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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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스테파노신부님 살레시오회 : 인간의 끝은 하느님 측의 시작입니다. 인간의 절망은 하느님 편의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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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석 [pys2848] 쪽지 캡슐

2021-09-15 ㅣ No.149764

이 풍진 세상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내 마음에 딱 드는 편안한 사람만 만나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어쩔 수없이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그, 정말이지 마주치고 싶지 않은 껄끄러운 그를 만나고, 그를 견디고, 인내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의 인간관계 맺음 방식은 참으로 큰 경종을 울리며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 한 바리사이 사람의 초청을 받아 식탁에 앉으셨을 때의 일입니다. 격식이나 체면과는 거리가 먼 예수님이셨습니다. 오랜만에 만나게 된 산해진미 앞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신바람이 났겠지요.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영양보충에 전념하시던 예수님 앞에 한 ‘껄끄러운 존재’가 등장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의 표현에 따르면 그 ‘껄끄러운 존재’는 다름 아닌 ‘죄인인 여자’였습니다. ‘행실이 양호하지 않은’ 여자였습니다. 아마도 ‘자영업’ 여성 이었던가 봅니다. 정황을 봤을 때 이 여인은 당시 사람들로부터 공공연히 손가락질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여인이 만찬석상에 등장한 것만 해도 부담스런 일이었는데, 그 여인이 하는 행동 좀 보십시오.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갈수록 점입가경이었습니다. 식사 중이시던 예수님의 뒤쪽 발치에 서서 대뜸 울기 시작합니다.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대성통곡을 터트렸습니다.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지 흘러내리는 눈물의 양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 눈물은 예수님의 발을 적셨습니다. 만찬 파티에서 대성통곡을 터트리고 있는 여인, 참 안 어울리는 장면이지요. 뿐만 아니었습니다. 여인의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이용해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더 괴로운 일은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마무리로 향유까지 발에 부었습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만일 제가 예수님 입장이었더라면, 여인을 향해 크게 호통을 쳤을 것입니다. “왜 하필 밥 먹는데 까지 와서 이 난리입니까? 제발 날 좀 가만히 놔주십시오. 그리고 찝찝하게 왜 남의 발에 눈물을 떨어트려요? 남사스럽게 남의 발에 입은 왜 맞춰요? 당장 그만 안 둬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조금도 몰아세우지 않으십니다. 그저 묵묵히 여인의 행동을 바라보십니다. 여인의 눈물에 담긴 지난 세월의 상처와 아픔에 깊은 연민의 정을 느낍니다. 여인의 회개하는 마음을 조용히 받아주십니다. 여인의 죄를 말끔히 씻어주십니다. 이윽고 여인에게 새 삶을 부여하십니다. 마침내 여인을 일으켜 세우십니다.

 

예수님의 달콤한 사랑은 갈 데 까지 간 여인의 마음을 녹이셨습니다.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은 지난 세월 여인이 받아왔던 갖은 상처를 순식간에 치유시켜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드러운 손길은 여인 내면에 깃들어 있던 인간 본래의 존엄성과 고귀한 가치를 다시금 복원시켜주셨습니다.

 

그 옛날 여인에게 보여주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상처입고 방황하는 우리들을 향해 오늘 똑같이 다가오십니다. 우리의 상처를 싸매주십니다. 새살을 돋게 하십니다.

  

상처 입은 영혼들이여, 힘을 내십시오. 영원한 좌절은 없습니다. 영원한 눈물도 없습니다. 끝도 없는 슬픔이란 더욱 더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앞길이 아무리 캄캄하다 하더라도 언젠가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마주 잡을 손 하나 반드시 오고야 말 것입니다.

  

‘위기가 호기’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수시로 겪는 인간적 한계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은총의 순간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더 깊이 사랑하시기 위한 배려가 고통입니다. 인간의 끝은 하느님 측의 시작입니다. 인간의 절망은 하느님 편의 기회입니다.

  

고통과 설움의 땅을 넘어 드넓은 벌판에 당당히 서십시오. 세상의 한 복판에 용감히 서십시오. 질기고도 질긴 고통의 세월 앞에 당당히 직면하십시오. 상처에 살이 쓰라려도 흔들리면서 세상의 고통 그 한가운데로 기쁘게 나아가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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