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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 주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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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즐겨 보았던 만화 영화 가운데 ‘마징가 제트’가 있습니다.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 우리들을 위해서만 힘을 쓰는 착한 이”라는 노래 가사도 생각납니다. 마징가 제트는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고 악의 무리와 싸우는 정의의 사도였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힘센 영웅이 나타나 우리를 구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밝히는 참된 영웅은 무쇠로 만든 로봇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의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만이 아니라, 사랑으로 깨어 있는 평범한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일을 이루십니다. 제가 다른 일을 잠시 멈추고라도 꼭 가려고 하는 성사가 있습니다. 바로 병자성사입니다. 아픈 사람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청하기 때문입니다. 어제 아침 산책길에 병자성사를 청하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봉사자와 함께 병원으로 가려 했는데, 그 봉사자에게 회사의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다행히 다른 봉사자가 와서 함께 병원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10분 동안 저는 환자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치료를 받기 위해 한국에서 멀리 미국까지 왔지만, 몸이 치료를 잘 견디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병원에서 만난 자매님의 증세는 조금 호전되어 있었습니다. 성사를 집전하는 저도 위로를 받았습니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들었습니다. 자매님의 통증이 갑자기 심해지자, 본당의 한 봉사자가 기꺼이 응급실로 모시고 갔습니다. 그리고 밤을 새우며 환자의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가족도 아니고 오래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지만, 아픈 교우를 자신의 가족처럼 돌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요 내 형제들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아플 때 곁을 지키며, 어려울 때 손을 내미는 하느님의 가족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저는 사제의 직무로 병자성사를 집전했지만, 밤새 환자의 곁을 지킨 봉사자는 삶으로 사랑의 성사를 보여 주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주님을 향해서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밤을 새운 본당 봉사자의 열정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오늘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까지 가두어 둔 주님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예레미야는 주님의 말씀 때문에 조롱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그만두고 싶었고 더 이상 예언자의 길을 걷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과 뼛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멈출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머리로 알고 있는 교리나 필요할 때 찾는 위로에 머문다면 세상의 바람이 불 때 쉽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른다면, 어려움 속에서도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고 더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으며, 세상의 기준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을 돌보는 일도, 이웃의 아픔에 함께하는 일도,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도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살아 있을 때 가능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사랑하는 스승이 고통받고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베드로가 생각한 메시아는 고통을 피하고 힘으로 승리하며 영광을 차지하는 메시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길은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사람의 일은 손해를 피하고 나에게 편하고 유리한 것을 먼저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은 사랑하기 때문에 때로 손해를 감수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아파할 때 외면하지 않고 곁에 머무는 것이며, 상처가 있어도 용서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먼저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고통을 무조건 참고 견디라는 뜻만은 아닙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무게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마십시오.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라고 권고합니다.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과는 다른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익보다 사랑을, 경쟁보다 나눔을, 성공보다 충실함을, 편안함보다 진실함을 선택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번 한 주간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면 좋겠습니다. 정신을 새롭게 하여 사람의 욕심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고, 창조된 세상과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며,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충실히 따라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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