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전우회 태안군지회 창립을 알리며
우리나라의 베트남 전쟁 관련 단체들 중에는 '고엽제전우회'도 있다. 이 단체가 생긴 때는 1991년 7월경인 것으로 알고 있다(이 단체의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서 '본회소개/본회연혁'난을 살펴보니 창립 연도가 명확하게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정식 명칭이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인 이 단체는 각 시·도에 지부를 두고 있고(서울은 남부와 북부로 나누어 2개), 각 시·군에는 지회를 두고 있다. 충남의 경우는 예산, 청양, 태안 등 세 곳을 제외한 모든 군 단위 동네에 지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단체 홈페이지의 '고엽제정보' 난에 마련되어 있는 '활동 사항'을 살펴보면 수많은 노력들 속에 어려 있는 '눈물겨움'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고엽제'에 대한 상세한 정보, 베트남 전쟁에 대한 조명, 고엽제 후유증과 의증(疑症) 환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불행의 실상들이 어떤 밀접성을 느끼게 하면서 이 단체의 필요 불가결한 존재 가치를 명확하게 제시해 준다.
군대 시절 1년 2개월 동안 동안 베트남 전장에 몸을 놓았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고엽제 후유증으로 판정 받은 질병을 안고 사는 사람으로서 이 단체에 대해 특별한 인지상정의 고마움을 느낀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내 삶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기억은 가장 명확한 부분이다. 거의 일상적으로 기억의 그림자를 안고 사는 느낌이다.
하지만 가치 판단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무려 세 번이나 지원을 하여 마침내 뜻을 이루었던 내 참전 집념(?), 베트남 전장에서 겪었던 갖가지 일들, 미국의 패권주의와 이데올로기의 산물이기도 한 베트남 전쟁에 대한 포괄적인 시각들이 혼재되어 있는 가운데서 가치 판단에 필요한 많은 자료들을 얻고는 있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아직 참전에 대한 명확한 자부심 따위는 갖고 있지 못하다.
어떤 한 가지 사실이나 현상에 대해 그것의 이면을 보거나 그것에 결부되어 있는 갖가지 사항들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눈을 숙명적으로 안고 사는 탓일 것도 같다.
아무튼 월남전 참전에 대한 가치 판단을 아직 명확하게 갈무리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그 기억의 그림자는 명확하게 안고 산다. 그 기억의 그림자 속에는 당연히 '고엽제'라는 화학 물질도 존재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고엽제는 35~36년 전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35~36년 전의 그 현장에서보다도 많은 세월을 건너뛴 오늘에 그 존재에 대한 질감이 더욱 명확하다. 그리고 오늘의 현실에서는 그것의 실물을 보지 못하지만, 그것의 잔영(殘影)이 매우 명료하다.
그런 연유로 '고엽제전우회'에 대한 나의 관심은 참으로 당연하다. 또 그런 연유로 '대한민국고엽제 태안군지회'의 창립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동안 태안의 고엽제 전우들은 서산시지회에 속해 있었다. 회비도 서산시지회에 내고 연락도 그쪽에서 받곤 했다. 그러다 보니 묘한 결핍증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태안 사람으로서의 어떤 자존심과도 관련이 되는 사항이었다.
고엽제전우회 서산시지회에 참여하면서 태안의 위상 문제까지 의식의 갈피에 담고 있던 전우들이 마침내 태안군지회의 창립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러 단계의 준비 작업을 거쳐 이 달 30일(금) 오후 2시 태안군청 대강당에서 드디어 창립 행사를 갖게 되었다.
우리 지역에는 현재 '월남참전유공자회 태안군지회'가 존재하고 있다. 벌써 10년 가까운 연륜을 쌓아가고 있다. 이 단체에도 나는 초창기부터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상(정치세력화에 대한 우려도 있고 해서) 열심히 참여하지는 않고 있다.
베트남 전쟁 관련 단체들 가운데서도 고엽제전우회에 대한 느낌은 좀더 다른 것 같다. 고엽제라는 잔혹한 화학 물질이 매우 진하고 끈적끈적한 접착제 구실을 하는 것만 같다. 고엽제라는 이름만으로도 내 가슴 속에서 야릇한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고엽제 전우들에 대한 일종의 연민이요 애처로움일 것도 같다. 그 묘한 연민은 고엽제라는 고약한 화학 물질을 진하고 향기로운 접착제로 변화시키며 살고 싶은 소망을 적극적으로 갖게 한다.
베트남 전쟁 관련 고엽제 후유증과 후유의증 환자들은 현재 4만 여 명에 이르고, 그 중에서 100여 명 정도가 태안 지역에 사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미 10여 명은 극심한 병고 속에서 타계했고, 10여 명은 자리보전 형태로 어렵게 살고 있는 것으로 듣고 있다. 또 연락처가 확인된 사람들 중에서 40명 정보가 고엽제전우회 태안군지회 창립에 참여하고 있는데, 앞으로 많은 수가 동참할 것으로 생각된다.
고엽제전우회에는 베트남 전장뿐만 아니라 한국의 비무장지대에서 군 복무 중 고엽제에 노출되어 병고를 안게 된 이들도 참여하고 있다. 모두 50대 후반 이상의 세월을, 다시 말해 어느덧 노을지는 언덕의 잔명(殘命)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노을지는 언덕 위에서 존재하는 고엽제전우회는 그러므로 매우 한시적인 단체이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회원들의 수는 앞으로 점점 줄기만 하고 충원은 되지 않으니 머지않은 장래에 자연 소멸이 될 단체이기도 하다.
그 사실이 더욱 짙은 연민을 갖게 한다. 남은 세월 그 연민을 고엽제 전우들과 착실하게 공유하고 확대 재생산하며 살고 싶다. 충원이 되지 않는 단체의, 점점 인원이 줄기만 하는 상황 속에서(순서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 나이와 걸맞게) 오래 끝까지 남아 뒤치다꺼리의 몫을 다하며 살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송고했음을 밝힙니다.
2006-06-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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