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예수님께서는 수구(바리사이+사두가이)가 옳다고 하실까? |
|---|
|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당시의 기득권층이었던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 그리고 그들에게 속아 넘어간 우매한 백성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이 무너질까봐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들의 안위를 위하여 세상과 타협하여 그같이 엄첨난 일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지금은 그 당시의 패배자인 것 처럼 보였던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늘나라의 복음은 전 세계에 널리 전파되어 있고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세에서도 교회 안팎에서 그들과 비슷한 아니 그들보다 더한 현세의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이 너무 많이 있음을 봅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 때보다 현세가 훨씬 더 타락한 거와 같이... 그러나 참으로 다행인것은 의인들이 그때보다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와 닿는 글을 주교회의 게시판에서 옮겨왔으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제 목
한국가톨릭과 김추기경의 진실
민주화 운동의 상징성을 왜곡하는 명동성당과 김추기경. 요즘 한국천주교회의 실질적인 수장이시며 절대적 권위를 가지신 김추기경님의 정치적 발언 하나 하나가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것에 대해 착잡함과 더불어 카톨릭 성직자들의 정치적 판단의 가치중립성을 상실되어 가고 있는 것에 우려하지 않을수가 없다. 김수환추기경께서는 현 정치권 전체에 대한 근심이 아니라 참여정부와 노대통령에게만 촛점을 맞춘 현실 정치에 대한 인식은 과연 편향적이지 않다라고 할수 있을까 하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수가 없다. 참여정부가 탄생되기 이전부터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개혁과 변혁의 희망을 꿈꾸는 국민들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민주당 경선과정과 대선과정에서 보여준 김추기경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것 부터 잘못되었다는 식의 우리 사회구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수가 없다. 정교일치사회가 아님에도 정교일치 사회보다 더 엄격하게 종교와 종교인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하는 우리사회의 종교계 자체가 폐쇄성과 배타성에 매몰되어 있고 종교인에 대한 비판을 불경시하는 자체가 "종교의 자유", "믿음의 자유"와는 관계없이 있을수 없는 것이다. 흔히들 "낮은데로 임하소서"라는 경구처럼 과연 종교계의 성직자들과 종교인들은 낮은데로 임하고 있는지 되새겨 보지 않을수 없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손석춘씨의 김추기경에 관한 칼럼중 "실제 민주화운동에서 김 추기경의 모습이 과대 평가된 대목이 많다는 사실을 알 사람은 다 알면서도 침묵해왔다"는 지적은 "낮은 데"로 임하는 종교인들이 적어서였다라는 사실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 것이다. 지난 70년대, 80년대의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김추기경의 역할은 상식이 있는 성직자라면 당연히 독재의 총칼에 식음하는 국민들속에서 부대껴야 하는 것이 성직자들과 종교인들에게 주어진 의무임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김추기경의 역할이 돋보인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서슬이 퍼런 시대에 성직자로서의 자기 희생적 모습으로 시대와 이 땅의 고통받는 수많은 어린 양들을 위한 목자의 길을 걸어간 종교계 지도자들이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천주교회의 "정의구현 사제단"의 눈물겨운 자기희생적 노력은 가히 존경할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의구현 사제단"의 활동을 탐탐치 여기지 않는 천주교회의 주교단에 의해서 수많은 제재와 간섭을 받을수 밖에 없었다. 정의구현 사제단에서 활동한 많은 일반 사제들이 천주교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주교단에 의해서 보복성의 인사조치나 불이익을 당할때 김추기경께서는 외면하고 주교단의 보수적 판단에 손을 들어준 것은 결코 잊을수 없는 일이었다.
김추기경께서 자신의 정치적 관점이나 인식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막을수 없으며 이를 비난할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판단이나 인식이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모순을 정확히 집어내고 이를 비판하는 비판의 가치중립성이 지켜지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선 비판하지 않을수가 없다. 조선을 비롯한 수구언론들이 김추기경의 말씀을 얼씨구나 좋구나 하면서 대서특필하면서 위기에 처한 보수를 가장한 수구세력들에게 기사회생할 기회로서 삼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연출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김추기경은 과연 낮은데로 임함에 있어서 누굴 위해 낮은데로 임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을수가 없다. 한국천주교회내의 권위주의가 우리 사회에 만연된 권위주의적 시스템보다 더 강고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컨데, 추기경의 본말이 전도된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과 편향적이고 왜곡된 인식은 이율배반적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한국천주교회가 그 어느 나라의 카톨릭 교회보다 수구보수적이라는 것은 우리 국민들은 모르고 있다. 독재정권시절 정의구현사제단과 일단의 양심적이고 진보적 성향의 사제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인해서 한국천주교회가 국민들로부터 과도한 찬사와 존경을 받거나, 민주화의 크나큰 공헌을 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서,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서,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 한국천주교회 차원에서 한 일은 없다. 한국천주교회와 정의구현 사제단은 분리를 해서 봐야 한다. 정의구현 사제단은 한국천주교회내에선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한국천주교회의 실질적인 의사결정기관인 한국천주교회 주교단이 군사정권의 압력에 순수히 동조하여 정의구현 사제단을 해체시키기 위한 공작을 수없이 자행되었다는 것을 일반인들은 알턱이 없을 것이다.
한국천주교회는 서울, 광주, 대구 3개 대교구와 돌아가신 지학순 주교가 교구장으로 있던 원주교구를 비롯한 12개 교구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1980년대에 연평균 7.54%의 높은 신자 증가율을 지속해 오고 있다. 그리하여 1981년 140여 만 명이던 신자수가 1986년 초에 200만 명, 1992년에 300만 명을 넘어섰고 현재 약 40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1980년대의 우리 사회는 고착화된 남북 분단 체제 아래서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말미암아 인간 소외의 현상이 심화되고 인간 존엄성이 말살되는 상황에서 반독재와 민주화 쟁취를 위한 의지와 노력이 다른 종교 집단보다 상대적으로 강했다고 볼 수 있다. 광주 민중 항쟁에 대한 참여와 지원으로부터 민주화 운동을 시작하였다. 1987년에는 정의구현사제단의 ‘민주 개헌’ 촉구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이른바 6월 항쟁에 깊숙이 관여하였다. 또한 이 해에는 ‘민주쟁취공동위원회’가 결성되었고, 1988년 ‘정의구현전국연합’이 발족하게 되었다.1980년대 전반에 걸친 노동 운동 탄압 과정에서 교회의 노동 운동도 상당히 위축되었으나, 교회의 노동 운동가들은 ‘노동법 개정 청원 운동’(1985) 등 대중 운동을 추진하였으며, 노동상담소 활동 등을 통해 노동자의 권익 신장에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반면에, 이 시기 농민 운동은 비교적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다. 가톨릭농민회는 전국농민회의 결성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민족의 화해와 재일치를 지향하며 이 시기에 한국천주교회 안에서 일어난 일 가운데, 이른바 ‘통일 열사’ 조성만 군의 죽음(1988), 임수경 양과 문규현 신부의 북한 방문(1989)은 한국천주교교회내의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주교단과 사제들에게 거센 반발을 하였다. 이 당시 한국천주교 주교단회의는 문규현신부에 대해 강한 비판과 사문난적으로 규정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한국천주교회의 사회참여 운동은 일반 사제와 수도자들 중심으로 이루어지다가 1980년 5월 광주항쟁을 기점으로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현실참여 운동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였지만, 한국천주교회의 보수성과 폐쇄성을 깨뜨릴순 없었다. 교회내부의 문제보다는 교회외부의 사회참여 운동이 우선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였지만, 군사독재시절이라는 시대적 상황은 교회내부의 보수성과 폐쇄성, 이로 인한 교회의 권위주의에 대한 문제는 논의될 계재가 되지 못한 것이다.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울 수 있었던 것은 김수환추기경이라는 한국천주교회의 수장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암울한 시대의 횃불을 밝히고자 한 수많은 평사제들가 수도자, 신도들이 이 땅의 민중들과 함께 낮은 곳에 임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던 것이다.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라는 상징성과 더불어 서울대교구청의 대주교였던 김수환추기경의 상징성이 계속 존속되고 이어지기 위해선 과거와 같은 민주화 운동을 위해 헌신하는 그런 상징적인 노력들이 계속 될때에 존중되어지고 존경받을수 있는 것이다.
한국천주교회는 성직자들과 신자들 양 축으로 움직여지고 있다. 성직자들의 최고의사 결정기관은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이고 신자들의 의사결정의 대표적 기관은 한국천주교회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있다. 주교회의는 사실상 한국천주교회의 모든 정책과 활동에 대해 결정하는 최고위 결정기관으로서 한국천주교회는 바로 주교회의에서 움직여지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잘 알고 있는 "정의구현 사제단"은 한국천주교회내에서 공인되지 않는 비공식 단체이다. 한국천주교회의 현실참여 활동과 운동의 정신은 바로 정의구현 사제단에서 주도해 왔고 형성해 온 것이지 한국천주교회의 공식대표기구인 주교회의에서 이끌어 온 것이 아니다. 교회의 수구보수화를 사수하는데 양축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주교단과 평신도사도직협의회이다. 한국천주교회는 이들 양날개로 날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정의구현 사제단이 한국천주교회의 공식 기구로서 한국천주교회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오해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죄송한 애기이지만 아직도 정의구현 사제단은 주교단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평신도사도직 협의회등 각 교구청 산하의 성당에서 활동하는 사목위원회등 천주교 신도들의 사목활동은 대다수가 사회적 약자들이 아니라 사회적 강자들내지 이들 사회적 강자들이 인정한 신심이 강한 신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한국천주교회의 수구보수성에 불구하고도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 저 낮은곳으로 임하려는 깨어 있는 평사제들과 신도들에 의해서 한국천주교회는 필요이상으로 과대평가 받고있고 사회적 강자들의 사회적, 정치적 논리를 수용하면서 교회의 수구보수화를 재촉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김수환 추기경이며 각 교구청의 교구장인 대주교나 주교들, 그리고 각 교구청에서 목자의 길보다는 행정관료성에 젖어 있는 권력지향적인 사제들이 한국천주교회의 수구보수화를 재촉하는 핵심들로서 이들의 각 교구청의 경제적 정치적 힘을 가진 신도들과의 밀월관계는 새로운 사회를 나아가는데 걸림돌로서 작용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최대표가 국회 대표연설에서 "대통령 한 사람이 바로서면 다른 것은 저절로 된다라고 김수환 추기경께서 말씀하셨습니다"라는 말을 통해서, 상징성이 가득한 성직자와 신자로서 사회적 강자를 대표하는 최병렬로 대변되는 한국천주교회의 현주소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라 하지 않을수 없다. 폭압적인 인권유린,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반민주적 정치구조, 부패와 부정의 먹이사슬구조, 민주적 절차를 파괴시키고 민주적 정치소양을 억압하는 권위주의 사회구조를 공고하게 만들어 온 군사정권에서 기생해온 수구세력들에 대해선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화해와 관용을 베푸는 아량을 한껏 보여주었다. 그러나 저들이 저질러온 온갖 사회부조리와 부패구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는 이들과 이를 지지하는 지지자들을 나라를 혼란시키는 주범으로 몰아가는 현실인식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임해야 할 성직자로서의 기본 역할을 스스로 내던짐으로써 자신에게 가지게 된 시대의 양심이라는 상징성은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땅의 주류는 해방후 친일세력들이 사라지지 않고 부정,부패, 타락, 억압을 일삼은 이승만, 박정희정권, 전두환-노태우 신군부정권, 김영삼 정권까지 단한번도 권력의 쓴맛을 모른채 권력에 기생하면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려온 "친미-반북"세력들이. 이들은 여전히 우리사회의 주류이며 가공할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겐 면죄부를 그렇게 쉽사리 주면서 온갖 사회의 쓰레기와 권력의 부패물을 청소하려는 정부와 그 지지세력을 도리어 우리사회의 총체적 부패구조와 사회악을 만들어 낸 주범으로 몰고가는 지난날 민주화의 등불로 상징된 종교지도자 김추기경의 모습은 볼수가 없다. 이젠 그분에게서 과거의 등불을 보고자 하는 것은 일찍감치 접고 새로운 사회에 맞는 사회의 등불을 찾아야 하는 것이 시대의 소명이자 과제일 것이다. 무릇 세상의 모든 만물의 그 쓰임은 시기에 달라질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에 희망의 불꽃이었다고 하더라도 바뀌어 가는 사회에서도 여전히 희망의 불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과거의 명성을 통해 이루어진 상징성의 권위가 영원하기 위해선 부단한 자기 성찰과 자기 노력을 통해 올바른 시대의 눈과 귀를 갖고서 진정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낮은 곳으로 임할려고 할때에 우리 사회의 원로로서 지도자로서 추앙을 받을수 있는 것이다. 이라크파병에 찬성을 표한 김추기경의 모습에서 결코 평화주의자의 모습을 볼수 없음이요, 하느님의 이름을 내걸고 이루어진 성스러운 기독교의 십자군이 자행한 다른 종교민족의 살륙, 다른 종교문명의 파괴와 그들의 재물을 약탈한 중세의 교황의 모습과 오버랩되는게 비애감만이 남겨질 뿐이다.
종교는 영혼을 구한다면서도 영혼이 깃들어져 있는 수많은 육체를 파괴한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을 반대하고 이라크 파병반대하는 것이 과연 우리의 영혼을 멍들게 하는 것인가. 적어도 종교지도자라면 자신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타 종교국가의 국민들의 육체를 파괴하여 영혼을 죽게 하는 전쟁에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내는 것에 반대를 해야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가. 김추기경의 이율배반적이고 자기모순성에서 벗어나긴 힘들 것이다. 바뀌어 가는 사회에 맞지 않은 종교관과 현실인식이기에 김추기경의 시대적 역할의 소임은 더 이상 주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시몬느 베이유는 전쟁에 대한 고찰이란 글을 통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정면에 있는 적만이 진정한 적이 아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한다면서 우리를 수단으로 밖에 보지 않는 자가 바로 진짜 적인 것이다."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64630 | 함신부 보시오 | 2004-04-02 | 홍우식 |
| 64629 | 폄하와 폄훼, 초미와 백미 | 2004-04-02 | 배봉균 |
| 64626 | 예수님께서는 수구(바리사이+사두가이)가 옳다고 하실까? | 2004-04-02 | 정준 |
| 64623 | 아직도 우리는 언론의 노예? | 2004-04-02 | 강미숙 |
| 64622 | 천주교신자들도 일반사람못지않네 | 2004-04-02 | 박찬진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