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4일 (수)
(녹)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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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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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04-10-27 ㅣ No.73651

 

 며칠 전의 일입니다. 대방동 성당에 교육이 있어서 갔습니다. 2시인 줄 알고 1시 50분에 도착했습니다. 담당하시는 자매님께서 3시 30분이라고 말을 하십니다. 1시간 30분 정도 시간이 남아서 무엇을 할까 망설이다 앞을 보니 ‘불가마 사우나’가 있습니다.


 아침부터 일이 많았기 때문에  잠시 쉬려고 불가마로 들어갔습니다. 30분 정도 지나니 방송이 나왔습니다. 손님 중에 ‘조 재형’씨 카운터로 나와 주세요! 누가 찾아 왔다는 방송입니다. 깜짝 놀라기도 하고  누가 알았을까! 궁금해 하면서 옷을 입고 나가니 교육을 진행하는 자매님께서 불가마 입구에 서계셨습니다.


 2시에 오시기로 한 강사가 3시 30분인 줄 알고 있다고 하더랍니다. 그리고 2시에는 도저히 올 수 없는 곳에 계시다고 했다고 합니다. 진행하시는 분께서 제가 먼저 온 것을 보았기 때문에 저를 찾아 다녔다고 합니다.


 성체 조배실, 성당, 성모 동산, 사제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고 합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으니 속이 많이 타셨다고 합니다. 하긴 나중에 보니까 부재중 통화가 10통화나 와 있더군요. 저도 40년 이상 살면서 누가 저를 목욕탕으로 찾아오거나 방송으로 찾은 적이 없었지만 그런 저를 찾아온 자매님도 처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날 강의를 마치고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분들이 생각하던 곳에 저는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필요로 하는 곳에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 곁에, 고통 중에 있는 이 곁에, 아파 병상에 있는 이 곁에, 주님이 계시는 성체 앞에 저는 없었습니다. 제 마음이 가는 곳에, 저를 즐겁게 하는 이들  곁에, 제가 기뻐하는 일에 주로 제가 있었습니다.


 낙엽 떨어지는 가을의 끝에서 생각합니다.

늘 제자들과 함께 하셨고, 제자들이 자는 순간에도 옆에서 기도하셨던 주님입니다. 가난한 이, 병든 이, 절망 중에 있는 이들 곁에 늘 계셨던 주님입니다. 이제 모두 도망간 그 고난의 한 복판에서도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고, 당신을 때리는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셨습니다.


 가을이 아름다운 것은 죽어가기 때문이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안도현 님의 ‘가을엽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 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 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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