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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 박후재 요한 님등 6위의 순교 (순교일; 9월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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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 박큰아기 | | 마리아 | | 서소문 밖 | | 1839.09.03 | | | | 권 희 | | 바르바라 | | 서소문 밖 | | 1839.09.03 | | | | 박후재 | | 요한 | | 서소문 밖 | | 1839.09.03 | | | | 이정희 | | 바르바라 | | 서소문 밖 | | 1839.09.03 | | | | 이연희 | | 마리아 | | 서소문 밖 | | 1839.09.03 | | | | 김효주 | | 아녜스 | | 서소문 밖 | | 1839.0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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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박후재 요한 님
| | | ‘명관’으로도 불리던 박후재님은 경기도 용인 지방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1801년 신유박해로 아버지를 여읜 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성장하면서 물장사를 하는 노모를 도와 짚신과 미투리를 팔아 생활하였고, 36세 때 교우 처녀와 결혼하였다. 1839년 5월 아내를 피신시키고 혼자 체포된 박후재님은 포청에서 치도곤 40대를 맞는 가혹한 형벌을 당하였다. 살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드러나 피가 낭자하게 흘렀으나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함께 갇힌 교우들을 권면하고 또 흉악한 죄수들에게는 천주교의 바른 도리를 강론하셨다. 이어 형조로 이송되어 4개월 동안 옥살이를 한 박후재님은 9월 3일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41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
가난한 살림에 홀어머니를 도와 짚신과 미투리를 팔며 생활하다가 박해가 닥쳤을 때 36세에 늦결혼한 아내를 피신시키고 혼자 체포되어 살이 터지고 뼈가 드러나는 가혹한 형벌에도 오히려 다른 교우들을 격려하며 41세에 참수 순교하신 성 박후재 요한 님이시여 물질과 향략의 유혹이 난무하는 현세에 가정을 이끌고 있는 젊은 부부들에게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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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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