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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성당의 수호자 축일을 맞이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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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9월 8일)에 태안 성당에서 그곳 본당의 수호자 축일(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신 축일) 경축미사에 교우들께 드린 강론을 참고 삼아 여기에 옯겨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수호자를 모시는 신앙적 전통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고자 해서입니다. -----------------------------
태안 성당의 수호자 축일을 맞이하여 (2006.9.8.20:00 태안 성당에서) 태안 본당의 형제자매님들께 축하 인사드립니다. 여러분 공동체의 수호자 축일을 맞이하여 제가 이 공동체와 더불어 주임신부님이신 구본국 신부님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론 우리 대전교구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전을 짓고 계신 분들이 여기 태안 본당의 공동체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첫눈에 이건 천주교회의 성당이다 하며 멀리서부터 확인할 수 있는 전통적 고틱 성당 건축을 거의 마무리해 가시는 여러분은 참으로 장하신 분들입니다. 제가 가끔 버스를 타고 이 태안 읍내를 지나다 보면 멀리서도 이 성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저의 마음에도 뿌듯한 자긍심을 지니게 됩니다. 본당 설립 42년 만에 우뚝 선 이 성전의 참으로 아름다운 위용을 보면서 저는 여기에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 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의 성전이 ‘성모님 탄신 축일’을 그 수호자 축일로 삼는다는 것은 그 내면에 있어서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뜻합니다. 여러분의 태안 본당이 그 출발부터 오늘 탄신을 기념하는 성모님을 수호자로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제가 교회 연감에서 다음과 같이 확인했습니다. 1964년 8월 4일부로 서산 본당에서 분가하여 독립 본당으로 출범한 여러분의 공동체는 미루어 보건대 아마 그 본당 설립 한 달 후쯤인 9월 8일의 ‘성모 성탄 축일’을 기점으로 하여 결속을 다지지 않았는가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이러한 여러분의 공동체가 맞이하는 축일을 이틀 앞두고 주임 신부님(구본국 신부님)께서 저를 초청하셨습니다. 저는 사실상 그날(이틀 전) 구본국 신부님께 다음주간에 있을 김대건 신부님 유해 순회기도를 준비하기 위해 여쭈어볼 것이 있어서 전화를 드렸었습니다. 태안 본당에서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를 모실 다음날인 9월 12일 오후에 저희 안면도 본당에서 그 유해를 모시러 오게 되면 협조해 주실 것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전화를 했는데 그 신부님께서 뜬금없이 먼저 9월 8일에 와서 미사의 강론을 해달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런 그 당부 말씀에 대해서 제가 완곡히 사양했습니다만 오늘 오후에 차량을 보내셔서 저를 납치하다시피 이 미사의 제단에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급히 오늘 축일의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매일미사’책 9월호의 오늘 축일 안내문을 읽어보았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성모 성탄 축일’은 4세기경부터 지내왔고, 603년에 예루살렘의 소프로니오 주교께서 성녀 안나에게 경당을 지어 봉헌했는데, 그 경당 자리는 성모 마리아께서 탄생한 곳이랍니다. 그 경당 봉헌을 기념하여 9월에 성모 탄신일을 축일로 지냈는데, 보편교회는 그 9월 8일을 고정적으로 성모님의 탄신 축일로 정하였답니다. 9월 8일이 그 축일로 확정된 까닭은 성모님의 원죄 없는 잉태 축일인 12월 8일로부터 10개월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그 모친인 성녀 안나의 태중에 잉태 되고 10개월 만인 9월 8일의 그 탄신을 기념하는 것은 일반적인 태아성장기간을 적용시킨 축일 배정이지요. 그리고 성모님께서 탄생하신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그 출산을 기리면서 그 모친인 성녀 안나에게 경당을 봉헌했다는 것 또한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러한 교회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이 축일을 지내는 것 역시 자연스런 우리 교회의 전통이 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서 그러한 자연스런 구성을 예수님의 성탄 축일(12월 25일)과 ‘주님 탄생 예고 축일’(3월 25일)의 연관성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성탄 대축일을 12월 25일에 전례로 기념하는 교회가 그 10개월을 거슬러 올라가서 천사의 전갈로 성모 마리아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잉태하시게 된 성서적 배경을 3월 25일에 ‘주님 탄생 예고(성모 영보) 축일’로 기념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전례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듯이 성모님의 탄신일인 9월 8일은 그분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신비에 대한 축일로부터 10개월만의 축일로서 지극히 자연스럽고, 그러한 축일이 그분의 탄신 장소에 그 모친을 기념하여 경당을 봉헌한 시점과 연관된다는 것 역시 우리 신앙의 소박하면서 자연스런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축일로 지내는 전례력과 더불어 성당이나 특정 장소의 수호자를 정하고 그 축제를 올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우리 신앙의 발로로써 그리스도교의 전통인 것입니다. 그러한 전통을 개신교 신자들은 잘 모르면서 우리 천주교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우리의 신앙적 전통에 관하여 개신교 측에서 무지하다는 것을 제가 알게 된 경험이 있습니다. 십수 년 전 제가 대전에서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종교개혁사’에 관한 세미나에 참가한 일이 있습니다. 저 나름으로는 갈라져 나간 형제들에 관하여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그 세미나에 참가하였는데, 그때 그곳 정 모 교수(목사)가 자기의 유럽 유학생활을 회고하면서 천주교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발언을 하더군요. 그분은 유학 중에 유럽의 성당들이 성인 이름을 따서 불리어지는 것을 보고 천주교를 예수님 제쳐두고 성인들이나 공경하는 이단이라고 판단하는 무식한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성 마르틴 성당’ ‘성녀 안나 성당’ ‘성 베드로 성당’ 등등으로 지어진 성당들의 이름을 그렇게 오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천주교의 역사를 모르는 무식의 소치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본래 아무 곳에나 아무런 의미도 없이 성당을 지어 봉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 목사께서 모르는 것이었지요. 본래 성당은 순교자의 무덤을 기초로 하여 짓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단 아래는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져 있어야 정상적인 성당인 것입니다. 그러한 전통을 따르기 위해서 박해가 끝난 후의 교회는 순교자가 아닌 일반 성인의 유해를 제단 밑에 안치하는 관습을 이어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성인의 이름을 따서 성당을 일컫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후대에 성당을 많이 짓게 되면서 꼭 성인의 유해를 모실 수 없다 하더라도 어떤 신앙적 의미를 부여하는 이름을 성당에 부여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당별로 성인이나 성서적 내용을 기념하는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그리스도인이 세례를 받으면서 어떤 성인의 생애를 모범으로 삼아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하며 세례명을 지니듯이 성당에도 그러한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언젠가 서울 영락교회의 그 유명한 한경직 목사께서 명동 성당을 빗대어 무식한 설교를 한 그 설교집을 제가 읽은 일이 있습니다. 그 책을 지금 제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저의 기억으로는, 한경직 목사께서 한번 명동 성당을 구경하게 되었다는데, 제단 둘레에 사도들의 성상이 벽화로 그려져 있고(장발 화백이 그린 14사도 상), 그 전면 중앙에 성모 마리아상(명동 대성당의 수호자이자 한국 천주교회의 수호자이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의 동상)이 높이 모셔져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게 된 한경직 목사께서 하시는 말씀이, “천주교라는 곳은 그렇듯이 예수님을 제쳐두고 마리아나 다른 사도들을 섬기는 곳이다.” 라는 비난이었습니다. 참으로 몰라도 한참 모르는 무식의 소치인 것입니다. 본래 성당은 순교자(성인)들의 무덤 위에 세워지는 전통의 까닭이 있습니다. 우리가 봉헌하는 인류구원의 참 제사인 미사성제는 사실상 예수님의 십자가상 희생제사의 재현입니다. 그러므로 미사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그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무덤에서 미사성제를 봉헌하는 것이 미사성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돌아가신 몸이 참 제사의 제단이자 그 위에서 올려지는 참 제물이 또한 예수님의 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장에 세워지는 그 제사의 성당은 현실적으로 예루살렘의 예수님 무덤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당을 짓고 제대를 설치하게 되면 그 제대의 다섯 곳에 십자 표시를 하고 중앙에 성석(聖石)을 박아 넣어 주교님의 축성을 받게 됩니다. 그 다섯 곳의 십자가 표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얻으신 5상(五傷)을 상징하고 중앙의 성석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합니다. 즉 그 성석은 예수님의 돌아가셨던 유해(聖骸)를 상징하는데, 그 예수님의 몸 대신에 순교자의 유해를 그 성석에 넣어서 제단에 박아 넣는 관습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나 순교자의 유해라는 것이 세계의 모든 성당에 모셔질 수 없기 때문에 그 상징적인 의미로 성석을 축성하여 제대를 설치하는 관습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성당에 어떤 순교자나 성인의 이름을 붙여서 거기 제단이 그러한 의미의 거룩한 곳으로 성별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상 희생 제사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렇듯이 성당 이름을 짓는 그 근거로 본래 순교자의 무덤에서 미사를 올리던 역사를 우리는 로마의 카타콤바에서 그 시원으로 연상할 수 있습니다. 카타콤바는 본래 옛 로마 제국 시대에 로마의 성밖에 죽은 사람을 묻던 공동묘지였습니다. 그래서 박해 시에 순교한 순교자들의 시체를 또한 거기에 묻곤 했지요. 그러면서 그리스도 신자들이 자연스럽게 그 카타콤바의 순교자들 무덤에 모여 기도하고 거기서 비밀리에 미사를 봉헌하곤 했습니다. 로마 지역의 지질이 석회분이 많은 탓에 층층으로 무덤을 써놓으면 그 사이로 무너지지 않는 복도처럼 공간이 생기는 공동묘지가 그 카타콤바입니다. 그러므로 그 카타콤바에 박해시의 신자들이 모여서 순교자의 무덤을 제단으로 삼아 미사성제를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듯이 순교자들의 무덤을 제단으로 삼았던 박해시의 관례대로 후대에도 순교자나 성인의 유해를 기단으로 하는 제대를 중심으로 하여 성당을 짓는 전통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성당을 어떤 순교자나 성인의 이름을 붙여 명명하게 된 것이 우리 신앙의 전통입니다만, 그러한 역사를 알지 못하는 한국의 개신교 사람들이 몰지각한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듯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몸을 상징한 제대를 기점으로 하는 성당 건축의 역사와 더불어 후대에 성인이나 교회의 주요 인물들의 무덤을 성당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성당 밑바닥은 무덤입니다. 그런 사실로 성당 지하에서 유골이 발견되는 것을 두고 악의의 사람들은 무식하게도 사제의 사생아를 암매장해서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무식한 주장을 하는데, 그 대표적인 무식의 주장이 김찬삼 씨의 여행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수호성인(守護聖人 또는主保聖人)을 모시는 그리스도인들의 전통을 잘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신자는 각자 특별히 자기가 좋아하는 성인이나 성녀를 선택하여 그분들을 자기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그분께서 이 세상에 사실 때 실천한 모범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천주교 신자들이 영세할 때 속명 외에 자기 본명이라 하여 세례명을 갖게 되는 이 전통이 13세기부터는 법제화 되고 현대에 와서는 그 규칙을 정하여 교회법에서도 이를 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담으로 이야기 하나 덧붙이자면, 저의 이름을 따서 ‘종관’이라는 예쁜 아가씨가 지금 시집을 갔는지 아닌지 가끔 제가 궁금한 생각을 합니다. 그 아가씨는 이탈리아의 아가씨인데 지금 스물다섯 살이나 스물여섯 살일 것입니다. 그 아가씨가 저의 이름 ‘종관’을 갖게 된 사연이 있습니다. 제가 로마에 유학 가서 첫해에 철학 석사 학위를 얻으려고 열심히 공부를 하던 중 어학 실력 즉 이탈리아어의 실력이 딸려서 도무지 공부를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학기 휴학을 하고 이탈리아 중부의 유명한 중세 도시인 Perugia에 가서 거기 외국인 어학원을 다니게 되었는데, 하숙집을 전전하다가 그곳 본당의 주임 신부님을 찾아가서 저의 처지를 말하고 그곳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평일에는 하숙집에서 공부하며 먹고 자고 아침마다 성당에 가서 미사 드리고 학교 다녔는데, 주일(主日)에는 그 성당의 주일미사를 집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의 이탈리아어 실력이 향상되고 주일미사에서 강론을 하는데 그곳 신자들이 저의 강론을 잘 알아들을 정도가 되어서 하숙집 할머니와 그 동네 아줌마들이 저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아줌마들이 저를 보고 얼굴만 동양 사람이지 강론 때 들리는 말로는 이탈리아 사람과 똑 같다는 등 칭찬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숙집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그 동네 젊은 부부에게 아기가 하나 탄생하였는데 그게 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곧 성당에서 그 아기 세례식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어른이 영세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본래 모두가 나서부터 영세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식이 있다면 그건 무조건 신생아의 영세입니다. 그러던 중 그 성당에 제가 아침 평일미사를 봉헌하러 가니까 본당 주임신부님께서 저보고 그 아기의 세례를 집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주일에 그 아기의 세례를 제가 집전하는데, 그 부모가 자기 딸의 이름을 세례 집전 사제인 저의 이름을 따서 붙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이름 따서 붙이게 되면 그것이 곧 시청에 호적으로 올리는 그 아기의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뭐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시큰둥하고 있으니까 주임 신부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곳 이탈리아에서는 유아세례가 그저 일반적인 일이기 때문에 이번의 경우 외국인 사제 그것도 멀리 동양의 한국인 사제가 그 아기의 세례를 집전하게 된 것은 그 지방 지역 신문의 뉴스거리라면서, 그 아기가 커서 나중에 자기는 그렇게 특별한 케이스로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아마 냉담도 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 확실한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하여 집전 사제인 저의 이름을 따서 하는 게 참으로 바람직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세례명인 ‘가브리엘’을 따서 그 아기 세례명을 정하자고 했습니다. 그 동네에서 저를 부를 때는 ‘돈 가브리엘레(Don Gabriele : 가브리엘 신부님)’라고 불렀으니까 그러면 그 아기를 ‘가브리엘라(Gabriela)’라 하자고 제가 둘러댔더니, 그 부모가 저에게 하는 말이 “아니, 신부님은 동양 사람인데 어찌 서양사람 이름인 가브리엘레입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나의 본 이름은 따로 있는데 세례 이름으로 가브리엘이라고 대답했더니 저의 본 이름을 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이름은 ‘종관’이라고 하니까 자기 딸의 이름을 ‘종과니’라고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이름 ‘종관’을 그쪽 이탈리아 사람들의 발음으로 편리하도록 ‘치옹과니’라 붙여서 세례를 주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 아이의 이름이 ‘Cionguani’가 된 것입니다. 그 후 저는 로마로 돌아가 공부를 계속하게 되었고, 그 후 무심하게 그 아기 ‘치옹과니’의 소식을 알아보지 않고 세월만 25년도 넘게 흘러 오늘에 이르렀는데, 제가 가끔 옛적의 유학 생활을 회상하게 되면 그 ‘치옹과니’라는 여자 아이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아마 매우 예쁠 것 같습니다. 서양에서는 조상이나 부모나 또는 어떤 존경할만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자녀의 이름으로 삼아 세례를 주는 것이 일반적으로 흔한 일입니다. 그것이 곧 그 자녀에게 부여하는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그렇듯이 우리 그리스도 신자가 존경하는 성인의 이름으로 세례명을 정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아름답고 또 신앙적인 관습입니다. 개신교에서는 그런 관습을 모르면서 괜히 트집을 잡습니다. 그런 트집이란 한국의 개신교에서나 그렇지 서양에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서양의 개신교 신자들도 세례 받으면서 그런 전통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한국의 뼈대 있는 집안에서는 아이의 이름이란 함부로 짓는 것이 아니고 족보에 맞게 항렬을 따져서 짓는 게 관습이지요. 그렇다면 한국의 개신교 사람들이 그리스도 신자다운 전통의 족보에 따른 이름이랄 수 있는 세례명과 수호성인을 무시하고 비난한다는 것은 뼈대도 모르는 상놈의 짓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은 전통적으로 단체들 또는 성당마다 수호성인을 모실 수 있고 특정한 직업이나 사업에도 수호성인을 모십니다. 예컨대 자동차 기사들이나 여행자의 주보성인은 성 크리스토폴, 전교사업의 주보성인은 성녀 소화 데레사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입니다. 그밖에도 수호성인의 예를 보면, 노동자들의 수호자이며 임종자의 수호자로 성 요셉을 모시고, 의사들의 수호자로 성 루카를, 유럽 대륙의 수호자로 성 베네딕도 아빠스를, 로마시민들의 수호자로 성녀 체칠리아 순교자를, 파리시민들의 수호자로 성녀 제노베파 순교자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 사제를 모십니다. 직업인으로서 특수하게 가죽제품 제조업자들은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를 모시는데 그 사도께서는 산채로 온몸의 가죽을 벗기는 처형으로 순교하셨다 해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단체나 성당이나 개인이 신앙적 이유로 그 특수한 내용을 따라 이름을 짓는 것은 아름다운 전통이자 신앙적 관습입니다. 참고적으로 우리나라 각 본당에서 할머니들의 모임을 대개 ‘안나회’라는 명칭으로 정하지요. 성모 마리아의 모친인 성녀 안나를 그 모임의 수호자로 정하는데, 실제로 연세 드신 어머니들이 젊은 어머니들의 어머니로서 경험과 연륜으로 모범을 보이고자 하는 취지에서 그렇습니다. 그렇듯이 태안 본당 공동체는 ‘성모 마리아’를 수호자로 모시되, 그분의 탄신일을 기념으로 하여 그 탄신의 의미를 공동체 안에서 특별히 구현하고자 하는 취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태안 본당이 이제 설립 42년이 된 성숙한 공동체로서 우리 교구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을 건축하여 그 봉헌을 목전에 두고 있어 참으로 경하스런 일입니다. 수호성인이신 성모님의 탄신을 기념하리만치 아주 아름다운 성당을 새로이 지어 성모님의 이름을 따서 하느님께 봉헌하게 된 공동체답게 이 지역에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말씀님’을 계속 나아주기 바랍니다. ‘하느님의 말씀님’이란 예수님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성모님을 통하여 그리 하셨듯이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하느님의 말씀님’께서 태안 본당 공동체를 통하여 계속 이 지역에 육화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즉 예수님을 이 지역에 낳아드리는 성모님을 닮은 공동체이기를 기원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태안 본당이라는 어머니(母本堂)에게서 먼저 맏아들로 태어난 공동체(子本堂)가 안면도 본당이지요. 그러한 아들 본당의 제가 오늘 어머니 본당의 수호자 축일을 경축하여 인사드리게 되어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그리고 더욱 이 어머니 본당에서 계속적으로 원북 지역, 이원 지역, 소원 지역, 근흥 지역 등으로 아들 본당이 탄생되어 가기를 오늘 ‘복되신 동정 성모의 탄신 축일’에 여러분과 함께 기도합니다.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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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167 | 축 성경쓰기 100%. 남희경 레오님.|17| | 2006-09-10 | 권태하 |
| 104166 | 자궁체험으로 나의 삶 이해하기 | 2006-09-10 | 김경민 |
| 104165 | 태안 성당의 수호자 축일을 맞이하여|7| | 2006-09-10 | 윤종관 |
| 104161 | 유딧9~10장(유딧의 기도. 홀로페르네스에게로 간 유딧)|11| | 2006-09-09 | 최명희 |
| 104159 |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8| | 2006-09-09 | 배봉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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