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은 가까운 사람들과 말할땐 가인을 [대법원에 있는 헌법]이라고 불렀습니다. 가인이 헌법원칙을 들어 정부를 사사건건 견재하는 걸 비꼰 말입니다. 가인은 1957년 [사법 종사자 들에겐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굶어죽는 것이 영광이다]는 말을 남기고 물러났지요. 그 자신이 국산 담배를 꼭 반으로 잘라 나눠 피우고, 기름을 때는 공관에서도 톱밥과 연탄으로 겨울을 났습니다. 60년대 서울고법원장까지 지낸 김홍섭 판사는 남대문 시장에서 사다 물 들인 군 작업복에 흰 고무신 차림으로 출근하곤 했습니다. 어쩌다 입은 양복도 남대문시장 헌 옷이거나 장인의 윗도리를 줄인 것입니다. 그가 전주 지방법원장에 부임하던 날 양복과 외투를 입고 모자까지 쓰고 나타나자 사람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눈길을 보냈습니다. 실은 모두 남대문 시장 헌 옷들이었습니다. 김판사는 후배들에게 [직장이나 동료에 불명애를 끼치는 일은 절대로 하지말고 어떤 불의한 이득이나 |
특권도 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조진만 대 법원장은 61년 취임하자마자 판결문과 법원 기록을 모두 한글화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가볍게 이를 믿을수 없고]라는 말을 [경경히 차를 조신키 난하고] 라고 쓰던 시절이었습니다.온 법조계가 들고일어 났습니다. [한자를 한글로 풀어쓰는 게 더 어렵다]고들 했습니다. 조 대법원장은 [한글만 아는 국민도 법을 읽고 이해해야 법 질서가 바로선다. 어려운 말로 유식한 체하는 습관때문에 법률 문화가 뒤지고 있다]며 뜻을 꺾지않았다고 합니다. 법원과 헌법 재판소가 지금 모두 중요한 시험대에 올라있습니다. 법원엔 고법부장판사 구속을 계기로 자정(自淨)의 회오리가 일고있지요. 헌재는 대통령 고시 동기가 소장이 되면서 [코드인사]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싸여있습니다.청렴을 몸으로 실현하고 외압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국민을 위한 길을 찾으려했던 이들 선배 법관을 등대로 삼으면 법관의 권위와 명예는 절로 설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