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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친구와 비움의 신앙은 우리를 참 행복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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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향 [cpark] 쪽지 캡슐

2006-08-19 ㅣ No.103471

 

인간은 원초적으로 행복과 완전히 충족된 삶을 갈망한다. 그런데 신앙인인 우리의 입장에선 이러한 인간의 갈망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그가 가르친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함으로서 이루어진다. 행복에 있어서의 신앙의 중요성은 100세 이상의 노인들에 대한 미국의 최근 설문 조사에서 신앙, 영성 생활을 자신들의 장수의 첫째 요인으로, 근면을 그 다음 요인으로 뽑은 결과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에 반해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에게도 구속 받지 않고 자신의 판단아래 자유롭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때, 즉 이성적 존재인 인간이 이성과 자유의 절대성의 원칙 아래 옳다고 믿는대로 행동할 때 행복과 충족된 삶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 같은 자기 중심주의,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얼핏 사람을 행복으로 이끌 것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반대로 사람을  ‘자아 함몰, 타인과 사회 공통체와의 단절”로 몰고 가 진실한 친구의 부재, 이로 인한 고독과 인간 소외. 정신적 황폐를 야기시킨다. 이 같은 불행의 근본 원인은 이 같은 자기중심주의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진리를 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행복학’의 권위자 에드 디너 일리노이대 교수는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가깝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과 친구가 많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모든 인간을 “하느님께서 자신의 모상에 따라 창조하신 존엄한 인격체”로, 하느님 안에서의 자신의 형제, 자매로 여기고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아가페적 사랑을 실천하여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신자 분들은 행복한 분들임에 틀림없다.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감정을 잘 다루는 법만 터득하면 친구 사귀기가 훨씬 쉬워진다고 조언한다. 그러려면 상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고 자신을 더 많이 내보이고 상대가 필요로 한 것을 최선을 다해 들어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다.

 

또 신뢰 받을 수 있어야 하며 긍정적인 의사 소통과 귀담아 듣는 자세 등이 필요하다. 심리학자들은 가장 행복한 사람은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많고 사교적이고 융통성이 많으며 외향적이라고 말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 신자들은 모든 일의 의지 처이신 가장 큰 친구 하느님과 모든 인간을 친구로 삼고 있으므로 행복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반면 불행한 사람은 인간 관계를 잘 맺지 못해 친구가 적거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최근 위와 같은 사실을 뒷밭침하는 연구 결과가 보도 돼 흥미롭다.

 

지난 6월 미국 사회과학 연구지인 어메리컨 소셜로지컬 리뷰가 현재 미국인들 중 44%가 진실한 친구가 없거나 한 명 뿐이라는 연구 결과를 게재해 미국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이 한 명도 대부분의 경우 남편 혹은 아내 등 자신의 반려자였다.

 

연구 결과를 좀 더 상술하면 진실한 친구 평균 수는 1985년의 3명에서 2명으로 줄어들고, 자신의 반려자를 포함 진실한 친구가 아예 한 명이다 응답한 경우는 19%로 드러났다. 진실한 친구가 아예 없다는 경우도 1985년의 10%에서 25%로 증가했다. 또 현재 미국 내 총 가구들 중 27.2%인 2천7백20만 가구가 주거자가 한 명인 단일인 가구였다. 1950년엔 10%였다.

 

‘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라고 공동 연구가들 중 한 사람인 듀크대학 사회학자 린 스미스-로빈은 말했다. “한 명인 경우 대부분 자신의 반려자를 꼽고 있는데, 그 사람과의 관계가 나빠지거나 사망할 경우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된다.

 

이 같은 사회적 고독, 단절, 진실한 친구가 점점 줄어드는 원인은 무엇일까?

 

연구원들은 여러 원인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즉각적, 신속한 결과를 요구하는 현 사회 상황이다. 능률을 중시하는 현 사회는 모든 것의 즉각적인 완성을 요구하며 시간이 걸리는 것들을 하기를 꺼려한다.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실한 친구 만들기 역시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현대인들은 이런 일에 시간을 내기를 꺼려한다고 페어레이 디킨슨 대학 심리학자 마가레트 집스는 말했다.

 

그 밖에 근무 시간, 출퇴근 시간의 증가, 사람간의 직접적인 접촉의 필요성을 감소시키고 있는 인터넷 사용의 확산, 전화를 걸거나 직접 만나는 대신 전자 우편으로 소식이나 용건을 주고 받음으로서 친구, 가족과 지내는 실제 시간이  줄어들어 진실한 친구, 가족 관계를 형성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고 연구원들은 덧붙여 말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의 입장에서 볼 때, 이 같은 진정한 친구 부재, 그로 인한 고독과 정신적 불행의 근본 원인은 위에서 말한대로 “자기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되고 판단 근거가 되어 자기 좋을대로 행동하고자 하는” 현대에 만연하고 있는 자기중심주의, 이기주의 때문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고독은 심할 경우 심장병과 우울증 발병 확률을 높이는 등 생명을 위협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한다. 또 고독은 인생의 어느 단계를 불문하고 닥친다. 자녀를 성장, 결혼시켜 떠나 보낸 중년 부부, 이혼 남.녀, 주위의 자손들이 모두 떠난 노인네들, 심지어 활기에 차 생활해야 하는 대학생들 중에도 고독에 휩싸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일리노이대학 카운셀링 센터 심리학자 죤 포엘은 대학 신입생들 중 많은 학생들이 대학 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려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숙사 자기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앞에 앉아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채팅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말한다.

 

다음으로 행복에 있어 진정한 친구 관계 못지않게, 아니 이보다 훨씬 중요한, 이에 앞서 우리가 갖춰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우리의 신앙 태도다. 그것은 다름아닌 예수님을 위해 우리 마음을 항상 비워두려 노력하는 비움의 신앙 태도다.

 

우리는 일상사, 신앙에 있어서 여백, 여유가 필요하다. 특히 신앙에 있어서는 100% 여백을 갖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다른 말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00% 비우도록 힘써 노력 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말이다. 그래야 그 공간에 나 대신 예수님이 차지하셔서 나를 그 분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의 마음을 100% 세속적인 내 욕심으로, 내 이기심, 자기 사랑으로 채워놓으면, 이는 십자가의 원수, 예수님의 원수나 다름없다고 바오로 사도는 필립비서 3,17--4,1에서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최후는 멸망뿐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뱃속을 하느님으로 삼고 자기네 수치를 오히려 자랑으로 생각하며 세상 일에만 마음을 쓰는 자들입니다.)

 

세속적 일에만, 자기의 일신 양명, 부와 지위 향상을 가져오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어느덧 자기만 알고, 이웃 형제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하느님은 생각에도 없는 세속적, 이기적 인간이 되어 버린다. 생각, 마음이, 세상적 욕심으로 가득 차 하느님이 도대체 헤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지게 되, 결국은 예수님의 원수나 다름없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우리 생각, 마음속에 10%, 20%, 50%, 70% 마음을 비워둘수록, 그만큼 그 빈자리를 하느님께서 들어오실, 임하실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이상으로 생각하고, 애써 추구해야 할 것은 우리 마음, 생각을 100% 비워 하느님이 온전히 임재하시도록, 그 분께서 우리의 모든 생각, 행동을 주관하시도록 해드리는 것인데, 이는 생각만큼 쉽지않다.

 

역사상 그렇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셨던 분들이 있었는데 그분들이 바로 성인, 성녀들로서, 그 중 대표적인 분이 성 프란치스코이다.(그의 평화의 기도:주여, 나를 당신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주여, 위로를 구하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를 구하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을 구하기 보다는 사랑하게 해주소서, 자기를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잊음으로서 찾으며,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으로 부활하리니----)

 

우리가 바람직한 진정한 친구 관계 뿐만 아니라, 매일 매일의 신앙 태도에 있어서도 위와 같이 비움의 태도를 실천할 때 우리는 참 행복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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