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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령은 조사에 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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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동 [ynin] 쪽지 캡슐

2004-09-21 ㅣ No.71492

망령은 조사에 응하라
할아버지는 한일병합이 되던 해인 1910년에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일본말로 공부하고 일본 정신을 교육받았다. 학교에 가면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불렀고 황국신민선서를 외웠다. 더 커서는 내지(內地) 일본인과 외지 조선인의 뿌리가 같다는 내선일체(內鮮一體) 사상을 주입받았고, 창씨개명도 했다. 그리고 더 장성해서는 마침내 일본군에 징집당하여 미국 중국등 연합국 군대와 싸웠다. 할아버지는 올해 연세가 94세가 되었다.

손자의 나이는 30대 후반이고 80년대에 대학 공부를 했으며 출생 연대는 60년대이다. 그러니까 이 손자들 세대를 연령대로 치면 35세에서 44세까지 분포돼 있다.

바로 며칠전 손자가 할아버지를 다그치기를 “할아버지는 친일파입니다. 우리 나라는 친일 과거를 청산하지 않고는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청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손자는 과거의 사상이나 과오를 깨끗이 씻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계속해서 이어진 조손(祖孫)간의 문답이다.

“그러면 친일 과거는 어떻게 청산하면 되느냐.”

“3대가 떵떵거리며 산 과거를 씻어 버려야 합니다. 곧 ‘친일 과거’와 ‘3대 떵떵거린 생애’의 진상을 밝힐 조사가 있을테니 그때 당국에 적극 협조하십시오.”

“얘야 너희들 앞에는 인터넷 문화가 있고 디지털 문명이 기다리고 있잖니. 이 좋은 시절에 ‘8·15는 왜 도둑처럼 왔나’ ‘3·8선은 왜 생겼나’ ‘6·25는 왜 일어났나’와 같은 구질구질한 과거를 왜 무슨 이유로 들추려고 하니. 과거가 퇴장하지 않으면 새것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고 하는 말도 있다. 광복후에 친일파가 고개도 못들고, YS때는 총독부건물인 중앙청도 부수었잖니.”

“그건 형식적 청산입니다.”

“네 말대로 과거가 정리 안됐다고 치자. 그러면 한강의 기적은 뭐고, 세계 12위 경제 대국은 뭐냐. 88 올림픽, 노벨 평화상, 2002년 월드컵은 또 뭐냐. 더구나 2만달러 소득시대도 바로 너희들의 시대가 아니냐.”

“안됩니다, 할아버님. (한국)사람은 빵만으론 살수 없습니다. 개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 얘야 알았다. 진상 조사를 기다리마” 할아버지는 대답하고, 이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손자가 친일 사상을 청산하라면 해야지. 사실 그때 우리나라가 일본의 손아귀에서 해방될지 누가 알았나. 대동아 공영권이 오래 갈 줄만 알았지. 손자 말이 맞아, 이 썩은 식민지 근성을 버려야 해. 그런데 일본군 헌병 오장을 지낸 그 누구더라, 아 그 아무개 영감 지금쯤 가슴이 졸아 있을거다. 그러나 저러나 지금이야말로 다시 ‘희망가’를 부를 때인가 보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세상만사가 춘몽중에 또 다시 꿈같도다.”

할아버지가 노래를 부르고 있을 무렵 그 아들이 성묘를 왔다. 아마 추석을 앞두고 벌초도 할겸 문안도 드릴겸 찾아온 모양이다. 할아버지와 손자 세대를 잇는 아버지 세대는 1945년 해방 되던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른바 ‘한글 세대’다. 이 세대는 우리 말로 공부하고 새 나라의 민주교육을 받았다. 일본 식민지에 대한 기억은 칼 찬 일본순사가 무섭다는것 외에는 별로 남은게 없다. 아버지는 지금 66세다.

벌초 온 아버지는 무덤에서 울려오는 희망가를 들었다. 노래가 끝나고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얘 아범 왔냐. 지금 내 손자, 그러니까 네 아들과 얘기했다. 애가 아주 강퍅(剛愎)하더구나. 나보고 친일 과거사 조사에 응하라고 하는데 이 망령(亡靈)을 데려다 무엇에 쓰겠니. 그러니 네가 나가서 잘 말하렴.”

그러자 아들이 대답했다. “그건 어렵습니다, 아버님. 저는 아버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 잘 모를 뿐더러 만약 동행 명령을 어기면 2년 징역이랍니다. 더군다나 이번 조사에는 공소시효도 없답니다. 그러니 수고스러우시더라도 아버님이 직접 조사에 응하셔야 겠습니다.”

김성호 / 논설위원
기사 게재 일자 2004/09/17
독자의견(총 2)
 2 목화 --> -->04/09/17 22:09 
울어야하나 웃어야하나.. 역사를 정치적 (이념적)관점으로 조작하겠다는 말인데...국가기관의 자아비판이란 해괴한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고..어떻게 살아야하나...화폐개혁..이라. 이제는 나라를 뒤집어 탈탈 터는구나.. <계속>
 1 대제학 --> -->04/09/17 19:09 
우리의 슬픔이 여기에 이르렀도다.
망령을 불러내고 국민을 찢고 추상적 용어에 사생 결단하는 근본 이유는 무엇 일가?

열우당 숫자 줄기전에 미친 혁명 빨리해서 또 권력 유지할려고 그
러는지 우리는 다 알지.명분에 목을 걸고 정치,경제,문화,사회 눈
으로 볼수 있고 만지면 즐거워지는 모든 걸 많이 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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