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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이용섭 제 목 유영훈 선생을 위해 퍼왔음
집중취재] 6·25 때 盧武鉉 후보의 장인(남로당 간부)이 주도한 학살사건의 피살자 가족들 공개 證言·편지, 그리고 사실 검증 4
학살당한 유족들이 盧武鉉·權良淑 부부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가족 대표집필·卞 在 奐 경제학 박사 1947년 경남 창원군 진전면 출생. 마산高·서울大 약학과 졸업. 워싱턴주립大 경제학 박사. 뉴욕시립大 교수, 충남대 교수 역임.
50여 년 전에 경남 창원군 진전면에서 토착 좌익들이 인민군의 비호 아래 11명의 양민을 학살한 사건이 최근 왜곡 보도되고 있다. 李仁濟 민주당 대통령 경선후보 측에서 盧武鉉 후보 장인의 좌익활동을 거론하고부터 장인 權五晳의 친족, 함께 좌익활동을 했던 사람들, 盧武鉉 후보 자신과 부인 權良淑씨, 盧후보의 여성특보 이은희 등이 사건의 전말을 축소, 왜곡하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6·25 당시 좌익들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한 양민의 유족들은 이에 분노가 폭발하여 50년 간 묻어 두었던 아픈 상처를 들추어내서라도 사건의 진상을 밝혀 故人들의 넋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이 글은, 6·25 때 인민군이 우리 마을을 점령하기 전까지, 盧武鉉 후보의 장인 權五晳씨 등에 의해 학살된 卞百燮 면장의 사랑을 받고 자란 조카인 필자가 사건 당시 함께 학살된 양민 유족들의 뜻을 모아 쓴 글이다.
분노로 잠 못 이루는 밤
아무리 극악한 사건이라도 법의 심판을 받고 세월이 지나면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법의 판결을 수용하고 잊어버리면서 상처가 아문다. 그러나 그 사건이 재론될 때, 비록 5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하더라도, 가해자 측이 의도적으로 죄를 부정하거나 왜곡한다면 피해자는 사건 당시보다 더 큰 분노와 억울함을 느끼게 된다.
盧武鉉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장인 權五晳씨가 관련된 경남 창원군 진전면 치안대 사건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李仁濟 후보가 盧武鉉 후보 장인의 좌익활동을 거론한 후 언론에 보도된 權五晳씨 측 해명과 변명을 보고, 權五晳씨에 의해 학살당한 사람들의 유족들은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분노가 새삼스럽게 치밀어 올라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
權五晳씨의 친족과 權五晳씨와 함께 좌익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權五晳씨가 시각장애인이었다는 점을 들어 범죄를 축소하고 연민의 정을 끌어내려 하고 있다.
權五晳씨의 조카라는 사람은, 『전혀 앞을 못 보는 종숙께서 공산당에게 부역을 했으면 얼마나 했겠습니까. … 공직에 근무하다 하루아침에 두 눈을 실명해 기나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외로운 종숙은 전쟁이 발발하자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 외로움에, 주·객관이 무시된 채 군당위원회에 부역을 하였으나, 이름만 선전부장이지 종숙께서 행한 부역형태는 우리 모두가 그때 당시를 보지 못 했지만 이해가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고 했다(月刊朝鮮 2002년 5월호).
그 외에도 『완전 실명한 상태에서 어떻게 좌익활동을 할 수 있었겠느냐』, 『당시 수사당국은 權씨가 장님이라는 점을 이용, 權씨의 손도장을 마구 찍은 뒤 온갖 죄명을 뒤집어씌운 것으로 알고 있다』, 『눈이 먼 뒤부터 집안에 틀어박혀 외부와 접촉을 끊었는데, 한밤중에 양민 학살을 감시했다는 게 도대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 『맹인이 학살현장을 어떻게 감시할 수 있었겠나』, 『눈먼 봉사가 좌익을 했으면 얼마나 했겠나』 등 權五晳씨가 시각장애인임을 들어 權씨의 좌익활동과 범죄사실을 축소하고 있는 발언들이 많다.
權五晳씨의 아들 권기문(盧武鉉 후보의 처남)씨마저도 『사고로 눈을 잃었는데 … 그런 상황에서 얼마나 주도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지만 이를 입증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權五晳씨가 시각장애인임을 부각하는 것은 듣는 사람의 동정도 살 수 있고, 상식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발언들이다.
대검찰청의 「좌익사건실록」에 기술된 『학살하는 현장 부근에서 학살을 용이하게 감시하고』라는 표현과, 權五晳씨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서로 부합되지 않는다는 「상식」에서 보면 호소력이 더 커진다.
필자도 시각장애인이 「학살을 용이하게 감시」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말들을 뒤집어 생각해 보자. 얼마나 철저한 공산주의자였고,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였기에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노동당 선전부장이 되고,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되고, 치안대가 되었겠는가. 눈이 멀쩡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시각장애인을 간부로 기용한 사실은 權五晳씨의 좌익사상이 투철하였고 좌익활동에 적극적이었음을 방증하고 있다.
직속 상관을 학살한 냉혈한
權五晳씨에 의해 학살당한 필자의 仲父(중부) 卞百燮씨가 權씨가 면서기로 일할 당시 면장으로 재임한 사실로 보아 權五晳씨가 바로 직속 상관이었던 사람을 학살한 것이고, 그만큼 극렬한 공산주의자였고 냉혈한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필자가 들은 증언들에 의하면,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험준한 산의 비탈에 위치한 오지 마을에서 자행된 인민재판을 주도했고 절대 권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군 단위의 조직, 즉 창원군 노동당, 창원군 인민위원회, 창원군 반동조사위원회 등에서 부위원장을 했다고는 하나 당시 인민군에 의해 점령된 지역은 창원군 면 중 맨 서쪽에 위치한 진전면이 유일하였기 때문에 진전면 출신의 부위원장인 權五晳씨가 실질적으로 최고의 지위에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걸어다닐 때는 부인이 인도하였으며, 말은 분명하고 유식하게 했다고 한다. 「반동분자」를 심문하고 판별할 때 손바닥을 만져보고 손바닥이 거칠고 못이 박여 있으면 노동자 그룹으로, 손이 매끄럽고 부드러우면 부르주아로 분류하였다고 한다.
일제시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면서기로 일했을 정도라서, 동료직원의 증언처럼 『외모도 준수하고 똑똑한 사람』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양민을 학살하기로 결정한 인민재판에서 검사·변호사·판사 역할 등 1인 3역을 한 유일한 재판관이었고, 그의 말 한 마디로 양민의 生死를 가름하였다고 한다. 『인민군이 「반동분자」 색출작업에 협조하라고 요구하여 어쩔 수 없이 면직원과 경찰의 이름을 알려준 것』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용의주도하게 인민재판을 수행했던 것으로 확신한다.
權五晳씨의 아들 권기문씨가 『… 의문이지만 이를 입증할 방법은 없다』고 말한 것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입증할 방법은 있다. 지금도 생존해 있는 권기문씨의 어머니가 입증할 수 있다. 權五晳씨가 시각장애인이었기 때문에 권씨의 부인, 즉 권기문씨의 어머니가 항상 인도하여 다녔다. 그래서 권기문씨 어머니는 권씨의 일거수 일투족을 봤다. 시각장애인이라도 지팡이로 걸어다니면서 혼자 활동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권씨가 인민군 치하에서 활동한 장소는 보통 사람도 눈을 똑바로 뜨고 다녀야 할 정도로 길이 험하고 비탈진 곳이라서 안내자 없이 혼자서 지팡이로 다니기는 불가능한 곳이다. 권씨는 당시 실명한 지 5년이 채 안 되었기에 그런 험한 길을 혼자서 다녔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도 생존해 있는 權五晳씨의 부인, 즉 권기문씨의 어머니가 권씨의 활동내용을 이 세상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본다. 당시 3세였던 盧武鉉 후보의 부인 權良淑씨도 아버지가 활동한 현장에 같이 있었다는 증언이 있고, 權五晳씨의 시각장애, 權良淑씨의 연령 등으로 보아 세 가족이 동거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權良淑씨는 세 살 때의 일을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권기문씨의 어머니는 모른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고이즈미를 비판할 자격이 있나?
權五晳씨의 활동현장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 權五晳씨가 시각장애인임을 부각시켜 동정심을 유발하고 상상을 동원하여 사건을 축소해서는 안 된다. 시각장애인인 남편을 뒷바라지하면서 현장을 목격하였기 때문에 權五晳씨의 활동을 가장 자세히, 가장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을 權五晳씨의 부인이 증언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놓아두고 왜 주변에서 변명하려 드는가.
權五晳씨의 부인은 지금이라도 공개석상에 나와서 남편인 權五晳씨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남편의 진짜 사상은 어떠했는지, 왜 權五晳씨가 무기징역형을 받았는지, 수감중 폐결핵과 양안 실명을 이유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병보석으로 풀려 나왔다가 잔형 집형을 위해 再수감되는 과정은 어떠했는지, 왜 남편은 끝까지 전향하지 않고 옥중 사망을 하게 되었는지를 밝혀야 한다. 죄가 있으면 죄인으로서, 떳떳하면 떳떳한 대로 진실을 말해야 한다. 국민은 이것들을 알 권리가 있다.
사위가 사랑하는 아내의 아버지 묘소를 참배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사람도 없고 시비 걸 사람도 없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큰일이 있으면 조상의 영혼에 알리는 것이 우리의 미덕이고 미풍양속이다. 그러나 盧武鉉 후보가 장인의 무덤을 찾은 것은 보통 사람의 조상 성묘와 다르다.
盧후보가 필부가 아닌 대통령 후보이기 때문이고, 묘소의 주인공이 6·25 때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양민 학살을 주도한 죄로 무기징역을 받고 옥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盧武鉉 후보가 장인의 묘소를 찾은 것은 보통 사람의 경우와는 달리,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어 자유민주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우리의 민주 국체와 정반대의 사상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유린한 인민군의 힘을 빌려 양민을 학살한 사람의 무덤을 참배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盧武鉉 후보가 장인의 묘소를 찾은 자리에서, 『(장인은) 사랑하는 아내의 아버지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다』고 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신사에 안장된 사람들은 우리 조상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했다. 우리나라와 중국 등 일본의 침략을 받은 국가들은 자기들 나라를 침범한 전범들이 함께 있다고 하여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를 극렬히 반대했다.
만약 盧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재직하고 있었을 때 일본 총리가 다시 위와 같은 변명을 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면 盧후보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묻고 싶다. 일본 총리가 자기 조상의 영혼에게 참배하는 것을 이웃나라 한국과 중국이 왜 극렬하게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막무가내로 나올 때 「盧武鉉 대통령」은 어떻게 응징할 것인가?
盧후보가 장인 묘소를 참배할 때, 멀지 않은 거리(3km 이내)에 그 장인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한 「반동분자」들의 묘소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였는가. 좌익활동을 하고 양민을 학살한 장인의 영혼은 위로하고 또 후손의 출세를 고하면서, 그 장인에 의해 학살된 양민의 영혼은 무시해도 되는가. 아버지를 잃고 남편을 잃고, 형과 오빠를 잃고 평생을 가슴앓이한 후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는가. 살인자의 자식이 출세하여 아버지 묘소에서 성대하게 성묘를 할 때 그 옆에 누워 있는 피해자의 영혼과 그 유족의 마음은 어떠할지 생각해 보았는가.
자기 가족만 생각하면 되는 보통 사람들의 개인과 개인 사이의 살인사건이라고 하더라도 가해자는 그 위세를 자제하고 삼가야 한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盧후보가 장인의 묘소에 참배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뜻이 아니다. 백보 양보하여, 盧후보의 말대로 『좌우로 갈라 싸운 사람 모두가 시대와 역사의 피해자였다』고 하더라도, 다른 한쪽 피해자에게 한 마디 위로의 말은 있었어야 하지 않는가?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 좌익 유가족에게도 연금을 줄 것인가?
盧후보는 장인의 묘소에서 『막상 일선에서 죽창 들고 싸운 사람들은 정치하던 사람이 하는 대로 깃발만 보면 편 갈라 바닥에서 싸웠다. 어쨌든 좌우로 갈라 싸운 사람 모두가 시대와 역사의 피해자였다. 전쟁은 민중이 아니라 지도자가 했다. 지도자가 결정하면 수천, 수만의 민중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깃발 들고 사명감 갖고 목숨을 던진다』고 말했다고 보도되었다.
자신의 장인이 일선에서 죽창 들고 싸운 말단 노동당원이었고, 전쟁을 결정한 지도자 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지 다른 사람들은 책임이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盧후보가 장모나 부인으로부터 들어서 잘 알고 있겠지만, 盧후보의 장인 權五晳씨는 창원군 노동당 부위원장,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반동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의 직함을 가진 양민학살의 최고책임자였다. 이런 사람을 민중의 한 사람으로 간주하여 죄상을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 5共청문회 당시 盧후보는 광주사태의 최고책임자인 전두환 前 대통령은 물론 일선 지휘관에게까지 책임을 추궁하지 않았는가?
만약 盧후보의 부친이 토착 좌익에 의해 살해되었다면 「모두가 피해자」라고 말하겠는가? 모두가 피해자라면, 좌익에 의해 희생된 우익인사의 유족에게 국가에서 연금을 주듯이 좌익활동을 하다 감옥 간 좌익인사의 가족에게 똑같이 연금을 줄 것인가? 좌익의 유가족들이 『우리도 연금 탈 날이 올 것이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고 한다. 경찰을 시너불에 태워 죽인 동의大 학생들을 민주화운동가로 추앙하자는 판국이니 그들도 그런 기대를 가질 만하다고 본다. 다시 말하거니와 盧후보는 좌익과 우익 모두가 피해자라는 고도의 수사로서 장인에 관한 진실을 호도하려 해서는 안 된다.
盧후보는 장인 묘소를 찾은 자리에서 『장모와 처남은 다시 들추기 싫어한다. 조금 가담하고 더 가담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한다. … 장인은 얼굴도 본 적이 없다. 변명하자면 나는 모른다.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의미를 붙인다면 그것은 백성의 일이다. 지난날의 일이다』고 했다고 보도되었다. 5共청문회도 「지난날의 일」을 두고 따졌다. 장모와 처남이 들추기 싫어한다고 묻어둘 일도 아니다. 盧후보 말대로 「백성의 일」이고 국민의 관심사다.
장모와 처남이 들추기 싫어하더라도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盧후보가 모른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장인의 얼굴을 못 본 것은 사실이지만 장인의 행적을 모른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정말 모른다면 지금이라도 장모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5共청문회 때 盧후보처럼 소위 「모르쇠」로 우겼던 「증인」에게 盧후보는 어떻게 행동하였는가?
권양숙씨, 모르면 어머니에게 물어보세요
조금 가담하고 더 가담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한다고? 판사를 하고, 변호사를 하고, 국회의원을 하고, 장관을 역임한 盧후보가 어떻게 이렇게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인용할 수 있는가? 무식해서 분위기에 휩쓸려 아무 생각 없이 죽창 들고 따라다닌 것과 소신에 따라 양민 11명을 죽인 것과 차이가 없는가?
인민군 총부리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노역을 한 사람과 자기가 모시던 직속 상관(卞百燮 면장)을 체포한 지 20여 일 만에 처형한 인민재판관 사이에 의미 있는 차이가 없는가? 盧후보가 판사로 재직할 때도 살인의 주범과 공범을 똑같은 형량으로 판결하였는가?
조금 가담하고 더 가담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은 盧후보의 장인이 아주 크게 가담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들린다. 盧후보는 장인이 주범이었는지 공범이었는지 진실을 밝혀야 한다.
盧武鉉 후보의 부인 權良淑씨가 아버지 權五晳씨 양민학살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은, 지난 4월27일 盧후보가 민주당 大選 후보로 결정되는 것을 지켜보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했을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언급하기는 했으나, 『기억이 나지 않아 상세하게 얘기할 수 없습니다 … 사실 저는 부모님 일은 잘 모릅니다. 부모님 일을 모른다는 게 무책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땐 나이가 어려서…』라는 말뿐이었다.
「옆에 있던 이은희(36) 여성특보는 『부친은 1948년 막걸리에 메틸알코올을 잘못 타 먹어 사모님이 두 살 때 실명했다. 그 상태에서 6·25 당시 공산군의 부역을 강요받아 수복 후 구속됐으나 곧 석방됐다. 그런데 5·16 이후 사회불안 요소를 격리한다는 차원에서 벌어진 예비검속으로 다시 투옥돼 1971년 마산교도소에서 옥사했다』고 설명했다」고 보도되었다.
두 사람 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權良淑씨가 사건 당시 어려서 그 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수긍이 가지만, 부모님 일을 모른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필자도 權良淑씨와 동갑으로 6·25 때 세 살이었는데, 그 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 때 피란을 동생 돌잔칫날 갔다는 것, 돌잔치 떡을 해놓고 먹지 못하고 갔다는 것, 피란길에 나에게 붙여진 별명이 뭐라는 것, 피란지가 어디라는 것, 인민군이 어머니에게 총부리를 들이대고 아버지의 소재를 대라고 했다는 것, 숙부님이 어떻게 살해되었다는 것, 우리 집 본채가 미군의 폭격으로 불에 탔다는 것 등 피란과 전쟁에 관련된 얘기는 귀가 따갑도록 여러 번 들어서 알고 있다.
權良淑씨는 지금도 생존해 있는 어머니로부터 6·25 얘기를 듣지 않았는가. 어릴 때 아버지가 어디 계신다고 들었는가. 아버지가 무기징역형을 받고 복역중 질병으로 인하여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가족과 함께 생활한 1956년에서 1961년 사이는 權良淑씨의 나이가 9세에서 14세이었는데, 성장기의 호기심에서라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물어보지 않았는가?
얼마나 큰죄를 지었기에 무기징역을 받았느냐고 묻지 않았는가? 남은 형기를 집행하기 위해 아버지를 再수감할 때 아버지가 왜 감옥에 가야 하느냐고 물어보지 않았는가? 權良淑씨가 성인이 된 24세 때 옥사하였는데 아버지 면회를 가지 않았는가? 면회 가서나 갔다 와서 왜 감옥에 있는지 알아보지 않았는가? 그리고 아버지께서 자기 생각을 말해 주지 않았는가?
금년 말 盧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대통령 부인이 되더라도 3·1 독립운동은 직접 못 보았기 때문에 모른다고 할 것인가? 盧후보의 부인 權良淑씨의 아버지 權五晳씨의 주도 아래 무참하게 학살된 진전면장 卞百燮씨의 외아들은 權良淑씨보다 세 살 아래로 더 어리지만 아버지가 어떻게 학살되었는지 생생하게 자세히 알고 있다.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기억은 할 수 없지만 수십 번 수백 번 들어서 아버지가 어떻게 살해되었는지 다 알고 있다. 언제 어떻게 피란 가고,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치안대에 체포되고, 시신은 어떻게 누구에 의해 수습되었는지도 알고 있다. 權良淑씨 부친이 단독으로 행한 인민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되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權良淑씨는 충분히 기억할 만한 나이에 아버지와 5년 동안 같이 살았다. 비록 감옥이었기는 하나 성인이 된 후에도 아버지가 살아계셨다. 그런데도 어렸다는 핑계로 부모님 일을 모른다고 할 것인가?
가해자의 딸로서 피해자의 아들·딸들에게 이야기할 것이 없는가?
필자가 들은 증언에 의하면 權良淑씨도 인민재판 현장에 있었다. 인민위원회, 반동조사위원회, 치안대가 소재했던 진전면 일암리 대방마을에서 인민재판이 열린 당시 그 현장에 시각장애인은 權良淑씨의 아버지 權五晳씨가 유일했으며, 부인이 장님의 손을 붙잡고 인도하였고 다른쪽 손에는 서너 살짜리 여자아이가 있었다는 생생한 증언이 있다. 가족 세 사람이 마루에 앉아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지금 유추하면 바로 그 「여자아이」가 權良淑씨라고 생각된다.
생존해 계시는 權良淑씨의 어머니에게 물어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權良淑씨에게 죄가 있다는 뜻도 아니고 기억해 내라는 뜻도 아니다. 어려서 부모님 일을 모른다고 하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방증하기 위해서 한 말이다.
權良淑씨는 부모님의 일을 말해야 한다. 이제 필부의 아내가 아니다. 대통령 후보의 부인으로서 대통령 부인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으로서, 아버지가 무슨 죄로 감옥살이를 하였는지, 아버지는 자신을 어떻게 해명하였는지, 아버지는 왜 끝까지 전향하지 않았는지,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등 국민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어야 한다. 가해자의 딸로서 피해자의 아들과 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야 한다.
거짓말은 침묵보다 더 나쁘다
이은희 여성특보의 거짓말은 더 가증스럽다. 權五晳씨는 『6·25 당시 공산군의 부역을 강요받아 수복 후 구속됐으나 석방』된 것이 아니다. 토착 좌익이었고 자발적으로 주도적으로 「반동분자」 색출과 처형 활동을 하였으며, 구속 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복역중 폐결핵과 양안 실명의 사유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풀려난 것이다. 구속됐으나 죄가 가벼워 석방된 것이 아니다. 구속 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에 질병으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은 것이다. 사실이 이런데도 왜 죄가 가벼워 석방된 것처럼 호도하려 하는가.
『5·16 이후 사회불안 요소를 격리한다는 차원에서 벌어진 「예비검속」으로 다시 투옥』된 것이 아니다. 5·16 전인 1961년 3월27일 잔여 형기를 집행하기 위해 再수감한 것이다. 석방되었다 再수감된 것이 아니고,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나와 있다가 남은 형기를 채우기 위해 再수감된 것이다. 再수감된 것이 5·16 後가 아니고 5·16 前이다.
예비검속과 잔형집행은 천양지차다. 朴正熙 대통령이 아무리 군사독재를 하였다고 하지만 예비검속으로 구속한 사람을 10년 넘게 복역시켰겠는가? 거짓말일 뿐 아니라 상식 이하의 말을 하고 있다. 군사독재의 만행을 연상케 하여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정도의 중죄를 「강제부역」 정도로 오도하려 해서는 안 된다. 거짓말은 침묵보다 더 나쁘다. 盧武鉉 후보 측과 가해자 측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피해자 측의 가슴속 상처를 송곳으로 찌르듯 아프게 한다는 것을 아는가?
6·25 전쟁의 와중에서 악질 좌익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된 양민들의 유족들은 가슴 쓰라린 지난 일을 되새기고 싶지 않다. 그러나 누가 무슨 목적으로 발설하였건 간에 일단 거론된 이상 사건의 진실은 밝혀야 한다.
왜 왜곡하고, 은폐하고, 축소하고, 책임전가하고, 거짓 증언하고, 경거망동하여 아물어 가는 상처를 후벼 파는가?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한 權五晳씨의 죄상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밝히고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고, 최고의 선거전략이다. 재론되게 한 원인제공자인 盧武鉉 후보가, 그 다음으로는 盧후보의 부인 權良淑씨가,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사건의 진상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盧후보의 장모가 지금이라도 사건의 진실을 공개하고 인정하여 억울하게 학살당한 사람들의 원혼과 그 유가족들의 피맺힌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 주고 유족들의 되살아난 슬픔과 억울함을 어루만져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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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 핸드폰 결제 2000원 하고 퍼온 거랑께.
이용섭 ::: 이 글 필자 변재환 씨는 과거 신한국당 여의도 연구소 연구실장을 역임한 분인데 과거 이 기사를 보고 놀라 이분의 휴대폰으로 통화한 적이 있당께. 과거 이분과 형님, 동생한 사이랑께
이용섭 ::: 부인이 열심한 개신교 신자라여.
이용섭 ::: 과거 나는 북한에 쌀 보내면 안된다고 주장했고 이 형님은 그 반대였당께. 나는 북과의 대화 그 자체를 반대하였지만 이 형님은 또 나와 반대였당께. 그런데 집안에 이런 내력이 있을
이용섭 ::: 줄은 꿈에도 몰랐당께. 과거 나는 이 형님을 진보로 분류했당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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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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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539 | 내부고발자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 2004-04-02 | 이현철 |
| 64536 | ★함세웅이란 사람이 누군지 아는 사람 없나요★ | 2004-04-02 | 구선우 |
| 64529 | 지요하 이윤석 이강길 김은순 등에게 | 2004-04-02 | 이용섭 |
| 64533 | [RE:64529]하 이런... |
2004-04-02 | 김은순 |
| 64540 | [RE:64533] |
2004-04-02 | 이용섭 |
| 64549 | [RE:64540]정말... |
2004-04-02 | 김은순 |
| 64587 | [RE:64549] |
2004-04-02 | 이용섭 |
| 64546 | [RE:64529] |
2004-04-02 | 정준 |
| 64528 | 사순시기를 잘 마무리 | 2004-04-02 | 김근식 |
| 64526 | [RE:64500] 조형제님께^^* | 2004-04-01 | 박요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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