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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과 7일의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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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4-06-09 ㅣ No.67674

*이 글은 내가 어제 28명의 피뭍이 겨레붙이 인연붙이 및 소수 친지들에게 보낸 메일입니다.

 참고하실 분들도 계시겠기에 여기에 올립니다.

 

 

 다시 서울을 다녀와서 


 
  †. 사랑·평화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7일의 일

 

 어제 급히 서울을 다녀왔네. 전혀 예정에 없던 급작스러운 일이었네.

 

 오전 10시쯤 사촌 의하 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네. 작은아버지가 위독하신 상태로 병원에 계시는데 오늘내일 새 운명하실 것 같다는 전갈이었네.

 

 작은어머니가 폐암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그쪽으로만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뜻밖이었네.

 

 우선 세 분 사촌형님들께 전화로 알려 드리고, 오전에 서둘러 「다시 우리 곁에 다가온 퇴뫼산」이라는 이름의 잡문 하나 써서 <태안신문>에 송고하고, 농협에 가서 8월 중국 가족여행 때 쓰려고 아이들 통장 안에 감춰놓았던 돈에서 30만원을 인출했네. (우선 병원비에 보태라고 20만원을 인하 동생에게 주고, 초상이 나면 다시 30만원쯤 부조할 예정….)

 

 그리고 오후 2시 40분 버스를 탔네. 처음엔 천안까지 내 차를 가지고 가려고 했으나 요즘 너무 자주 장거리 운행을 한 탓인지 차 운전이 지겹기도 해서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네. 그리고 서울에서는 열차로 천안으로 내려와서 새롬이 원룸에서 일박하고 다음날 태안으로 돌아오거나, 상황에 따라 다시 서울로 가거나 할 생각이었지.

 

 내가 서둘러 서울을 간 가장 큰 목적은 작은아버지께 대세를 드리는 일. 성당에 가서 성수병에 성수도 담아오고, 작은 가방 안에 기도서와 레지오 마리애 활동수첩을 넣는 일은 필수. 지난 4월 한식에 작은아버지가 오셨을 때도 하느님 얘기를 해드렸으나 작은아버지가 역시 시큰둥한 기색이셔서 안타까운 마음이 없지 않았기에, 마지막 순간에도 내가 대세를 드리는 일이 순조로울지 내심 걱정이 크더군.

 

 남부터미널에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금호역에서 내린 다음 택시를 타고 서울중앙병원(구 복음병원)에 도착한 시각은 6시 20분. 병원 로비에서 잠시 혼자 레지오 수첩을 꺼내들고 다시 한번 대세 주는 방법을 숙지하며 작은아버지께 '조건부 대세'가 아닌 '대세'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데, 인하 동생과 제수씨, 그들의 딸인 세미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더군.

 

 세미를 보고 깜짝 놀랐네. 오랜만에 보는 탓이지만, 스물 두 살 성숙한 처녀가 된 세미는 어렸을 때보다 되우 예뻐진 모습이더군. 나는 그들에게 내가 작은아버지께 대세를 드리려는 이유를 설명했네. 하느님을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별 의미 없는 일이겠지만 하느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네.

 

 곧 제수씨와 세미는 집으로 가고 나는 인하 동생과 함께 510호 병실로 갔네. 병실에는 작은어머니와 친정언니 되시는 분이 계시더군. 폐암환자이신 작은어머니는 전혀 환자 같지 않고 멀쩡하신 모습이어서 의아스럽기도 했네. 암세포가 폐 밖으로 전이된 상황인데도 아직 한쪽 폐가 괜찮은 상태여서 그런 건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렇게 멀쩡해도 어느 시기에 이르면 급작스러운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 작은아버지부터 먼저 보내놓고 자신이 따라가려고 아직 이렇게 멀쩡한가 보다는 작은어머니의 말에서 가슴 저미는 듯한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네.

 

 작은어머니께도 천주교 대세의 뜻과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설명 드리고, 이 대세 예절에 같이 참여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 다음 작은아버지를 불러보니 작은아버지가 겨우 눈을 뜨시더군. 작은아버지보다는 작은어머니와 인하 동생을 더 의식하며 천주교의 네 가지 중요교리(천주존재/삼위일체/강생구속/상선벌악)를 설명한 다음 작은아버지께 세례 받기를 원하시느냐고 여쭈었네.

 

 이때의 불안감과 긴장감이란…. 그런데 고맙게도 작은아버지가 고개를 한번 까딱하시더군. 그것을 보고 인하 동생이 거의 환성을 지르는 듯이 기뻐하더군. 정말 기쁜 마음으로 대세를 드릴 수 있었네. 홀로 주모경 기도를 하고, 드디어 대세를 드린 다음, 또 주모경 기도를 하고 성가도 하나 불렀네.

 

 이 대세 예절에 제수씨와 세미, 세미의 동생인 영근(대학생), 의하 동생과 두 아이도 함께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 앞으로 작은아버지의 영혼을 챙겨 드리는 일도 내 몫이 되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런데 근처 음식점에 가서 인하 동생에게서 회덮밥으로 저녁 대접을 받으면서 들은 얘기인데 딸 세미가 친구를 따라 요즘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하더군. 그 말을 들으니 무척 반가우면서도 할아버지가 대세 받는 자리에 세미도 함께 하도록 하지 못한 것이 또 한번 후회가 되더군.                 

 

 세미로 하여금 할아버지를 위해 '선종을 위한 기도'와 '죽은 부모를 위한 기도'를 바치도록 '가톨릭기도서'를 인하 동생에게 맡겼네. 그리고 병원 앞에서 인하 동생과 헤어져 택시를 타고 금호역으로 가는데, 60대 택시기사가 천주교 신자여서 짧은 시간이나마 좋은 얘기를 많이 나누었네.

 

 내가 작은아버지 병실에서 오래 머물지 않은 것은, 내일 새벽쯤 운명하실 것 같다는 의사선생님의 말과 달리 언제 운명하실 지 알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네. 나는 그런 쪽으로는 비교적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네. 곧 운명할 것 같은 상태에서 대세를 받은 분이 병석에서 일어나 몇 달을 더 사신 일도 보았고….

 

 남부터미널에서 70시 40분 버스(막차는 8시)를 탔는데, 문득 내 주머니 속의 묵주를 작은아버지께 드리지 못한 것이 아차! 싶더군. 머리맡에 묵주를 걸어드리고, 운명하신 후 염습을 할 때 손에 쥐어드리라고 인하 동생에게 단단히 부탁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깜빡 잊은 것일세. 정말 몹시 속이 상하더군.

 

 상황을 전해 드리려고 재하형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형수님이 서울에 가려고 5시 40분 버스를 타셨다는 대답. 형수님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형수님은 묵주를 몸에 지니고 있지 않다고 하시더군. 아직 예비자이시니 그럴 수밖에….

 

 금호동 천주교회 수녀원으로 전화를 걸어 수녀님께 구 복음병원 510호 환자가 나로부터 대세 받은 이야기를 해드리고, 선종을 위한 기도와 임종 후 연도를 간곡히 부탁 드렸네.

 

 젖먹이 시절에 양친 부모를 여의고 고아로 자란 다음 6.25사변 때는 군에 입대에서 최전선에서 전투를 치르고, 배우지도 못하고 손에 쥔 것도 하나 없는 처지로 어렵게 고생고생하며 평생을 살아오신 작은아버지의 영혼만이라도 하느님 품에 안기게 되기를 간절히 빌지 않을 수 없었네.
  
 그리고 집에 도착한 때는 밤 열시. 오후에 서울에 가서 볼일을 보고 저녁까지 먹고 밤 10시에 집에 돌아왔으니, 그런 면으로는 참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

 


★6일의 일

 

 서울에서 다섯 분의 손님이 태안엘 왔네. '가톨릭 굿 뉴스' 게시판에서 교우로서 각별하고 깊은 정을 나누고 있는 분들이지. 나보다 두 살이 위이신 배봉균 선생, 40대 초반의 이윤석씨, 굿 뉴스 게시판에서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서로 40 나이에 결혼을 하고 최근에 아들까지 얻은 김지선 최미정 부부, 한때 매우 의미 있는 깔끔한 글을 쓰다가 지금은 쉬고 있는 처녀 배지희씨가 나를 보기 위해 날을 잡아 태안에 온 것일세.

 

 새롬엄마는 전날 저녁에 준비를 다 해놓았다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김밥 공사를 했네. 우리 부부까지 일곱 명이 실컷 먹을 김밥을 싸고 또 김가루를 입힌 주먹밥도 만들었네.

 

 그런데 김치에다가 콩나물국과 수박도 한 덩이 준비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막걸리 안주를 별도로 준비하지를 못했네. 양념통닭 생각도 했고, 생선회 생각도 했는데, 6월의 첫 일요일이라 쉬는 음식점들이 많았고, 또 주일이라 성당에 가야하는 일로(더욱이 성가대 연습 관계로 9시 40분까지 가야 해서) 여유가 없었네. 김밥 싸는 공사가 8시쯤 끝나서 다른 안주거리를 만들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두 정신이 없어 미처 챙기지를 못했네. 나중에 어머니는 냉장고 안에 우럭포가 있는데도 그걸 생각 못했다고 안타까워하시고….

 

 9시 10분쯤 서산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내가 미리 터미널에 나가 기다렸다가 40분쯤 태안에 도착한 일행을 태우고 성당으로 갔네. 미사를 지낸 후 일단 우리 집에 왔다가 김밥과 국주전자와 수박과 슈퍼에서 산 막걸리 다섯 병을 나누어 들고 다 함께 백화산을 올랐네. 내가 즐겨 오르는 코스로 요소요소를 들르며….

 

 백화산 정상에서 풍광을 감상하고 나무 그늘이 있는 외떨어진 바위 위로 올라가서 정답게 둘러앉아 김밥을 먹으며 막걸리를 즐겼네. 참으로 좋은 이야기들이 풍성하게 펼쳐지고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네. 그런 가운데서도 마음 한구석은 별도 안주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 어찌나 허전하고 미안한지….

 

 5시쯤 백화산을 내려올 때는 교장바위와 갑오동학혁명군추모탑 코스를 밟으며 태안 자랑을 많이 했네.

 

 서울 가는 마지막 버스 시간이 7시 20분인 것을 확인하고, 저녁 대접을 하려고 오리고기가 좋은 <샘골가든>과 아귀 요리가 일품인 <원봉식당>에 전화를 걸어보니 역시 쉬는 일요일. 할 수 없이 중국음식점 <신태루>로 가서 탕수육과 볶음밥으로 저녁식사를 하며 고량주를 마셨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윤석씨가 음식값 2만9천 원을 지불했지 뭔가. 그게 무슨 경우인지….
 
 이렇게 내 대접이 소홀하긴 했지만 일행은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우리 부부에게 어찌나 고마워하는지….

 

 내 차로 버스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고 7시 20분 버스로 떠나는 일행을 손 흔들며 배웅하는데 정말 미안한 마음이 한량없더군.

 

 지금 우리 집 거실에는 배봉균 선생께서 가져와 선물하신 특별한 성물이 있네. 안에 십자가와 성모상이 들어 있는 두 개의 수정을 위아래로 붙여놓고 받침대에 전기를 주면 두 개의 수정이 아름다운 빛을 발하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네. 정말 예쁘네. 배봉균 선생에게서 너무 큰 선물을 받았다는 생각이네.


 

★기타

 

 일행을 터미널에서 배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의 일이네. 샘골로 가는 큰길에서 경찰이 음주 단속을 하더군. 모처럼 만에 백화산에서 막걸리도 어지간히 마셨고, 신태루에서 고량주도 좀 마신 터라서 가슴이 철렁하더군. 가는 날이 장날이구나 싶은 심정으로 음주 측정에 응했네. 그런데 음주 측정기에 알코올이 전혀 잡히지 않아서 무사 통과! 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했네.

 

 며칠 전에 BC카드를 살리기 위해 다른 통장들의 돈을 긁어서 새롬엄마 보통통장에다 계좌이체로 입금을 한 다음 통장정리를 할 때였네. 통장에 글자 찍히는 소리가 두 번이나 더 나서 이상하게 생각하며 통장을 보니 글쎄 BC 카드 회사(농협)에서 미수금을 가져가는 소리였네. 마치 빚쟁이가 집안에 죽치고 앉아 있다가 돈을 보자마자 앙칼지게 낚아채 가는 형국이었네. 완전히 칼이더군.

 

  어제 서울에 가셨던 사촌 작은형수님도 내려오시고, 작은아버지는 오히려 회복(?)의 기미마저 보이시는 것 같다고 하네. 작은아버지께서 만약 잠깐 동안만이라도 병석에서 일어나 계신다면 천주교 대세를 받으신 분답게 스스로 영혼의 준비를 잘 하셨으면 하는 마음이네.

 

 이만 줄이네

 

 (040608)
 *충남 태안읍 샘골에서 지요하 막시모 적음

  
파일명 닮고 싶은 이웃.hwp 크기 38K
파일명 2004년 6월 6일 (삼위일체대축일).hwp 크기 36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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