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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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重年)일기 - 여덟 번째 "야고버 형님을 떠나보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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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향기
오늘 이른 아침에는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홍상조 야고버 형님 장례미사에 참례하는 분이 많아서 성전이 꽉찼습니다. 눅눅하고 후덥덥한 날씨임에도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검은색 넥타이까지 메고 오신 레지오단원들이 일열로 서서 쁘레시디움 단기를 들고 도열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전에 하직 인사를 하러 오신 야고버형님에게 예를 보내려고요. 기치창검이 찬란한 군대의 열병식, 레지오장으로 치뤄진 야고버 형님의 장례미사는 더없이 엄숙했고 용감했던 한 군인을 떠나보내는 슬픔만이 가득했습니다.
야고버 형님! 본당에서 세례를 받고 이십 년이 넘도록 한눈 팔지 않고 본당을 지키신 당신. 서울생활, 특히나 뉴코아에서 귀금속 가게를 오래 하신 분인데도 얼마나 순박하고 넉넉한 분인지 당최 셈을 모르는 어리숙한 사람같았습니다. 언제나 고향에 계신 연로하신 부모님을 걱정하고 친동기를 챙겨주다 못해 못난 이 아우한테 보여주신 우정 또한 남달랐던 당신의 모습에서 집안에서 가장의 도리를 다하는 형님의 품성을 엿볼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일찌기 따님을 출가시키고난뒤 앉은 자리마다 사위자랑이 늘어지고 첫 외손녀늘 보고서는 그 재롱 떠는 모습을 일일이 흉내내고 만면에 웃음을 띄는 것은 별로였습니다. 제가 팔불출해가며 흉을 봐도 막무가내로 자랑이 이어지던 그 모습, 그 목소리. 웃을 때는 온통 얼굴이 녹아내리던 순박했던 형님을 떠나보낸 우리는 이렇게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살아생전 그리던 하느님나라로 가는 길목에서 사랑하는 벗을 떠나보내는 애끓는 우리 맘 아시기나 한겁니까. 위로를 받아야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고 바로 당신을 떠나보내며 저마다 당신과의 얼켜있는 추억을 떠올리며 울음을 깨물고 있는 우리가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저와 당신의 인연은 참으로 오랜 세월이었고 그 세월마다 제게 배풀어 주시고 챙겨 주신 형님의 우정만이 가득합니다. 남성 쁘레시디움 중 최초의 Pr. 정의의 거울에서 시작한 성모님의 군인으로의 무인생활은 다윗의 탑을 거치며 이어내려왔었지요. 지난 오월에 1,000차 주회를 성대하게 치룬 성조들의 모후를 창단할 때가 기억이 선연하군요. 언제나 저와 함께 했던 군인의 길. 그때도 '날 따라와' 하고 이끌어 주고 아껴 주시던 형님의 따스했던 마음씀이가 이리도 눈물나게 하네요. 경북 영천의 시골마을 신녕면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인지라 구수한 시골양반 풍모에 인심 좋으신 형님을 레지오단원들 모두가 따르고 좋아했답니다. 지나고 보니 형님은 레지오와 울뜨레아 활동 외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성모님의 군사였습니다. 늠름한 기상만이 넘쳐흐르신 무인 중의 무인이셨습니다. 평생 성모님을 따르고 그분의 사랑에 만족하셨던 형님은 분명 하늘나라에서 성모님의 따뜻한 영접을 받으시리라 믿습니다. 비 내리는 본당 뜨락, 커다란 영구차를 둘러싸고 꾸리아 '성인들의 모후' 산하 수많은 쁘리시디움 단기가 당신을 말없이 보내고 있었습니다. 한평생 수많은 영적 전투에 나설 때마다 우리가 휘날리던 '성조들의 모후' 단기가 오늘은 주인을 잃은 슬픔에 잠겨서인가 비 속에 풀이 죽은 모습으로 애도하고 있습니다. 분명 당신은 훌륭히 살아왔고 하늘나라에서 성모님의 영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단, 너무 일찌기 우리곁을 떠난 죄만을 제외하고는...
영정에서 우리를 향해 웃고 있는 당신의 모습은 너무 젊어보이고 멋쟁이어서 더욱 가슴을 애닳게 하는 구려. "..오늘 이 세상 떠난 이 영혼 보소서, 주님을 믿고 살아온 그 보람 주소서.." 우린 이 노래를 너무 좋아했었지요. 이 노래 부르는 재미에 연도 간다고 하시던 당신. 87년도 잠원동 물난리 날때 지금은 미국 간 단원 견진 축하한다고 2차 아파트 잔디밭에서 차일을 치고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술을 마시던 기억이 새롭네요. 비는 정말 끊이지 않고 하염없이 내리는데 우리가 부르던 노래가 뭐였던지 기억나세요. 하고많은 노래 가운데 마지막으로 고장난 유성기마냥 부르고 또 부르던 노래는 바로 이 노래였답니다. 즐거운 술자리에서 왠 슬픈 노래람 하시겠지만 쁘래시디움 겨우 대여섯개도 안되던 그 때 연도, 참 많이 다녔지요. 그당시 신명 뻗치게 연도 다닌 건 이 노래 "오늘 이 세상 떠난" 위령 노래 부르는 재미였어요. 그런데 야박하게 오늘 장례미사에서 고인이 좋아하던 이 노래 삼절 끝까지 불러주면 안되나요. 이제사 기억납니다만 언젠가 연도 다녀온 술자리였나요. 그래요 젊은분이 세상을 여윈 상가여서 우린 기분이 몹시 찹찹했지요. 그래서 2단지 맥주집에서 서로 우울한 표정으로 술을 기울이다가 누군가 이런 말을 했지요. "내 죽으면 당신들 모두 이 노래 삼절까지 불러줄거지" 그럴 정도로 좋아했던 노래, 야박하게 다 불러 주지 못한 아우의 불찰을 용서하십시오 야고버 형님.
왜 그랬을까요? 한창 사업하는 재미, 승승장구하던 직장생활 더우기 이 주교님이 불을 당기신 새벽 테니스 치고나서 해장국 먹던 시절. 그래요 테니스에서 골프로 취미를 바꾸어 내기 골프 치고서 핸디싸움하던 좋은 시절이었는데 우울한 위령노래가 왠 말입니까. 세상재미에 쫓기며 한세상 보내고 있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우리가 언젠가는 가야할 하느님나라를 그리워하고 사모하였는가 모릅니다.
아직 기억 나세요 형님? 우리 세 명이 서강대 목요신앙강좌 다니던 일. 신앙이 뭔지 어떻게 기도하여야 하는가 하나하나 배우며 기뻐하던 그 시절이. 이젠 저만 외로이 남았네요. 벌써 7년 전에 하늘나라로 간 서 시몬을 버릇없이 먼저 갔다고 야단치시던 형님의 얼굴에는 그날 쉴사이없이 눈물만 흘러내리더군요. 그런데 이. 제. 저. 는... 어.떡.허.지.요. 저.만.남았.는.데..요. 회자정리라고 사람이 만나면 헤어지는 게 순리라지만 피정 다니며, 연도 함께 다니다가 싹튼 우리의 우정은 어쩌란 말입니까. 아무리 연도의 시작처럼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므로 주님 안에서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을 가집니다..." 하지만 이렇게 형님을 떠나보내는 일은 역시 슬픈 법입니다.
당신이 간암이라는 치명적인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세상에 이런 일이 형님한테 일어나다니....겨우 예순을 넘기고 이제 며누리 보려고 서둘러야 할 양반이 무슨 암이라니. 성체조배실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조배를 하시던 당신은 눈물만 흥건한 얼굴을 들고서 성체 안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게 아니겠어요.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지켜보는 이 아우의 마음은 억장이 내려앉는 것같았습니다. 아 당신도 무척 두려워 하시는구나. 이렇게 큰 병이 걸리고나면은 처음에는 얼마나 주님이 야속하고 원망스러울까요. 제가 성령기도회에서 형님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을테니 너무 염려마시라고 위로했더니 "아우님, 고마워. 이렇게 기도해 준다니 덜 무섭구먼" 하고 담담한 모습으로 고마워 하더니. 바로 지난 월요일. 늘 다니던 병원에서 대장암으로 입원해 있는 환우에게 교리를 하고 있던 중에 전화를 받고서는 부랴부랴 대학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신부님께서 막 병자성사를 주시더군요. 이미 눈동자는 시선을 잃었고 황달이 전신을 퍼져 있는 모습에서 이제 이 삼일이라는 걸 알아챘습니다. 그라시아 자매님이 정신은 이미 잃었는데도 무언가 찾고 있는 것같길레 물었대요. 신부님 찾는게요. 그런데 고개를 끄덕이더랍니다. 간절하게 마지막으로 찾았던 분은 주님이었겠지요. 온몸으로 당신이 살아온 세상 보람이 주님 외에는 어디 있겠어요. 마지막으로 당신을 떠나보내며 저는 형님의 손을 잡고서 "형님 이제 이별이야. 이 세상보다 훨씬 더좋다는 하느님나라에서 성모님 모시고 잘 살아. 참 시몬이 보면 기다려라고 해줘. 나도 곧 따라가지 않겠소" 그리고 하루도 채 못견디고 새벽에 주님 찾아 떠났다네요.
형님을 보내고 돌아온 저녁. 비가 그치며 오랫만에 삐죽이 얼굴을 내민 햇살을 내다보면서 포레의 레퀴엠을 들어봅니다. 감미로운 포레의 선율이 여름 더위를 식혀 주고 있는 상큼한 저녁에 전 이제 당신을 홀가분하게 보내드리려 했습니다. 모짜르트와는 달리 포레가 어울리겠지요. "나의 레퀴엠은, 죽음의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되어 왔다. 오히려 죽음의 자장가라고 불리었다. 내가 죽음에 대해서 느낀 것은 서글픈 스러짐이 아니라 행복한 구원이며, 영원한 행복에의 도달인 것이다."
형님 안녕히 가십시오. 세상 걱정 다 두고 홀가분하게 가셔서 성모님 만나는 기쁨 한껏 누리세요. 홍 . 상. 조. 야.고.버.. 형.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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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044 | [음악감상]잔잔한 노래<펌> | 2006-07-14 | 신희상 |
| 102043 | [음악감상]비오는 날에 카페에서<펌>|1| | 2006-07-14 | 신희상 |
| 102042 | 중년(重年)일기 - 여덟 번째 "야고버 형님을 떠나보내며"|10| | 2006-07-14 | 장기항 |
| 102041 | 세계젊은이성령대회! 젊은이여! 모여라 꽃동네로! | 2006-07-14 | 이재영 |
| 102040 | 부산교구 가톨릭 미술인회에서 드리는 말씀 | 2006-07-14 | 손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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