정약전은 다산과 같은 시기(時期)에 흑산도로 유배를

 

          가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저술(著述)하였으며, 셋째 아들 정학종은 신유박해(辛酉迫害)때 맏 아들

 

          정철상과 함께 순교(殉敎)하였으며, 정학종의 둘째 아들 정하상과 부인 유 세실리아, 딸 정정혜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순교하였으며, 정약용은 넷째 아들로 강진으로 유배를 갔고, 고산 윤선도의

 

          6대손(六代孫)이며 다산 정약용의 외종 6촌형인 윤지충 부모(父母)의 위패(位牌)를 불태웠다하여

 

          그의 외사촌인 권상연 함께 조선(朝鮮) 최초(最初)의 순교자(殉敎者)가 되었습니다.

 

 

 

 

 

 

 

 

 

                                      고산(孤山)과 다산(茶山) 시리즈 1, 2, 3, 4, 5, 6  끝

최미정(NATALIA99) (2005/02/02) : 야~ 1등으로 출석 신고합니다. 신난다. *^^*
최미정(NATALIA99) (2005/02/02) : 교수님의 좋은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추위에 건강 조심하세요~!
장정원(dizimon) (2005/02/02) : 나탈리아 언니한테 1등 놓쳐부렸네요... 그래두 언니라서 기분 좋습니다^^
장정원(dizimon) (2005/02/02) : 배봉균 교수님은요... 님(여기서 님은 하느님과 사모님)향한 일편단심은 정철을 닮으시고, 닭울음 소리에 일어나 몸을 단정히 한 후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서정적이고 주옥같은 글을
장정원(dizimon) (2005/02/02) : 발표하시는 건 윤선도를 닮으시고, 천주님을 믿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자신의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제자들로 하여금 배움을 청하게끔 만드시는 건 정약용을 쏙 빼닮으신 교수님!
장정원(dizimon) (2005/02/02) : 저 세뱃돈 때문에 아부하는 거 절대 아닙니다^^ 근데 참고는 하세요!!! 고산과 다산 시리즈 잘 읽었습니다!!!
황미숙(shwang) (2005/02/02) : 요아킴 선생님.찬수엄마.정원님 안뇽♥
신성자(socho) (2005/02/02) :
이강길(u90120) (2005/02/02) : 오늘 처음으로 고산과 다산 다 읽었습니다...천천히 가야 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글입니다. 화 내지 말아야 겠습니다
배봉균(baeyoakim) (2005/02/02) : 와~~! 나탈리아 학생 = 찬수 프란치스꼬 엄마가 1등으루 출석했넹...신나겠따~ㅎㅎ...피터팬, 나탈리아, 찬수, 글구 찬수 동생...온 가족이 추위에 감기 조심하세용~~^^
배봉균(baeyoakim) (2005/02/02) : 엘리사벳 조교는 2등으루 출석...나탈리아 언니한티 1등 뺐겼넹...근디 엘리사벳 조교는 아부 한번 수준높게 잘 한다~ 내 맘에 쏙드네...이뽀라...ㅋㅋ
배봉균(baeyoakim) (2005/02/02) : 조선시대 화가루 삼재(공재, 겸재, 현재)가 있었따자나...근디 산자 돌림은 고산과 다산 빡엔 읎는 고 같아서...내가 호 하나 지었쥐...저산(低山)이라구...험 험
배봉균(baeyoakim) (2005/02/02) : 얕으막한 산이란 뜻이쥐...아무나 오를 수 있는...우리 말루'저기 저산' 이란 뜻두 돼쥐...그러니께 조선의 삼산(三山)이 이루어 진고야...요.
배봉균(baeyoakim) (2005/02/02) : 고산(孤山) 윤선도, 다산(茶山) 정약용, 저산(低山) 배봉균...엘리사벳 조교는 걱정말구 기두루구 있어~세뱃돈~참고하구 있을께~~근디 이미쥔 은제 올릴 고야?
배봉균(baeyoakim) (2005/02/02) : 소피아 학생(?)~~ 고마워...요~ 예쁜 병아리 두마리 알에서 깨는 마술 이미쥐 올려조서~~
배봉균(baeyoakim) (2005/02/02) : 클라라 학생은 모래시계 이미쥐 올렸넹...근디 모래가 안 내려 오는구먼...내려오문 더 조은디...진짜 시계루두 사용하구...^^
배봉균(baeyoakim) (2005/02/02) : 파비아노 조교는 고산과 다산 시리즈 다 읽구...화 내쥐 말구 천천히 가야겠따는 교훈을 얻었구만...기래두 이미쥔 잽싸게 올리구 바야 조교라구 할 수 있쥐...앙그래?
배봉균(baeyoakim) (2005/02/02) : 점심 식사하구 커피 한 잔 마쉬구 좀 쉬었따가...난 담배는 안 피워...본격적으루 꼬리글 강의 해야쥐...오늘은 꼬리글 강의 300개 돌파할까 말까? (^ㅎ^)
남희경(nhk1961) (2005/02/02) : 교수님 출석합니다.모임 공지해야 하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소홀했습니다.어여쁜 조교가 공지 예정입니다.종합편 보고 갑니다.교수님 화이팅
박난서(ab4fami) (2005/02/02) : 선생님! 늘 고맙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 졌습니다. 건강하세요.*^^*
이진숙(lcs) (2005/02/02) : 교수님 저두요~ 목민심서는 읽었으니 흠흠신서를 구해서 읽어 봐야지 ...^^있으신 분 빌려주세요~~~요지음 책값이 만만치 않아서...^^
배동기(don3331) (2005/02/02) : 게시판의 내용과 질서를 재밋고 아름답게 선도하는 교수님,,,,존경과 찬사를드림니다. 빠짐없이 보고있습니다.
정재훈(jhjung1868) (2005/02/02) : 요아킴 교수님, 추운데 건강 유의하시고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그리고 뭔가 '아부(?)'를 하려고 했는데 엘리사벳이 워낙 걸게 해놔서..... 포기합니다 ^^
배봉균(baeyoakim) (2005/02/02) : 레오 학생...요즘 마니 바쁜가보군...바뻐야 조은고 아냐? 한창 사업할 때이니까...내일 모래 굴 요리 맛 있겠따...벌써부터 입맛 땡기네...ㅎㅎ...
배봉균(baeyoakim) (2005/02/02) : 굿.자.만.사는 굿뉴스 자유게시판에서 만난 사람들을 네글자루 줄여서 만든 모임이니까...남녀노소 모든 분들이 오시문 조을틴데...실물사진두 함 볼겸...궁금들 할틴데...ㅋㅋ
배봉균(baeyoakim) (2005/02/02) : 글라라 학생은 날씨두 추운디...멀리 청주에서 빠짐읎이 출석하네...요. 아이들두 잘 있쥐...요.
배봉균(baeyoakim) (2005/02/02) : 미카엘라 아우님 학생은 인사 한번 편하게 한다~ 글라라 학생이 앞에서 다 해 노니깐 "저두요" 한마디루 끝내넹...ㅎㅎ...야~ 목민심서를 벌써 독파했따구? 대단해요~
배봉균(baeyoakim) (2005/02/02) : 흠흠신서는 살인사건을 수사하구 조사하는 전문 서적인디...으~무셔~그골 읽겠따구...나두 아직 못 읽어밨는디...경찰청 도서실에나 있을라나...아님 검찰청이든쥐
배봉균(baeyoakim) (2005/02/02) : 배동기 야고보 학생은 포이동 신자 학생야...레지오 단원이기두 하쥐...나하구 가끔 식사와 쐬주 한잔하고든...부럽쥐...ㅎㅎ...
배봉균(baeyoakim) (2005/02/02) : 다니엘 학생...아부(?)할 말 아직두 마니 남았자나...나이보다 젊어보이구 왜 그러케 잘생기셨냐? 이런고...아님말구...ㅋㅋ
박혜서(phs55) (2005/02/02) : 低山! 저기 저산 ... 교수님 항상 유익하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진숙(lcs) (2005/02/02) : ㅎㅎㅎ 나이보다 젊어 보이구 왜 글케 잘생기셨씁네까?ㅎㅎㅎ흠흠신서 보고 요즈음 학력 제한이 없으니 국정원 시험 함 볼까..해서요?...^^ 나이땜시 안되남요^^...
이윤석(animation) (2005/02/02) : 맞아요... 글벗누님은 나이 땜시 안되요... 나이를 왜곡하고 계시잖아요... 너무 젊게 보이셔서 안된다니깐요...^^
이윤석(animation) (2005/02/02) : 배교수님을 뵐 때마다 느끼는 것은 배교수님은 정말 신앙인이고 신앙인으로 살고 계신 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이뻐해 주셔용...^^
배봉균(baeyoakim) (2005/02/03) : 젬마 개근생~ 低山!이라구 내호를 불러보니깐 괜찬취...요?
배봉균(baeyoakim) (2005/02/03) : 미카엘라 아우님 학생이 금방 써먹넹...ㅎㅎㅎ 나이보다 젊어 보이구 왜 글케 잘생기셨씁네까?ㅎㅎㅎ 꿈두 야무져...흠흠신서 읽구 국정원 시험 본다구...요? 나이생각을 해야쥐 ㅋㅋ
배봉균(baeyoakim) (2005/02/03) : 요셉 학생두 아부(?)성 발언을 좀 할줄 아는구먼...기것두 신앙적으루...ㅎㅎ 보기싫어하지 않을께...ㅇ...^^

이강길

제주도 - 유배지이기도한 이곳은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바다에 나가 고생을 하며 평생을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남자들은 바다에 나가 풍랑을 만나면 그자리에서 죽지만

돌아오지 못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평생 바닷가에서 물질을

해대야 하는 아낙의 한이 서려있는 곳이 제주도이다.

 

흑산도 - 주변에 섬이 많다 그래서 다도해의 한곳인 이곳 흑산도 또한

유배지이지만 경치는 끝내 준다고 하니 한번 가봐야 겠다..

 

하늘에서 바라본 흑산도..

 

흑산도에서의 일출

 

흑산도의 일몰...이라는데 맞나요?

 

무오사화의 원인이 된 탁영선생 연보

 

 

 

 

만분가의 일부 엄청길어서 쪼매만 올렸다

 

사약 사발

 

중죄를 범한 관리에게 사약을 받게 하는 그림

 

성종의 묘 - 초등학교 다닐때 매년 소풍을 이곳으로 간 기억있다

현재 강남구 삼성동에 있다.

 

다산의 유배지 다산초당 가는길

 

다산 선생의 묘.

 

다산 초상

 

 

천일각 - 섬으로 유배가신 형님생각이 날때 마다

다산이 이곳에 올라와 먼 바다를 보며 형님을 그리워 했다고 함

 

백련사에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다산초당.안쪽...동암서재

 

다산 초당의 약전 -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하네요...

 

다산 동암 서재

 

다산 동암의 보정 산방 - 완당 김정희(추사 라고도 함)의 글씨

 

다산 동암 현판

 

다산초당

 

다산초당 지붕의 문양

 

다산초당 앞의 다조 ( 차 끓이는 돌)

 

다산의 유배시에는 초가집이었다는데...

 

다산초당의 서암

 

다산 초당의 서재 관어재 - 완당 김정희 글씨

 

다산 초당의 연못 연지석정

 

다산 초당의 글씨 - 정석 얼마나 힘들면 바위에

정자를 세기며 마음을 다졌을까..생각한다.

유배의 힘듬이여...

 

 

 

다산 초당의 정일각- 형님이 생각나면 올라갔다는...

 

백련사 가는 길의 위에서 내려다 본 다산 선방 내의 동암 지붕...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윤두서의 자화상 - 조선 초상화중 제일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강진에 귀향간 다산이 딸에게 그려보낸 매화

 

수원 화성을 지을때 사용된 거중기

 

 

다산의 글씨

 

정약전의 영정

 

고산 윤선도의 영정

 

고민하는 광해군 - 만화 삽화

 

광해군의 묘

 

송강 정철의 초상

 

송강정에 걸린 송강 정철의 글씨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

 

정조 영정

 

수원 화성도1

 

수원화성 안내도

 

수원성

 

기중기로 쌓아 올린 수원화성

 

정조의 수원화성 행렬도

 

낙남헌방방도 - 잔치 준비도

 

해남 땅끝의 갈대밭

 

땅끝의 날씨의 변화무쌍...

 

해남 윤씨 역모당

 

해남 윤씨 추원당

 

해남 윤씨 족보 목판

 

 

Liszt-Joshua Edwards piano 3 La Campanella in G#m


지요하(jiyoha) (2005/05/24) : 언젠가 공부를 했는데, 복습을 하는 것도 좋네요. 더욱이 그림이 많아서 더 좋은 것 같군요. 그러나저러나 내가 일등 출석이네...
배봉균(baeyoakim) (2005/05/24) : 지 선생님 학생이 오늘두 일등 출석 !...개근생 + 모범생...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구만...유..
박난서(ab4fami) (2005/05/24) : 해남엔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데 꼭 한번 가봐야 겠습니다. 그땐 배선생님과 배운 수업이 도움이 되겠네요. 저 개인적으론 해남하면 농민운동가이신 "정광훈" 선생님도 생각나긴 합니다만..
박혜서(phs55) (2005/05/24) : 교수님 복습 시키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배봉균(baeyoakim) (2005/05/25) : 글라라 학생...해남의 땅끝 마을과 보길도, 다산 초당 꼭 한번 가보세...요....^^
배봉균(baeyoakim) (2005/05/25) : 젬마 개근생은 일찍 출석하여 강의실 앞 화단에 열쉬미 물주구 있네...ㅇ...마치 低山 교수가 열쉬미 학생들 복습시키듯이...ㅎㅎ
배봉균(baeyoakim) (2005/05/25) : 얼마전 부터는 그동안 低山 교수가 강의한 본문과 파비아노, 엘리사벳 두 남녀 조교가 올려준 이미쥐와 배경음악을 합하여 다시 올리고 있어...요...전에 했던 강의라도 새로운 맛이 있을 고 같으니깐 더 열쉬미 출석해 주세...요...틈틈히 새로운 강의도 할께...요...#(^ㅎ^)#
배봉균(baeyoakim) (2005/05/25) : 고산(孤山)과 다산(茶山) 1, 2, 3, 4, 5, 6, 6편의 시리즈 강의는 지난 1월 12일 부터 2월 2일 까지...20여일에 걸쳐 강의를 했어...요...본문 말구두...500여개의 꼬리글 강의를 했쥐...요...孤山과 茶山의 강의를 하다가 요아킴 교수두 이참에 호(號)를 하나 지어야 되겠따는 생각이 들어 低山이라는 호를 짓게 된고라구...요...ㅎㅎ...누구나 쉽게 올라와서 쉬었따가 내려갈 수 있는 얕으막한 山이라는 뜻으루 低山이라그 짓게 된고쥐...요...우리 말루는 '저기 저산'두 되구...요...지어노쿠 보니깐 부르기 쉽구 조은 고 같아요...학생 여러분두 低山 교수라구 불러주시구...^^
배봉균(baeyoakim) (2005/05/25) : 좀 전에두 말씀드렸쥐만...지난 번의 고산과 다산 시리즈 강의에 가보시문...조위의 '만분가'를 비롯하여...고산의 '어부사시사'..다산의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와 두분의 유배지와 유배생활에 얽힌 이야기들을 500여개의 꼬리 글을 통하여 무지 자세하게 강의해 노았으니 함 가보세요~
정재훈(jhjung1868) (2005/05/25) : 저산 교수님의 깊으신 배려에 감사드리며 복습 잘하고 갑니다 ^*_^
신희상(shinada) (2005/10/09) : 안녕하세요..^^ 여전히 일등....주일미사 준비해야죠...
구갑회(kaglara) (2005/10/09) : 2등 우리는 오랫만에 나들이 가요~~ *^^* 갔다와서 정독 할게요.
곽운연(walterkwak) (2005/10/09) : 다산 정약용선생의 말씀을 농사에 비유하면요, 나락은 농부의 발자국소리를 먹으며 자라는데 농부 혼자의 힘으로가 아니라 천, 지, 인의 유기적인 도움과 조화로 나락은 자라나고 비료나 농약은 경계해야 올바르고 유기적인 생명의 농산물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요즘은 돈이 많아야만 유기농산물을 먹을 수 있는 웰빙의 시대이지만요..
곽주만(kjm0417) (2005/10/09) : 오늘은 부사공 방지거 형제님 때문에 또 메달권 밖입니다. ㅎㅎㅎㅎ 그래도 만나니 반갑네요. 오늘은 연중 제28주일이고 한글날이군요. 세종은 위민정치를 위해 인재를 귀히 등용하고 널리 선정을 베푼 임금으로 기억합니다.
이복선(lbs) (2005/10/09) : 배교수님과 열린 대학 여러분들~ 환절기에 건강 유의하시면서 열공 하세요.^^ (좋은 음악과 풍부한 자료가 배교수님 강의를 더더욱 격조높게 돕는 것 같군요)
장정원(dizimon) (2005/10/09) : 금요일 저녁부터 어제까지 컴퓨터가 없는 곳에 있느라고 출석 못했습니다. 컴퓨터가 없는 곳에 있어도 지낼만은 한 것 같네요... 물론 오래는 못지내겠지만요!!! 휴일 잘보내세요~
이옥임(okim1066) (2005/10/09) : 오늘은 한글날, 며칠간 고산, 다산의 업적을 공부하면서 새삼 한글의 위대함을 실감했습니다. 중국이나 조선이 문자공부에 쏟아 붓는 시간을 다른 생산적인 일에 썼더라면 동양의 문명이 서양에 뒤처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과거 중국에 억눌려 살던 우리 한민족이 지금은 기술로 앞서가고 있는 것도 한글의 힘이 컸을 것이라고도 믿어요. 고산, 다산 모두 자랑스러운 우리의 선조들이시죠. 다산의 온 집안일가가 이 나라에 천주교입성의 문을 연 일등공신들이심을 알게 되어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거기다 두 분의 일가가 혈연으로 연결되었다니
이옥임(okim1066) (2005/10/09) : 좀 달리 닿아오는 느낌입니다.(이말 안하는 게 좋을건디, 내 이미지 無知 이곤데 왜 하는지 나도 모르겠음) 두 가문의 훌륭한 입지를 듣자하니 어느 하나 내세울 명함하나 없는 자신이 그 위에 더 크신 예수님이 계시어 참 다행이란 생각도 아울러 해 봅니다. 그리고 저산교수님, 저는 그냥 배 교수님이 좋은데요. 고상한면은 있으나 신선하게 다가오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저는 우리조상님들이 이름을 후세에 남기고 싶어했던 그 집착은 별로 존경스러워하지 않아요. 호도 그 선상에 있지 않나 생각하는데 잘못된 해석일까요? 이름은 부모님이 주신 하나로
이옥임(okim1066) (2005/10/09) : 충분하지 않나요? -한문 80%문맹자 요안나의 생각-
신희상(shinada) (2005/10/09) : 저는 작년12월에 세레받고,이제야 천주교 역사와 우리 성인 전설을 알게 되었네요.못보던 좋은 자료도 사이트를 통해서 많이 배웠습니다.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배봉균(baeyoakim) (2005/10/09) : 미카엘 학생...안녕하세요..^^ 여전히 일등...ㅎㅎ
배봉균(baeyoakim) (2005/10/09) : 구 글라라 학생..."2등 우리는 오랫만에 나들이 가요~~ *^^*"...워디루 나들이 가세용?...갔다와서 정독 하세용...ㅋㅋ
배봉균(baeyoakim) (2005/10/09) : 방지거 학생...오랜만에 출석 !...와~ 방지거 학생...워디가서 내공 수련하구 왔나부다...요..ㅎㅎ...다음부터 조은 꼬리글 계속 달아주세용...1, 2 이런고만 하쥐말구...ㅋㅋ
배봉균(baeyoakim) (2005/10/09) : 니꼴라오 학생은 원래부터 내공이 쎄~ ㅎㅎ
배봉균(baeyoakim) (2005/10/09) : 아녜스 학생은 off line 에서두 열공(열쉼히 공부)하는 주부 대학생이고든...요...on line 뿐 아니라...off line에서두 다 모범생일 고야..요.
배봉균(baeyoakim) (2005/10/09) : 엘리사벳 조교...금요일 저녁부터 어제까지 컴퓨터가 없는 곳에 있느라고 출석 못했따구...거기가 워디야?...나두 가보게...ㅎㅎ...컴퓨터가 없는 곳에 있어도 지낼만한가 보게.
배봉균(baeyoakim) (2005/10/09) : 요안나 학생두 꼬리글 달았따하문 다섯줄 짜리 세 개가 기본이구만...요...ㅎㅎ...세종대왕님이 창제하신 한글이 과학적이구 배우기 쉽구 쓰기쉽구...기래서 위대한고는 사실이쥐...요...글치만 5천년 역사속에서 만들어진 뜻글자 한문두 무시할 수 읎어...요...뜻를 구분하는디는 한문만한게 읎쥐..요...배우기 어렵구..쓰기어렵따구 소홀히 혔따간 큰코 다친다구...요...특히 한문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한문을 잘 배워놔야 나중에 고생을 안해...요...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조금만 깊이 하려구해두 한문을 모르문 절대루
배봉균(baeyoakim) (2005/10/09) : 안되게 되어 있어...요...나중에 어차피 배워야 하는디...을매나 어려워...요..다 쓸줄은 몰라도...볼줄은 알아야 되지...요...학실이 알지안쿠는 볼수두 읎쥐..요...요안나 학생 이미쥐는 내가 볼 때 절대루 無知가 아닌고 같은디...有知 이곤디...ㅎㅎ...옛날 분들은 이름이 몇개 씩 있었어...요...자, 호, 아명, 본이름 등...요즘 우리두 성명, 본명, 별명...이로케 여러가지 있자나...요...유명하구 인기가 만을수룩 별명이 만취...요...누구처럼...나이가 들문 호 하나쯤은 있는게 조타구 생각해요...
배봉균(baeyoakim) (2005/10/09) : 늙으막에 친구들끼리두 이름이나 별명을 부르느고 보다 점잔케 호를 하나씩 기어갖구 서루 부르면 이 을매나 조으냐 이고쥐...요...低山 배봉균 요아킴 교수 생각- 아차~! 글구 나에 대한 호칭은 그때 그때 부르기 조쿠 생각나는 대루 해도 조와요...低山 교수, 배 교수, 요아킴 선생님...이로케...^^*
배봉균(baeyoakim) (2005/10/09) : 나두 미카엘 학생한티 감사드려...요...조은 보충자료 계속 퍼다 올려주니까...요...低山 교수 글을 읽구 거기에 맞는 자료 퍼다 나르다 보문 저절루 유식해지쥐...요...^^
신희상(shinada) (2005/10/09) : 천주교 역사 보니 우리나라는 "찾아나선민족"...주님을 찾아서 나선 민족이라니 선조님들의 지혜가 업 입니다...결국은 앞선 민족이란것이지요...좋은것을 찾았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곽주만(kjm0417) (2005/10/10) : 댓글의 수준이 학부의 강의를 넘어 대학원 강의 수준입니다(자유 대학 강의는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닌 토론의 문화가 정착되어 있음) 종교, 철학, 역사, 문학, 과학을 넘나들며 핵심을 찾아내어 평이하게 가르치시는 교수님의 실력이 부럽습니다. 요안나님이 요약을 잘 해 주시는군요. 그래도 雅號는 벗들과 후학들이 능히 존경할 수 있는 분에 대한 예우이니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ㅎㅎㅎㅎ
김명희(sayoo39) (2005/10/11) : 오늘의 합편은 보물입니다...가만 앉았다 앙꼬만 빼먹는것 같은데요...그래서 모셔갑니다.
신희상(shinada) (2006/0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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