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7일 (토)
(홍)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자유게시판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는 것("징표")과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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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규철 [catho21c] 쪽지 캡슐

2004-06-27 ㅣ No.68216

 
일본 나라 교외에 위치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수도원에서 한 밤중에 계단에서 
떨어져 의식을 잃었을 때, 거기 있던 수녀들  모두가 침대 주위에 모여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수도회는 예수님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길가에 사람이 쓰러져 있으면 그  사람이 비록 적이라 해도 그  사람을
도와 주고, 설사 그 사람을 도와 주었다는 이유로 자기 자신이 위험에 처한다해도 
그 사람을 구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정신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곳이다.

 "낫게 해주세요, 낫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던 목소리.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임사체험 당시에 들었던 그 목소리는 이후로도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약간 서투르게 들리는 독특한 억양이었다.
그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빛이며 생명 자체인 빛의 주님이 "현세로 돌아가라."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물론 말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그렇게 전달되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다."라
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 순간 의식이 돌아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말투에 독특한 악센트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 목
소리의 주인공은 외국인수녀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누구였는지는 모르는 상태였다. 
수녀들은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왔으므로 일과표가 엇갈려 아무와
도 만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물어보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인 수녀였는지도 모르겠다는 대답만을 들었을 뿐
이다. 그  하얀 빛에 싸였던 신비로운 체험을 회상할 때마다 그것이 늘 걸렸다


재회는 뜻하지  않은 시간, 뜻하지  않은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그 사고가 있고 
나서 11년이 지난 1988년, 나는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일본근대문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미국에서 한창 유행하던 에니어그램을 공부하고  있었다.
어느 날 마을에서 좀 떨어진 산 위에 있는, 영성 연구를 위한 연수센터에서 
에니어그램 연구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가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도착해보니 무슨 착오가 있었는지 에니어그램연구회가 아니라
기도회가 열리게 되어 당황하기는 하였지만 모처럼 멀리 나오기도 했고 기도회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모임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80명 정도의 참가자들이  한꺼번에 모여 강의를 들었다.

그 뒤에는 참가자들이 각자 번호를 나눠 받은 다음, 홀수는 홀수끼리 짝수는 짝수끼
리 조를 이루어 주어진 과제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았다.

 강의가 끝난 뒤 나와 같은 조에 속했던 어떤 사람이 일본어로 말을 건네왔다.
건장한 체격을 가진 50~60대의 백인 여성이었다. "일본에서 오셨습니까?"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낯익었다. 내가 일본에는 오랫동안 계셨습니까?"라고 
물으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그렇게 능숙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고 그녀가 혹시 수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나의 예상대로였다.  그녀는 자신은 수녀이며 도쿄의 하츠다이에 머문 적이 있다고 말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깜짝 놀랐다.  하츠다이에도 선한 사마리아인의 수도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가 일본에 있었던 것은 1970년대 후반이라는 것이었다.

"혹시 성심회의 수녀가 나라에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수도회 건물 2층에서 떨어진 
일을 알고 계십니까?"  "어머나, 알고 있다마다요. 잊을 수가 없지요. 저도  거기에 
있었는 걸요."

그 수녀는 나의 뇌리에 박혀 있는 그 독특한 억양의  일본어로 대답하였다.

 "그 날 밤 나는 "카리스마의 기도"라는 치유 기도회에 참가했어요. 

카리스마의 힘이라 불리는 병자의 내적 치유력을 이끌어 내어 치유하는 기도회였습니
다.

그런데 수도원에 돌아와 잠을 자고 있었는데 한밤중에 어떤 여자가 굴러 떨어졌어요.
그래서 열심히 카리스마의 기도를 했지요. "낫게 해주세요. 낫게 해주세요."라고요."
그녀가 바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그런 곳에서 십수년만에 재회하게 되다니, 그녀도 나도 이상할 정도의 우연에 신기해
하였다.

그 수녀는 바로 전 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샌프란시스코 교외에 있는 버클리에 도착하
였다. 버클리는 그  연수센터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그녀는 미국에  도착해서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하던 차에 친구가 찾아와서 기도회에 
함께 가자고 권유하기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거기에  간 것도 우연이지만 두 사람이 같은 조에 속하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
만약 내 번호는 짝수이고, 그녀의 번호는 홀수였다면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의 기도 덕분에 이 세상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비로소 전할 수 있었다.

10년도 더 전에 일본에서 만났던 두 사람이 우연히 미국에서 다시 만났다.인연이
란 얼마나 묘한 것인가?  나는  이것이 공시성이라는 것일까."하고 생각하였다.

인간은 모두 깊은 뿌리 부분에서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증거", "의미있는 우연의  일치", 그것이 바
로 공시성이다.
공시성의 깊은 의미는 집합적 무의식이 형태를 갖추어 나타날 때 드러나기 시작한다.
집합적 무의식에서는 세계가 각 개인, 동물, 환경 등으로 개체화 또는 세분화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물체로 나타난다.

그러한 공시성이 현실 세계에 나타날 때 우리들 자신은 각자가 우주적 모태의 일부분
임을 느끼게 된다. 우리들 인간 서로서로가, 인간과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그리
고 우리들과 우주가 확실히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이다.

그 후 미국인 신부님과 목소리 주인과의  우연한 재회며 공시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신부님은 나에게 임사체험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죽음의 세계를 엿본 그 때의 체험을 이야기하면 늘 좋지 않은 반응으로 돌아오기 때
문에 입에 담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했더니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부터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하십시오. 

목소리의 주인과 우연히 다시 만난 것은 그것을 이야기할  시기가  되었다는 
"징표"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어디로 이끄시는가>에서 발췌 스즈키 히데코 지음 김옥선 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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