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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제자들의 불만은 대단했습니다. 그 불만이 쌓이고 쌓여 폭발할 지경에 이르러 마침내 모든 제자들이 스승인 원장님에게 따졌습니다. 그러자 원장님은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문제를 하나 내마. 그것을 풀어 오면 내가 왜 이 아이를 특별히 사랑하는지 알게 될 게다.”
원장님은 제자들에게 작은 새 한 마리씩을 주고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해 질 때까지 그 새를 죽여오라고 했습니다. 절대로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죽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해질녘이 되자 제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하여 수도원 마당에는 죽은 새가 수북이 쌓여 갔습니다. 그런데 원장님이 특별히 사랑하는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한참 뒤 헐레벌떡 뛰어오는 아이의 손에는 작은 새가 산 채로 있었습니다.
이를 본 제자들은 “저 바보는 원장님이 뭘 시켰는지도 모르나 봐!” 하며 비웃었습니다.
원장님은 왜 새를 살려 왔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아무도 안 보이는 곳에서 새를 죽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조용하고 으슥한 곳을 찾아 보아도 하느님은 보고 계셨어요. 그래서 새를 죽일 수 없었어요.”
이창우씨의 ‘행복바이러스’라는 책에 소개된 얘기입니다. 지금 이 수도원이 어디 있는지, 원장님이 누구인지, 그 특별한 제자가 누구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어제오늘 신문에는 구세군 냄비 사진이 커다랗게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새해 달력과 다이어리가 책상에 쌓이고 도시 샐러리맨 1인당 평균 3~5회씩 한다고 집계돼 있는 송년회도 시작됐습니다. 신문기자들은 올해 10대 뉴스를 정리하는 특집 기사를 준비할 때입니다.
그런 연말이 가까이 오면 우리는 우리가 죽인 새 한 마리를 들고 어디론가 돌아가야 합니다. 2004년 최대의 단어는 ‘불황’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캄캄한 터널은 길기만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해가 저물기 전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인 ‘새 죽이기’를 해야만 했습니다. 하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서 ‘원장님’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원장님’은 회사의 상사일 수도 있고, 고객일 수도 있고, 아내나 남편 같은 배우자일 수도 있고, 부모나 자식일 수 있을 겁니다. 학교의 스승일 수도 있고, 정말로 수도원에 계시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우리들의 ‘원장님’은 우리 자신입니다. 내가 나에게 부여한 ‘한 해의 목표’일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조용히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야만 들려오는 마음속 목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부터 집으로 돌아가면서 길거리를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아직도 새를 죽이지 못하여 건물 귀퉁이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어떤 사람들이 보일 것입니다. 어리숙하고 바보 같지만 원장님이 사랑하는 특별한 제자들입니다.
여기서 ‘새’는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그냥 우리 이웃입니다. 우리가 완력을 쓰거나 꾀를 부려서 부드럽고 따뜻한 곳을 먼저 차지했을 때 어둡고 추운 곳으로 밀려나 있는 이웃입니다. 숙제를 다 못하더라도 원장님에게 사랑받는 제자가 되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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