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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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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문제를 일케 해결하셨네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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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호 [jun3417] 쪽지 캡슐

2004-06-09 ㅣ No.67671

가난한 사람들

 

 

 

 

 

 

 

  폭풍우가 치는 음산한 밤이었다.  가난한 어부의 오두막집이었다.

 

제니는 난로 곁에 앉아서 헝겊 조각으로 너덜너덜 떨어진 헌 옷을 깁고 있었다.  바람의 외침 소리,  짐승이 울부짓는 듯한 파도소리,  창을 후려치는 빗방울 소리.  그런 것들이 제니의 귓전을 끊임 없이 울렸다.

 

  바람조차 몸서리리쳐지는 날씨.  춥다.  그리고 깜깜하다.  그러나 그런 바깥의 날씨와는 아랑곳 없는듯이,  가난한 어부의 오두막집은 포근하고 기분이 좋았다.  바닥은 그냥 흙바닥인 채였지만 빗자국이 그대로 남은 깨끗한 바닥이었으며,  난로에는 마른 가지가 후두둑거리며 타고 있고,  찬장에는 깨끗이 훔친 접시들이 가지런히 얹혀 있다.  한 쪽 구석에는 흰 시트를 씌운 낡은 침대.   그 위에는 아무도 누워 있지 않았으나 바닥에 깔아 놓은 커다란 자리에는 아이들이 다섯,  바깥의 험악한 사정은 전혀 상관 없다는 듯 포근히 잠들어 있었다.

 

  제니의 남편은 지금 바다에 나가 있었다.  어부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어둡고 추운 날씨,  사나운 밤에도 바다에 나가는 것이다.   이런 밤에 바다에 나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리 어쩔 수가 없었다.   식구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제니는 사나운 바닷바람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였다.   이따금 갈매기가 울어 댈 뿐이었다.   비는 더욱더 사정 없이 내리친다.   제니는 점점 괴로워와졌다.   그녀의 눈에 난파의 무서운 장면 뿐이었다.   비는 더욱더 사정 없이 내리친다.   제니는 점점 괴로와졌다.   그녀의 눈에 난파의 무서운 장면이 떠올랐다.   배는 암초에 걸려 부서지고 사람들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아이 무서워!

 

  낡은 괘종시계는 목쉰 소리로 그래도 부지런히 똑딱거린다.

 

  아이들은 여전히 평화롭게 잠들어 있다.

 

  제니는 생각에 잠겼다.   살아 나간다는 것이 정녕 수월한 일은 아니다.   남편은 자기 몸을 깍아 내듯이 해서 가족들을 부양한다.   추위와 폭풍우,  그리고 위험이 입을 벌리고 있는 바다에 나가서.

 

 제니는 아침부터 밤까지 이렇게 앉아서-----.

 

 그런데 어떤가? 이렇게 근근히 연명해 간다는 것이 과연 휼륭한 일일까?  내 어린 자식들은 1년 내내 맨 발로 뛰어 논다.  흰빵 같은 건 꿈에도 모른다.  귀리밥이라도 먹게 될 때면 좋아서 어쩔줄을 모른다.  하긴 때때로 생선은 먹지만.   아뭏든 어린 것들이 몸이 튼튼해서 잘 놀아주는 것만도 참으로 하느님의 은총이다.

 

  " 아아,  파도나 바람이 어쩌면 저렇게 사나울까!  그이는 지금 어디쯤 계실까?  하느님,  부디 보호해 주시옵소서,  은총을 주시옵소서. "

 

 자리에 들기는 아직 이르다.

 

 제니는 일어나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등불을 켜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남편이 돌아 오는지, 

바다가 조금쯤은 잠잠해졌는지,  등대는 켜져 있는가를 살피기 위해 나온 것이다.

 

  어두웠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동네 어귀 물 가에 반쯤 무너진 낡은 오두막집이 서 있었다.   벽은 썩어서 검었고 낡은 문짝은 겨우 붙어 있기만 했다.   문짝은 바람 부는 대로 삐꺽거렸다.   여기에선 유독 더 사나운 듯한 바람이 오두막을 삼켜 버릴 듯했다.   문짝은 애처롭게 울부짖고,  지붕 위 썩은 지푸라기는 흡사 구원을 청하듯 법석댔다.

 

  제니는 오두막집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찌그러진 창문으로 들여다 보았다.   집안은 캄캄 절벽이었다.

 

  "  아,   그 가엾은 병자의 시중을 깜빡 잊었구나!  밤이면 한층 심해진다고 했는데.  정말 그 사람은 혈혈 단신 아무도 시중 들 사람이 없는데......  "

 

  하고 제니는 생각했다.

  그래서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

  제니는 문 앞에 서서 궁리했다.

 

  "  가엾어라!  제 손으로 식구를 거느려야 할 텐데 병에 걸리다니!  두 번째 자식을 낳고부터 과부가 돼 가지고 모든게 제 몸 하나에 달려 있는데 몸져 누워 버렸으니.......  "

 

  제니는 몇 번이고 문을 두드렷으나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  이봐요,  웬일이에요?  "

 

  제니는 소리를 쳤다.

 

  "  그럼 좋아요.  주무시면 그냥 가겠어요. "

 

  바람은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았다.  제니는 축축해진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별안간 외투를 나꿔 체듯 바람이 세게 쳤다.   그녀가 문에 부딪쳐서 문이 덜컹 열리고 말았다.   제니는 얼떨결에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녀 손의 등불이 어둡고 고요한 집안을 비추었다.   집안이라 해도 바깥과 다름 없이 축축했고 침침하니 추웠다.   오랜 동안 불기가 없었던게 분명하다.   천정 여기 저기 비가 새고 있었다.

 

  판자 문 맞은편 벽에는 지푸라기가 지저분히 쌓여 있고,  그 위에 과부가 누워 있있다.   벌써 차가와진 채로.   머리는 자빠진 채 내던져지고,  싸늘하게 창백한 얼굴은 입을 떡 벌린 채 고통과 절망의 표정을 얼어 붙이고 있었다.   무엇인가 잡으려는 듯 벌린 손은 맥 없이 지푸라기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시체 발치엔 오줌,  똥에 얼룩진 포대기 속에 두 어린 것이 잠자고 있었다.  핼쓱한 얼굴이지만 곱슬머리에 귀여운 볼을 하고,  머리를 서로 비비대고 깊은 잠에 떨어져 있었다.

 

  죽음도 폭풍우도 그들의 상념에선 멀었다.

  한 아이는 오동통한 작은 손을 싸늘해진 엄마의 젖가슴에 얹고,  한 아이는 제 형제의 목에다 핼쓱한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이었다.

 

  숨소리는 조용했다.   그 무엇이라도 애기들의 눈을 뜨게 할 수 없으리만큼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이때 제니는 천정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죽은 사람의 이마 위에 떨어져 뺨 위로 흘러 내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비탄에 겨워하는 홀어머니의 눈물과도 같았다.

 

  제니는 줄달음쳐서 집으로 돌아왔다.   자세히 보니 무엇인가를 외투 속에 감춘 듯했다.   그녀의 심장은 몹시 뛰었다.   누군가가 뒤쫓아 오는 듯했지만 뒤돌아 볼 수조차 없었다.   혹시,   죽은 사람의 집에서 무엇인가 훔쳐 온 게 아닐까?

 

  집에 오자 제니는 얼른 그것을 침대 시트 아래에 황급히 감추듯이 집어 넣은 뒤 의자를 가져다 침대 곁에 놓고 그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침대머리에 이마를 대고는 엎드렸다.   그녀는 새파랗게 질려 흥분하고 있었다.

 

  제니는 양심이 찔렸다.   스스로를 몹시 힐난하는 듯한 태도였다.

  흐느끼면서 이따금 신음 소리를 냈다.

 

  "  어쩜 이토록 팔자가 사나울까?  내가 도대체 어쩌자고 이런 짓을 저질렀담.......   다섯 아이의 치닥꺼리에 시달려 가면서.......  "

 

  문소리에 놀라 제니는 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섰다.

 

  " 그이가 왔나 보다.   아,  하느님.   제가 왜 이런 짓을 했을까요?  이러고서 어떻게 그이의 눈을 바로 쳐다볼 수 있을까요.  "

 

  아무도 오지 않았다.

  제니는 생각에 사로잡혀 도로 주저앉았다.   갖가지 상념이 머리를 괴롭혔다.  

  먼동이 터 왔다.   그 때까지도 바람과 바다는 합세하여 기승를 부리고 있었다.

  별안간 문이 열렸다.   신선한 습기 띤 바닷바람이 집 안에 확 풍겼다.  구리빛 피부의 헌칠하니 큰 어부가 소금물에 절고 찢어진 그물을 끌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왔다.

 

  "  나 이제 왔어,  제니.  "

  "  아,  네.  이제 오셨군요.  "

  하고 대답을 하며 일어섰으나 제니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  원 빌어 먹을.  무슨 날씨가 이렇담  "

  "  정말 사나운 날씨였어요.   그래 많이 잡혔나요?  "

  "  틀렸어,  영!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어.   그물만 찢기고......  말도 마.   정말 지옥 속 같은 풍랑이었소.   나는 오늘 밤 같은 바람은 만난 적이 없어.  악마들이 우짖으면서 배를 가지고 논단 말야.   난 영락 없이 배랑 함께 바다 밑에 빠지는 줄 알았는걸!  그래두 명이 긴 덕분에 살아 오긴 했지만.   ........여보 당신은 혼자 뭘 하고 있었소?  "

 

  어부는 그물을 끌어 들인 뒤 난로 곁에 다가앉았다.

 

  " 저 말이예요......  "

 

  제니는 새파랗게 질려 어쩔 줄을 몰라 했다.

 

  " 저,  말예요.   여기,  여기 앉아서.....  이렇게 앉아서 말예요,  뜨개.......질을 하고 있었어요.   네,  정말 바람이 너무 무섭게 울어 대길래,  혼자 있는 게 무서워서요.   .....전 그저 당신 일만 걱정이 돼서......  "

 

  " 그럴 테지,  아주 지독스런 바람이었거든.  그래,  어떡했지?  "

  하고 중얼거리듯 물었다.

  둘이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한참 후 제니는 몸을 오들오들 떨면서 죄라도 고백하려는 것처럼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  여보,  시몬 아주머니가 죽었어요.   언젠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아마 당신이 엊저녁 거기 다녀 온 후일 거예요.   죽음에 임박해서 얼마나 괴로왔을까요?  젖먹이를 둘씩이나 남겨 놓고 먼저 가게 됐으니.......  "

 

  제니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어부는 눈만 껌벅였다.   순박하게 생긴 그의 눈은 엄숙한 빛을 띠고 표정은 심각해졌다.

 

  그는 어쩔 바를 몰라 하는 듯 머리를 박박 긁었다.

 

  "   어째야 된단 말인가......?  어쨌든 얼른 어린 것들부터 데려 와야 되겠군.   잠이 깨면 엄마를 찾을 테니까.   자,  내가 얼른 데려 오리다.  "

 

  그러자 제니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  여보......  "

 

  하곤 말을 잇지 못했다.

 

  "  웬일이야,  아이들 데려 오는 게 당신은 싫은가?  응?  웬일이야,  제니.  "

 

  제니는 잠자코 일어섰다.   그리고 시트를 걷었다.

  ----- 거기에는 죽은 과부의 두 어린 젖먹이가 꼭 껴안고 포근히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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