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9월 해미 성지에서 흘린 눈물
과연 나는 배교하지 않고 순교를 할 수 있을까?
소년 시절부터 가져온 의문이 하나 있다. 지금도 박해 시대라면, 그래서 내게도 순교 상황이 닥친다면 과연 배교하지 않고 순교를 할 수 있을까?
소년 시절의 의문, 나는 배교하지 않고 순교할 수 있을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순교자들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으며 자랐다. 컴퓨터도 텔레비전도 없고, 책도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전깃불도 없는 공소(公所) 방의 남폿불 아래서 노인 복사님으로부터 순교사화를 들었던 밤이 참 많다. 아련하면서도 정겨운 추억이다.
순교자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 실상이 너무도 무섭고 끔찍하게 느껴졌다. '나는 참혹한 고문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배교했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괜히 슬픔에 젖은 때도 있었지 싶다.
어른이 되어 오래 신앙생활을 해온 지금도 소년 시절의 그 의문을 떠올리곤 한다. 신기하게도 그 의문은 늘 새롭고, 내게 묘한 긴장감을 안겨주는 것 같다. 그 시절에 느꼈던 두려움, 온갖 고문과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나이 먹은 지금도 내 안에서 간헐적으로 묘하게 작용하는 셈이다.
우리는 순교라는 말을 대개는 피상적으로 접한다. 순교라는 말만 잠시 의식에 담을 뿐 순교의 '실상'까지 상상하는 일은 드물다. 순교는 옛날의 일일뿐이지 오늘의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교라는 말은 우리에게 현실감이 없는 단어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것을 생각하면 나는 일말의 다행스러움을 느낀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소년 시절부터 순교의 실상에 관한 얘기를 많이 들음으로써 오늘날에도 순교의 참혹한 실상을 쉽게 상상하게 되고, 그리하여 야릇한 두려움 속에서 '나도 과연 순교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져보곤 하니 말이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내 신앙생활을 좀더 잘 가다듬게 하는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 같다.
나는 순교 선열들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을 갖는다. 참혹하고도 처절한 순교의 실상을 상상할 때마다 경이로움도 함께 느낀다. '믿음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되새기게 된다. 믿음이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선물임을, 또 순교란 하느님의 크신 은총임을 거듭 확신하곤 한다.
종교 박해가 없는 오늘날에 더욱 '순교정신'이 필요하다는 말을 오래 전에 들었다. 박해 시대에는 피를 흘리는 '적색 순교'를 해야 했지만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요즘은 스스로 자신을 희생시키는 '백색 순교'를 함으로써 신앙생활을 풍성하게 꽃피워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순교정신은 신앙생활의 가장 귀중한 요체임을 다시금 확신한다. 신앙은 당연히 순교정신을 낳아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순교정신이란 바로 희생정신을 의미한다. 이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겸손과 양보와 인내도 희생 정신과 관련이 있고, 내 수고와 시간과 경제적 부담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이런저런 봉사도 희생정신으로 가능해진다. 신앙생활과 모든 봉사활동은 참된 희생정신이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
수백 명의 천주교인들이 순교한 해미 성지의 약수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해미 성지를 들른다. 내 12인승 승합차로 해미 성지에서 물을 가득 길어다가 여러 집에 나누어주는 일을 한다. 주로 수요일에 하는 그 일을 벌써 10년째 계속하고 있다. 해미와 덕산 사이 '태암석산'에서 물을 길어 온 세월까지 합하면 13년째다.
해미 성지는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므로 서산시청에서 매년 네 번씩 수질검사를 한다. 수질검사를 할 때마다 전혀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인데다 '약약수(弱藥水)'라는 판정까지 나왔다. 약약수는 '강약수(强弱手)'와 달리 일상적인 음용수로 적합한 물이라고 한다. 그만큼 물맛도 좋다.
심산유곡도 아닌 곳에서 나는 물이 어째서 약수일까? 해미 성지는 옛날 흥선대원군 때 수백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생매장을 당한 곳이 아닌가! 세계 유일의 생매장 성지가 아닌가! 생매장을 당한 순교자들의 몸에서 나온 육수(肉水)가 흘러 약수가 되었다는 얘기….
그래서 나는 해미 성지의 물을 '사수(四水)'라고 부른다. 네 가지 성격을 지닌 물이라는 뜻이다. 성지에서 나오는 물이니 성수(聖水)요, 살아 있는 물이니 생수(生水)요, 생매장을 당한 순교자들의 몸에서 흐르는 물이니 육수요, 서산시청의 수질검사 결과 약수이니, 네 가지 성격의 물, 즉 사수가 아닌가.
이렇게 좋은 물을 나만 먹어서는 안 된다. 70리 상간인 해미까지 가서 그 좋은 물을 길어다가 우리 집만 마신다면 그건 죄를 짓는 일이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더 나아가 하늘나라에 공로를 쌓기 위해서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내 승합차 가득 해미 성지의 물을 길어다가 여러 집에 나누어주는 일을 10년째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힘든 일이긴 하다. 일일이 여러 집을 다니며 물통을 거두는 일도, 물을 길어다가 골목을 다니며 배달해주는 일도 사실 고달프다. 제발 이제 그만 하라는 어머니의 성화도 종종 듣는다.
아무튼 그 덕에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해미 성지를 간다. 일주일에 한 번씩 그곳의 무명 순교 선열들을 뵙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물을 길으면서도 한 손에 묵주를 쥐고 기도를 계속한다.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1993년 9월 어느 날, 어머니의 칠순 잔치를 하던 야외 음식점의 분수(噴水) 연못에 네 살배기 조카아이가 빠져 죽었다. 참담한 슬픔을 겪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나를 위로하면서 "그러니께 하느님은 읎는 거지유?"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불현듯 순교자들을 떠올렸다. 순교 선열들은 왜 그토록 혹심한 고통 속에서 죽음을 택하셨을까? 과연 하느님이 계시지 않아서 그들은 죽은 것일까?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것을 온몸으로 증명하기 위해 그들은 고통을 겪으며 그렇게 죽어간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나를 해미 성지로 이끌었다. 홀로 그곳으로 달려가서 나는 오래도록 성지를 거닐고 바윗돌 위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있었다. 순교 선열들의 혹심한 고통과 죽음이 지금 이 시각에도 하느님의 존재를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음을 절절히 체감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종종 나 자신에 대해 흥미로운 물음표들을 떠올려보곤 한다. 내가 만약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과연 스스로 그분을 찾을 수 있었을까? 천주교 신자가 될 수 있었을까? 지금이 박해 시대라면, 그리하여 내게도 순교 상황이 닥친다면 내가 과연 배교하지 않고 순교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갖게 된 때부터 나는 아버지에 대해 더욱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청년 시절, 스스로 하느님을 찾고 천주교 신자가 되신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은 내 신앙생활을 더욱 충실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천주교계 월간 잡지인 <성모기사>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9월은 한국천주교회에서 '순교자의 달'로 지내는 달이기에 성모기사 9월호에 순교 관련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내 글을 즐겨 읽으시는 분들 중에는 천주교 신자도 많으신 듯하고, 또 이 글 역시 제 '사는 이야기'에 해당하므로 여기에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너그러우신 이해를 구합니다.
2006-09-0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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