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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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문턱에서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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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사람들의 약점 아닌 약점들을 들춰내고 들먹이는 부분들이 많이 보인다 성경이기에 본성에서 죄악시되는 부분들, 행위에서 죄악이 되는 부분들을 그 중에서도 결정적인 약점들로 삼아 보이기도 한다그렇게 하느님의 선의 역사와 사람들의 죄의 역사는 대립각을 세우고 대척점을 형성하며 많은 충돌과 투쟁을 야기한다 성경저자들조차도 스스로들의 그런 약점을들 과감하고도 적나라하게 밝히는 경우가 많이 보이는데 왜 그랬는가 하고 물어볼 수나 있을까 그런 성경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이해와 통찰을 시도하는데 그런 해석들과 추론들이 또한 이 세상에는 산더미이다 성경저자들이건,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건 모두가 다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카톨릭의 성경에 대한 입장은 영감에 근거한 스토리들과 텍스트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관점이 누군가로부터 생겨서 시작되었는지 역시나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다 세상에서 인간들이 보는 눈이 대체로 같은 방향이고 같은 지점이면 그리고 같은 지향까지 더해지면 그것은 관점이라는 것을 만들고 그 관점에 입각한 입장이 성립된다 카톨릭의 입장도 결국은 그런 관점들의 형성과 수렴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스피리쳘 센스, 곧 영감으로 인한, 영감을 통한 것은 사람들만의 것, 곧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말도 된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실로서의 근거(입증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믿는 것'이다 '그렇게, 그렇다고 믿는 것'이다 안다라는 것과 믿는다라는 것이 인간지성에 있어서 어떤 성격을 이루고 어떤 상관관계로 활성화되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분명히 모르는 일이다 누구도 어떤 사실을 믿는다라고 하지는 않는다 어떤 것이 사실이고 사실이라는 것이 되고, 사실이라면 사람은 그것에 대해 안다는 입장을 취한다 분몀히 안다라고 한다 때론 보았다라고도 한다 그리고 안다와 본다는 동일시되어 많이 쓰인다 모든 사실은 눈에 보이고 눈 앞에 놓이게 되니 말이다 그렇게 사람이 언어로 진실 혹은 사실을 표현할 때는 안다, 보다, 믿는다라는 의미가 혼용되어 그렇게 보인다라든지, 그렇게 볼 수 있다라든지의 논리 아닌 논리가 파생되고 그 논리의 관점이 또 생긴다 그런 비약이 끝이 없으면 대체로 그 끝지점에는 아이러니와 딜레마가 도사리고 있다 그러니 분명히 사실 같이 여기도록, 그렇게 여길수 있는 언어상의 관점이 필요하게 되는데. 사실로 볼 수 없는 모든 진실에는 그런 언어상의 관점이 최소한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살 수 있는 입장을 성립시킨다 그래서 영감은 그렇게 보는 관점인 동시에 입장인 것이다 성경에 대한 카톨릭은 말이다 살아있는 것들의 최대의 약점은 죽음이다 약점을 뛰어넘는 난관이기도 하다 질서와 시스템, 지배의식과 권력에 의해 삶을 보다 편안한 입장으로 많은 특권과 혜택을 누리는 자리에서 사는 것들은 대체로 죽기 싫어하고 더 오래, 영원히라도 그런 안빈낙도를 향유하고 싶어한다 누군가들이나 다른 이들이 고통 속에 있든, 삶의 온갖 불행과 악화 속에 허덕이든 말든 말이다 나르시스의 정점과 이기주의의 극치는 모든 것을 합해 놓고 서로 작용하고 작동되도록 꾸며진 스케일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독재와 독선은 이 세상 어떤 영역에서도 성립불가능한 입장이다 그래서 종교는 대체로 그 반대선상에 입장한 것으로 서려는 노력들을 많이 보인다 일신지하 만인평등까지 간 종교는 카톨릭 뿐이고 웬만한 종교들에는 일신지하 만인지상이나 천인지상, 백인지상, 십인지상, 여인지상과 같은 불문률 같은 관습이 여전하고 버젓하다 그리고 카톨릭조차도 교계와 교도권 상의, 군대처럼 조직의 효율성과 활성화를 위해 그 특징적인 서열과 계급을 사명상에, 직무수행상에 두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이고 신랄한 정치는 절대왕정마저 체제화시키고 그 절대왕정은 동양인들에게 특히 더 오랫동안 종교처럼 여겨진 정치체제이다 유일신교의 종교범주에서나 인간중심의 종교범주에서나 다들 똑같이 신이나 신격화된 것에 무소불위의,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의 독재와 독선과 독단마저도 그 유일한 신성으로 부여하고 그 신성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바침(봉헌), 섬김(봉사), 따름(추종), 바램(기도)을 거의 반강제적인 입장으로, 그 입장이 그 종교속에서는 바람직하고 올바른 사람된 입장이라고 시작부터 지금까지 가르쳐왔고, 영원히라도 그럴 것이다 이 세상의 어느 영역에서건 그런 신 아래의, 신격화된 것들의 밑에 있는 입장들은 사람들에게 있는 것, 그리고 거의 반신반인격의 우상화된 어떤 것들은 본인들이 그런 신의, 신격화된 것들의 독재와 독선과 독단마저도 모방하고 재현할 수 있는 것으로 그 우상화를 전개시키고 파급시키는 것이다 결국은 종교에 대한 잘못된? 모방이 그런 것들의 정체성과 신원을 야기하는 성격으로 등장하고 그런 군림이, 지배적 현실태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그런 사람들의 양태와 행태와 그 상태가 가증스럽다고 한다 그래서 카톨릭 같은 종교에서는 겸손과 의탁(보다 존재 상호간의 유연하고 의연한 입장들을 성립시킨다고 보는 성격)을 완덕의 정점으로 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 겸손과 의탁은 별의 별 인간들이 우상처럼 굴려는 이 세상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최선의 길로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쉽게 악해지고 편하게 악화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합리로 보이는 것이다 신석기와 구석기, 시대와 시대, 시대에 시대 같은 도구를 선을 위한 평화의 도구로도, 악을 위한 범죄의 도구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사람만이 유일하다 그리고 그 두갈래를 결정짓는 것은 대체로 감정이라고 한다 의지는 의지, 감정은 감정, Will은 Will, Sence는 Sence인 것이다 두 가지 성질을 두 가지 성격처럼 두 단어로 달리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범죄에 대한 이미지와 시물레이션은 의식상에서 구현되고 결정되면 구체적인 행위로 나서는 의지로 실현된다 그런 인간의식의 기제를 발동시키는것이 감정이라는 말이다 선감정, 후의지? 어떤 사람을 보자 마자 죽이려는 사람, 곧 태어나자 마자 사람이 보이면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라는 것은 애초부터 없다 언제부터 한창 유행하던? 묻지마 살인, 묻지마 폭력조차도 불특정다수 가운데 어떤 사람들을 그 대상으로 삼는데에는 스스로가 사람인, 주변의 관계없는 사람들조차도 사람인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스스로가 사람이기에 저지르는 아무 '개인적인' 이유가 없어 '보이는' 그런 범죄들에는 전체범주의 인간성의 심연에 도사린 어떤 감정상의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보통은 사회에 대한 불만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사회생활의 실패와 부적응으로도 많이 몰아 간다 그게 다일까, 그게 다라고 생각하는 프로파일러들도 많을 것이다 더 알 수 있는 게 없으니까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더는 안 보이니까 필연성과 개연성의 범위를 넘어서면 우연과 우발을 그 범죄의 성격으로 성립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누군가는 감정을 컨트롤하고 누군가들은 욱하고 터트리고 만다 그 차이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개인들간의 학습과 흔련, 노력과 경험을 통해 그런 삶과 일을 다루는 개인적 역량이 달라 보이게 행태로 나타난다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리고 그렇게 보인다는 사실로 인간성이라는 상태까지 진단이 가능할 지는 모르는 일이다 인간이란 그리 쉬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같은 인간들을 쉽게 볼 수는 있어도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성의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인간들을 쉬운 존재로, 쉬운 대상으로 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시스템의 위력이나 권력으로, 조직 내에서 억압하고 강제할 수는 있어도, 그런 자의반 타의반을 조장하는 조직문화가 팽배하더라도 인간성의 심연에 내재하는 자의식과 자존심을 전적으로 근거해 그런 유리함과 불리함의 현장성을 스스로의 삶에 절대적인 조건과 전제로 순순히 받아들이고 응하는 인간이란 노예 밖에 없을 것이다 주인과 노예라는 관계성이 조직의 불문률이면 그 조직이 계속 지속되는 한 그 조직내에뿐만이 아니라, 조직밖에서도 자신을 위한, 자신을 위해서도 있는 삶의 조건과 전제를 만들기란 어려울 것이고 그것이 삶의 입장으로 주변과 대등해질 수 있는 길이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모든 이가, 사람으로 사는 곳은 다름 아닌 땅이고 그 땅에는 주인행세하는 것들이 차고 넘치며 어딜 가도 그 사유지와 영토표시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시대에 근거해 아나키스트, 무정부주의자는 노마드에 다름아닌 부류들이다 시대가 강화해 온 수호자와 보호자의 역할과 명목은 세금과 부역을 동시에 강화하고, 자유인과 노예화가 혼합된 인간성의 함양과 양성이 시대의 사명처럼 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공동선과 필요악은 동일한 선상에 놓여진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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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2444 | 진리의 문턱에서 3 | 2024-12-04 | 조병식 |
| 232439 | 진리의 문턱에서 2 | 2024-12-03 | 조병식 |
| 232437 | 진리의 문턱에서 1 | 2024-12-03 | 조병식 |
| 232436 | 나의 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68번의 성자, 이윤일 요한입니다. | 2024-12-03 | 오완수 |
| 232435 | 신부님들 시국선언 심각하게 봐야 - 여당 술렁|1| | 2024-12-02 | 신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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