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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공경의 신학적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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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공경의 신학적 의미
성서가 가르치는 바와 같이 인간은 거룩한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로서 하느님을 창조주로 알아 사랑하고, 세상 만사의 주인 즉 만물의 영장으로서 세상 만물을 다스리고 이용하며, 하느님께 마땅한 영광을 드리도록 마련되었다. 그런데도 인간은 하느님을 자신의 근원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궁극 목적에로의 당연한 질서를 파괴함으로써 자신과 이웃과 모든 피조물과의 조화도 깨뜨리고 말았다(사목 헌장 13항).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인간의 죄로 잃었던 은총과 구원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다. 그리스도는 지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고 말씀과 행적으로 성부와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으며, 또한 죽음으로 영광스러운 승천과 성령의 파견으로 당신의 구원사업을 완성하셨다.
오순절 날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파견되어 오신 성령은 교회와 신자들의 마음을 성전으로 삼아 그 안에 거처하시고, 교회를 온전히 진리에로 인도하시며 각 사람들을 각기 다른 길로 부르신다. 신비체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교회를 통하여 지체인 신자들에게 당신 생명을 주시고, 신자들은 성사를 통하여 수난하시고 현양되신 그리스도와 신비롭게 일치하며 그것은 하느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뒤에 따르려는 신.망.애의 생활로 나타난다. 믿음의 생활은 하느님 안에서 자신의 근본과 존재 의미를 발견하는 생활이고, 희망의 생활은 하느님만이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분임을 깨닫고 그분께만 궁극적인 희망을 두는 생활이며, 사랑의 생활은 우리의 모범이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전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생활이다.
자모이신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보다 밀접하게 결합될 수 있도록 신앙생활의 여러 가지 수단을 제공한다. 우리는 세례 때에 받은 은총을 성서나 전례 특히 성체성사와 다른 성사뿐 아니라 끊임없는 개인기도와 여러 신심들을 통하여 계속 향유하고 향상시킬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신심은 하느님의 신비나 하느님과 연관된 피조물에 마음을 향함으로써 하느님을 섬기고 예배하려는 전인적인 자세이다. 신심이 강렬할 때 희로애락, 평화 등의 여러 가지 감정이 동반되고 또 이 감정들이 신심을 깊게 할 수 있지만 감정을 동일시하거나 신심의 척도로 삼을 수는 없다. 신심은 하느님을 정성껏 섬기려는 내적인 자세이므로 그 척도를 선정하기란 어렵지만, 신심의 참된 척도는 하느님과 교회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헌신적 사랑, 성사와 전례생활, 기도과 종교적 행위의 성실한 실천에 있다. 올바른 신심은 반드시 헌신적 생활태도로 드러나며 사도적 활동으로 표현된다.
마리아 공경, 즉 성모신심은 천주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인 성모의 도움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며 그분의 힘있는 전구에 의탁하는 신심이다.
마리아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한 지극히 거룩한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모든 성인 남녀들 위에 특별한 공경을 받으시는 것은 당연하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교리는 성서에 근거하고 있다. 마리아는 성서에서 예수의 어머니(마태13,55;사도1,14), 주의 어머니(루가1,43)라고 호칭되고 있으며, 복음서에는 마리아라는 고유명칭보다 "예수의 어머니"(마르3,31;마태12,46;루가8,19;요한2,1-5;9,25-27)라는 칭호가 더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신약성서에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로 직접 불린 일은 없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는 하느님의 말씀이 마리아에게서 탄생되었다는 성서적 명제와 내용에 있어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마리아의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관계는 모친성에 입각하고 있는데 모친성은 자녀에 대한 순전히 자연적이고 생물학적인 관계를 초월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마리아에게서 탄생했다면 그와 마리아 사이에는 전인적인 관계가 성립한다. 어느 어머니가 아이를 낳으면 그 어머니는 그 아이의 육신만의 어머니가 아니라 전인적인 어머니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임을 우리는 고백하므로 인간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바로 하느님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교리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 특징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마리아에게서 탄생했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 논란된 일이 없다. 그런데 4세기 전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 이단설이 생겨났다. 교회는 이 이단설을 거슬러 325년에 1차로 소집된 니케아 공의회에서 하느님의 예수 안에서 둘째 위격인 성자로 태어났다고 선언함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였다. 최초로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명시적으로 부여한 사람은 로마의 히뽈리또라고 알려져 있다. 이 칭호는 4세기초부터 교회 안에서 널리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5세기경에 당시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였던 네스토리오는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어머니일 뿐 하느님의 어머니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천상의 하느님 아들과 지상의 인간 예수가 위격적인 관계를 맺고는 있으나, 실제로는 구별되는 두 위격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교회는 431년에 소집된 에페소 공의회에서 그리스도 안에는 인간성과 신성의 구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하나의 위격, 즉 하느님의 둘째 위격인 성자 위격만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둘째 위격인 성자임을 힘있게 드러내기 위하여 그를 낳은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칭호를 공식적으로 성대하게 부여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느님 말씀의 육화의 신비는 마리아의 "피ㅇ"(내게 이루어지소서)라는 말로써 실현되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계획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고심하면서도 하느님의 전능에 전적으로 신뢰를 보이고 자신을 의탁하였다.
마리아 공경은 특별한 것이기는 하지만 혈육을 취하신 말씀의 성자가 성부와 성령과 더불어 받으시는 "흠숭"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그 흠숭에 오히려 큰 도움이 되어야 한다(교회헌장 66항). 그러나 구세사에 있어서 마리아의 특별한 역할이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되며, 마리아의 탁월한 신앙은 항상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모범으로 찬양되어야 한다. 따라서 성모 마리아의 고유한 품위를 존중하는 데 있어 특별한 자리를 드려야 하겠지만 지나친 과장과 교회의 참된 교리를 오해하게 하는 요소와 행위는 피해야 한다.
. 평생 동정성
마리아의 동정성 교리는 처음부터 하느님의 모친성 교리와 연계되어 있으면서도 명시적으로 공식 교의로서 성대하게 교회 안에서 선포된 바는 없다. 그러나 마리아의 동정성 교리는 2세기 이래 가장 명백한 신앙교리에 속하고 있다. 이 교리는 우선적으로 마리아가 예수를 동정녀로서 잉태하고 출산하였음을 가르친다.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은 신약성서 안에서 마태오 1,18-25과 루가1,26-38 두군데에서 증언되고 있다. 이 복음서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55년경에 기록된 갈라디아 서간 4,4에는 하느님의 아들이 여인에게서 태어났다고 간단히 기록하고 있다. 동정녀 잉태를 말하는 성서본문은 하느님의 아들이 육화가 되는 결정적 구원 사건이 마리아의 자유로운 신앙의 결단을 통하여 실현되었음을 말하려고 한다.
마리아가 하느님께 보여준 봉헌의 자세가 바로 평생토록 지속하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이 교회 안에서 제기되면서, 논의를 거쳐 마리아가 영원한 동정으로 머물렀다는 견해가 관철되기에 이르렀다. 이미 4세기 초엽 알렉산드리아의 베드로(311)가 마리아를 영원한 동정녀라고 지칭하였다. 암브로시오(337)와 아우구스티노(440), 요한 크리소스토모(407)와 시리아의 에프렘(373) 등 교부들도 마리아가 영원한 동정성을 간직하였다고 주장하였다. 4세기 이래 신앙고백들은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을 간직하였다고 주장하였다. 4세기 이래 신앙고백들은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며, 7세기 이해 출산 이전과 동안 그리고 이후에 마리아는 항상 동정녀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 교리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가 성서에서는 발견되지는 않았다.
마리아의 동정성 교리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이루어지소서"를 말하면서 자신의 전존재를 하느님께 봉헌한 것을 가르치고 있다. 마리아가 주의 여종으로서 자신을 낮추는 가운데 은총으로 충만하게 되고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여 하느님이 그의 아들이 된 것이다. 마리아가 동정녀라는 것은 하나의 표징으로서 하느님의 구원은 현세의 일반적인 수단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신앙에 의하여 실현된다는 진리를 가르친다.
성모께 기도하는 중에 체험하는 치유, 예언 등 예외적 은사에 대하여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교 신앙을 기복적 신앙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크다는 사실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사실 우리 눈에는 예외적으로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완전히 규명되지 못한 자연적 현상이거나 어떤 심리적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치유의 능력을 받았거나 치유되었다고 확신하더라도 과학적인 검증없이 치유를 공적으로 주장하거나 과장하여 증언하는 것은 피해야 하며, 이례적인 특은을 경솔히 청하기보다는 마땅히 청해야 할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형태의 신심이든 신심은 본래 그리스도교 신자의 마음에서 생겨 점차 여러 가지 외적 형태를 취하면서 마침내 특정한 습관적 행위가 되는 것이다. 먼저 개인적 행위로 시작된 신심은 차츰 공동적 행위가 된다. 마리아 공경도 개인적이건 공동적이건 성직자의 지도를 받고 교회의 인준을 받아야 바른 신심이 된다. 그런데 때로는 사목구 주임이나 교구 직권자의 사전 허가없이 '파티마의 성모'상이 개인 집에 모셔지는 일이 흔히 있는데 이러한 일은 지양되어야 한다.
모든 신심운동은 신앙의 내용이 각 시대의 문화적 조건 아래 표현되는 것이므로, 마리아 공경의 신학적 및 문화적 표현이 신앙의 내용과 일치하는지를 계속 반성하지 않으면 전통적인 마리아 신심도 오해를 낳을 수 있다. 그 한 예로서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나 갈라진 형제자매들이 천주교를 마리아교라고 부르는 것이다.
마리아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교의를 요약하면 크게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동시에 평생 동정녀이다. 둘째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은혜에 의하여 거룩하다. 즉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한 은총에 의하여 원죄에 물들지 않았다(교황 비오 9세, 1854년 12월 8일 선포). 셋째, 마리아는 육신과 영혼이 모두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성모 몽소승천, 교황 비오 12세, 1950년 11월 1일 선포). 첫째의 교리에 관해서는 이미 언급하였기에 이제는 무염 시태와 몽소승천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 무염시태
마리아가 원죄에 물들지 않고 잉태되었다는 교리는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교리로 선포되었다. 이 교리는 성서에 직접적 근거를 지니지 않는다. 교황 비오 9세는 이 교리가 초대 교부로부터 전수된 거룩한 선물이며, 거룩한 인장으로 날인되어 계시된 교리로서 교회 안에 항상 보전되어 왔음을 지적하였다. 비오 9세는 마리아가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원죄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보전되었음을 하느님의 계시로 믿어야 한다고 선포하였다.
이 교리는 마리아가 존재하는 첫 순간부터 원죄와 그 과실에 빠져들지 않았음을 말한다. 그런데 이 교리는 교회 안에서 하나의 명백한 진리로 인정되기까지에는 오랜 시기가 필요했다. 5세기 이후에 대개 암브로시오나 아우구스티노는 마리아의 전적인 성성과 무죄성에 대하여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12,13세기의 신학계에서 마리아의 무원죄성이 다시 다루어졌다. 토마스 아퀴나스(1274)는 무염시태를 부인하는가 하면, 둔스 스코투스(1308)는 무염시태를 옹호하였다.
1439년 바젤 공의회는 무염시태 명제를 신앙 조항으로 선언하였으나, 당시 교황과 유대관계를 맺지 않아 합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효력을 발하지는 못하였다. 교황 식스토 4세(1471-1484)는 로마에서 무염시태에 상응한 축일을 정식으로 허가하였으나 논쟁은 교회 안에서 계속되었다. 무염시태의 확신을 가로막았던 핵심적 반론은 인류의 일반적 죄성에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구원의 보편성이 손상되는 난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죄성과 구원의 필요성이 절대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의 모친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에 완전히 참여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참여란 하느님의 구원 안으로, 은총과 하느님의 일치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마리아가 그리스도께 완전히 참여하고 있다면 은총 또한 완전히 소유하고 있는 것이 된다. 루가 복음 1,28에 보면 마리아는 은총이 가득한 분이다. 그런데 이처럼 은총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구체적 역사 안에서 항상 구원되었음을 뜻한다. 마리아 역시 원죄라는 과실의 관련성에 연루되어 있다. 그리고 마리아 자신의 힘으로 여기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죄의 연류성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구원의 발생시기 자체는 근본적으로 결정적인 문제는 아니다. 마리아도 "구원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아담의 혈통을 이어받았다"(교회헌장, 53항), 그런데 마리아는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 생명 자체를 세상에 출산할 임무에 합당한 은총을 받았다. 그래서 마리아를 성령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조물 같이 온전히 거룩하고 아무런 죄에 물들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교회헌장, 56항).
. 몽소 승천
몽소 승천 교리도 무염시태 교리와 같이 시기적으로 뒤늦게 교회 안에서 사유되기 시작하였다. 4세기 말경에 마리아의 임종에 관한 신학적 사유가 처음으로 전개되었다. 5세기에 예루살렘에서는 8월 15일이 하느님의 모친의 날로 제정되었다. 이 축일은 6세기에 하느님 모친의 귀향 기념일이 되어 교황 세르지오 1세(687-701)에 의해 서방 교회 축일표에 포함되었다. 그래서 이 축일에 교회는 마리아가 하늘에 올림을 받았다는 견해를 강론 등에서 피력하였다. 로마는 3세기 이래 몽소승천에 대해서 견해를 강론 등에서 피력하였다. 로마는 3세기 이래 몽소승천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 교리는 1950년 11월 1일 모든 성인들의 축일에 교황비오 12세는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녀이셨던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가 지상의 생애를 마치신 뒤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의 영광에로 들어 올림을 받았다는 것을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된 진리이다"라고 선포하였다. 교황이 이 교리를 계시 진리라고 선포한 것은 성서에 근거를 둔 교리였기 때문이다.
교황의 교리 선포는 마리아의 영광을 확언할 뿐, 이 일이 어떻게 발생하였는가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마리아의 몽소승천 용어가 지니는 의미는 예수의 승천 내용과는 구별된다. 마리아가 있게 된 영광은 순전히 하느님 은총의 덕이다. 그래서 마리아에게는 하늘로 승천한다는 표현 대신에 "천상 영광에로 올림을 받는다"라는 표현이 적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을 공간적 표상과 결부시켜 실상을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서 성모승천 교리를 마리아의 현양교리라고 지칭하는 것이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이 교의의 본연의 내용은 마리아가 지상의 생애가 끝나자 그의 구세사적 목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모친이란 힘 때문에 마리아는 완전히 거룩한 인간이 되었고, 마리아는 자기 안에서 하느님의 목표 즉 구원으로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자기 안에서 이룬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대부분의 종교개혁가들은 마리아에 대한 과장된 공경을 비난하면서도 자신들은 합당한 존경과 신심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개혁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는 마르틴 루터는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동시에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옹호했으며 그의 신앙생활 가운데 마리아 공경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시인했다.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에 관해서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을 취했으나, 하늘에 올림을 받았다는 성모몽소승천에 관해서는 성서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마리아에게 구원의 은총이 더 많이 주어졌다는 것이 마리아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에게서보다 마리아에게서 은총과 보호를 구하는 것을 신랄히 비판하였다. 한마디로 그는 마리아 자신보다도 마리아에게만 모든 영광을 집중시키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흐리게 하는 신자들의 과장된 마리아 공경을 비난하였다.
울리히 쯔빙글리 역시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하였다.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에 대하여 적어도 그리스도 강생시에는 완벽하게 하자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성모 몽소승천에 대하여도 대축일로 지낼 정도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쯔빙글리도 과정된 마리아 공경을 비판하였으며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쟝 칼빈도 마리아의 하느님의 어머니와 그리스도의 모친에 대해서는 인정하였다. 다만 원죄없이 잉태된 교리와 몽소승천은 부인하였다. 개신교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교의는 하느님의 은총과 신앙만으로써의 의화이다. 직접적으로 마리아를 공경하지는 않더라도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중재인도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었다. 그리하여 사제가 고해성사에서 대신하는 사죄, 대사를 부여하는 선행, 성인들의 전구 특히 마리아의 자애로운 보호 등에서 가톨릭 신자가 구하려는 은총을 개신교 신자는 끊임없이 쇄신되는 신앙의 행위로써 자기 자신 안에서 발견하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개신교는 칼빈의 사상적 배경을 가진 미국의 프로테스탄트에 의하여 선교되었기에 마리아는 더욱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갈라진 형제자매들이나 비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우리를 마리아를 믿는 자들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우리 자신들의 잘못도 있음을 솔직히 시인하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 자신들이 서구인의 심성과 사회조건을 바탕으로하여 발생된 신심운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이며, 일부 교회 지도자들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성당 앞에 커다란 성모상을 세운데서도 오는 오해가 아닌가 한다. 서구 교회에서는 우리보다 마리아 신심이 약하지 않으면서도 성모 순례 성당 이외에는 아기 예수 없는 성모상을 세운 곳은 거의 볼 수가 없다. 그들의 마돈나는 바로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계시는 마리아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으로 이제는 많이 변화되었지만 마리아에 관한 축일 등의 홍수 속에 파묻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흐려진 것도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마리아 공경이 결코 교회의 성사와 전례에 우선되어서는 안되며, 전례와 조화되고 전례로 인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일부 몰지각한 신자들은 성체성사나 미사성제보다도 마리아 신심을 앞세우는데 이러한 것은 올바른 신앙교육을 통하여 시정되어야 한다.
토착화가 미비한 마리아 신심단체에서 발견되는 외래어 명칭(레지오 마리에, 푸른 군대, 뗏쎄라, 까떼나, 아치에스 등)과 용어, 서구적 표현 방법과 진행 과정 등이 신자들에게 이질감을 주거나 비신자들이나 갈라진 형제자매들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도록 우리 감정과 순화에 맞게 바꾸어야겠다. 근년에 와서 서독에서 가나안 마을이라는 수도공동체를 세우고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다시 부활한 개신교의 마리아 자매회가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차츰 갈라진 형제자매들 사이에서도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보급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 하겠다. 김정남(가톨릭대학 교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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