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6일 (수)
(녹)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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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맞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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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21-09-14 ㅣ No.149730

 

얼굴을 맞대고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오랜 침묵에

맛들인 깊은 내적 평화,

사하라 사막의 햇빛 찬란한

맑은 지평선이 주는 기쁨,

고독의 즐거움더 정확히 말하면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는 즐거움은

세속 도시에서 내 젊음의 꿈과

인간적 활동의 힘겨운 책임이

내게 선사했던 모든 것을

능가할 만한 그런 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래 속에 자신을 묻어 버리고

단순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사막의 아주 작은 '황제'의 삶을 살고자하는

이런 인간적 욕구의 내면 깊은 곳에서

가벼운 양심의 동요가 일었습니다.

너는 어째서 사막에 남고자 하는가?

사막이 좋아서인가,

아니면 하느님을 찾기 위해서인가?

네가 사막을 사랑하는 것이 더 이상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인가?

네가 여기에 남으려는 것은 저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고달프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돌아가라." 

양심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돌아가라." 고 장상이

내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세상 한 가운데로,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돌아와

형제들과 다시 엉크러졌습니다.

하지만 사정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무엇보다도 인간관이 바뀌었습니다.

나는 누군가가 수도회에 와서

내 기도생활을 흩뜨릴 때마다

인간도 하나의 절대적 존재라고

거듭거듭 되뇌었습니다.

과연 기도한다는 것이 오로지 무릎을

꿇는 것만을 뜻하는 것일까요?

기도하는 것이 힘겨운 어떤 순간에는

참으로 편안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기도도 하나의 도피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현실로부터의 도피일 수 있습니다.

인간도 하나의 절대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느님을 찾고

사랑하고 섬기듯이 인간을 찾고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이라 할 수 있는

이 두 차원을 향해 망설임 없이

끈질기게 발걸음을 내딛으셨습니다.

묵상의 비탈길을 기어올라

그분께 다가가면 갈수록

행동의 비탈길로 사람들을 향해

기어오르는 사랑에 대한 갈증은

그만큼 더 커질 것입니다.

이 땅에서 인간의 완전한 상태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 사랑이

동시에실질적으로생명력 넘치게

어우러져 합쳐진 상태입니다.

-보이지 않는 춤 중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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