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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주의가 성 차별 감춘다 /조이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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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자 [socho] 쪽지 캡슐

2004-12-16 ㅣ No.76629

나이주의가 성 차별 감춘다
남성 대졸자와 여성 고졸자… 연령 차이로 성·학력 차별정당화

 

편집부 editor@digitalmal.com

 

조이여울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편집장

한국만큼 나이주의가 견고한 나라도 없다. 길거리에서 싸움이라도 붙을라치면 "너 몇 살이야?"가 튀어나오고, 이 때 나이가 더 많은 쪽이 훨씬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중고등학교 동아리에선 학생들이 한 살 많은 다른 학생을 '하늘 같은 선배님'으로 대우하며 90도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꼭 대접을 받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어리면 어린 대로 무시당하지만 나이가 들면 늙었다고 괄시 당하는 문화다. 우리 사회에서 노년층이 겪는 뼈 깊은 소외감을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여자는 나이 30이면 벌써 "한창 때가 갔다"는 소릴 듣는다.

나이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나이가 적은 사람들을 향해 가하는 차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나이주의는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을 통제하는 불합리한 시스템이며, 이 시스템이 야기하는 피해의 정도는 우리가 평소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크다.

'기회는 한 번 뿐'인 인생

헌법은 나이에 따른 차별을 금하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도 연령차별을 금하는 조항이 들어가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막상 나이에 따른 차별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최근 연령차별에 대한 연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다분히 문화적인 차원으로 얘기되고 있으며 법과 제도로 규제하기 어렵다고 난해해하는 분위기다. 법적으론 정년차별, 조기퇴직 등이 주로 거론된다.

나이주의의 폐해를 막기 위해 반드시 법적, 제도적으로 선결되어야 하는 문제는 나이주의가 제한하고 있는 '노동권', 고용 상의 차별이다. 최근 문화방송은 신입사원 원서 모집을 하면서 입사 자격을 2년 이상 군복무를 마친 경우 1975년 이후 출생자로, 여성과 면제자의 경우 1978년 이후 출생자로 제한해 물의를 빚었다. 왜냐하면 지난 해보다 연령기준을 각각 2년씩 줄였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나이 제한으로 언론고시 준비생들 상당수가 입사 기회를 박탈당했다. 물론 그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은 진작에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에 문화방송에 입사를 꿈꿀 일도 없었다.

보도에 따르면 문화방송 인사담당 측은 "지원자가 많으면 고사장 확보 등 관리 문제가 크고" "신입사원이 너무 나이가 들면 인사관리상 어려움이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또 "일반 기업에 비해서는 기회를 더 주는 셈"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많은 사람들의 노동시장 진입로를 막아버리는 심각한 사안에 대해, 위에 열거한 '이유'들을 들이댈 수 있는 것이 바로 나이주의 사회의 단면이다.

대부분의 직장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나이제한을 둔다. 아예 '대학졸업예정자', 즉 재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곳도 있다. 그러니 첫 직장을 20대 중반에서 후반까지 얻지 못하거나, 30대 이상의 나이에 해당 분야에 경력이 없는 사람들은 웬만해서 취직자리가 나지 않는다. 연구직, 교수직도 40세 이상의 사람에겐 자리를 내주지 않는 현실이다.

재수생, 삼수생으로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 대학에 다니면서 한두 차례 휴학을 한 적이 있는 졸업생들은 졸업 후 1~2년 안에 직장을 얻어야만 한다. 여성들은 26살만 돼도 '취업전선'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여대생 취업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인 현실에서, 나이가 한 살이라도 많으면 불리하다. 나이제한 때문에 "올해를 넘기면 안 되는" 20대 취업준비생들이 주위에 수두룩하다.

일용직으로 이 곳 저 곳을 전전하는 젊은 사람들도 많다.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프리랜서"라고 말하지만, 알고 보면 닥치는 대로 구한 아르바이트 자리다. 그런 자리조차도 여성들의 경우는 30대에 접어들면 구하기 어려워진다. 우리 사회에선 제때에 학교를 졸업하고, 제때에 대학에 가고, 제때 토익 점수를 받고, 제때 대학 졸업해서 제때 직장을 잡지 못하면 사회에서 주변부로 밀려난다.

한편 직장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제한은 많다. 직장을 옮길 수는 있어도 직종을 옮길 수는 없는 현실이다. 같은 직종의 경력자가 아닌 다음에야 새 인력을 뽑는 기준을 '대졸신입'으로 못박고 있는 현실에서, 자신의 적성에 맡지 않는다고 새롭게 다른 일을 배우거나, 선택할 수 있는 통로는 제한적이다. 한 번 노동시장에 들어섰으면 그 길로 주욱 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간 '떨거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

그렇다면 과연 왜 나이제한을 두는 것일까. 20대가 30대보다 더 일을 잘 하는가. 신규취업자가 재취업을 원하는 사람보다 직무수행 능력이 뛰어난가. 많은 사람들이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직장엔 위계질서라는 게 있고 나이 순서대로 진급이 매겨지는 시스템인데 신입사원이 상사보다 나이가 많으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 문제라는 것은 그저 몇몇 사람들의 불편함의 정도가 아니라 업무처리에 차질을 빚을 정도다. 대기업의 경우 입사초기 직원교육 시간에 신입사원들은 다음과 같이 상사에 대한 예의를 배운다. "윗사람을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에는 목례를 하면서 옆으로 붙습니다. 대리가 '이계장 어디 갔나?'라고 물으면 '이계장님 어디 가셨어요'라고 말하면 절대 안 됩니다. '이계장 어디 갔어요'라고 답해야 합니다…."

S가족, H가족, D가족 등, 소위 '가족 같은' 회사분위기를 추구하는 직장에서 상사는 '부하'직원에게 반말을 서슴지 않는다. 회의 시간에는 상사가 주도적으로 업무를 평하고 직원들을 나무라거나 작업을 지시한다. 많은 업무가 상사의 결재를 거쳐야 하는데 업무에 따라 결재라인이 다르다. 그 때마다 사용해야 할 존칭어와 호칭 또한 각기 다르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이런 문화 속에 나이 많은 신입이 들어오면 어떻게 되겠는가. "모든 것이 껄끄러워지고" "당사자도 적응할 수 없다." 나이순대로 입사해서 나이순대로 진급하고 나이순대로 퇴직하는 것이 회사의 위계질서인데 이를 깨뜨린다면 그 이후의 상황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이서열을 유지하는 것은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것과는 상치되는 일이지만, 거의 모든 기업들이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특유의 나이주의의 폐해를 읽어낼 수 있다.

한국계 미국인 친구가 몇 년 간 한국인 회사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내게 들려준 말은 "그렇게 경직된 분위기에서 어떻게 효율성을 찾을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었다. 단적인 예로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간에 '상사', '부하'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게 놀라왔다고 한다. 그건 군인들이 사용하는 말이지 일반인들이 쓰는 용어가 아니라는 것. 군대식 상명하복의 구조가 회사 안에 자리잡고 있어서 제대로 된 인력활용도 안 될 뿐 아니라 좋은 아이디어도 썩히는 경우가 많고, 전반적으로 창의력을 죽이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연령차별은 학력차별, 성차별과 연결돼

   
  ▲  나이주의가 성 차별과 학력 차별을 정당화한다. 사진은 취업 정보를 살펴보고 있는 대학생.
나이주의에 따른 연령차별은 뿌리깊은 성차별, 학력차별과 더불어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권을 박탈하고 있다.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전문대졸 이하인 학력의 사람들, 그리고 30세 이상의 사람들은 원서도 못 넣는 현실이다. 이런 시스템은 여성들에게 복합적인 억압이다. 한국여성민우회는 기업채용 성차별 실태를 조사한 결과, "우리 고용시장에는 학력과 연령과 성별 간 차별의 연계고리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즉 '남성은 대졸자, 여성은 고졸자'를 뽑아서 남성의 직종과 여성의 직종, 남성의 직급과 여성의 직급에 차등을 두는 것이다. 이 경우 회사 안에서 남자직원과 여자직원의 관계는 다분히 성별 수직구조를 이루고 있지만(여직원 알기를 우습게 알지만) 학력의 차이와 더불어 정당화된다.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일을 해도 남성은 정규직, 여성은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때도 학력이나 연령의 차등을 두어 성차별을 정당화시킨다.

똑같이 입사를 한 남녀 사원의 경우도 팀장을 뽑거나 승진을 할 때 여성들이 밀려나기 십상인데, 그 때에도 사측은 '성차별'이 아니라고 둘러대기 위해 나이주의를 활용한다. 여직원들은 '어리니까' 리더의 자리에 올려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군대를 제대한 남성들이 여성들에 비해 2~3살 나이가 많기 때문이다.

나이에 따른 계단식 고용체계 속에서 더욱 피해를 보는 이는 출산과 양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에선 거의 기혼여성(기혼남성이나 미혼남녀가 아닌)이다. 직장을 일단 그만 두면, 다시 그 직장 혹은 비슷한 직장에 들어간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노동시장이 온갖 편법으로 출산을 앞둔 여성노동자들을 몰아내고 있기 때문에 직장에서 살아남으려는 여성들은 아예 출산을 포기해버리고 있는 현실이다.

만약 여성들이 출산을 하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 즈음 되어 재취업을 하려 했을 때 갈 수 있는 곳은, 자신의 전공이나 직장경력과 별 상관이 없는 보험설계사 같은 소위 '아줌마' 직종들이다. 재취업 문제도 30대와 40대가 다르고, 50대 이상은 또 다르다.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측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요즘은 제조업에서조차 40대는 뽑지 않으려 한다." 얼마든지 일할 능력이 있고, 반드시 일이 필요한 여성들이 노동시장의 성차별과 연령제한, 학력제한에 걸려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 10대부터 50대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다양한 형태로 성매매 시장에 유입되어 있는 것도 이와 직결된 문제다.

저출산 사회, 노동력 부족을 두려워하나

그런가 하면 고령화 사회에 이미 접어든 한국에서 노년층의 고용문제는 날로 심각하기만 하다. 40대처럼 일할 수 있는 60대 이상의 사람들이 있고, 앞으로의 생계가 막막한 노인들도 많이 있지만, 사회에서 노인들은 생산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소일거리나 해야 하는 존재다.

십대들의 경우도 노동권을 인정 받지 못하는 취약층이다. 갈수록 많은 십대들이 일을 원하고 있고, 일을 하고 있음에도 법적, 제도적인 뒷받침이 안 돼있어 이들의 취업은 불법인 경우가 많고 그 과정에서 부당 대우를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난 8월 노동부는 패스트푸드업체 6개사가 근로기준법 연소자보호규정을 수천 건이나 위반한 사실을 적발했다. KFC의 경우 1만1891명의 아르바이트를 사용하면서 11억6천만원 대의 금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연령에 따른 노동권 침해이자 차별이며,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반드시 법과 제도로 개선해야 할 과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영 딴 걱정만 하고 있으니, 바로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다. 여야가 앞다투어 저출산 대책을 내놓고 있고 한나라당은 저출산사회대책법을 기본법으로 제정하겠다고 나오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실업대란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과연 '저출산' 현상이 긴급대책이 필요할 만큼 노동력 부족문제를 야기할 것인지에 대한 진단은 미심쩍다. 노동시장이 잠시만 사용하고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는 아까운 여성노동력이 상당하고, 50대의 원치 않는 젊은 퇴직자들도 많다. 많은 경우 노인들도 일자리를 원하고 있으며, 노동시장이 자신들을 온전히 받아들여주길 바라는 십대들도 있고, 이들은 점차 증가추세다. 사회는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여성들에게 아이 낳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있는 노동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노동시장의 견고한 연령차별, 학력차별, 성차별을 해소하는 데 힘을 쏟을 일이다.

 

2004년 11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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