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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다시 ‘대심문관’을 읽으며 |
| 글쓴이 |
관리자 |
E-ma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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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115 |
| 날짜 |
2006-03-23 |
조회수 |
12 |
추천수 |
0 | |

“은퇴하면….”하고 벼르던 일들이 몇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전작을 다시 정독하는 일도 그 하나. 새로 나온 우리 말 번역본들이 있어 다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읽는 일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점들을 깨우치게 되리라는 예상은 처음부터 계산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그 도와 범위가 정도를 넘는다는 느낌이 그렇지 않아도 눈이 어두운 늙은이로 하여금 읽는 속도를 더 더디게 하고 있다. 약 20년에 걸쳐, 한 대학에서 수강생들에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요약 쓰기를 강요했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그 작품을 읽으면서, 그 짓이 얼마나 무리한 요구였나를 깨달으며 얼굴을 붉힌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처음 3일간, 그리고 2개월이 지난 3일간, 해서, 이 길고도 긴 장편이 불과 6일간에 일어난 사건이란 사실을 새삼 알게 되면서, 이 작품은 요약이 불가능한 소설일 뿐만 아니라, 세부를 기억하기가 어려운 색다른 소설이란 것을 이제사 알게 되는 것이다. 다시 독서보고를 요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심문관’만으로 범위를 줄여줄 터인데…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문득 오늘날 얼마나 많은 교회지도자들이 ‘대심문관’을 읽거나, 그 에피소드를 통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대심문관’은 2백자 원고지로 150장 정도의 분량이다. 16세기 말의 어느 날, 예수가 스페인의 한 도시 세빌리야에 다시 모습을 나타내게 된 것은, 추기경이자 이단을 가려내는 일을 하는 대심문관이 백 사람의 이단자들을 불로 살라 죽인 바로 그 이튼 날이었다. 그 분은 ‘조용히 눈에 뜨이지 않게’ 사람들 틈에 섞여 들지만, ‘보라, 모든 사람들이 그분임을 알아보고 그분을 따르기에’ 아무도 막을 수 없을 지경이다. 그분은 묵묵히 걸어간다. 그분의 입술은 한없이 자비로운 웃음을 머금었고, 마음속에서 불타는 사랑은 섬광이 되어 사람들 위에 머물러 그들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축복하는 그분의 손이 그들 위에 펼쳐질 때마다, 혹은 그들의 손이 그분의 옷에 닿기만 해도 치유의 힘은 흘러나왔다.’ 그 분은 한 늙은 장님을 치유했고, 죽어서 장사 치르려던 한 아이를 살렸다. ‘감동한 백성들은 소리치고 흐느꼈다.’ 바로 그 순간, 추기경이자 대심문관이 호위병을 거느리고 그 곳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그는 예수를 체포토록 명령했고, 이윽고 예수는 한 어두운 지하 감방에 갇힌 죄수가 된다. 밤이 되어, 백발의 대심문관이 감옥으로 예수를 찾아온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당신이시군요. 무엇 때문에 오셨습니까?” “우리를 훼방하기 위해서요?” “당신이 진짜 예수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소. 내일 우리는 당신을 재판에 걸어 이단자들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인물로 유죄판결을 내릴 것이오. 그리고 장작더미 위에서 불사를 것이오. 그러면, 오늘 당신의 발에 입을 맞추던 백성들은 나의 신호를 따라, 장작더미와 석탄에 바람을 불어 불꽃을 일으킬 것이오.” “당신께서 노여워하시며 거절하신 것들, 다시 말해 유혹하는 자가 당신 앞에서 지상의 부귀를 보이면서 당신에게 내민 선물들(마 4:8 이하)을, 우리는 그로부터 받아냈답니다.” 그리고 그는 선언했다. “이제 당신은 먼 옛날에 말씀하신 것들 말고는 아무런 말을 더 보탤 권리조차 가지고 있지 않소.” ‘대심문관은 죄수가 그에게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죄수의 침묵이 그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마디의 말씀, 권위가 있어 두려움을 느끼게 될 말씀을 기다렸다. 그러나 죄수는 가만히 일어나 백발노인에게 다가가서 키스했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예수는 한마디 말씀도 없었다. 그러나 그분의 존재감은 우리를 압도한다. 니코라이 베르쟈예프는 대심문관을 소련의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상징으로 규정한 바 있다. 그렇다고 오늘의 교회지도자들이 손을 씻고 안도해도 좋단 말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관’에서 “대심문관을 무신론자요 악마라고 단순하게 치부해버린다면 이 이야기는 무의미해진다”라고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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