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의 모든 길을 다 걸어보았습니다
즐거움 속에서 하루 30리씩을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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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온 후로는 백화산을 오르기보다는 주로 걷기 운동을 한다. 새벽 4시쯤 일어나면 기도를 한 다음 종이 매체 읽는 일과 인터넷 검색을 하고, 아침식사 후 아내와 조카아이를 학교에 태워다주고 돌아와서는 컴퓨터 앞에 붙어 점심때까지 꼬박 작업을 하고, 점심식사 후에는 곧바로 무조건 집을 나선다.
하루 생활 중에서 (하느님과 만나는 아침미사나 저녁미사 참례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후 낮의 두세 시간이 내겐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다. 나는 거의 매일 오후 낮에 두 시간 이상을 걷는다. 어딘가를 향해 내처 한 시간을 걸어갔다가 돌아오니 대략 두 시간이지만, 갔던 길을 버리고 다른 길로 돌아서 오는 경우도 많으니 대개는 두 시간 이상을 걷는 셈이다.
내 걸음으로 한 시간을 줄곧 걸으면 시오리를 간다. 10리를 4Km로 친다면 6Km 정도를 간다고 볼 수 있다. 그 거리를 왕복을 하니 하루에 30리, 12Km를 걷는 셈이다.
시오리는 꽤 먼 거리다. 시야가 확 트인 천수만 들판의 제방 앞에다 내 승합차를 놓고 한 시간을 걸으면 맑은 날에도 차가 보이지를 않는다. 10리쯤까지는 흰색 승합차가 가물가물 보이는데, 시오리를 가면 아예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내가 하루 2시간을 걷는 것에는 '묵주기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나는 묵주기도 40단이 하루 기본인데, 묵주기도 40단을 하기 위해서 2시간을 걷는 셈이기도 하다. 묵주기도는 혼자 속으로 할 경우 한 꿰미, 즉 5단을 하는데 정확히 15분이 걸린다. 그러니 1시간이면 20단을 하고 2시간이면 40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천주교 신자들이 '성모 마리아님과 함께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인 묵주기도는 네 묶음의 묵상 지향이 있다.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로 나뉜다. 그리고 각 묶음마다 다섯 가지씩의 묵상 지향이 있다. 십자가와 59개의 알로 이루어진 5단 묵주는 다섯 마디로 구분되어 있는데, 한 마디를 1단이라 한다. 요즘은 5단 묵주 외로 1단 묵주를 사용하는 이도 많다.)
지난해 12월 내 가운데 제수씨가 인천 인하대병원의 중환자실에 누워 병고를 치르던 열흘 여 동안 나는 한시 반시도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았다. 끝내 제수씨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그때부터 일상생활 속에서도 늘 손에 묵주를 쥐는 일은 내게 버릇으로 남았다.
아무튼 묵주기도가 있어 내 걷기 운동은 더욱 즐겁다. 걷기 운동 덕분에 매일같이 40단 이상의 묵주기도를 하니, 그만큼 나는 하늘나라에 기도의 보화를 많이 쌓는 셈일 터이다. 물론 신앙생활에는 많은 선행과 공덕이 따라야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많이 부르는 것만으로도 하늘나라에 많은 보화가 쌓이리라고 확신한다.
당뇨 환자인 내게 무엇보다도 필수적인 걷기 운동은 일석이조를 지나 '일거삼득'의 보람을 안겨 준다. 육신의 건강과 마음의 평화를 유지케 하고, 하늘나라에 기도의 보화를 많이 쌓게 하고, 또 이런저런 좋은 생각들을 가지게 하니 참으로 일거삼득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거의 매일같이 오후에는 걷기 운동을 할 수 있는 내 생활 조건에 대해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한다. 내 당뇨에도 감사하는 마음이다. 당뇨 환자임에도 하루 30리씩을 걸어도 피곤한 줄을 모르는 내 체력과 튼튼한 다리에도 감사한다. 단조로우면서도 안온한 내 일상생활의 리듬이 계속 잘 유지되기를 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정말 오후 걷기 운동의 즐거움을 잃지 않고 싶다.
꼭 걷기 운동을 해야 함에도, 또 간절히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조건에 짓눌려 사는 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도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지난 5,6월 농번기 때는 농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들길을 걸으며 논에서 일을 하시는 농부들에게 인사와 함께 미안함을 표하기도 했다. "제 팔자가 너무 좋지요?"라는 내 말에 "뭐 어때요, 다 자기 몫을 사는 건데"라고 답한 한 농민의 말을 기억하면서 내 기도의 몫을 다시 생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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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같이 2시간 이상씩 걷기 운동을 한 덕분에 우리 고장의 모든 길을 거의 걸어보았다. 가보지 않은 마을이 이제는 하나도 없지 싶다. 수많은 마을길(마을 안 길과 바깥 길), 들길과 산길, 그리고 이곳저곳의 숱한 해변 길들을 고루 걸어보았다.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을 안고 처음으로 걸어볼 길이 이제 태안읍에는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읍 소재지인 남문리와 동문리는 물론이고, 태안읍에 속한 평천리 인평리 상옥리 도내리 어은리 산후리 삭선리 장산리 남산리 송암리 반곡리 안에 있는 수많은 마을들의 구석구석까지 살펴보고 어떤 길이 어디로 어떻게 이어졌는지도 다 알게 된 것 같다.
집을 나서서 부지런히 한 시간을 걸으면 방향에 따라서는 쉽게 태안읍을 벗어나게 된다. 그리하여 남면의 진산리, 근흥면의 두야리와 안기리, 소원면의 시목리, 원북면의 양산리 길도 수없이 걸었다. 좀더 욕심을 내는 날은 서산시 팔봉면의 진장리와 어송리, 부석면의 가사리 길도 걷게 되는데, 그것도 벌써 여러 번이다.
때로는 차를 가지고 가서 천수만의 광활한 들판 길을 걷기도 하고, 몽산포의 30리 해변 길을 걷기도 한다. 특히 이곳저곳의 해변 길은 특이한 호기심을 자아내고 더욱 아기자기한 느낌을 안겨준다.
이렇게 하루 30리 이상을 걸으면서 재미있는 생각도 많이 한다. 한 시간을 내처 걸어간 시오리 지점의 어떤 마을들에서는 곧잘 옛날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 그 마을에서 살았거나 지금도 살고 있는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도 함께 떠오른다. 어떻게 여기에서 매일같이 학교를 다녔을까. 책보를 허리에 두르고 마라톤을 하던 어렸을 적 친구들의 모습은 아릿함과 함께 신기한 느낌마저 갖게 한다.
가끔은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선생을 떠올리기도 한다. 정밀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30여 년 동안 전국 각지를 두루 돌아다닌 그의 발걸음을 상상해본다. 그가 그 시절 어느 날에는 여기도 걸었을 거야. 그 날 여기를 걸으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 갯바위에 앉아 잠시 휴식을 했을지도 몰라.
고산자 선생을 떠올리면 콧마루가 시큰해지기도 한다. 30여 년의 각고 끝에 '대동여지도'를 손수 그려서 판각을 하고, 그것을 흥선대원군에게 바쳤다지. 그 정밀함에 놀란 흥선대원군과 조정은 나라의 비밀을 누설한다는 죄목으로 지도 판각을 불태우고 고산자를 옥에 가두었다지. 그리하여 고산자 선생은 끝내 옥사를 했고….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30여 년 동안 전국 각지를 돌아다닌 김정호 선생의 각고도 눈물겹게 느껴지지만 그 노력이 보람을 거두기는커녕 오히려 그에게 비참한 고통과 죽음을 안겨준 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임진왜란이라는 엄청난 전란을 겪고도 전혀 변하지 않은 나라, 일본과는 대조적으로 하멜을 비롯한 네덜란드 표류 선원들을 적절히 이용하지 못하고 강제 억류만 함으로써 개방 발전의 기회를 스스로 봉쇄했던 나라, 김정호 선생이 30여 년 간의 각고 끝에 완성한 대동여지도의 판각을 불태우고 김정호 선생을 옥에 가두고 죽인 나라, 그 답답함과 무지몽매함을 생각하면 정말로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다.
이런저런 아픈 생각이며 한숨 때문에 나는 더욱 묵주기도에 열중할 수 있다. 내 비록 공부가 짧고 불민하여 세상에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동참 협력도 하지 못하고 거의 매일같이 홀로 오후 두세 시간씩을 걷는 일로 소일하는 한미한 처지일망정 뭔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소원하며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서 스스로 위안을 얻는다.
하루 30리씩을 걸으면 열흘이면 300리요, 백일이면 3천리가 된다. 일년에 1만리를 걷는 셈이다. 1만리는 한반도의 끝과 끝을 세 번 가는 거리다. 그 거리만큼 나는 '영원'을 추구하는 내 소망을 향하여 굳세게 나아가는 셈일 터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갓 '과정'일 뿐이다. 내가 어딘가를 향해 내처 한 시간을 걷고, 그리하여 묵주기도 20단을 끝내는 그 시오리 지점은 언제나 목적지가 아니다.
시오리를 걷는 것도,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다만 한갓 과정일 뿐이고, 과정의 반복일 뿐이다. 과정은 무엇인가. 인생을 의미함이 아니던가. 또 인생은 무엇인가. 한정된 '시험기간'을 사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욕심 없는 '나그네'를 소망하며 나그네의 심정으로 30리를 걷는다. 인생은 과정이고 시험기간임을 다시 한번 명심하면서….
아울러 '목적'이 있는 과정이어야 함을 가슴 깊이 되새기면서….
2006-07-1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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