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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바오로가 오늘날 살아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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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철 [hl1ye] 쪽지 캡슐

2006-09-18 ㅣ No.104425

 

                            성바오로가 오늘날 살아있다면...


  십자가를 안테나로!

  며칠 전 성서쓰기를 완수하여 명예의 전당에 등극한 어느 자매님이 제게 이런 소감을 피력하였습니다.

  “이번 성서쓰기를 통해 사도 성바오로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고.

  그리고 수년 전에 시복이 되신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님 (성바오로 가족수도회 창립자)은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사도 성바오로가 오늘날 살아있다면 틀림없이 저널리스트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의 12제자도 아니었고 한때는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교인들을 박해했던 사람(사도 9장 참조)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유대인들에게는 물론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2,0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모든 곳에 복음의 빛을 비추어주고 있고 또 문제가 있는 곳에 그 해답을 던져주고 있습니다.(제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무려 700군데 이상이 그의 서간문을 인용했음)


  지난 9월 15일, 이탈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종군여기자이자 소설가인 오리아나 팔라치가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20세기 최고의 저널리스트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팔라치는 중동전쟁, 베트남전, 걸프전 등의 전장에서 거침없는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팔라치는 기자로서의 성공 이후에도 원래 꿈이었던 작가에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한 남자', '인샬라',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 보내는 편지' 등의 작품을 남겨 그녀가 기자로서 얻은 이상의 명성을 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말년에 이슬람교의 폭력적인 극단주위를 비난하는 책을 펴냈다가 인종주위적 증오감을 부추긴 혐의로 프랑스 파리에서 궐석재판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며칠 전에 선종한 오리아나 팔라치가 오늘날 복잡한 정치상황, 또 분쟁지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든 저널리스트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기를 바라고 또 우리 역시 '오늘날의 작은 바오로로서 살아있는 복음 기사를 매일매일 쓸 것'을 다짐하면서 오리아나 팔라치에 대한 김기철님의 신문칼럼과 미국의 한 언론인을 다룬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을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팔라치의 생전의 모습)

 

                           < 오리아나 팔라치 >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가 한 외국 여기자와 인터뷰했을 때 일이다. 기자는 1달러를 구걸하느라 아우성치는 국민의 비참한 생활, 황제 보좌관이 쿠데타를 시도했던 사건처럼 껄끄러운 질문부터 던지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화를 내며 화제를 돌리던 황제는 결국 폭발했다. “이 여자 누구야? 어디서 온 여자야? 꺼져. 이제 끝이야!” 그 여자는 오리아나 팔라치였다.


  이란혁명 직후인 1979년 팔라치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를 만났다. 그녀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 문제를 따지면서 도발적으로 물었다. “차도르를 입고 어떻게 수영을 합니까.” 호메이니는 “당신이 상관할 바 아니다. 이슬람 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지 않으면 된다”고 되받았다. 팔라치는 “그렇다면 이 시시하고 고리타분한 걸레조각을 당장 벗겠다”며 예의상 입었던 차도르를 벗어 던졌다. 격분한 호메이니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팔라치는 헨리 키신저를 만나서는 느닷없이 “대통령보다 큰 명성과 인기를 누리는 이유가 뭔가요”라며 슬쩍 비위를 맞췄다. 키신저가 덥석 미끼를 물었다. “중요한 건 내가 항상 혼자 행동한다는 겁니다. 미국인은 말 타고 혼자 맨 앞에 서서 마차행렬을 이끄는 카우보이를 좋아합니다.” 이 말을 두고 “대통령도 무시하고 혼자 잘난 척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키신저는 “팔라치를 만난 것이 평생 가장 멍청한 일이었다”고 후회했다.


  팔라치는 누구를 만나든 당당하고 거침없고 공격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인터뷰 모음집 서문에 “나는 수천 가지 분노를 가지고 인터뷰에 임했다. 그 수천 가지 분노는 수천 개 질문이 되어 내가 상대에게 공격을 퍼붓기 전에 먼저 나를 공격했다”고 썼다. 미리 꼼꼼하게 준비를 쌓아 스스로 확신을 갖고 인터뷰 상대를 치고 들어갔다는 뜻이다.


  팔라치의 혹독한 질문을 겁내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는 정치가가 잇따랐다. 대신 팔라치 스스로가 인터뷰 대상이 됐다. 그녀는 베트남과 중동을 누빈 종군기자이자 ‘한 남자’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작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나는 내가 쓴 글처럼 산다. 나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고 했던 팔라치가 암으로 떠났다. 그녀에겐 흔히 ‘신화’니 ‘전설’이니 하는 수식어가 붙는다. 사람들은 그녀의 삶을 신비롭게 바라본다. 그러나 그녀를 내내 빛낸 것은 권위에 몸사리지 않고 위선을 벗겨내던 용기였다.   (김기천 논설위원 / 조선일보)

 


                             <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 >


  1935년부터 1961년까지 미국의 메이저 방송사 중 하나인 CBS에서 뉴스맨으로 명성을 날렸던 실존인물 에드워드 R. 머로(데이빗 스트라던 분)와 프로듀서 프레드 프렌들리(조지 클루니 분)는 인기 뉴스 다큐멘터리인 “SEE IT NOW”를 진행하며, 매 회마다 정치 사회적인 뜨거운 이슈를 던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영화는 1950년대 초반, 미국 사회를 레드 콤플렉스에 빠뜨렸던 맥카시 열풍의 장본인 조셉 맥카시 상원의원과 언론의 양심을 대변했던 에드워드 머로 뉴스 팀의 역사에 길이 남을 대결을 다루고 있다.


  조셉 매카시 의원은 공산주의자 및 친 공산주의자들을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반사회적 스파이들로 규정하고, 사회 각 분야에 걸쳐서 대대적인 빨갱이 색출 작업에 열을 올린다. 극에 달한 맥카시의 레드 혐오증으로 인해, 공산주의와는 아무 상관없는 무고한 사람들까지 빨갱이로 몰리는 사태가 발생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감히 그와 맞서려는 자들이 없는 상황. 이때 바른 말 잘 하는 머로와 그의 뉴스 팀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맥카시의 부당함에 정면으로 도전, 마침내 그를 몰락시키고 헌법에 명시된 개인의 권리를 되찾는데 크나큰 공헌을 한다...


                                      <성서묵상>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내가 말을 할 때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고 복음의 심오한 진리를 전할 때에 담대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에페 6, 19)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 http://hompy.dreamwiz.com/hl1y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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