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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전교조와 국가보안법 그 교양필독서 - 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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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명구 [hmk12] 쪽지 캡슐

2004-10-05 ㅣ No.72107

이놈 글을 읽노라면 피가 꺼꾸로 솟습니다.
6.25를 당당히 어쩔수 없는 민족통일을 위한 해방전쟁으로 묘사 하고 있고 그 원인은 남한 당국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해괴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걸 전교조가 통일연대 교양 이론으로 읽혀지고 있습니다.
이게 올해 인권을 명분으로 인권위원회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정부지원금을 받고 있습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여러분 ! 이제 자녀의 교육에 대해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한번쯤 들여다 봐야 합니다. 꼭.....자녀학교의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것 말고도 많은 전교조 자료들이 통일을 빙자한 사상세뇌교육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정말 무서운 세상입니다.
버젓이 이런 인간 쓰레기들이 활개치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인권을 빙자한 가증스런 탈을 쓰고 이 "대한민국"이 능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제정의 역사적 배경: 분단과 전쟁의 결과물로서 국보법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강 정 구


I. 반역사적인 분단과정: 분단5단계설을 중심으로

1) 지리적 분단(45년 8월)
: 미국이 일방적으로 38도선을 경계로 분할점령을 결정하여 일반명령 1호로 공포, 소련의 추후 동의

: 동시에 베트남도 북위 16도선을 경계로 북은 중국, 남은 영국군 점령으로 양분시킴)

2) 이념적 분단(46년 1월 이후)
: 친일파문제가 가장 큰 사회적 쟁점이었으나, 미국의 모스코바3상회의 결정 왜곡으로 반탁파동 확산

: 압도적 좌파이데올로기가 약화, 친일파문제가 희석화되면서 반탁=애국, 친탁=매국의 왜곡 담론 조성

: 해방공간 좌익이념의 압도성을 뒷받침하는 자료
① 1945년 6월 미국무성 정책보고서 : “경제적, 정치적 상황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수용할 이주 용이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분석

② 1946년 남.북한 방문한 투루만의 특사 Pauly 보고서는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공산화되기 쉬운 경제적 조건을 갖추었다”고 보고하고 귀속재산의 미국귀속권을 주장할 것을 역설

③ 1946년 8월 미점령군에 의한 8,453명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자본주의 14%(1,189), 사회주의 70%(6,037), 공산주의 7%(574), 모른다 8%(653)의 선호도를 보여주어 좌익이념의 선호도가 무려 77%

④ 주요정당의 강령
우익인 임정까지도 미국무성의 분석자료는 ‘국가사회주의’라고 평가할 정도로 급진적

⑤ 조선신문기자회의 임시정부 정체에 대한 서울시내 가두 여론조사 결과(47년 7월 3일 실시, 2495명을 10곳의 가두에서 5가지 설문조사 김천영 ?연표 한국현대사 721쪽)

1> 6월 23일 반탁테러 사건은?
① 독립의 길이다(26%) ② 아니다 (71%) ③ 기권(3%)
2> 미소공위와의 협의에서 제외할 정당.사회단체는?
① 있다 (71%): 한민당(1272) 한독당(922) 독촉국민회(309) 남로당(174) 민전(9) 대한노총(91)
전평(14) 건청(19) 광청(30), 기타 ② 없다(14%) ③ 기권(13%)
3> 국호는?
① 대한민국(24%) ② 조선인민공화국(70%) ③ 기타(1%) ④ 기권(4%)

4> 정권형태?
① 종래제도(14%) ② 인민위원회(71%) ③ 기타(10%) ④ 기권(5%)
5> 토지개혁방식?
① 유상몰수유상분배(17%) ② 무상몰수무상분배(68%) ③ 유상몰수 무상분배(10%) ④ 기권(5%)

3) 사회적 분단(46년 11월 이후)
: 1946년 북한의 반제반봉건민주변혁을 계기로 남과 북은 서로 이질적인 사회경제제도, 곧 남한은 기존의 식민지반봉건사회, 북한은 인민민주주의로 사회주의가 지배적인 경제형태로 되어 본질적으로 다른 사회가 됨

: 외세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조선전체가 북한과 유사한 반제반봉건혁명으로 사회주의 이행은 거의 필연

1. 객관적 요인
1> 경제적 토대가 사회주의 이행에 아주 용이했다.
: 중요산업자본의 93% 이상 , 농지의 약 18%가 일본소유. 그러므로 해방과 동시에 노동자 자주관리운동과 소작제 실제적 와해의 물적 기반이 되었다.
2> 토착자본가 미육성으로 일본인 자본가 귀환과 동시에 계급구조상의 불균형, 즉 ‘자본가 없는 노동자’의 구조가 나타났다.
3> 조선인 지주와 일부 자본가는 대부분 친일행위로 지배계급의 정통성 상실로 인한 피지배계급에 대한 헤게모니 획득에 실패
4> 조선인 지배계급은 경제적 지배계급이었으나 정치적 지배계급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해방공간에 기존 정치세력이 와해됨과 동시에 국가의 억압기구인 경찰과 군대의 통제력을 상실

2. 주체적 요인
1> 일제시대 농?노동운동을 통해 농민과 노동자의 계급역량이 성숙했다.
2>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급진민족주의자와 노동자?농민간의 연대가 이뤄져 농민?.노동자 계급이 급진화
3> 민족해방투쟁에서 급진민족주의자가 주도권을 장악하여 일반 국민들에게서 정통성을 획득하여 쉽게 건준, 인공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4) 정치적 분단(48년 8월 이후)
: 남한의 5?10단독선거로 극우분단친일친미세력 집권

: 이에 북한은 연판장 선거를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 단독선거가 확정되는 시점부터 분단저지를 위해 한국전쟁의 시발인 작은전쟁이 48년 2.7구국투쟁부터 전개

: 미군정하 5?0제헌의회 선거의 특징( 강정구, ?분단과 전쟁의 한국현대사? 열음사, 1996)
1> 모든 좌익 및 중도정당과 극우진영인 한독당 등의 선거 참여거부에도 불구하고 선거 강행,
2> 남한의 425개 정당, 사회단체중 선거에 참여한 단체는 43개에 불과,
3> 이승만 계열, 친일파로 이뤄진 한민당, 미국과 극우진영의 사조직이었던 극우청년단 등에 국한,
4> 5.10선거에서 극우세력의 정권장악은 투표행위 이전에 이미 결정됨,
5>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거에 의한 정권창출이 권력창출의 대표정당성(민주성)이 있는지 논란제기.

5) 고착적 분단(53년 7월 이후)--한국전쟁의 결과
: 위의 4단계 분단의 필연적 결과물로 한국전쟁이 발발

: 미국의 개입으로 통일은 무산되고 분단의 고착화로 접어 듬

2. 한국전쟁 전개과정

1) 전쟁5단계설

1> 작은전쟁
: 1948년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확정되고 분단이 가시화됨에 따라 민전을 중심으로 분단을 저지하고 통일을 이루기 위한 공개적인 무력투쟁을 선포한 2?7구국투쟁부터 실질적인 전쟁 시작

: 50년 6월 25일까지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됨--인민항쟁(제주4.3항쟁, 여수렐萍뎠복曠戮?등), 유격전쟁(지리산, 오대산 등의 유격대와 초기의 무장대), 38선의 ‘국경’전투(하루도 무력충돌이 일어나지 않은 날이 없었음)

: 여순항쟁(48.10.19)과 국가보안법 제정(48.12.1)

: 무려 10만명 이상의 인명피해를 냄

2> 제한?확대전쟁
: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자주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확전을 벌임으로써 시작됨.

: 초기는 서울을 점령하여 이정권을 붕괴시키고 통일정부로 나아가는 제한전쟁의 성격이었음.

: 이는 지리적, 이념적, 사회적, 정치적 분단을 해소하려는 성격으로서 통일전쟁, 사회주의혁명전쟁, 외세를 몰아내려는 민족해방전쟁임

: 미군이 철군한 상태이므로 내전의 성격이 짙음

3> 전면전쟁
: 내전발발 3일만에 미국의 즉각적인 무력개입, 7월1일 지상군을 부산에 상륙시켜 남의 내전에 개입
: 이에 서울에 머물던 인민군이 남쪽으로 진격함으로써 전면전화.
: 북한은 7월 1일 전시총동원령. 남한은 7월 15일 작전권을 미국에 양도함으로 전쟁주체는 북한과 미국

4> 진영전쟁
: 북한정권이 붕괴위기를 맞자 항미원조보가위국의 기치로 중국이 참전함으로써 확대전과 진영전

5> 교착?제한전쟁
: 1951년 6월 양측은 군사적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인식하에 정치협상을 통하여 정전을 꾀했으나 종전에 이르지 못하고 시간만 끄는 교착전

<표1> 한국전쟁 5단계설

※ 밑줄 친 부분은 주도적 주체

2) 한국전쟁과 민중시련
가. 인위적 이산가족의 양산

나. 학살만행: 17만2천의 북한민간인, 12만 여명의 남한민간인 학살--남북정부 공식통계

다. 폭격으로 북한을 초토화시킨 전쟁범죄행위

라. 세균전

마. 보도연맹, 거창사건 등으로 양민학살 약 1백만명

문제제기: 만약 제한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5-6백만명의 민족상잔이 있었을까?

3. 국보법 제정의 구조적 배경

1. 정통성 부재의 이승만정권의 헤게모니지배의 근거 상실로 폭력일변도 통치가 유일한 대안

1) 이 정권의 정통성 평가
1> 권력뿌리 정당성 부재: 친일파를 기반한 정권, 분단지향적 정권, 친미사대주의 정권
2> 권력창출의 정당성: 5?10선거의 정당성 부재
: 미군정하 5?0제헌의회 선거의 특징( 강정구, ?분단과 전쟁의 한국현대사? 열음사, 1996)
<1> 모든 좌익 및 중도정당과 극우진영인 한독당 등의 선거 참여거부에도 불구하고 선거 강행,
<2> 남한의 425개 정당, 사회단체중 선거에 참여한 단체는 43개에 불과,
<3> 이승만 계열, 친일파로 이뤄진 한민당, 미국과 극우진영의 사조직이었던 극우청년단 등에 국한,
<4> 5.10선거에서 극우세력의 정권장악은 투표행위 이전에 이미 결정됨,
<5>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거에 의한 정권창출이 권력창출의 대표정당성(민주성)이 있는지 논란제기.
3> 권력행사정당성
: 반민특위 해체, 친일파일색, 분단지향, 폭압적 독재

2. 작은전쟁 상태로 인민항쟁, 유격대투쟁, 38선에서의 무력충돌로 이미 작은전쟁 상황

3. 분단국복과 통일을 위한 투쟁 지속

1) 2.7구국투쟁
: 분단을 저지하고 통일을 쟁취하기 위하여 남한 좌익이 주도한 공개적 무력투쟁(4.3, 여순, 유격항쟁)
: 2?7구국투쟁의(김인걸 외, 1998: 97).
조선의 분할침략계획을 실시하는 유엔조선위원단을 반대한다.
남조선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다.
양군 동시 철퇴로 조선통일민주주의정부 수립을 우리 조선인민에게 맡겨라.

2) 남북협상
: 김규식계의 중도파, 김구 중심의 우익진영. 북한이 결합하여 남측 41개 정당사회단체대표 396명, 북측의 15개 정당사회단체대표 300명 등 696명이 참가

: 공동성명--<외국군대 철수> <외국군 철수 후 내전이 발생될 수 없다는 것 확인> <전조선정치회의를 소집하여 통일적 민주정부 수립> <남한 단선을 불인정과 이를 통해 수립되는 단정도 불인정>

: 의의
첫째, 외세에 의하여 강요되는 분단을 분쇄하고 민족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통일투쟁이었고,
둘째, 내전을 방지하는 데 합의함으로써 평화 지향적이었다.
셋째, 전체 조선인을 대변하는 사회단체의 연석회의라는 면에서 인민전체의 대표성을 가졌고, 또 참석자의 대다수가 민족해방투쟁에 종사하여 역사정통성을 가졌다.

3) 작은전쟁의 지속
: 분단극복과 통일을 위한 2.7구국투쟁의 연장선
: 4.3항쟁 선언문
-- 4?3항쟁의 무장대가 첫 무력행동을 개시하면서 제주도민과 경찰관에게 보낸 2개의 ‘호소문’에서 명시한 항쟁의 목적(제민일보 4?3취재반, 1994: 92-93).

시민 동포들이여!.. 매국 단선단정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조국의 통일독립과 완전한 민족해방을 위하여! 당신들의 고난과 불행을 강요하는 미제 식인종과 주구들의 학살만행을 제거하기 위하여! ...조국과 인민의 부르는 길에 궐기하여야 하겠습니다.

출처 : http://moim.ktu.or.kr/tongil/
전교조 통일위원회 국보법 폐지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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