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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8일 (금)
(녹)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예수님과 함께 있던 여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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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4-03-31 ㅣ No.171079

어제 부활 성야 미사를 참석하였습니다. 미사에 참여를 하기 전에 신부님께 축하 인사를 카톡으로 드렸습니다. 노랑 개나리 꽃과 함께요. 노란색은 부활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신부님의 삶 자체가 부활의 삶을 사시기에 감사와 축하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미사를 참석하면서 눈물이 나왔어요. 예수님의 참혹한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였습니다. 세상에 절망이라고 할까요? 세상에 아무것도 없이 희망도 없고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세상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의 마음이고 상황입니다. 저도 그 상황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도저히 이 상황을 어찌 감당하지? 그 상황입니다. 그런데 어제 촛불 예식을 하면서 한편의 빛을 보면서 감사 "와!!!" 했습니다. 저의 어두운 가슴에 한줄기 빛을 보았고 와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시어서 먼저 찾은 곳이 어디일까? 그것은 성모님입니다. 성모님도 마음이 무너지는 그런 상황입니다. 아들이 사형수로 극형으로 죽었습니다. 나도 같이 죽고 싶은 마음이셨을 것 같아요. 그런 세상 절망 중에 빠진 성모님에게 먼저 예수님이 찾아가십니다. 엄마!! 엄마!!..그 순간 성모님은 아들 아들 !! 그 순간 예수님을 안고 우시는 성모님을 묵상해 봅니다. 엄마 !! 아들!! 나 다시 살아났어!! 엄마 걱정하지마!! 그렇게 어머니와 아들 예수님은 꼭 끼안습니다 얼굴에서 희색이 돌고 이런 순간이 어디에 있나요.. 그리고 복음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의 무덤에 가보았습니다. 그래서 보았더니 주님의 무덤엔 주님의 몸이 않보입니다. 비어 있습니다. 빈무덤을 묵상해 보니, 그 빈 무덤은 우리에게 큰 것을 보게 해주십니다. 절망이라면 주님의 시신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간들이 주님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LOSER로 끝이 났습니다. 주님의 승리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영적인 승리 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꼭 잊지 말고 바라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 입니다. 영적인 존재라는 것은 내가 이승에서도 영이 내 안에서 있고 그 영으로 내가 생겨난 것이고 그 영의 힘으로 살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삶의 절망 중에서도 영으로 인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영적인 나의 본 모습을 계속 살려 나가면 죽음으로 간다하여도 난 죽은 것이 아니라 계속 하느님과 영적으로 같이 천국에서 넘어 간 것입니다. 죽어서 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예수님으로 부터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런 나를 원하시고 그렇게 되길 바라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강생하시고 수고 수난을 격으셨으며 좌절과 절망으로 빠질 뻔 했던 나를 희망스럽게 살도록 주님 친히 부활하신 것입니다. 항상 나의 영적인 정체성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안에 나의 진 모습이 있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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