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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노할매 욕심 또 발동했네~♬(부엉골성지/하우현성당/이윤일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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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노할매 욕심 또 발동했네~♬
9시 출발 여주시 부엉골성지 배론 신학당의 꿈을 이어 한국천주교회 제2대 신학교인 예수성심신학교터가 있던 여주 강천면 부평리에 소재한 부엉골은 애초에 공소가 설정된 곳인데. 성심신학교의 소재로서 최초의 방인사제, 김대건안드레아,최양업토마스신부의 뒤를 이어 한국교회의 목자들을 키워낸 최초의 씨앗이 뿌려졌던 곳이라한다.
프랑스 페낭신학교의 한국신학생들이 기후와 풍토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서둘러 귀국들을 하자 조선교구 7대 교구장 블랑주교가 모든 것이 부족한가운데서도 서둘러 개교한 부엉골 예수성심신학교는 임시로 초가 몇칸을 매입해 신학교를 설치하여 돌아온 신학생 4명과 조선의 신학생 3명을 포함해 모두 7명의 신학생을 수학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좋지않은 시설과 콜레라인한 제반 병으로 선생과 학생이 사망하고, 한불조약이 체결. 비준되면서 블랑주교는 용산의 커다란 조선가옥에 새보금자리로 옮겨갔다 한다. 그후...모든 것이 옮겨가고 사람들의 발길도 끊어져버린 오지의 산골짝 부엉골 신학교 사적지 터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남아있는 것들이 지금은 거의 없다고 한다. 원래의 지번인 여주시 강천면 부평리 581로 찾아갔지만 논두렁 사이길로 겨우 차하나 들어갈 길만 외길로 나있더니 막다른 길로 오도가도 못하는 꽉막힌 길도없는. 울창한 제림숲.. 시작부터 오 맙소사!.... 다시 검색하고 또 검색을 하다보니 .. 세종천문대를 지나 1킬로쯤 올라가다 오른쪽 계곡을 타고 800미터를 가면 허름한 폐가가 한채나오며, 또 산길을 따라 200미터를 오르면 그날의 신학교였던 자리가 긴가민가? 있는것 같다는 정보를 발견해내고 ... 간신히 외딴길 차를 돌려 나와 또 돌고돌아 찾아간 세종천문대를 지나고... 한참을 또 차를 타고 비포장에 빠져가며 길따라 올라가니 오른쪽 계곡길이 또 나타난다. 거기서부터는 차를 세워두고., 800미터를 가라는 정보대로 걷고 또 걸어올라간다
모기떼와 날파리떼는 습지라서 그런지 미치게 흡혈귀되어 달려들고... 움펑움펑 물구덩이들은 장애물경기하듯 여기저기 패여있고... 산길은 가도 가도 끝은 없는것 같고....
가다가 중간지점쯤 오른쪽 구불텅 작은 산길이 나타나지만 그쪽은 계곡과는 상관없는 길같아 큰길 계곡따라 끝까지 오르니 버려진 폐가는 커녕 커다란 왕왕이 한놈이 또 잡아 묵을듯 철장 너머에서 길길이 뛰어댄다. 주말 농장처럼 생긴 넓은 터에 살림집 한채가 있고, 사람둘이 농작물에 물주기 바쁘다. 휴대폰에 저장된 허름한 집한채 사진을 보이며 "여기 근처에 이런 모양으로 버려진 폐허가 있는 곳을 아느냐"고 물으니 "저어기 꼭대기엔 커다란 양계장만 있지 여긴 그런곳 없다"는 말에 기운이 쫙~ "리노할배요. 휴~!우짜노... 오늘은 또 허탕칠 조짐이 다분하네요. 조오기 아래 아까 삼거리에서 헷갈리던 길로 쫌 올라가보다가 없으면 기냥 다음코스로 갑시더. 아이고 아부지.... 오늘도 기적을 보여달라믄 염치없겠지 예~?" 계곡따라 내려가는 길에 간간이 텐트들이 쳐져있는게 젊은아이 들이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는것 같지만 "세상에~ 모기 떼가 군대처럼 달겨들어 팔짝팔짝 뛰겠는데 저 아~들은 와 저라고 있노? 이해가 안되네" 삼거리까지 내려와 계곡도 없는 꼬불탕길을 돌아가니 물없는 계곡이 거기도 시작이 되더라만서도 나무숲만 울창한데 집은커녕 "앗!또 모기떼가" "반석아부지... 그만 갑시더. 팻말하나 안보이는 거룩한 땅을 찾아다니느니 우물에서 숭늉 끓여묵는게 낫겠네... 미치겠네 빨랑 갑시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좀만 더 올라가자는 할배 뒤를 따르며... '기냥 가자니께... 참 참 참'" 옷은 다젖고 눈앞엔 나무만 빽빽하게 울창한데 ....
"저기 집한채 보인다~!" "거짓말 하지마소... 집이 오데있노?"... "진짜 사진에 나와있던 허름한 집한채 보여"
순간 소름이 오싹~ 끼쳐오며 "옴마야! 하느님 무서워 죽겠습니더" 저만치 눈앞에 서있는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집한채....엔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부터 살아오다 떠나버린 사람들인지.. 녹슨 금성냉장고도 있고. 뜯어진 문살사이론 옷가지 몇개 걸려있고... 똥그란 벽시계도 멈춰있는 어마무시한 그집이 만세! 라도 부르고 싶을 만큼 인간승리의 짜릿함과 오늘도 또 하느님 우리를 이곳까지 데려다 주심에 두려움까지 느낄정도로 오싹한 감사로움이 함께한 순간이었다. 이제 90%는 달성했는데 나머지 200미터 산길을 또 오데로 올라가야 하는고? 관할성당 여주성당과 수원교구청에 아무리 전화해도 안받고..... 동서남북.. 손바닥에 침이라도 퇴~ 뱉어 갈수도 없어.... 사부작 사부작..~ 집뒤로 돌아가보니 막벌리병 . 소주병.. 깡통몇개 나뒹굴어 녹슬어 있는게 여~엉 께름칙하지만서도... 리노할배와 함께 있으니 저 작은 길따라 한번 올라가보자... 오데가 오덴지 모르겠지만서도... 여기까지 데불고 온 아부지가 또 인도해 주시겠거니 하고.. 헐떡거리며 오른 산길 200미터 즈음에 나타난 네모진 돌무더기를 보며.. "반석아부지.. 아무래도 여기가 그기가 맞는것 같네요. 교구에서도 이곳은 아리까리 해서 말뚝을 박아놓을수가 없다 카더마는 조금전 저앞에 오르면서 십자가달린 고리랑 묵주알 4개가 달랑 잘라져 나가 오데로 갔는지 이땅에 떨어졌는데 그냥 그자리라 믿고 인자 내려갑시더."
"전날 함덕골 교우촌 성지도 어렵게 찾아 갔다가 묵주한개 거게다 놓고 왔는데... 이리 힘들게 찾는데는 꼭 묵주를 떨구고 하는게 그것도 다 무슨 깨달음을 줄라꼬 그라는 것같아 내 믿음대로 생각할라요" 그래도 어차피 이곳 부엉골성지는 100%가 없는 곳이니께 95%면 금메달 딴기라요.." 2시30분경 달려가는 이윤일 요한 성인의 묘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묵리 산29번지 (1-2?)에 길가에 서있는 돌 이정표가 참 고맙다. 아까 부엉골에서 얼마나 애를 먹었든지..... 남대문에서 개똥이 찾는것 같이.. 세상에~ 또 오르는 길목이 맹지로 막혀있다. 산길로 580미터 오르라고 하는데 오데로 가라꼬.. 왼쪽 옆으로 음식점들 사이로 새로길을 내느라 공사중인 길을 헤치고 무작정 올라간다. 이번에도 리노할배랑 둘이니까 겁날꺼 없는 배짱으로 고~고!
290미터남았습니다. 140미터 남았습니다. ~~ 마지막 까풀막엔 또 골고타언덕이라며 70도 정도 경사길이 버티고 서서 우리의 순례길을 시험하고 있었지만서도 우리네 삶의 매순간이 40년 광야에 하느님의 참견하심과 흐뭇하심을 깨닫기를 바라신다는데...
꼭대기에 올라보니 이씨성을 가진 천주교십자가 그려진 무덤들 몇개 있어 갸우뚱거려 대다가 이윤일 성인 묘는 40미터 남았다는 표지를 보고는 또 올라 찾아갔더니 세상은 저아래 광활하게 펼쳐져 있고... 쌩쌩~ 차들은 토요일 오후 시간을 바쁘게도 날아다닌다. 그런데 성인의 영혼은 성모님 기도 가운데누워 지나간 시간. 머무는 시간. 다가오는 시간들 속에서 평화롭다. 대구 관덕정에 시신이 안치되었다가 고속도로가 나는 바람에 동생이 시신을 이곳 용인으로 모셔와 극진히 모시고 있다는 소식을 듣곤 대구교구에서 다시 대구 관덕정으로 모셔가 대구교구 2대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다한다. 이자리에서 70여년 넘게 잠들어 계시다 가셨지만 성령께선 거룩한 이땅에 머물러 계시어 이곳을 찾는 모든이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성모님의 간절한 기도를 참으로 예쁘고 아름답고 늠름한 소나무향기속에 불어넣어시어 솔솔 취하게 만들어 주시는것 같다.
십자가의 길도 없으니 편하게 퍼질고 앉아 성모님과 함께 셋이서 장미알 열단을 올려드리고 4시가 다되어 시원한 그늘 돌벤치에 앉아 영양김밥과 얼음콩국으로 기갈된 에너지 채우고 골고타 언덕길 미끄럼타며 내려 온다.
어라~ 그런데 저긴 또 뭐야? 푸른 초원 에 넓직하게 펼쳐진 저 언덕 길꼭대기엔 또 뭐가 있노? 싶어 혼자서 냅다 올라갔는데... "또 옴마야! 커다란 대형 십자고상에 예수님 달려계시고.. 순교성인들 무덤같은 네모진 돌무덤들이 즐비하게 위~아래! 두 칸에 꽉차있다. 거기 중간에 성모님 또 손모으고 계시고... "반석아부지! 이리와보소.. 여긴 또 오덴고 모르겠네요. 예수님도 있고 성모님도 있고.. 아까 꼭대기 이윤일성인 묘보다 더 근사한데 도대체 또 뭔고요?" 여긴 또 45도 경사길...가쁘게 오른 리노할배와 가만히 살펴보니 최씨네 천주교인 가족묘지다. 조상들부터 ~ 지난달 6월12일에 하늘나라간 50대 남자묘까지 아래쪽에 누워있다. "세상에! 이런 가족공동묘지도 있네... 여기는 이씨와 최씨가 집성지로 살아왔네 보네요. 저 위에는 이씨들 천주교인 묘... 여기는 최씨들 천주교인들 묘.. 신부들도 있다카네요" 저 아래 팔당댐 못지않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용덕저수지를 내려다보며 모든것 다 내려놓고 하늘나라 힐링에 잠겨있을 저 영혼들을 우리도 닮아 누려야 할텐데~ 야! 너무 좋다~"
내려오는 공사판 길에서 마주친 젊은 감독아저씨가 "아니 이리도 더운데 등산을 하고 오시다니 대단하십니다" "등산보다도 저기 꼭대기에 누워계신 이윤일 요한성인 께 인사하고 오는 길인데 이 동네는 모두 이씨 와 최씨가 토백이로 살던 곳인가 봐요" "네! 신부님도 있고 그렇대요~~"
마지막코스 하우현성당 성지 5시10분경 의왕시 청계동 201번지 김영근베드로 신부기념비와 성인 서루도비꼬 볼리외 신부 기념비가 있는 하우현 성당이다 얼마전에 손골성지가던 길에 잠깐 호기심에 들렀던 성당이다 시간에 쫓기며, 들렀던 그때는 작은성당만이 눈에 들어와 그냥 그렇구나 하고 돌아내려왔던 자리를 다시 찾아 자세히 차근차근 돌아보니 아름답고 아담한 스토리가 있는 성당이다. 국사봉꼭대기 둔토리 동굴이있는 청계산과 광교산맥을 잇는 골짜기에 위치한 하우현 성당은 19세기초반 천주교인의 피난처로 교우촌이 형성되었다가 그후 공소가 되어 알릭스 신부 와 교우들이 모금한 1500냥으로 초가목조 강당이 지어졌다한다.
1965년 현재의 근사한 성당으로 신축되어 100여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근사한 성당으로 지어져 200여명의 열심한 신자들이 그날의 교우촌과 같은 믿음으로 살고있다 한다. 선교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1866년 순교한 프랑스신부 볼리외 신부의 기념비와 김영근 신부의 기념비가 나란히 서있는 성당 뒤뜰에는 15처의 십자가 길이 있다. 특이한 15처길에서 만난 예수님은 하늘로 날아올라 부활과 승천을 다 누리며 우리에게 함께 가자고 손짓하고 계신다. 그 아래 로마군사들은 고개숙이고 앉아 "아~ 저분은 역시 하느님의 아들이셨구나!" 가슴치고 있는 모습들 도 있고..
뒤로는 또 사제관과 성모님 동산이 펼쳐져 있다. 여기서도 어둠이 내려와 앉을 시간이라 환희의 신비1단 구슬기둥 붙잡고 기도하고 성모님께 "죄송합니다~" 읍하곤 동산가운데 계시는 아기예수님 안고계시는 요셉성인과 성모님과 어른예수님사이에 "나도 낑겨주세요" 하며 꼽사리끼고 앉아 아양떨어보았다네~
7시가 넘어 갈길이 멀다를 외쳐대며... 집으로! 출발~ 오늘도 우리곁에서 우리와 함께. 우리를 챙겨주시는 주님과 함께 보낸 거룩하고 감사한 하루였다.
9시 다되어 도착하여 짐 보따리 보따리들 챙겨 내리며 "리노할배요.. 오늘도 참 고생많았습니더! 고맙습니데이~" 진심으로 했더니.... "말 ..로..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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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927 | 거룩함|2| | 2021-08-10 | 이문섭 |
| 99926 | 첫 눈|2| | 2021-08-10 | 이문섭 |
| 99925 | 리노할매 욕심 또 발동했네~♬(부엉골성지/하우현성당/이윤일묘)|2| | 2021-08-10 | 이명남 |
| 99924 | 기도 | 2021-08-10 | 이경숙 |
| 99923 | 연민|1| | 2021-08-10 | 이경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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