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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일부 시민단체들은 한술 더 떠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월권해 전횡을 일삼는
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이 국가보안법 존치(存置) 판결을 냈을 때도 자기 입맛에 맞
지 않는다고 같은 소리를 했던 그들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나 헌법재판소나 대법원 같은 최고재판소가 있다. 그것은 입법·행
정권의 과잉행사에 대한 견제, 혹은 헌법수호의 기능을 담당할 기관이 필요하기 때
문이다. 우리 헌법도 입법권은 국회에(40조), 사법권은 법원에(101조), 행정권은 대
통령에(66조)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3권분립’을 통해 권력 간의 세력균형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단순히 잘못된 것을 넘어 위험한 이유가 여기 있다. 우선 권력분립이
라는 민주원칙을 무시하고 있다. 사법부와 헌재 구성원들로부터 법률판단 권한을
뺏으려는 것부터가 그렇다. 그렇게 되면 당장 민·형사 분쟁을 조정하고 판단해줄 기
관이 사라진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먼’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힘있는 자가 힘없
는 자의 주머니를 털어도, 목소리 큰 사람이 목소리 작은 사람의 밥그릇을 뺏어도,
그건 안 된다고 말할 주체가 없어진다는 얘기다. 지금 당장은 자기들이 다수당이고
힘 있는 축에 속하니까 이런다지만, 과거 힘없는 소수였을 때를 돌이켜 생각해볼 일
이다. 항상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하라고 하지 않던가.
이 원칙이 제자리를 찾은 것은 집권자가 헌법정신을 무시하고 권력을 마구 휘두르
던 때를 겪고 나서다. 그때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 만한 그들이 도리어 이런 주장
을 하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또 이들 주장대로 법관과 헌재재판관에 대한 물리적 견제기능을 입법기관이나 행정
기관, 혹은 국민들에게 준다고 해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이익단체나 정
파(政派)의 눈치를 보느라 판결 결과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바보가
아니고서야 다른 쪽에 서 있는 이해당사자가 그 판결에 승복할 리가 없다.
재판관들이 선출되지 않아 민주적 정당성이 없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없다. 재판
관을 투표로 뽑는 나라가 거의 없는 이유는 법원 판결처럼 어떤 일에도 구속되지 않
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요구하는 자리에 특정집단의 이익이나 의사를 반영하
는 사람이 앉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하다보니 지금이 2004년 11월이 맞는가 싶다. 집권자의 폭압으로 3권분
립이 위기에 놓였던 그 시절이 다시 왔는가 하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만일 수도
이전이 무산될 경우에 피해를 입게 될 충청권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생각지도 않고
밀어붙였던 이 정부의 태도가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3권분립이 위기상황이라는 것
은 곧 우리 헌법이 곤경에 처해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국가의 근간인 헌법이 흔들리
게 된 이 시기를 후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가슴이 답답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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